|
2: 1-24
믿음의 여인 라합 / 안병호 목사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용사들에 대한 기록이 죽 나오는데 그 중에 여인은 두 사람뿐이다.
그 중 한 사람은 사라요,
다른 한 사람은 라합이다.
사라는 경건한 여인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요 이삭의 어머니이다.
그의 태가 말라 죽은 자와 같은 나이에 믿음으로 이삭을 낳은 여인으로서 참으로 존경할 만한 여인이다.
그러나 라합은 이방여인이요, 더구나 기생의 신분을 가진 자이다.
두 사람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같은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두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똑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구원 받을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라합을 사라와 연결시킬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도 연결시키고 있는데 두 사람이 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라합을 구세주와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메시야의 조상 가운데 라합의 이름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이방 죄인도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하여 성경기자는 그 조상 가운데 라합을 등장 시킨다.
라합이 이처럼 사라, 아브라함과 같은 위치에서 인정을 받고 메시야의 조상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가 믿음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라합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배우고자 한 것이다.
Ⅰ. 사역자를 돕는 신앙
라합이 행한 일은 주의 사자를 영접하고 잘 대접한 것이다.
그녀가 한 일은 지극히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의 행함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아주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그가 잘 대접한 사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가 약속했던 그의 백성을 가나안에 들어오게 한 것이다.
그의 작은 행함으로 하나님은 엄청난 역사를 이루셨는데 그것은 요단 물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함락시킴으로 그의 백성을 안전하게 가나안에 입성 시킨 것이다. 요단 물을 건넌다는 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을 건너야 하고 여리고 성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그런데 그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누구를 통해서 했는가? 라합의 믿음의 행위 그의 행함이 있는 믿음, 정탐꾼을 영접하고 평안히 보내게 함으로써이다.
주의 사자를 어떻게 도왔는가를 살펴보자.
첫째로 주의 사자를 육적으로 대접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2:1)
주의 사자는 정탐하기 위해서 물질적인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것을 준비하다가는 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특별한 섭리로 라합이라는 믿음이 있는 기생의 집으로 인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빌립보를 개척할 때도 바울을 누구의 집으로 인도했는가? 루디아의 집으로 인도했다. 엘리사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누구에게 보냈는가? 사르밧 과부에게 보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낼 때 옷 두벌도 가지지 말고 전대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영적인 일꾼을 육적으로 풍성하게 잘 대접하는 것은 대접하는 본인에게 중요한 것이다. 왜? 주의 사자를 잘 대접하면 할수록 주의 사자를 사랑하게 되고 주의 사자를 사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가르친 자를 배나 존경할 자로 생각하라 하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이 주의 사자에게 귀한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둘째, 주의 사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했다.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 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2-7)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 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 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15-16)
라합의 믿음의 행위는 주의 사자를 큰 위험에서 보호한 것이다.
그의 재치로 삼대에 숨기고 왕의 사자를 적당히 거짓말로 따돌리고 안전하게 성 밖으로 그들을 보내게 된 것이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주의 일을 하는 사자로 하여금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게는 생명의 위험이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며 사자를 보호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오늘 날에도 주의 사자는 원수에게 노출 되어 있는 것이다.
사단은 주의 종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어떻게든지 주의 종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한다. 사단은 주의 종을 낙심케 함으로 쾌재를 부른다. 주의 사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셋째, 말씀으로 격려했다.
삼대 밑에 숨어 있는 정탐꾼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 여리고 왕이 보낸 사자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숨어 있는 그들의 가슴이 얼마나 놀랬을 것인가? 간이 콩알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라합이 올라가
서 격려하는 말을 보라.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8-11)
얼마나 믿음 있는 격려인가?
오늘날에도 주의 일꾼들이 주의 일을 하면서 이런 두려움에 빠질 때가 많이 있다. 이럴 때 믿음 있는 성도의 격려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캐더린이 루터를 어떻게 격려했는가? 영국의 어떤 목사가 너무나 이 직무가 무겁고 깊은 실패감에 빠져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표를 써서 사무실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나이든 두 권사님을 만났다. 그 권사님들이 목사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자 용기를 얻고 돌아와 목회에 큰 성공을 했다. 믿음으로 목사를 격려하는 것은 능력 있는 목사를 만드는 비결이다. 믿고 기도하며 우리 목사님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목사로 키워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도하며 믿어 보라.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지 전도도 할 것이다.
Ⅱ. 인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신앙
기생하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름다운 외모로 뭇 남성들을 유혹하여 돈을 뜯어내는 직업을 연상한다. 소위 향락 산업의 선두 주자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면 라합은 이 향락 산업에서 손을 떼고 직물업에 종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혁명적인 인생의 변화를 의미한다.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6)
지붕위에 삼대를 놓았다는 것은 이미 그의 주업이 삼베 짜는 직물업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 한다. 또한 그 집에는 많은 양의 밧줄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내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8)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21)
그 집에 붉은 받줄이 많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당시 염료를 액체로 운반하기 힘드니까 밧줄에 물을 들여 운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밧줄을 사서 그 밧줄의 일부를 물들이고자 하는 천과 함께 끓는 물에 넣으면 염색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밧줄 15cm정도만 가지고도 상당한 양의 옷감을 염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라합의 밧줄은 온 성벽에 모두 걸 수 있어서 두 사람이 그것을 타고 내려 갈 수 있었다. 성벽의 높이가 약 9m정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굉장히 많은 양의 밧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라합이 여관 업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아마 그녀는 직물업과 여관 업을 겸했을 것으로 추측 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삼베 짜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지런한 사람의 특징으로 잠언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일하는...”(잠 31:13)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삼베 짜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삼를 재배하여 그것을 베서 묶고, 그 다음에는 삼대를 운반하여 굽는다. 그리고 그것을 벗기는 작업, 그 삼을 가늘게 짜게는 작업, 그것을 다시 잇는 작업, 그것을 실로 만드는 작업, 그것을 베로 짜는 작업까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기생으로 돈을 벌다가 이런 소위 3D 업종으로 전환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요즈음 청소년들 심지어 대학생들, 주부들까지 쉽게 돈 벌기 위해서 이런 향락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변화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수를 만나고 나서 세리라는 직업을 버리고 사도가 된 마태나, 토색한 물건을 4배나 갚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세리장 삭개오는 분명 그 인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반면에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찾아 왔으나 그의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주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어 슬피 돌아갔다. 우리의 믿음이 확실한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삶의 태도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믿음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이번 한신 아파트에 이사 오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인생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한 사람이 많이 있다.
충현교회가 퇴계로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가고자 했을 때 장로들이 결사적으로 반대 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교회도 되지 않을 것이요 또 목사님은 만평을 사자고 하시는데 어떻게 그 많은 땅을 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목사님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가능한 일이요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장래를 내다 볼 때 훨씬 낫다고 생각되었다. 위대한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다. 당시 교회가 위치해 있던 퇴계로의 땅은 금값이고 강남의 땅은 얼마 안 된 헐값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장로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변화를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꿈을 무산시킨 것이다. 그래서 김창인 목사는 교회를 사임할 것을 선언하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장로들이 와서 빌고 대신 타협하여 반만 사기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그 때 만평을 사고 나중에 반을 팔아서 예배당을 지었더라면 훨씬 쉽게 예배당을 지었을 텐데 나중에 예배당을 짓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장장 15년 동안 예배당을 지으면서 거의가 집을 팔고 전세금을 바치면서 겨우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인생의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Ⅲ.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신앙
그녀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함으로 열매를 통해서 그녀의 신앙을 확증했다. 본문에서 보면 라합은 그는 자기만 구원 받고 만족하지 않고 친척까지 구원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정탐꾼들에게 그의 가족까지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12)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내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18)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19)
이것은 그녀로 하여금 많은 수고를 필요로 했다. 가족을 집에 모으는 일이 얼마나 힘 드는 일인가? 이것은 또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다. 그러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라합은 그의 가족과 친족을 구원했다(수6:23).
이것은 라합의 믿음이 얼마나 분명한 믿음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가족 가운데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상에서 라합의 믿음은 그의 실제적인 삶에서 믿음의 증거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을 본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주의 사자들을 도와주었다. 쉽게 돈 버는 직업을 버리고 건전한 삶을 살기 위하여 힘든 직업을 택한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혁명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도 참 믿음이 있다면 행함으로 나타내 보여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 행동이 참 믿음의 행동이라고 할만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이 참으로 구원의 믿음이 있는 삶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삶이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