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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필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김상영
헐어놓은 12월이 헤프게 흘러갑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읍내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운동 삼아 재를 걸어 넘기로 한 것이지요. “한다, 하지.”하면서도 아내는 해가 바뀌도록 운동과는 담을 쌓았지 뭡니까. 그래 봤자 40리가 채 안 되니 땀나다 말 거리입니다. 길을 트면 계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왼편에 눈 덮인 밭이 보입니다. 입대하던 여름날 아침의 그 싱그럽던 뽕나무가 눈에 선합니다. 동구 밖 휘돌아 고향 뜨던 그때야 어찌 오늘의 이 삶을 그렸으리오. |
‘윗재’를 오릅니다. 눈이 채 녹지 않은 길은 질척하고 좁습니다. 오가는 차를 이리저리 피하며 걷습니다. 뱃사람 용어로는 ‘회피 기동’이 되겠습니다. 차들이 아는 척 빵빵거립니다. 운전자들의 혼잣말을 예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팔자 조~타.” “하릴없는 넘들.” "언 눔들이고." “미친 것들.” “저카다 박아뿌마 들어 눕것제.” |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며칠 전 동창 모임을 가졌던 오리집입니다. 오리 한 마리를 구우면서 아내의 눈치를 봅니다. 맛있다 할까, 없다 할까. 여자들은 달거리 하듯 입맛의 기복이 있는 것일까, 들쑥날쑥합니다. 나는 주야장천 당기는데, 아내는 입이 짧습니다. “맛있네.” 드디어 판정이 떨어졌습니다. 삼겹살 세 조각만 먹던 아내가 오리고기를 연신 집습니다. 나는 소주 일병을 베물어 먹으며 속도를 조절합니다. |
서빙 아줌마의 미소가 따뜻합니다. 의성 사람이 맞나 싶습니다. 무뚝뚝하고, 불러도 대답 없는 데다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음식점도 겪고 사니까요. “떡가래 몇 개 더 주실래요?” 말리는 아내의 눈길을 짐짓 못 본체하며 공짜 주문을 해봅니다. 횟집을 해본 아내는 음식 장사의 애환을 누구보다 더 이해합니다. “아, 예~” 오리 기름이 밴 떡볶이는 혓바닥 델 듯 쫄깃하며 고소합니다. 음식값 22,000원을 내고 되돌아 나선 길에 아내가 중얼거립니다. "오리 한 마리에 14,000원, 소주 한 병은 4,000원이라, 양푼이 밥 두 그릇 2,000원에다 상차림 비 2,000원이니 딱 떨어지네." 전직이 의심스럽다더니, 참. |
마늘 공장 옆 하천에 청둥오리가 떼로 앉았습니다. “아깝다.” “쏘면 걸릴 끼라.” 공기총은 집에 뒀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눈먼 장끼는 없나 싶어 연신 길섶을 살핍니다. |
안평 가는 철파길입니다. 시원스레 넓혀진 아스팔트 길이 훤합니다. 배부르니 마음도 푸근합니다. |
철파 동네입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밤새우시던 가겟집이지요. 장날만 마중 가는 줄 알면 세상 덜 살아본 겁니다. 이튿날 마중 길은 좀 처량합니다. 드라마 속 '내 딸 서영이’처럼, 아버지를 원망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인생을 이해할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람은 가고 세월만 남았네요. |
‘솔나라’에 들렀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사무실에 가득하였습니다. 솔잎비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석회질 많은 우리 고장물에도 미끈 매끈 잘 씻기는 비누입니다. 돈 많이 벌어 행복하기를 응원합니다. |
동구 밖 과수원길입니다. 사과 한 알 몰래 따 먹고 마음고생 하던 통학 길이지요. 차로 쌩쌩 지나설까 먹거리 흔한 세월 탓일까, 맛볼 여유조차 없는 요즘입니다. 느림의 미학이 아쉽습니다. |
가죽나무로군요. 나무를 짚으로 쌌네요. 우리 고장엔 추워서 안 된다던데, 밭 주인은 혹시 비법이 있는 것일까. |
집이 가까우니 마지막 스퍼트를 해봅니다. 확실한 효과를 보려면 뛰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운동에 앞서 만병의 근원은 마음인 걸 알고 있습니다. 운동과 음식과 대화로써 마음을 연 오늘은 그 모두를 얻은 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