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노아 홍수시대 이전부터 거슬러 올라가 믿음을 지켜온 노독들의 생애와 그 신념에 대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믿음장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믿음으로 노아는...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믿음으로 모세는... . 그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었고 믿음으로 타락과 부패를 헤치고 나아간 자들이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승리하였고 믿음을 가지고 핍박과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생활, 그리고 그들이 종교사에 미친 영향들에 대한 기사들을 살펴보며, 히 11:33-40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위의 성경절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싸워온 선조들의 생애를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믿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믿음은 어떤 논리를 인정하는 동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믿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믿음은 능동적인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가 타협되거나 바뀌어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아니한다. 왈덴스인들이 가진 믿음은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이었고, 그들의 전도를 통해 종교 개혁을 일으키게 된 개혁자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도 바로 이 살아 있는 믿음이었다. 알면서도 가만히 중립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사실상 믿음을 가졌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1. 믿음의 마지막 주자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상이 있다. 그것은 이 지구 역사의 믿음의 싸움에 있어서 마지막 주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주자가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믿음의 싸움이, 아니 계속되어 가고 있는 종교개혁의 사업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인 왈덴스인들은 목숨을 다하여 진리를 발견하고 내세우며 보존하여 왔다.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는 일을 즐거이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그 결과를 바라보기만 하였지 아직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의 싸움의 결과와 끝은 세상의 종말에 살고 있는 마지막 주자인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40절 하단).
빛이란 점진적인 것이다. 아침의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 4:18).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자가 단번에 진리를 다 꿰어 차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진리를 이해해 나가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예수께서 세워 놓고 가신 초대 교회는 그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면에서 완전하였었다. 그들은 온전히 회개하였으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후예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돈에 대한 사랑과 권력에 대한 다툼과 정치와 타협하고 진리를 쉽게 변조시켜버리는 일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중세기에 진리는 그 빛을 잃게 되었다. 이 세상은 암흑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왈덴스인들과 같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면서 저항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도와 진리의 빛을 통하여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이 일어나 종교 개혁을 부르짖으며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것이었고 또한 그 진리들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게 되며 구원을 얻게 되는 기초석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2. 계속되는 종교개혁 운동
진리의 빛이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것처럼 종교개혁자들도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더 밝은 진리의 빛을 비추었다. 곧 그들의 개혁운동을 통해 진리의 빛이 조금씩 더 밝게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역사의 흐름과 그 성정은 진리를 단번에 소화하거나 개혁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원만한 광명에 이르기 위하여 계속 진리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빛이 온전한 분량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전진되어야 한다. 왈덴스인들의 신앙이 밑거름이 되어 탄생한 종교개혁자들이 시작한 진리의 개혁은 그 후예들에게 와서 중단되어 버렸다. 중단은 후퇴를 뜻하는 것이다.
구속의 역사는 모든 진리가 회복되었을 때, 그리고 교회가 그 모든 진리를 회복한 후에 그 회복된 진리로 인하여 성결케 될 때에 그 끝이 이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곧 하나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통하여서만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삐뚤어지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리의 빛은 온전한 분량까지 전진되어 나가야 한다. 아직도 채 개혁되지 못한 채 감추어져 있는 진리들이 여전히 그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 진리롤 온전히 성화된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 마지막 교회가 준비될 때에, 곧 어린양의 신부가 준비되는 때에 예수께서 신랑으로 재림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야 하나님께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진리로 승리하시게 되는 것이다. 진리가 어두움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사실이 온 우주에 증명된 이후에 끝이 오는 것이다.
3. 마지막 주자의 사명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전기를 발견하기 전까지 인류는 어두움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전기의 발명 이후에 인류는 밝음의 자유를 누리며 얼마나 많은 발전을 도모해 왔는가!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완전하게 다시 회복하는 데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이다. 개혁자들의 후예들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주자인 우리의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교회를 성장시키어 큰 건물을 짓는 것일까? 현세의 정치 체재를 바꾸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을 벌이는 일일까? 아니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자선하는 일에 온 정력을 기울이는 일이란 말인가? 물론 그러한 일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은 교회의 사명에 있어서 지엽적인 일이다.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고수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우선 순위를 바꾸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체험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 믿음은 단순한 동의나 인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은혜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주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으로 변화되도록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복음을 온전히 체험한, 죄를 이기는 순결한 성품을 이룬 한 백성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이 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는 이 시대적인 사명과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예수께서 곧 오실 것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이다. 우리는 새로운 진리들을 발견하거나 듣게 될 때에 빛으로 빛으로 전진해 나가는 용기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마치 왈덴스인들이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듯이, 우리도 진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우리의 평판이나 이익을 버리고 충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1620년도에 청교도들을 미국으로 떠나 보내는 마당에서 설교한 청교도 지도자 로빈슨 목사의 고별 설교 내용을 다시 음미해 보도록 하자!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제 곧 헤어지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기회를 주시든 아니 주시든, 저는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책임을 부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쓰시는 방법을 통하여 무엇이든지 여러분에게 드러내시는 때는, 일찍이 나의 봉사를 통하여 드러난 진리를 여러분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확신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쏟아져 나올 더 많은 진리와 빛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알려졌거나 장차 알려지게 될 진리의 빛을 따라 주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동의한 여러분의 서약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여러분에게 알려지게 될 빛과 진리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하고 또 서로 약속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더욱 조심하도록 간청하는 것은 여러분이 진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은 먼저 그것을 성경의 다른 진리들과 비교하여 달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계는 극히 최근에야 그처럼 두터웠던 적그리스도적인 암흑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단번에 완전한 지식이 모두 터져 나오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고 계신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라도 불사하면서 싸우던 과거의 왈덴스인들처럼,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진리의 빛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따르기로 결심하는 현시대의 왈덴스인들을 찾고 계신다. 아직도 계속 중인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하고, 그 진리의 빛으로 마지막 세상을 환하게 비출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을 말이다. 당신은 현대 왈덴스인인가? 당신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며 따라갈 열정을 가진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대의 신실한 왈덴스인들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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