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방송과 함께 일과를 멈추고, 나는 즉시 출동을 준비한다. 무전기로부터 들려오는 메시지, 그것은 사고 현장이 산이라는 것과 ‘일천 추정’이라는 말이었 다. ‘일천 추정’이라는 말은 이것은 누군가 생명을 상실했음을 암시하는 어두운 단어다. 자살 시도 혹은 다른 이유로 구조 대상자가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추정 한다는 뜻이다. 처음 겪어보는 일은 아니지만, 죽음 앞에 서면 항상 가슴 한켠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등산객 중 한 명이 산길에서 사람의 형상을 발견해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고, 우리는 신고자가 갔던 길을 따라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4월 초, 겨울에서 벗 어나 점점 따스해지며 얼었던 대지가 생명력으로 가득 찬 봄으로 변화하던 시기 였다. 산에는 등산객들로 붐볐으며, 나무들 사이에서 싹트려 하거나 이미 돋아 난 싹들도 보였다. 이렇게 활력 넘치는 풍경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은 이 좋은 봄 날에 어떤 마음으로 이 산을 올랐을까?’라며 그 사람의 상황을 곱씹어 보았으 나, 그런 생각들을 멈추고 다시 현실에 집중하였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오랫동안 방치되어 모습 자체가 인식하기 어려울 정 도로 변형된 시신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싹이 트기 시작한 주변의 나무들과 꽃망울을 피우고 있는 꽃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생명의 흔적만이 남아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현장의 위치를 경찰 에게 알리고 인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분의 명복을 기원하는 것, 이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이런 현장을 다녀오면 그 모습이 뇌리에 남 아 빨리 잊으려 하지만, 가끔은 이런 나의 행동이 고인에게는 또 한 번의 슬픔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진다. 어느 날 T.V 화면 속 어떤 소방관의 말이 나의 귀에 들어왔다. “소방관은 신 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의 뜻을 100% 이 해할 순 없지만 내 나름의 의미를 찾아봤다. 아마도 ‘죽음’을 자주 마주하는 직업인 만큼, 우리가 신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 즉 죽음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죽음’이란 단어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았다. 소방관이라는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죽음은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뉴스 를 통해 현장에서 순직하신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죽음에 대해 곱씹어 보 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의 죽음과 마주하는 현장에서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깊 이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그 생명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한 고찰은 특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걸까?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자신 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내 안에 묻혀있던 이런 의문들과 고민은 지금도 계속해서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며 나를 꾸준히 성찰 하게 만든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그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바라 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내 죽음이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면 내 삶이 끝났다고 하지만 남겨진 사람에 대한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 또한 누군가의 죽음이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게 죽음의 현 장을 바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바로 바라본다는 건 죽음의 현장 자체를 눈으 로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나 스스로 평가하거나 넘겨짚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이 행동이 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날은 출동 방송이 끊이지 않았던 날이었다. 오전에는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 화재가 발생했고, 갑작스럽게 퍼붓는 폭우로 인해 수많은 침수 피해 신고가 쇄 도했다. 아마도 그런 날씨 때문인지, 투신 우려 신고도 끊이지 않았다. 밤새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새벽 3시를 가리키던 시계의 진동과 함께, 다시 한 번의 투신 신고가 접수되 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수색하였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전으로 들려오는 메세지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변하였다. “CCTV를 통해 투 신자 확인.” 수난구조대원들은 강물 속으로 사라져갔고, 나와 나의 동료들은 강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성과 없이 수색을 마치고 다리로 돌아오는 길에, 유 일한 단서인 유류품을 발견하였다. 그 순간 무전기에서 “구조대상자 발견.”이라 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이러한 유류품들은 구조대상자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위치에서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멀리서 발견되어, 어쩌면 그 사람이 많은 시간 동안 앉아 고민하며 자신의 생명을 결정짓기까지 망설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함께 발견된 유서를 스치며 본 짧은 문장들 속에 담긴 내용들을 차마 짐작할 수 없었다. 구조대상자를 구급차로 옮기며 이 사람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봤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입고 있던 옷, 신발, 지갑 속에 있던 것과 같이 외형적 인 것들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항상 조심하려고 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이런 사고방식들이 이 사람을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 사회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고 있진 않은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다짐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그날도 유독 출동이 많은 날이었다. 하나의 사고를 수습하고 소방서로 돌아오던 중 현장 이동하라는 무전을 받고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였다. 상황은 아파트 12층에서 구조 대상자가 투신한 상 황이었고,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구급대원들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의 하교 시간이 겹쳐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막기 위한 가림막 설치와 주변 주민 접근 차단 등 현장에서 해야 할 일들 에 분주하던 중,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나에게 “살았어요, 죽었어요?”라고 물었다. 그 아이의 말은 결코 악의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호 기심과 궁금증에서 나온 질문일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어딘가 씁쓸함을 느꼈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 가볍게 대하지 않나 하는 생각 이 든다. 특히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 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마지막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의 인 생에서 가장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인생의 그 순간을 우리 사회에서 종종 간과하거나 경시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나부터 그들의 선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럴 용기로 살아보지”, “죽을 용기로 뭘 못해?” 이런 말들 혹은 비슷한 말 들이 주위에서 너무나도 쉽게 들린다. 뉴스에서 자살 소식을 접하거나, 직접적 으로 그런 상황에 마주했을 때, 입 밖으로 혹은 마음속에서 한 번쯤은 했던 말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말들이 정말로 타인의 죽 음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일까? 라는 의문에서 이런 말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용기(勇氣)’라는 단어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신감. 즉 어려움을 극복하 는 힘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 큰 무대 위에 설 ‘용기’, 불의에 맞서 싸울 ‘용기’ 등.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 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선 용기라니? 그것은 결국 스스로 생명 을 포기하는 것, 곧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인데 이것이 정말로 용기일까? 아니 면 단지 포기일까? 만약 이것이 ‘용기’가 아닌 ‘포기’라면, 지금껏 어떠한 오해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 그동안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 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우리도 모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출동 대기 중에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 그의 장기간의 경험은 마음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를 가져다주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적정 심리학’이라는 개념은 타인과의 공감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책에서 공감의 방법 등등 여러 가지가 내 용이 있지만 나는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준다면 사 람은 자신의 목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 한 문장이 공감을 가장 잘 표현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동안 나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는 했지만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 적 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살 현장에 출동하고, 한 달 에 한 번 이상 죽음을 경험했지만 그동안 나는 구조 대상자를 위험에서 구조했지 만, 그들의 마음까지는 구하지는 못하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죽을 용기(勇氣)란 없다.’를 아는 것이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의 공감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업무 특성상 구조대상자와 함께할 시간이 짧아 그 사람을 100% 공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작은 공감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 작 은 공감이 구조대상자의 마음을 구조하는 동아줄이 되길 희망하면서 오늘도 나 는 현장으로 출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