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점령하다
삿 1:8-15
새벽몌배20170702.hwp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삿 1:8-15 /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정복하다] 유다 지파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그 성읍을 정복하고는 그곳 주민들을 칼로 쳐죽이고 성에 불을 질렀다. 9) 그런 뒤에 다시 내려가 산악지대와 남부 지역과 저지대 등 유다 온 지역에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과 싸웠다. 10) 그러고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헤브론으로 쳐들어갔다. 이 헤브론을 옛날에는 기럇아르바라고 불렀다. 그곳에서는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부족을 쳐죽였다. 11) [드빌을 정복하다] 또 유다 지파 사람들은 거기서 드빌에 사는 주민들을 치러 갔다. 드빌의 옛 이름은 기럇세벨이었다. 12) 거기서 갈렙은 이렇게 공언하였다. `누구든지 기럇세벨에 올라가 그곳을 점령하는 사람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 13) 그러자 그나스의 아들이자 갈렙의 조카인 ㄱ) 옷니엘이 기럇세벨로 올라가 그 성읍을 점령하였다. 그래서 갈렙은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ㄱ. 옷니엘이 갈렙의 아우일 수도 있다) 14) 악사가 옷니엘과 혼인을 올리던 날이었다. 악사는 옷니엘과 함께 나귀를 타고 시집으로 떠날 차비를 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몫으로 아버지한테 밭뙈기라도 달라고 합시다.' 하면서 나귀에서 내렸다. 그러자 갈렙이 딸 악사에게 물었다. `악사야, 무슨 일로 그러니?' 15) 악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버지! 저를 남쪽 땅으로 시집 보내면서 아무런 예물도 주시지 않을 셈인가요? 샘이라도 하나 주세요' 그러자 갈렙은 딸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예물로 내주었다.
베섹 전투에서 승리한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과 헤브론, 기럇 세벨을 정복합니다. 특히 갈렙은 자신의 딸을 전승 보상함으로 믿음과 용기있는 자를 통해 기럇 세벨을 정복합니다.
쳐서 점령하여(8-10) 베섹을 격파한 유다 지파는 그 기세 그대로 예루살렘과 그 일대 산지와 평지, 그리고 헤브론과 드빌을 차례대로 정복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미 여호수아에 의해 정벌되었던 곳이었습니다(수 10:22-27). 그러나 당시 여호수아가 예루살렘을 정벌한 뒤, 다른 가나안 지역 정벌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왔을 때, 그 틈을 노려 이웃의 왕인 아도니 베섹이 이 성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예루살렘 정복은 여호수아가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과업을 계승하여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의 고산지대로서 갈렙에게 할당된 지역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소유로 가족묘가 있었으며, 다윗이 통치 초기에 수도로 삼아 7년 6개월 동안 다스린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헤브론에서 죽임을 당했던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아낙의 아들들로서, 기골이 장대한 아낙 족속을 형성했습니다. 세새는 ‘태양’을, 아히만은 운명의 신인 ‘메니의 친구’를, 달매는 ‘밭고랑’을 뜻합니다. 이 이름들은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나타내는 것들로서 당시 가나안 땅에 우상숭배가 얼마나 만연하겠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죽인 것은 그 땅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11-15) 기럇 세벨을 정복하는 데에는 딸을 보상으로 하는 갈렙의 공모가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갈렙의 조카이자 초대 사사인 옷니엘이었습니다. 후일 드빌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기럇 세벨은 헤브론 남서쪽 15km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기럇 세벨은 서적의 성읍이란 뜻으로 당시 이곳엔 많은 기록 문서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 주민들은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완강하게 저항했고 그래서 갈렙은 믿음과 용기를 가진 자를 공모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럇 세벨은 결국 옷니엘에 의해서 정복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용기 있게 나선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초대 사사(3:9)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한편 갈렙은 약속대로 자신의 딸 악사를 옷니엘과 결혼시켜 기럇 세벨의 남방 땅을 할당하여 그곳에서 살게 합니다. 샘물을 달라는 악사의 요구에 갈렙은 두 샘물이 있는 곳으로 보냅니다.
적 용 : 기럇 세벨 전투의 영웅은 옷니엘이었습니다. 옷니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함께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드빌은 광야의 종착지로써 가나안 정복전쟁에 있어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이에 갈렙은 그의 딸 악사를 전승의 포상으로 제시함으로 이스라엘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합니다. 신부를 맞이하는 값으로 전승을 걸었던 것은 고대 근동의 보편적인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속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일을 인간적인 수단으로 풀어가려고 합니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마음의 동기에서 비롯됩니다. 자아를 의지하는 삶은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후에도 얼마든지 계속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닌 지속적인 현재의 사건으로 지금도 일어나야 합니다.
< 설 교 >
점령하는 자에게는
1. 갈렙의 조치
1. 넘겨주심
사사기 1장의 주요 줄거리는 가나안 정복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정복에 대해, 정복을 위한 전쟁에 관해 하나님의 관점과 이스라엘의 관점이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에 대해 정복이라고 하지 않으셨고, 전쟁이라고 하시지도 않았고, 이스라엘에게 싸우라고, 이기라고, 승리하라고 명령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가나안 입성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2절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이며, 4절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입니다. 이스라엘이 싸워야 하는 전쟁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승리해서 빼앗아야 하는 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약속된 시간이 임하여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기에 하나님은 약속대로, 하나님은 말씀대로 가나안을 넘겨주셨다고 선언하시기에 ‘하나님이 넘겨주셨다’고 강조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책임성,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옳습니다.
동일한 관점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삿 2:14, 3:8, 10:7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팔았다’고 합니다. 또는 삿 6:1, 13:1절과 같이 ‘여호와께서 넘기셨다’고 표현하여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입성이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은 온전히 싸움이요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절 ‘누가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3절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5절 ‘그와 싸워서’고 했습니다. 8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고 칼날로 치고’, 9절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라고 나옵니다. 12절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25절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로 싸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이상한 선언
갈렙은 기럇세벨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선언하고(삿 1:12), 사울 왕은 블레셋의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는 딸을 아내로 주고 세금을 면제해주겠다고 선언하고(삼상 17:25, 18:17), 입다는 자기가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맨 먼저 마중 나온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선언합니다(삿 11:31). 이 사건에 등장하는 갈렙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 신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이 행하신 땅 분배에 대하여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의 극치인 것과 마찬가지로 갈렙의 행동은 가나안의 입성과 정착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넘겨주신 것과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조치로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갈렙이 이렇게 제안하는 이유는 전쟁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전체에서, 어느 지역을 정복하든, 어느 도시를 진멸하든, 어느 성읍을 탈취하든 모든 승리는 딱 하나 ‘하나님이 넘겨주시니’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자신들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전쟁을 한 자신들의 공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럇 세벨을 정복하면 가장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고 가장 먼저 점령한 용맹스러운 그 사람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고하고 애쓰고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상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생각이요, 하나님을 거부하는 조치인 것입니다.
3. 성경의 예들
가나안 입성의 첫 번째 장소인 여리고 성에서 칠 일간에 걸쳐 열세바퀴를 돌고 소리를 질렀더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한 후에 하나님이 어느 누구에게라도, 어느 것이라도 상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난 아이성에서 한번은 실패하고 두 번째 전투에는 전략이 동원되어 약 오천 명이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일부는 아이 성을 공격하다가 패한 척하여 도망치며 적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였고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어느 것이라도 상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서 전체를 고려할 때 가나안 입성의 총 책임자를 여호수아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나안 입성이 완료된 후에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다른 백성들과 구별되게 공로를 인정하여 내린 상이 일체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조치
1. 다윗의 경우
갈렙의 조치와 정반대가 되는 경우, 즉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차별적 역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음을 인정하는 조치에 대한 사례가 삼상 30장에 나옵니다. 다윗일행의 가족들이 포로로 잡혔고, 다윗의 군사 600명이 추격하던 중 200명은 지쳐서 후미에 머물고 400명이 결국 포로를 찾고 전리품을 얻어옵니다. 곧이어 싸움에 대한 논공행상이 벌어집니다. 22절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입니다. 이때 다윗의 대답이 23절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입니다. 다윗도 추격에 동참했고 힘들게 싸웠습니다. 인간의 수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간혹 장수들 중에는, 간혹 백성들 중에는 차별을 두자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도자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어떤 일이 성취되었을 때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꾼이 보여주어야 하는 본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
갈렙의 생각이 악사의 행동에서 재현됩니다. 악사는 자신이 가나안에서 땅을 얻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아닌 아버지의 공로로 생각하며, 복도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고, 우물도 아버지에게 달라고 합니다. 악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믿을 뿐입니다. 행여 악사가 이렇게 말해도 갈렙은 바르게 가르쳤어야 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갈렙의 비인격적 행동이 아니라 갈렙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는 상벌원리를 보여주며,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신실하심을 대조하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해 상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보상해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를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요, 건강도 하나님의 은혜요, 지혜도 하나님의 은혜요, 재능도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 자기를 주장하지 않게 되고, 당연히 서로 간에 경쟁과 갈등이 없어지고 자유와 평화와 안식이 넘쳐납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강조하는 최종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