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84)
샬롬!
눈이 내립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 속에 몸도 마음도 함께 젖어들고 싶습니다. 눈오는 날은 그리운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운 웃음이나 그리운 표정이나 그리운 노래까지 눈송이만큼이나 쌓일 것입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곳곳에는 겨울 흔적이 즐비합니다. 작심하고 떠나기에는 가슴 한켠 망설임도 없지 않겠지요.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겨울이 웅크리고 앉아 있고 텃세 추위가 여전하지만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 봄이 싸리문 사이로 한걸음 한걸음 서서히 다가와 얼음장 밑으로 시냇물 졸졸 흐를 것입니다. 매화 망울이 트고,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를 것입니다. 봄은 벌써 와 버렸지만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는 옛말처럼 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은 겨울은 있는대로 심술을 부려 더욱 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문득
가슴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
입김 나오는 겨울 새벽
두터운 겨울 잠바를 입고 있지 않아도
가슴만은
따뜻하게 데워질 때가 있다.
그 이름을 불러보면
그 얼굴을 떠올리면
이렇게 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원태연)
옷깃을 파고 여미는 삶의 추위를 사르고 높이 솟은 2월의 태양 빛이 유난히 따사롭게 느껴집니다. 어두움과 찬바람을 사르는 저 태양 빛의 따사로움이 모든 선생님들의 삶의 가슴에도 포근하고 넉넉한 희망의 새 빛이 되었으면 합니다. 삶의 어둠을 밝히는 저 태양도, 삶의 고통을 날리는 저 눈바람도, 삶을 촉촉이 적시는 은혜의 단비도 오직 우리 주님 안에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참 소망과 참 행복과 참 평안이 우리의 생활 속에 충만해져, 문득 문득 가슴이 따뜻해지고 감사가 느껴지는 날이 되어지길 두 손 모으고 기도합니다.
입춘은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옛부터 입춘이 되면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소를 보살피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인분으로 두엄을 만들기도 하며 농사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입춘 날 농가에서는 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거기에는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더불어 어둡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중등부도 긴 겨울방학을 뒤로하고 이제 서서히 개학을 앞두고 학생들은 제 자리를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구정과 궂은 날씨 등 여러 가지 핑계거리가 많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나태함과 불충까지도 용서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출석부를 펴들고 등재된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누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누구는 무슨 일로 보이지 않는지? 아낙이 먼지 털 듯, 남정네가 농기구 손질하듯 보살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곧 개학입니다. 즉 아이들을 만나기 쉬워진다는 것이지요. 늘 말씀드리지만 부흥과 성장은 결의와 각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말로써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란 표어처럼 늘 그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애달파하며 깨어있어 부르짖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금방 될 것 같지만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중등부의 표어대로 비전과 열정만이 우리의 꿈을 이루는 길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먼저 낮추어 인사함으로 몸의 베품을, 환하게 미소지으며 반갑게 맞아줌으로써 얼굴의 베품을, 다정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사랑스런 00야 보고 싶었다‘는 한마디 건넴으로 입의 베품을, 좋은 점 얼른 찾아내어 ’너 많이 멋있어졌구나‘ 장점만 말해주는 눈의 베품을, 사탕하나 건네주며 ’많이 힘들지?‘ 곱고 착한 마음을 베풀어주는 것이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눈으로 읽을 때는 쉽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쯤은 수없이 생각했던 것들입니다. 부디 눈에만 담지 마시고 마음에 담아 하나씩 몸으로 옮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아이들도 우릴 따라 할 것입니다.
1920년대 후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라코스테'입니다. 그는 세계 정상급 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무려 7차례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 진 것 같은 경기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고 끈질기게 역전시키는 그를 친구들은 '징한놈! 넌 악어야!' 라고 놀렸습니다. 라코스테는 씩 웃으며, 아예 악어 그림을 새겨 가슴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 뒤 라코스테의 팬들도 똑같이 악어 그림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동질감의 표시이자 라코스테처럼 집요함, 끈질김, 포기하지 않음, 비난도 받아들인다는 깊은 의미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라코스테' 악어 상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 복음 중등부는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한 십자가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학생들과 교사 모두)들은 같은 동질성을 갖고, 같은 흔적(스티그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도 미쳤다는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꿈을 향해 열정을 가지지 못했거나 시작도 안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라기는 라코스테처럼 복음중등부도 누가 보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에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태양과 지구의 거리 때문이 아니라 각도가 기울어지기 때문인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도 서로의 마음이 기울어지면 멀어집니다.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같이 아파하고 눈물 흘리거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해주는 시간은 아이들은 물론 주님과도 생각과 기울기를 맞추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중등부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까지도 축복으로 넘쳐나리라 확신합니다.
어제는 대보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제 마음속에 들어있는 달을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의 샘물은 얼마나 맑고 고요한지, 내 지혜의 달은 얼마나 둥그렇게 솟아 내 삶을 비추고 있는지, 저의 손길 닿는 곳, 발길 머무는 곳에 어떤 은혜로움이 피어나고 있는지, 저의 음성이 메아리 치는 곳에, 제 마음이 향하는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있는지 자문하며, 저도 저 달처럼 주님의 빛을 훤히 비출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함께 뒹굴며 굳은 결의를 다짐하고자 아름다운 추억만들기를 계획했습니다. 놀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자연 속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우리 복음중등부의 봉사자들이 뜻을 모으기 위해 무즈 리조트를 찾고자 합니다. 마치 눈도 제법 내려주었기 때문 환상적일 것 같아 저도 잠 못 이룰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런 것을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내게는 색다른 통장이 하나 있습니다. 이 통장은 비밀번호도 없고 도장도 필요 없습니다.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누가 가져가도 좋습니다. 아무리 찾아 써도 예금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찾아 써도 늘어나고 새로 넣어도 늘어납니다. 예금을 인출하기도 쉽습니다. 은행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한밤중에 자리에 누워서도 찾아 쓸 수 있습니다. 이 통장은'추억 통장'입니다. 통장에는 저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빼곡이 들어 있습니다. 더러는 아픈 추억도 있지만 그 아픔이 약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가끔 이 통장에서 추억을 꺼내 사용합니다. 꺼낼 때마다 행복도 함께 따라나옵니다. 오늘도 추억 통장을 열고 추억 몇 개를 꺼내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꺼내놓았습니다. 누구나 가져가십시오. 원금도 이자도 안 주셔도 됩니다. 이 은행은 행복을 주는 은행입니다.” (좋은 생각이 아름다운 55가지이야기 중에서 인용) 우리의 내일 일정도 참가하는 임역원을 비롯한 우리엘과 합주단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행복을 주는 추억 통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온 누리에 소복히 내려 쌓인 하얀 눈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의 은혜가 눈처럼 내리게 하소서!! 늘 우리 곁에서 맴도는 어수선한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우리가 그 상황에 정복되지 않고 우리가 그 상황을 정복하는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2월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