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4월 (15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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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1일 (기유) 맑다. [양력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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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는 밥인데도 밥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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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부사(황세득) ∙ 진도 군수(김만수) ∙ 녹도만호(송여종)이 여제(악질병에 걸려 죽은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려고 아뢰고 돌아갔다. 충청수사가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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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2일 (경술) 맑다. [양력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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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갔다. 삼가현감과 충청수사 와 같이 종일 이야기했다. 조카 해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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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3일 (신해) 맑다. [양력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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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제를 지냈다.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 천여든 동이를 먹였다. 우수사와 충청수사도 같이 앉아 군사들에게 먹였다. 날이 저물어서야 숙소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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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4일 (임자) 흐렸다가 어둘녘에 비가 왔다. [양력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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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원수의 군관 송홍득(宋弘得)과 변홍달(卞弘達)이 새로 급제한 홍패(과거 합격증)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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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병사의 군관 박창령(朴昌齡)의 아들 박의영(朴義英)이 와서 그의 장수의 안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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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삼가현감이 왔다. 저녁나절에 활터정 자로 올라가니 장흥부사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종일 오손도손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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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5일 (계축) 흐리다. [양력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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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최천보(崔天寶)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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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6일 (갑인) 맑다. [양력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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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시(別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丙年마다 보이던 문무 시험)를 보는 시험장소를 개설하였다. 시험관은 나와 우수사(이억기) ∙ 충청수사(구사직)이요, 참시관(시험감독관)은 장흥부사(황세득) ∙ 고성현령(조응도) ∙ 삼가현감(고상안) ∙ 웅천현감(이운룡)을 시험을 감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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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7일 (을묘) 맑다. [양력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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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모여 시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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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8일 (병진) 맑다. [양력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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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한 채 시험장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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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9일 (정사) 맑다. [양력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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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마치고 방을 내어 붙였다. 큰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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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장 어영담(魚泳潭)이 세상을 떠났다. 통탄함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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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10일 (무오) 흐리다. [양력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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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어사(각지의 군대와 백성을 순찰하려고 파견되는 중앙관리) 서성이 진에 온다는 기별이 먼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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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기미) 맑다. [양력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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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어사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문안하는 배를 내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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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경신) 맑다. [양력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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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어사 서성이 내 배에 와서 이야기했다. 우수사(이억기) ∙ 경상 수사(원균) ∙ 충청수사(구사직)가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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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세 순배 돌자, 경상수사 원균은 짐짓 술취한 척하고 미친 듯이 날뛰며, 억지 소리를 해대니, 순무어사도 무척 괴이쩍어 했다. 삼가현감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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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신유) 맑다. [양력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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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어사가 전쟁연습하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 그래서, 죽도(통영시 한산면) 바다 가운데로 나가서 연습했다. 선전관 원사표(元士彪) ∙ 금오랑 김제남(金悌男)이 충청수사(구사직)를 잡아갈 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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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임술) 맑다. [양력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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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과 함께 자세한 말을 했다. 저녁나절에 순무어사의 배로 가서 군사 기밀을 자세히 의논했다. 잠시후에 우수사가 오고, 순천부사 ∙ 방답첨사 ∙ 사도첨사도 아울러 왔다. 나는 하직하고 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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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계해) 맑다. [양력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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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사(구사직)가 선전관(원사표) ∙ 금오랑(김제남) ∙ 우수사(이억기)와 함께 왔다. 충청수사 우경(虞卿) 구사직(具思稷)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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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갑자) 맑다. [양력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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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갔다. 밀려 쌓인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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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사(원균)의 군관 고경운(高景雲)과 도훈도 및 변고(變故)에 대비하는 색리 ∙ 영리를 잡아다가, 지휘에 응하지 않고 적변도 빨리 보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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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송두남(宋斗南)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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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에 따라 낱낱이 하교한 대로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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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을축) 맑다. [양력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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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서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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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현령(안위)가 급히 와서 보고한 내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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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 백 여 척이 본토(日本)에서 처음 나와서 절영도(折影島)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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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저물 무렵에 거제에 살다가 사로잡혔던 남녀 열여섯 명이 도망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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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병인) 맑다. [양력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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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도망쳐 돌아온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적정을 자세히 물으니, 대마도 평의지(宗義智)는 웅천땅 입암(진해시 웅천동 제덕리)에 있고, 평행장(小西行長)은 웅포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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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신임 수사(李純信) ∙ 순천부사 및 우수사우후(李廷忠)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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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거제현령(안위)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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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세차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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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정묘) 비가 내렸다. [양력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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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 김경로(金敬老)가 원수부에서 와서 적을 토벌할 대책을 논의하고서 그대로 한 배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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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무진) 종일 가랑비가 걷히지 않았다. [양력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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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 ∙ 충청수사 ∙ 장흥부사 ∙ 마량첨사(강응표)가 와서 바둑을 두고, 군사에 관한 일도 의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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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기사) 비가 오락가락 했다. [양력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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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봉창 아래 앉아 있으도 저녁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방답첨사가 충청수사로 되어 중기(重記)를 수정하는 일로 아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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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김성숙(金惺叔)과 곤양의 이광악(李光岳)이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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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녁에 흥양이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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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영 탐후선도 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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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경오) 맑다. [양력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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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시원하여 가을 날씨 같다. 첨지 김경로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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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를 봉하고, 또 조총을 동궁에게 줄 긴 창과 더불어 봉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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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부사가 왔다. 저녁에 흥양현감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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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신미) 맑다. [양력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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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순천부사(권준) ∙ 흥양현감(배흥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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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광악(李光岳)이 술을 가지고 왔다. 장흥부사도 왔다. 임치첨사(홍견)도 같이 왔다. 곤양이 몹시 취해서 미친 소리를 마구 해대니 우습다. 나도 잠깐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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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임신) 맑다. [양력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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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울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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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영암군수(박홍장) ∙ 마량 첨사(강응표)가 와서 봤다. 순천부사가 아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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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항목의 장계를 봉해 보냈다.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순찰사 종사관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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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계유) 맑다. [양력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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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부터 몸이 불편하여 종일 괴로워했다. 아침에 보성군수가 와서 봤다. 밤새도록 앉아서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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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갑술) 맑다. [양력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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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 극히 심하여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 곤양군수가 아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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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을해) 맑다. [양력 6월 15일]
517
통증이 잠깐 덜하다. 숙소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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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병자) 맑다. [양력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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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과 아픈 증세가 많이 덜했다. 경상수사(원균)과 좌랑 이유함(李惟 )이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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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蔚)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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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정축) 맑다. [양력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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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상쾌해진 것 같다. 아들 면이 들어왔다. 곧 고을의 종 넷과 관의 종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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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도에서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을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