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혁 | 2009-06-23 11:16:23, 조회 : 2,456, 추천 : 302 | |
10.23일 새벽 0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무박으로 설악산 경원대길을 다녀왔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제 4봉까지 11피치를 모두 끝냈습니다. 김남준, 심종혁, 조은주씨와 남준씨의 선배 한분이 함께 했습니다. 선등을 한 남준씨의 침착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등반을 계획한 경위는 이러하다. 10월 17일, 일요일, 선인봉 팀등반이 끝나 하산하면서 남준씨가 다음 토요일에 시간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시간이 되면 경원대길을 함께 가자고 한다. 아마 그 지난주 설악산 토왕골 팀산행시 남준씨가 기태, 경아, 효근, 선준 님들을 이끌고 경원대길을 갔다. 나는 솜다리 추억을 갔는데, 그곳에서 경원대길 팀을 보니, 제 1봉까지만 가고 그곳에서 하산하는 것이 아닌가! 솜다리봉에서 내려다보면, 이들은 경원대길의 1/3만을 등반하고 내려간 것이었다. “아니, 경원대길을 가면서 1봉까지만 올라가 그대로 하산하면 어떻게? 지난번에도 거기까지만 간거야?”하고 핀잔을 준게 마음에 걸렸나보다. 아무튼 설악을 또 한번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였다. 일정을 더듬으니 학교에 행사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지도학생들과 가을맞이 산행을 약속했는데, 그거야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남준씨는 처음 야영을 생각했고, 조은주씨는 밤에 출발하여 야영을 하기 보다는 중간에 찜질방에서 서너시간 쉰 다음에 갈수도 있지 않냐면서 인제 쯤에 찜질방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사실, 그것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기도 했다. 이것저것 궁리해본 결과 그냥 무박으로 밤 12시경에 출발해서 대충 오르면 날이 밝아올 무렵 경원대길 초입에서 등반을 시작한다면 시간이 무척 여유로울 것이니 등반을 모두 마치고 찜질방에 가서 서너시간 쉬었다가 서울로 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 방법을 택했다.
남준씨와 선배분이 밤 12시에 서강대앞에서 나를 태우고, 12시 25분에 천호동에서 조은주씨를 만나 출발했다. 확인해 보니, 인제근처에는 찜질방이 없고, 조은주씨가 확인했다던 찜질방은 홍천 조금 못미쳐 2군데쯤 눈에 띄었다. 미시령을 넘어 24시간 하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켄싱턴 호텔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4시 30분, 그곳에서 약 45분 정도 차안에서 쉬었다가 5시 15분에 출발하여 경원대길 시작지점에 도착한 것이 6시 30분이었고, 날은 이미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무거운 야영배낭이 아니라, 당일 등반 배낭으로 토왕골을 오르니 한결 편했다.
토왕골에서 아주 가파른 경사의 바위와 수풀을 10분 정도 헤치고 오르니 경원대길 시작점이 있었다. 이곳에서 등반준비를 했다. 대략 오전 7시 경이었다. 남준씨가 선등하고 내가 선등자를 확보하기로 했다. 조은주씨는 라스트. 시간적인 여유로움이 많아 등반을 하면서나 확보를 하면서도 주변 경치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씩 까다로운 구간들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은 구간들이었다.
제 1봉에 올라 우측 토왕폭쪽으로 우뚝솟은 ‘솜다리 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저 솜다리봉에 2번이나 올라가보았고, “별을 따는 소년들”쪽에서도 바라보았지만, 경원대길쪽에서 바라보는 솜다리봉은 그야말로 도도하게 솟아올라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기상을 내뿜고 있었다. 사실 공중에 떠서 토왕골을 내려다본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을 그런 봉우리였다. 경원대길 1봉에서 한 10여 미터 떨어진 제 2봉으로 티롤리안브리지를 할 수 있지다만, 그냥 등반을 계속하기로 했다. 2봉에 올라 3봉으로 가는 시작점에 도착하니, 선녀봉과 경원대길 사이의 계곡이 예사롭지 않았다. “와, 이런 것을 꿀르와르라고 부르는 구나!” 꿀르와르 (Couloir)란 거대한 암벽이나 산릉을 파고 들어간 길고 급한 바위도랑을 일컷는 등산용어인데, 대개의 경우 눈이나 물에 의해 침식되어 생긴 것으로서 눈사태나 물 또는 낙석의 통로가 된다고 한다. 2봉에서 3봉, 4봉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보이는 선녀봉 꿀르와르의 깊이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찔했다. 이곳에서 보는 느낌은 "솜다리 추억"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함이었다. 3봉 바로 턱 아래에는 널찍한 바위가 있어 전망대라 부른다. 최종하강은 이곳에서 자일 2동으로 허공다리골쪽으로 3번 하강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쉬운 한 피치를 오른 후, 마지막 피너클 지대를 오르면 4봉 정상이다.
4봉 정상에 도착한 것이 대략 오후 2시경이었다. 4봉 11피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니 이전에 나온 등반 안내에는 없는데 넓다란 전망대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여유롭게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바라본 허공다리골의 우거진 단풍과 공룡의 등날같은 바위들의 어우러짐이 엮어내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우측으로 조그만 바위봉 하나 건너 바로 선녀봉 정상이 보이고, 그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우뚝 솟아 있는 '솜다리 봉', 저쪽 권금성쪽으로 보이는 노적봉의 모습. 거기에 그려진 '그들과 함께라면'과 '4인의 우정길'을 눈으로 더듬으니 이제 그 모습이 그토록 다정하게 내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는 무었일까? 아마, 이번 산행이 나에겐 올해의 마지막 설악 산행이겠다. 이제 토왕골에선 ‘토왕좌골릿지’만 오르면 구석구석이 모두 나의 경험과 머릿속에 정리되리라 하고 생각해본다.
마지막 핏치에서 정상에 오르려면 약 45도의 경사로 지저분하게 형성된 대락 40미터 길이의 피너클지대를 통과해야하는데, 오를 때 예측했던 것처럼 하강할 때 조금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자일 2동으로 하강을 하면 분명 자일회수시 매듭부분이 어느 부분에선가 바위에 걸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안내문에서는 자일 한동으로 하강하라고 한 것 같다. 우리는 자일 한동으로 중간에 소나무에서 한번 끊어 2번에 하강했다. 상황이 클라이밍 다운하다가 조금 하강하고 다시 클라이밍 다운해야 하는 것이라 불필요하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차라리, 자일 한동으로 외줄 하강한 후에, 마지막 사람만 2번에 끊어 하강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3봉 전망대바위에서 허공다리골로 하강할 때에도 불필요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처음부터 자일 2동을 묶어 길게 하강했어야 되는데, 자일 한동으로 하강을 했고, 그 지점에서 하강 자일을 걸 마땅한 나무가 없었기에, 위험한 급경사면을 조심스레 살떨리면서 약 50미터 정도를 걸어내려갔다. 비교적 안정적인 장소에 도달해, 자일 2동을 소나무에 걸친 다음. 외줄로 2명을 동시에 하강하게 한 다음, 내가 마지막으로 하강하여 충분히 걸어 내려갈 수 있는 장소에 이르러 남준씨와 함께 각각 자일을 정리하여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주섬주섬 하강을 하면서 불필요한 시간낭비로 5시경에나 설악골로 내려왔다. 돌이켜 보니, 자일 2동으로 길게 3번 하강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급경사의 골을 조심스레 내려서니 ‘허공다리골’이었고, 이곳에서 약 20분정도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설악골에 도착했다. 간단히 라면 2개와 소주 작은 플라스틱 한병만을 나누어 마시려니 술꾼들이 섭섭한 모양이다. 원래의 계획보다는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긴 했지만, 모두 기쁘고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잉꼬네’에 들러 모듬전과 동동주로 성공적인 등반을 축하했다.
함께 하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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