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재학 중 출가해 미국 대학 교수가 된 혜민 스님(39). 요즘 그는 스타다. 그를 스타로 만든 무대는 트위터. 9만 명의 팔로어들과 소통하며 쓴 트위터 글과 몇 편의 에세이를 모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을 냈다.
혜민 스님은 미국 햄프셔大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최근 1년 서울대 규장각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다음 주 미국에 돌아간다.
13일 서울 인사동 한식당에서 만난 혜민 스님은 밝고, 경쾌했다. 새로 출간된 자신의 책이 마음에 들어 웃음이 만연했다.
그는 “세상은 스스로 나 바쁘다고 말한 적이 없다. 세상이 바쁜가? 마음이 바쁘다. 그래서 멈춰야 비로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혜민 스님이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이 된 계기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은 외로움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다 생긴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트위터를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모국의 언어가 사무치듯 그리워 트위터 시작”
“모국의 언어가 사무치듯 그리워 트위터 시작” “오래 살았지만 낯선 곳에서, 강의를 끝내고 연구실에 있다 보면 향수병에 걸린 것처럼 모국의 언어가 사무치듯 그리울 때, 그때마다 이상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트위터에 기록했고, 모국의 언어로 대화해주는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말을 걸자, 말을 걸어왔다. 외로움을 이기려 스스로 위안의 글을 남기자 사람들은 되려 위안을 받았다며 말을 걸어왔다.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됐다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다짐했다는 글들.
맑은 글, 따뜻한 위로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들과 소통했다. 스님은 “나의 말 한마디에 어떤 사람들은 용기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글을 올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수 있게 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혜민 스님은 “양극화 속에서 청년들은 등록금 문제, 실업 문제,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불안으로 힘들어 하는 사실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통 받고 외로워하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등록금·비정규직 고통, 그들의 외로움 알게 돼
그를 만나 애기를 나누던 그때, 고용불안에 힘들어하던 비정규직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죄송해요. 비정규직이었던 동생이 정규직이 되었다고 하네요.”
세상 사람들의 외로움을, 그리움을 혜민 스님도 겪고 있었다. 타지에서 모국의 언어로 말하고 픈 그리움, 비정규직 동생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소식에 활짝 웃을 수밖에 없는 고통.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그리움 가득한 젊은 출가자의 답변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쉽고 가볍다. 짧으면서 쿨하다. 형식을 배제하고 그는 자신의 장점을“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 ‘틀을 깰 수 있는 점”이라고 했다. 물론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욕먹을 수 있지만 말이다.
“고정관념, 틀을 깨야 한발 짝 나아갈 수 있을 거다. 2, 30대 그리고 40대 젊은 분들과 거리를 좁혀야 한다. 친근한 스님으로, 불교를 우상숭배나 하고 기복이나 하는 고루한 종교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선입관을 깨는 데 기여하고 싶다.”
“소속·지위 보다 무엇을 하고, 할수 있는지가 중요”
그는 미국 생활을 하면서 불교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스님은 어떤 명상을 하세요?” “하루 중 몇 시간이나 수행을 하시나요?”라고 묻지만 한국 사람들은 “스님은 지금 어느 절에 계십니까?” “어느 절에서 오십니까?”라고 묻는단다.
소속과 지위를 중요시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한국 사람들, 현재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 어떤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이’에서 미국에 사는 승려로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어떤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가?”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소속된 그룹에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았던가?”
그는 “미국에서 학벌은 주홍글씨가 아니다. 물론 어느 대학을 나왔다는 게 포교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소속과 학벌을 중요시하면 어떤 사람을 볼 때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며 “불합리한 연결고리가 쳇바퀴 돌듯하는 것은 끊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서 불교는 철학적·논리적 종교…쿨하다”
혜민 스님에게 트위터는 소통의 창구지만 포교를 위한 간접창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에서 불교는 미신처럼, 타종교인들에게는 우상숭배하는 종교로, 젊은이들에게는 고루한 종교로 비춰지지만, 미국에서 불교는 평화를 사랑하는, 앞선 논리의 종교이자, 지적이고 철학적인 종교로, 쿨(COOL)한 종교로 인식된다”고 했다.
그래서 혜민 스님은 새로운 법회를 구상중이다. 음악을 이용한 기도회다. 음악가 잔 인트의 도움을 받아 치유 음악을 만들어 7박 8일 일정의 음악치유기도회를 올 여름 중에 열어 볼 생각이다.
그는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미국에서도 카네기홀이나 메트로폴리탄 음악회에 자주 간다.”라며 “아이들은 음악에 친숙하다. 8,90년대 기독교 찬양음악을 불교 쪽에서는 챙기지 못했다. 상처를 받는 젊은이들에게 치유 음악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신 종교의 큰 어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셨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는 종교가 달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담았다.
그는 “상대방이 종교에 대해 편협한 태도로 나오면 당당히 말하라. 당신 종교의 큰 어른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셨다고,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용 목사님이 얼마나 존경하셨고,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글을 통해 얼마나 교감하셨는지, 달라이라마 존자가 토마스 머튼 수사와 절마나 절친이셨는지 알고 계시냐고.”말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다 통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시끄러운 ‘아쇼까 선언’에 대해서는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연기법’ 중심인지, 간화선 수행 등 심법 중심인지에 따라 보는 해석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혜민 스님은 “아쇼까 선언 문제는 참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만의 이해는 연기법으로 불교를 바라보느냐, 심법으로 바라보느냐는 양립적 문제가 논란의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내 종교만 우수하다는 것은 ‘법집(法執)’”
열린진리관에 대해서는 “다른 종교를 몰라서 폄훼하고 불교를 우상숭배하는 종교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와 같다. 주어 동사 서술관계가 우리말과 영어가 다르지만, 영어를 배우면 서술관계를 알게 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종교를 공부한다고 자신의 종교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신심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를 공부하면 내 종교도 더욱 잘 보인다. 내 종교(불교)만 우수하다고 하는 것은 ‘법집(法執)’ 아니냐”고 덧붙였다.
혜민 스님은 “많은 분들이 드릴 게 이것밖에 없다면서 두유 한 병, 초콜릿 한 개를 준다.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바로 내 앞에 있는 분, 그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은 트위터 글과 에세이 외에도 ‘따뜻한 유화’들을 20여 편 담았다. 외로움에 찾아온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데 글과 함께 그림이 도움을 준다.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만든다’는,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려 노력한다는 우창헌 작가의 유화 작품이다.
혜민 스님은 인터넷을 통해 우창헌의 작품을 만났고, 책에 함께 실으려 파주 작업실에 아이스크림 케익을 사들고 찾아가 허락을 얻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영혼을 위한 따스함 담은 유화
우창헌의 작품은 따스하다. 하지만 그림에 비친 작가의 마음은 혜민 스님처럼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쳐 보인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사람과 소통하지 못한, 소속과 지위에 상처받은 마음을 자연과 사람을 통해 해소하려는 마음이 담긴 듯하다.
우창헌의 그림은 소통과 소통의 지향을 향하지만, 그림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애정이 드러난다. 손을 마주잡은 가족, 포옹하는 연인, 지향하는 세계를 향해 서고, 함께 바라보고, 함께 부둥켜안는다. 그래서 더 외롭고, 그리워 보인다.
어쩌면 그리움 때문에 뜨튀터를 시작해 외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혜민 스님의 소통과 우창헌 그림의 지향은 맞닿아 있어 글과 그림이 행복을 갈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