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숲의 첫 시집
강혜경 지음
80쪽 | 135*205mm | 12,000원 | 2024년 12월 30일
ISBN : 979-11-93599-16-7 03810
주 대상: 청소년, 대학생, 일반인
키워드: 한국시, 한국현대시
“나만 한 시
작은 시를 내 놓는다”
어린이책 작가이자 번역가 강혜경 작가의 첫 번째 시집
간결하고, 리듬과 운율로 노래하듯 풀어낸 시들
시집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날 네가 왔으면 좋겠다》는 번역가이자 어린이 책 작가이기도 한 시인의 첫 시집이자 도토리숲의 첫 시집이다. 자연에서 시와 그림책에 푹 빠져 지내는 강혜경 작가가 그동안 틈틈이 써 두었던 시와 잡지에 발표했던 시 몇 편을 포함해 50편의 시를 묶은 것이다.
강혜경 시인의 시는 쉽고 간결하다. 작가는 한겨울 산집에 쌓이는 눈처럼, 자연과 벗 삼은 이야기,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쉬운 리듬과 운율로 노래한다.
강혜경 시인의 시와 함께 산책을 나서보자.
까치발을 했지
오지 않는
널
보려고
그렇게 층층이
그리움이 쌓였지
처마 밑까지 쌓였지
―<접시꽃> 전문
그의 시는 숨긴 의미를 찾아보라며 수수께끼를 내지도 않는다.
버려진 의자를 보면 마음이 그래
여기 남은 나 같은 게
비 맞는 의자를 보면 마음이 그래
홀로 울고 있을 너 같은 게
이슬 젖은 의자를 보면 마음이 그래
꼭 한숨 못 잔 우리 같은 게
―<마음이 그래> 전문
복잡하고 번잡한 걸 몹시 싫어하고, 오는 전화도 없고, 거는 전화도 거의 없는 그의 일상을 보면, 그의 시가 간결하고 쉬운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외로운 이가 그렇듯이, 아주 드물 뿐, 마음이 통하는 이들을 초대해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파주 낮은 산집에 눈이 내리는 밤이면 그 마음이 내리는 눈처럼 쌓일 것이다. 그런 밤에는 이런 시를 썼을 것이다.
참으로 달콤했지
그해 겨울
너와 나
단풍나무 시럽처럼 녹았지
참으로 뜨거웠지
그해 겨울
너와 나
장작처럼 타올랐지
죽어도 좋았었지
―<그해 겨울> 전문
하늘과 비와 바람을 만나고, 나무와 풀과 꽃과 동물을 만나면서 마음속에 늘 사람을 품고 사는 시인은 사람을 그리는 마음을 쉬운 리듬과 운율로 노래한다. 그래서 시가 노래 같다. 따스한 한숨 같고, 혼자 걷는 산책길 같다.
자귀나무 엎드린 줄기 뒤로
해가 지네
이파리들 수줍게 마주 보며
스르르 몸을 합치네
모르는 척 눈을 감는
연분홍 꽃송이들 위로
어둠이 내리네
―<자귀나무> 전문
시인의 시는 걸으면서 외우기에 좋다. 아마도 세계의 명시와 한국의 명시, 그 두꺼운 시집에 실린 시들을 외우며 견딜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상처가 “이제는 아물어 이야기로” 남아서일 것이다.
고독이 흰 옷을 입었다
이제 갈 때이다
떨어져 거름이 될 때이다
푸르른 한 생을 살았으니
떨어져 흙이 될 때이다
……
거센 비바람에 찢기기도 하였으나
상처는 아물어 이야기로 남았다
이제는 조용히 다음 생을 기다릴 때,
또 한 번
찬란한 생을 준비할 때이다
―<겨울 잎> 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인은 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간이역에 놓인 허름한 긴 의자 같은”, “산동네 담장 아래 핀 분꽃 같은”, “백 살 먹은 느티나무 아래 놓인 평상 같은”, “이른 봄 숲길에 핀 생강나무꽃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가도, 가도 만날 사람 하나 없는”, “자꾸만, 자꾸만 길을 잃는”, “걸어도, 걸어도 갈 곳 없는”, “견뎌도, 견뎌도 생이 춥기만 한 누군가를 위해”서.
이제 시인과 산책길에 나서보자.
차례
시인의 말
1부
너를 두고 떠나는 길 | 메꽃 | 비가 오면 | 접시꽃 |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날 네가 왔으면 좋겠다 | 나팔꽃 | 네가 보고프면 |
첩첩산중 | 그때를 기억해 | 널 데려갈 거야 | 가을 잎 | 하지만 그대
2부
괜찮아 | 사랑 | 자귀나무 | 그해 겨울 | 너에게 | 널 잊으려고 | 난 | 마음이 그래 |
겨울밤 편의점 | 한 사람 | 비밀 | 그럴 때가 있지
3부
오월 아침 | 늦가을 오후 | 초겨울 풍경 | 겨울 잎 | 녹슨 삽 | 혜음원지에서 | 봉우리 |
저녁 산책 | 여름 한낮 | 초록 지붕 할머니 | 봄날 | 바람뿐, 한숨 같은 바람뿐 | 순복이
4부
나무 아래에서 | 이제야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어느 겨울 새벽이었다 | 시린 팔을 비비며 | | 이별 후에 해야 할 것들 |
나에게 1 | 나에게 2 | 그래서일까 | 꼬옥 고오고오 | 지난여름 초저녁 | 크리스마스이브에는 |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후기
시인의 말
나만 한 시
작은 시를 내놓는다.
첫 입맞춤 같다.
부끄럽고
설렌다.
후기에서
아침이면 개울에서 얼굴을 씻고, 저녁이면 개들과 산책을 했다. 배고프면 먹고, 배고프지 않으
면 먹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오고, 잎이 지고, 눈이 내렸다. 동이 트고, 별이 뜨고, 달이 뜨고, 해가 지는 풍경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산비둘기 소리에 소리 내어 웃었고, 부엉이 소리에 지극한 행복감을 느꼈다. 비 오는 가을밤에 새끼 오소리와 함께 걸어도 보고 (……) 죽은 새와 쥐와 고양이 같은 들짐승들을 묻어 주기도 했다. 자연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스승이고, 노래이고, 하느님이었다.
그렇게 시가 찾아왔다.
받아 적었다.
나의 크기만 한 시였다.
아주 작은.
사랑이었다.
모든 게 사랑이었다.
……
그리움이었다.
다 그리움이었다.
책 속에서
봄비가 내리는 날
그리움이 뚝뚝 떨어지는 날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날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낮은 담장 너머로
내 이름
크게
불렀으면 좋겠다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날네가 왔으면 좋겠다> 전문
너는 날 떠난 적이 없다
홀로 앉은 겨울 식탁에 더운 물잔으로 있었고
시린 무릎에 포근한 담요로 있었다
너는 날 떠난 적이 없다
비 오는 저녁 내 작은 차유리에 눈물로 내렸고
봄날 시골 버스 정류장에 아침 햇살로 쏟아졌다
너는 날 떠난 적이 없다
한여름 들길에 메꽃으로 피었고
한겨울 강가에 진눈깨비로 날아왔다
난
널
잊은 적이
없다
-<난> 전문
모두 잠든
여름 한낮
심심한
새 한 마리
하느님을 깨운다
꿩!
-<여름 한 낮> 전문
작가 소개
강혜경
파주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독서를 거꾸로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철학책에, 대학 시절부터는 시와 소설에, 그다음에는 그림책에 빠져 살았다. 책을 좋아해 졸업 후 책 만드는 일을 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아동문학 부문에 당선했다. 필명 강이경으로 동화책과 그림책을 쓰고, 외국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오래전 장편소설 《종이비행기를 접는 여자》를 썼다. 산과 들과 나무와 꽃과 바람을 좋아하고, 새와 개와 고양이, 오소리, 고라니, 들쥐, 버들치, 올챙이, 개구리…… 동물을 참 좋아한다. 외로움과 고독, 자연 속에서 이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신을 느끼며 산다. 앞으로는 어린이 책과 그림책은 물론이고, 어른을 위한 책을 다시 쓰려고 한다. 그 출발이 이 시집이다.
펴낸 동시집으로 《형이 다 큰 날》이 있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