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일스님 매일 청소하고 탑돌이하며 보호
방치됐던 부처님진신사리 7과도 다시 찾아내
해마다 입동 맞아 동탑재로 창녕시민 안녕기원
![]() |
||
11월 7일 열린 제18회 동탑재 모습 |
경남 창녕군 읍내에는 불국사 석가탑을 꼭 닮은 삼층석탑이 서있다. 이곳에서 1km 서쪽에 있는 탑과 구분하기 위해 동탑(東塔)으로 불리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조성한 국보 제34호다.
정확한 명칭은 창녕술정리 동삼층석탑이다. 문화재전문가들은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린 불국사 석가탑 양식이 수도 경주를 벗어나 점차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역사적 예술적으로 중요한 탑이라고 평가한다. 1965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사리 7과와 사리병 등 장엄구도 나온 여러 가지 면에서 소중한 탑이다.
![]() ![]() |
||
해마다 양력 11월7일 입동(立冬)이면 이 탑을 보호하고 기리는 동탑재가 열린다. 올해도 동탑재가 지난 7일 열렸다. 10여명의 스님과 3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탑을 기리고 다함께 잘 보존할 것을 결의하는 법회를 올리고 문화공연을 관람하고 마지막으로 탑돌이를 했다.
![]() |
||
동탑재 법회 모습 |
![]() |
||
주지 혜일스님
|
이 탑이 원래부터 사람들의 보호와 관심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탑 하층 기단 일부가 민가 담 밑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로 정부당국도 주변 사람들도 소중함을 몰랐다.
1960년 민가를 헐어 보존조치 하고 1965년 해체 수리했지만 또 다시 버려졌다.
탑 주변에는 개똥이 지저분하게 쌓여있고, 탑신에는 이불과 시래기가 걸려있고 여름이면 취객이 잠을 자는, 천덕꾸러기였다.
조성연대와 생김새가 닮아 똑같이 국보로 인정받았지만 불국사 경내의 국보21호 석가탑과 달리 사찰이 없어져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국보34호 탑은 버려진 신세와 다름없었다.
![]() |
||
통도사 극락암에서 어머니를 따라 경봉스님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우던 일선스님은 제주도 효덕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가 건강이 나빠져 휴양 차 창녕으로 오게 된다.
기도정진하던 중 꿈속에 부처님을 친견한다. 꿈속의 부처님은 손바닥에 혜일이라는 법명을 적어주고 어느 탑으로 이끌고 가서는 이곳을 잘 지켜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때가 1998년 음력9월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길을 따라가자 동탑이 나타났다.
짐승들의 변으로 뒤덮이고 담요 시래기가 널려있는 탑을 혜일스님은 매일 청소했다. 걸어놓았던 시래기와 담요를 걷어내자 사람들이 화를 냈다. 스님은 주민들을 설득하고 매일 개똥을 치웠다. 그리고 매일 탑을 돌았다. 사람들이 한 두명씩 함께 탑을 돌더니 근동에 소문이 나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
||
5평 규모의 동탑을 지키는 법당. 범어사 말사이다
|
그러다 탑은 있는데 부처님은 왜 안 계시나는 의문을 품었다. 사리를 찾아 나섰다. 1965년 해체 복원 당시 사리가 발견됐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군청으로 중앙박물관으로 쫓아다녔다.
아무도 귀기울이 않고 쳐다도 보지 않다가 드디어 2003년 2월19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던 부처님진신사리가 모셔진 사리함과 사리7과를 발견했다. 이 터가 통도사 해인사와 같은 대찰 인양사 였던 사실과 인양사가 고려시대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졌다는 기록도 밝혀냈다.
![]() |
||
법당 내부 모습 |
스님의 정성이 하나 둘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탑 주변 땅을 사들여 탑을 보호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으며 5평 규모의 법당과 요사채도 마련했다. 혜일스님은 “아마 전국에서 가장 작은 법당이 아닐 까한다. 하지만 법당을 마련하자마자 곧바로 범어사 말사로 등록했다”며 “이제 남은 것은 어엿한 부처님도량을 조성하는 불사다. 전국의 많은 불자님들의 수희동참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 |
||
동탑 주변에 내걸린 알림 막 |
탑돌이를 하는 양력 11월7일은 스님이 부처님으로부터 ‘동탑 지킴이’로 지정받는 꿈을 꾼 날이다. 11월7일 제18회 동탑재가 열리던 오전 창녕 하늘은 신기하게도 비가 멈췄다. 화왕산 주변에 흩어져 있던 구름이 탑 주변으로 몰려드는 광경을 본 스님과 신도들은 환희심에 젖었다.
![]() ![]() |
||
동탑재 2부 공연모습
|
법회가 끝난 뒤 작은 음악회가 열려 시골 마을은 잔치분위기로 들썩였다. 탑돌이를 끝으로 법회가 끝나자 마자 비가 쏟아붓기 시작했다. 스님은 “동탑재는 탑의 소중함을 알리고 보호하는 원력을 다지는 의미에다 올 한해도 풍성하게 보낸 은덕을 감사하고 다가오는 겨울을 건강하게 잘 맞이하자는 축원도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 |
| |
공연모습, 종이옷을 입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 |
||
동탑재가 끝나고 9일부터 2달간 탑 주변을 폐쇄하고 이끼를 걷어내는 물청소에 들어갔다. 조성한지 1200여년 만의 일이며 탑돌이도 처음으로 잠시 멈추게 됐다.
![]() |
||
동탑 안내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