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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팜 “내년 상위 1% 재산이 99%보다 많아진다"
입력2015.01.19 (11:05)
제45회 다보스포럼을 앞두고 전 세계 상위 1% 재산이 나머지 99%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부의 불평등 문제가 포럼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습니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부유층과 빈곤층간 격차가 빠른 속도로 커져 상위 1%가 전 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44%에서 2014년 48%로, 2016년에는 5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상위 1%에 소속된 성인 3천700만 명의 1인당 평균 재산은 270만 달러, 우리돈 약 29억 원이었으며 이들을 포함한 상위 20%가 전 세계 부의 94%를 독점했습니다.
나머지 80%의 재산은 1인당 평균 3천851달러, 우리돈 약 400만 원에 불과해 이를 모두 합쳐도 전 세계 부의 6%에 그쳤습니다.
대륙별로는 북미와 유럽에 부가 집중돼 상위 1% 부자의 77%가 이들 대륙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별로는 로비력이 막강한 재정·보험 부문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각해 상위 20% 억만장자들은 지난해 재정·보험 부문의 현금 자산을 11% 불렸습니다.
제약·건강관리 분야 억만장자들의 자산 가치도 47% 급증했습니다.
다보스포럼 공동 의장인 바니아 총장은,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새로운 글로벌 상황'을 주제로 열리는 포럼이 더 공정하고 잘 사는 세상을 막는 기득권층에 맞서는 토론의 장이 돼야 한다고 글로벌 리더들에게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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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가 세계 부(富) 절반 차지"< CS>(종합)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13-10-10 12:17 | 최종수정 2013-10-11 10:03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0/10/0200000000AKR20131010055651009.HTML?input=1179m)
"한국 백만장자 25만 명…5년 내 79% 증가 예상"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전 세계 부(富·wealth)의 46%는 상위 1%의 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또 한국의 백만장자는 5년 내로 지금보다 79%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10일 '2013 세계 부 보고서'(Global Wealth Report 2013)에서 이같이 밝혔다. 또 상위 10%가 전 세계 부의 86%를 보유하는 등 부의 집중화 현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세계 부 총액은 지난 10년간 68% 늘어 241조 달러에 달한다며 2018년까지는 40% 증가해 334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중략)
보고서는 2013년 전 세계 백만장자 숫자는 총 3천168만 명으로 이 가운데 미국에 사는 사람은 1천321만 명이라고 밝혔다.
쑹훙빙의 <화폐전쟁> 내용이 분량이 많아, 아래 사이트에서 요약 내용 복사함.(참고로 아래 사이트와 전혀 무관한 관계임)
(http://cafe.daum.net/webucs/1gel/11660?q=%C8%AD%C6%F3%C0%FC%C0%EF%20%BF%E4%BE%E0&re=1)
1. 로스차일드 가문(유대인) : 1800년도부터 시작되었으며, 1850년 당시 총 60억 $ 자산을 소유하였으며 지금까지 이자 6%로 환산 시 현재 총 50조$ 보유 예상됨. 당시 총 세계 자산의 1/2 정도였음.
2. 은행재벌가들의 특징은 전쟁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한 쪽 패배자는 채무라는 함정에 빠져 모든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게 되어 있으므로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3. 미국 화폐 : 초기에 영국과 무역을 하며 적자에 허덕임과 함께 모피 또는 조개껍데기 등을 이용하여 화폐로 사용하였으나, 화폐부족으로 경제 활성화가 어려워 미국 개인은행에서 화폐발행을 시작함.
4. 미 중앙은행(뉴욕 맨하튼 은행) : 대주주(로스차일드 + 미 중앙은행 : 1791년 설립 유효기간 20년) → 1811년 제퍼슨 미 3대 대통령 때 폐지 → 이에 반발한 로스차일드가 영국과 3년간 전쟁 유발시키고 빛 더미에 미국이 패배하고 4대 대통령 때 2번째 은행 탄생시킴(1816년 20년 기간) → 잭슨 대통령은 모든 국가부채 상환하였으며, 이에 대한 영국의 보복 시작으로 모든 미국에 대한 대출 중지로 미국 1837년 경제공황에 5년 동안 지속됨.
5. 밴뷰런 대통령 : 화폐긴축에 따른 위기 국면 타개 노력 → 해리슨 대통령(9대) 독약 먹고 사망 → 1849년 테일러 대통령 사망(임기 중 사망인데 휘그당에 반한 논리로 암살)
6. 1848년 미국의 부실경제는 금광의 발견으로 활성화 되기 시작하였으며 은행 재벌들은 미국의 우량자산들을 매수하기 시작(연방국채, 철도채권, 주정부 채권 등)
7. 은행가들의 수법 : 신용대출증대 → 거품 조성 → 대출의 고삐를 조임 → 기업, 국민 파산을 유도하여 은행재벌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켰으나, 미국 국력이 증대하여 이 수법이 오래가지 못하자 남북전쟁을 유발시킴
* 남북전쟁의 배후세력은 런던, 파리, 금융세력가이며 당시 남부경제의 기둥은 목화산업과 노예제도였음.
8. 남북전쟁 발발 원인 :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위해 국채 발행을 금융세력가가 주도하면서 많은 이윤이 금융세력가로 이전 됨.
* 남부 ↔ 금융재벌가(살로몬 로스차일드) 밀약 : 남부가 독립하면 유럽대국의 인정지지
북부 ↔ 금융재벌가(유대계 재벌계 벨몬트)와 밀약하면서 영국+프랑스+스폐인 연합군 + 남부군은 북부군을 초토화시키면서 링컨의 재정 상태는 패닉에 빠짐. 따라서 링컨은 24~36%의 고금리에 대항하고자 정부의 화폐발행시작
(그린백: 은행권 화폐와 구별되는 화폐) 또한 링컨은 러시아에 구조 요청함. 러시아 또한 금융재벌가에 의해 제 2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링컨을 적극 지원하였고 러시아 함대 지출비용(720만 달러)은 미국이 알래스카 땅을 매입해 지불하기로 합의(슈어드의 바보짓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반대)결론적으로 북부가 승리하였으나, 링컨과 러시아 알렉산더 2세는 피격을 당함. 이 전쟁의 원인은 국제금융세력이 미국 국가화폐 발행권 및 화페전쟁의 이익을 놓고 벌인 싸움이고 남북전쟁을 전, 후로 미 대통령 7명이 암살되었으나, 국제은행의 승리로 끝났음을 상징한다.
* 남부정부가 전쟁 중 진 빛은 모두 무효라고 언급한 것이 금융재벌가는 큰 손해를 보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암살함.
* 링컨의 그린백 화폐는 1862~1994년 까지 유통
9. FRB(미 연방 준비은행)
민영중앙은행이며 미국 정부는 하폐발행 권한이 없으며 따라서 달러가 필요할 경우 국채(미래의 세수로서 국민이 납부해야할 돈)를 FRB에 담보로 잡히고 연방준비 은행권을 발행하는데 이것이 달러이다.
* FRB 주인은 뉴욕은행이며 총 발행주수는 20만 3053주로서
1) 록펠러 + 뉴욕 내셔널 시티은행 : 3만주
2) JP모건 : 1,500주
3) 폴와버그 + 뉴욕내셔널 상업은행 : 21,000주
4) 로스차일드 가문 : 10,200주
5) 체이스은행 : 6,000주
7) 케미컬 은행 : 6,000주로 구성되있음
10. 지킬섬 : 백만장자의 휴양지로서(JP 모건을 중심으로 한 경제계 거물 클럽) 전 세계의 1/6의 부 가문 모임
* 1916년 지킬섬 모임 → 미 연방 준비은행 탄생 → 1) 100% 개인 지분이며
2) 의회가 FRB 통제하며, 정부는 이사회 대표자격 선출권이 있으며
3) 구성원은 은행협회이다
* 조직도는 추진세력이 민주당이며 월가와 연계되어 있음
* 월가의 7인
JP모건, 제임스 힐, 조지F 베이커, 록펠러, 스틸먼, 야곱쉬프(로스차이들의 오른팔), 위리엄 록펠러
* JP 모건 : 원조는 영국 조지 피바다 주식회사이며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원하며 로스차일드는 영국에서 돈은 많으나 귀족들에게 홀로 취급 받게 되어 조지피바다를 영입해 귀족과 친분세력을 유지함. 조지피바다의 후계자가 주니어스 모건이며 나중에 원탁회의 그룹을 형성한다.
* 석유왕 록펠러 : 사업방법은 악랄할 정도로 유명하며 주로 폭력과 현금을 동원하여 경쟁업체 흡수함.
* 철도왕 제임스 힐
11. 금융재벌 투기 : 어항속에 물을 붓듯 시중에 돈을 풀면 각 계 각층에서 돈을 더 벌 욕심으로 열심히 일을하여 부를 창조하는데 이것은 어항 속 물고기가 각 종 양분을 흡수해 점점 살이 찌는 것과 같으며, 어항 속에 물을 빼면 물고기는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경제발전의 쇠퇴와 발전은 은행재벌들의 과학적 사욕이 가져온 결과이다.
12. 세계 제 1차 대전
* 발발원인 : 모건, 록펠러, 폴 등은 자신들의 대출(협상국)을 돌려받고자 미국으로 하여금 전쟁을 유도함 - 독일은 패전이 후 13% 영토 손실과 320억 달러 전쟁보상금+이자(5억달러)/매년
13. 미 정부는 은행과의 투쟁을 잭슨대통령 시절부터 해옴
14. 슈퍼 인플레이션 : 마음대로 국민이 재산을 빼앗아 올 수 있다.
예) 원화 가치 하락시 달러 몇 푼으로 한국의 자산을 싸게 매수함
15. 루스벨트(원래 은행사업가 가문으로서 뉴딜정책)
16. 1929년 대 공황 목적 : 금본위제 페지 및 염가화폐 정책 실시
17. 국제 금융재벌들의 개념 : 돈에는조국이 없다,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이다.
18. 국제청산은행 ; 모든 공업국의 화폐움직임을 조절하는 기관으로서 1936년 설립되었고 2차 대전 후 핵심클럽이 되어 정부의 관여를 받지 않는 국가은행들의 정책적 협의, 모색하는 단체
19. IMF
1) 해당 국가에 111개항 비밀서약
- 철도, 전기 등 핵심자산 매각 내용
-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경제 조치하며 스위스 계좌에 수수료 송부 등..
2)생활 필수품 가격 요구등을 통하여 사회적불안을 야기시키고 환율 폭동을 통해 저가에 자산 매수
20. 빌더버그 클럽 : 신비의 클럽으로서 G8, IMF, IBRD의 핵심 방침이 됨
21. 삼각위원회 : 빌더버그 클럽과 함께 미국 외교협회의 주변기구로서 최고의 기밀유지
22. 케네디 : 원래 은행재벌의 가문으로서 미 연방준비은행으로부터 화폐발행권을 뺏기 위해 노력.
- 방안 : 미 정부는 연방준비은행(FRB)으로 부터 돈을 빌리고 고금리 지급을 벗어나기 위해 은본위제 화페를 도입하여 달러 유통량을 감소시켜 연방준비은행을 파산시키고자 함.
* 초기 은, 금 모두 화폐병행제를 사용하였으나, 은의 량이 너무 많아 폐지함
* 달러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금 부족이 통화 위기를 가져옴 → 달러의 과다발행이 원인임.
23. 중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1985~90년) 거품을 잔뜩 끼게 하여 최고의 번영기를 누리게 한 후 자금 흡수를 하면서 (긴축통화)중국의 핵심자산을 헐값에 매입하고 중국경제를 붕괴시키고자 함.
24. 1973년 달러 약세를 고민하던 자산 투기가들은 중동전쟁 유발시켜 달러로 결재되는 원유를 통해 달러 수요 폭증시켜 위기 모면함(1975년 OPEC 장관 : 달러로 석유를 결재하는데 동의→ 세계화폐는 석유본위제로 진입함)
25. 폴볼커 : 연방준비은행 총재로서 인플레이션 억압한다고 금리를 대폭 인상(11.2%→20% : 1979년)
* IBRD나 IMF 차관과 함께 제 3의 국가인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이 박살났으며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자원은 많으나 경제가 부실한 국가가 대상이었음.
26. 세계환경 보호은행
* 1987년까지 개발도상국 채무액은 1조3000억 달러인데 이 채무액을 세계환경 보호은행에 이관함으로써 이 은행은 토지를 담보로 토지를 흡수한다는 계획아래 IBRD가 이 기금을 관리함.
27. 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채권국으로서 위상이 높아지고 미국은 채무국으로 전락함에 따라 → 85년 9월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대 달러의 비율을 기존 250;1의 비율을 149:1로 크게 절상하였고 일본 금리 또한 2.5%까지 유도→ 증시 폭등(저금리) → 경제 거품을 유발하였고 일본기업은 엔상승으로 수출부진이 지속되자 기업들은 대신 이익을 추구하고자 저금리 대출하여 주식투자에 열을 올렸고 더욱 거품은 상승함→일본금융시스템은 붕괴직전까지 도달함. → 미국은 89년 주가선물 및 풋옵션을 일본에 도입해 니께이 지수하락에 베팅하였고 그 후 일본은 주식과 부동산 폭락으로 지금까지 잃어버린 10년이라 하여 경제에 허덕이고 있음.
28. 소로스 : 로스차일드와의 유착관계를 유지하면서 로스 가문의 일을 도맡아 수행함.
29. 2차석유파동 : 달러는 1979년 이래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그 권한은 런던과 월가의 금융재벌들이 쥐고 있음 이에 대응하고자 1970년대 말 독일의 헬미트 슈미르 재무장관이 프랑스 데스탱 대통령을 찾아 ' 유럽통화제도'를 제안하였고 런던과 월가의 '엘리트 그룹'은 위기궁선(Art of ctisis)이라는 이론 바탕 하에 이슬람 급진세력들을 몰아내고 중동의 정세를 불안하게 야기 시키며 2차 석유파동을' 유발시켰다. 이 금융재벌들은 한 손에는 달러, 다른 한 손에는 석유를 번갈아 공포를 조성시키면서 자신들의 부를 지켜 왔음.
30. 1989년 11월 독일의 통일 이 후 통일지지에 적극적이던 러시아에 감사의 뜻으로 경제의 부흥을 돕기로 하였으며 이에 대한 청사진은 하노베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철도 건설계획이었다. 그러나 월가는 통일 후 독일의 성장에 두려움을 느끼며 독일 마르크화를 꺽고, 아직 출범하지 않은 유로화의 구상을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31. 동남아 경제의 파탄 및 국가 디-폴트
정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모델'은 월가에게는 눈의 가시였다. 1970년 부터 동남아는 경제의 번영을 이루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대한 첫 공격 목표는 태국이었다. 먼저 핫 머니가 유입되어 부동산과 증권시장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다음 인플레이션 유발시킨 후(이때 당시 태국은 외환보유고 : 360억달러, 부채는 1,060억 달러였음) 정부가 금리인상을 하게 끔 하고 외인 자금 이탈로 환차익 및 바트화 약세 방어를 위해 태국 정부는 일사항전을 치루었으나, 실패하고 IMF에 굴복하게 됨. 2003년 120억 채무 상환 후 IMF로 부터 탈피. 2003년 태국 총리 탁신은 국제금융재벌을 비난하였는데, 공교롭게 06년 9월 쿠데타에 의해 총리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31. 한국의 경우 미국의 맹방임에도 불구하고 월가에 못 이긴 미국 재무부는 가혹한 조건으로 IMF 지원 합의함. 그러나 한국은 타 국가와 달리 금 모으기 운동 등 월가의 계획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단기간 내 탈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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