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딱 하룻밤 귀향, 우정이란
2017년 9월 8일 금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오후 4시쯤 해서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을 나섰다.
차를 몰아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고, 신갈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끼어들었고, 그리고 여주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탔다.
내 고향 가는 길이었다.
이날의 내 행보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우리들 텃밭인 ‘햇비농원’에서 농사를 짓는다든가, 고향땅에서 열리는 축제 행사에 얼굴을 내비친다든가 할 때에나, 그렇게 차를 몰아 고향땅을 찾고는 했었다.
그러나 어제의 행보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텃밭도 아니었고, 행사장도 아니었다.
내 고향땅 친구들이 오순도순 어울리기로 되어있다는 음식점, 바로 그 현장이었다.
그러니까 오로지 고향땅 친구들과 만나 어울린다는 것, 그것이 이날 고향땅을 찾게 된 바로 그 목적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동기동창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어쩌다 내 고향땅 문경 점촌을 찾았을 때,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은 그동안 간간히 만나고는 해왔지만, 초등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은 만나지를 않았었다.
만남이 겹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도 그랬지만,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에 대구 수창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가는 바람에 만남의 기간이 짧아서, 동기동창 친구들과 그러 살갑게 지내지를 못했고, 그래서 좀 낯설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랬다.
그렇게 만나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는 어디서 만나도 서로 이름도 모르고 낯도 모르는 타인같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 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마음속으로는 못내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내게 그 친구들을 생각게 하는 계기가 하나 생겼다.
바로 지난주 일요일인 2017년 9월 3일의 일이었다.
이른 아침에 해발 399m의 대전 계족산성을 올랐었다.
아내와 동서와 처남댁이 동행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성 위에 올라보니, 멀리 대청호가 발 아래로 보였고, 그 너머로 첩첩산중 풍경이 보였다.
그 풍경과 함께 내 따로 보는 풍경이 하나 있었다.
곧, 내 마음의 풍경이었다.
그 첩첩산중 너머에 내 고향땅 문경 점촌이 있겠거니 했고, 그 땅에서 뛰놀던 깨복쟁이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내 작정하기를, 어린 시절에 함께 어울리던 초등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을 만나러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고향을 따로 한 번 가야겠다는 작정이었다.
근데 희한한 일이 하나 생겼다.
그때쯤에 내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는데, 바로 내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이용덕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그 내용, 곧 이랬다.
‘8회 모임 알림. 9월 8일 금요일 저녁 6시 30분 수궁식당. 다 모여.’
그 한 줄이 전부 다였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작정하고 있는 그 순간에, 그렇게 그 친구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으니, 나로서는 금상첨화 같은 기회가 되고 말았다.
“가 보세요. 가서 밥도 좀 사드리세요. 가는 길에 저도 따라가서, 밀린 농사나 좀 짓게요.”
옆에서 내 하는 짓을 챙겨보고 있던 아내도, 내 마음 편하게 해주려는 듯, 그렇게 거들고 나왔다.
그래서 곧장 답을 했다
이리 했다.
‘웬만하면 시간 좀 내보겠네. 근데 그동안 고향 친구들 모임에 하도 안 가서 발걸음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또 내침을 당할까봐 겁도 나네. 그런 마음으로 찾아가는 발걸음이니, 내치지 마시고, 내 좀 낑기게 해주시게.’
걱정은 기우였다.
다들 나를 반겼다.
몇몇 빼고는 다 낯설었다.
그렇다고 이름을 물어본 것도 아니다.
이름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끼어들어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알았다.
내 그 안 것, 곧 우정의 의미였다.
그저 낑기는 것, 그것이었다.
첫댓글 반가운 얼굴들 많이 뵈네요.
함께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