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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41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나와 그것'과의 관계로는 존재 할 수 없고, 나와 너라는 관계 속에서 참된 인간이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만 보았고, 사랑으로 오신 하늘의 실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람으로 사랑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공주야! 영원한 운명을 엇갈리게 할 두 선택이 있다. 한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을 믿고 그를 먹고 마심으로 생명에 이르는 선택이요, 다른 하나는 의심과 불신, 거부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Martin Buber said that human beings cannot exi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me and it, but become true human being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me and you. People only saw Jesus as the son of Joseph, and they did not recognize the reality of the sky that came with love. Jesus was the son of God who came to love man as man. Princess! There are two choices that will cross forever destiny. One is to believe in Jesus Christ's declaration, eat him, and eat him to life, and the other is to destroy himself with doubt, distrust, and re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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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선언은 무엇이며, 믿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는 예수는 요셉의 아들 예수뿐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없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수만 아버지를 보았고 아버지의 말씀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무지는 당연했다. 이제 그들은 이 예수를 통해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한다.
What is Jesus' declaration, and what does it mean to choose faith? The Jews could not understand that Jesus was a rice cake from heaven. They said that Jesus was the only son of Joseph. No one can come to God and understand God's teachings unless God leads. Only Jesus from God saw the father and was speaking the father's words, so their ignorance was natural. Now they must listen to and learn from the father through this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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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 구원자로 믿는 자,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 그들이 영생하는 떡을 먹는 자들이다. 이 땅에서 번성하고 부요한 나라를 만들려고 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이 땅의 생명을 완성한 영생의 선물을 갖고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다. 예수를 자신을 믿는 것은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께서 그들 안에 거한다는 말과 같다.
You must follow God's leadership. They are those who believe in Jesus as a messiah, those who believe in him as a savior, those who believe in God's son who will fulfill the promise of the kingdom of God, and those who eat the rice cakes they live on forever. It is to eat the rice cake of life to believe in Jesus who brought the gift of eternal life that completed the life of this land, not Jesus who tried to make a prosperous and prosperous country. He says that believing in himself is to eat his own flesh and drink blood. This is the same as saying that Jesus lives i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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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둘이 따로 나눌 수 없을 만큼 하나가된다는 의미다. 예수와 하나님이 서로 구분할 수 있지만 나눌 수 없는 관계이듯이, 예수와 믿음의 백성의 관계도 그와 같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영원하신 예수로 인해 영원히 살 것이다. 난 성경과 내 선입견이 충돌할 때 성경을 따르고 있는가? 생명의 떡으로 인해 발생할 엇갈린 운명은 무엇인가? 나는 오늘도 경외함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그분과 함께 사는가?
It means that the two become one that cannot be separated. Just as Jesus and God can be distinguished from each other but inseparable, it means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the people of faith will be the same. He who lives in Jesus will live forever because of eternal Jesus. Do I follow the Bible when it collides with my prejudices? What are the mixed fate that will arise from the rice cake of life? Do I live with the person who lives in me in aw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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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회당 사람들과 예수의 대화 1(41-51)
a.가버나움 회당 사람들의 수군거림:41-42
b.예수의 응답:43-51
가버나움 회당 사람들과 예수의 대화 2(52-53)
a.살과 피에 관한 예수 가르침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52
b.살과 피에 대한 예수의 설명:53-58
c.저자의 첨언: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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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41a)
하늘로서 내려온(41b)
떡이라 하시므로(41c)
유대인들이(41d)
예수께 대하여(41e)
수군거려(4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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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이는(42a)
요셉의 아들(42b)
예수가 아니냐?(42c)
그 부모를(42d)
우리가 아는데(42e)
제가 지금(42f)
어찌하여 하늘로서(42g)
내려왔다 하느냐(4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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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43a)
대답하여 가라사대(43b)
너희는 서로(43c)
수군거리지 말라(4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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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44a)
아버지께서(44b)
이끌지 아니하면(44c)
아무라도 내게(44d)
올 수 없으니(44e)
오는 그를(44f)
내가 마지막 날에(44g)
다시 살리리라(4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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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글에(45a)
저희가 다(45b)
하나님의 가르치심을(45c)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45d)
아버지께(45e)
듣고 배운 사람마다(45f)
내게로 오느니라(4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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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46a)
아버지를 본 자가(46b)
있다는 것이 아니라(46c)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46d)
아버지를 보았느니라(4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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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진실로(47a)
너희에게 이르노니(47b)
믿는 자는(47c)
영생을 가졌나니(4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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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48a)
곧 생명의 떡이라(4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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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조상들은(49a)
광야에서(49b)
만나를 먹었어도(49c)
죽었거니와(4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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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50a)
하늘로서 내려오는(50b)
떡이니(50c)
사람으로 하여금(50d)
먹고(50e)
죽지 아니하게(50f)
하는 것이니라(5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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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51a)
하늘로서 내려온(51b)
산 떡이니(51c)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51d)
영생하리라(51e)
나의 줄 떡은(51f)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51g)
내 살이라 하시니라 (5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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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유대인들이(52a)
서로 다투어(52b)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52c)
능히 제 살을(52d)
우리에게 줘(52e)
먹게 하겠느냐(5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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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53a)
내가 진실로진실로(53b)
너희에게 이르노니(53c)
인자의 살을(53d)
먹지 아니하고(53e)
인자의 피를(53f)
마시지 아니하면(53g)
너희 속에(53h)
생명이 없느니라(5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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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을 먹고(54a)
내 피를 마시는 자는(5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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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가졌고(54c)
마지막 날에(54e)
내가 그를(54f)
다시 살리리니(5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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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은(55a)
참된 양식이요(55b)
내 피는(55c)
참된 음료로다(5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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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을 먹고(56a)
내 피를 마시는 자는(56b)
내 안에 거하고(56c)
나도 그 안에(56d)
거하나니(5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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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아버지께서(57a)
나를 보내시매(57b)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57c)
사는 것 같이(57d)
나를 먹는 그 사람도(57e)
나로 인하여 살리라(5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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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58a)
하늘로서 내려온(58b)
떡이니(58c)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58d)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58e)
이 떡을 먹는 자는(58f)
영원히 살리라(5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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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59a)
예수께서(59b)
가버나움 회당에서(59c)
가르치실 때에(59d)
하셨느니라(5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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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에 대한 오해_Misunderstanding about rice cake.
영생하는 떡_Rice cake that lasts forever.
예수와 하나 되는 길_The way to become one with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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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아시고도 생명의 떡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이끌리는 자들만이 아들을 영접할 수 있게 하였사오니 올 한 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주의 뜻을 좇겠습니다. 고집 때문에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새 시대를 역류하는 유대인 같은 공동체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성찬은 교회일치의 최상의 표현이며 주님과 연합입니다. 내가 매일 주님을 먹음으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I praise the Lord, who has become the rice cake of life even though he knows the murmur of the people. Since only those who can see God through their sons and are led by God's sovereign history have been able to receive their sons, I will follow the will of the Lord with the words of this year in mind. Please help me not to enjoy eternity because of my stubbornness and to become a Jewish community that flows backward in the new era. The Holy Communion is the best expression of church unity and is the union with the Lord. Let me refresh you by eating the Lord every day.
2026.2.19.thu. Clay
신학 비평//
1) 수군거림의 철학: ‘나-그것’의 세계
본문의 배경은 요한복음 6장, 가버나움 회당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규정한다. 그들의 언어는 사실 확인의 언어이며, 혈통과 출신을 기준 삼는 인식의 언어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틴 부버의 관계철학을 떠올린다. 부버는 인간이 ‘나-그것(I-It)’의 관계 속에 머물면 타자를 대상화한다고 보았다. 대상은 분석되고 규정되며 통제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이해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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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부모를 안다.” 그들은 예수를 <설명 가능한 존재> 곧 ‘그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예수의 선언은 이 대상화의 틀을 깨뜨린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이 말은 존재론적 선언이다. 그는 정보가 아니라 <사건>이며, 교리가 아니라 <현존>이다. 예수는 설명될 대상이 아니라 관계 맺을 ‘너(Thou)’로 자신을 내어주신다.
2) 하나님의 이끄심: 인식의 전환
예수는 말한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이는 단순한 예정론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인식론적 전환의 선언이다. 인간은 스스로 절대자를 파악할 수 없다. 하이데거적 표현을 빌리면, 인간은 ‘존재 망각’ 속에 갇혀 있다. 하나님을 향한 인식은 인간의 사유 능력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기-계시에서 시작된다. 예수는 “아버지를 본 자”로서, 하나님의 자기현현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논리적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계시 앞에서의 응답이다. 믿음은 새로운 정보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방식을 바꾸는 선택이다.
3) “먹고 마신다”는 것의 존재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 이 언어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는 문자적 식인 행위의 요구가 아니라, 존재의 상호 내주(perichoresis)를 가리킨다.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이는 단순한 도덕적 모방이 아니다. 예수와 신자의 관계는 분리된 두 주체의 계약이 아니라, 존재의 참여(participation)이다. 부버의 ‘나-너’ 관계가 상호성을 강조한다면, 요한복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여기서는 단순한 대면이 아니라 <연합>이다. 이것은 성찬의 신비와 맞닿는다. 떡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4) 엇갈린 운명: 자유와 책임
본문에는 두 길이 있다. 1. 수군거림의 길 — 이해하지 못해도 자기 인식의 틀을 고집하는 길 2. 믿음의 길 — 이해 이전에 자신을 맡기는 길.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는 자기 폐쇄성(closed self)과 자기 개방성(open self)의 갈림이다. 의심은 질문일 수 있으나, 불신은 닫힘이다. 믿음은 맹목이 아니라, 존재를 열어 타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행위다. 여기서 영생은 단순한 시간의 연장이 아니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서 누리는 질적 존재 상태다.
5) 오늘의 성찰
당신은 묻는다. “난 성경과 내 선입견이 충돌할 때 성경을 따르고 있는가?” 이 질문이 이미 믿음의 문턱에 서 있다는 증거다. 생명의 떡은 인간의 성공 프로젝트가 아니다. 예수는 이 땅의 번성한 제국을 세우러 오지 않았다. 그는 존재를 완성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셨다. 믿는다는 것은 그를 ‘요셉의 아들’로 규정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하늘에서 온 너’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그를 먹는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 구조가 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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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은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다. 이는 관계의 혁명이다. ‘나-그것’에서 ‘나-너’로, 그리고 ‘너 안에 나, 나 안에 너’의 연합으로. 수군거림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믿음은 존재의 도약이다. 생명의 떡 앞에서 우리의 운명은 갈린다.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먹을 것인가. 오늘도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삶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