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구(PBA) 투어가 출범할 무렵 한국은 캐롬 3쿠션 종목의 최대 시장이었다.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동호인은 넘쳐났다.
전 세계 어디에도 한국만큼 캐롬 종목을 많이 치는 나라는 없었다. 이를 기반으로 엘리트 성인 당구선수는 훈련과 대회 출전 등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충분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유소년은 문제가 있었다. 한국 당구는 김행직(전남-진도군청)과 조명우(실크로드시앤티-서울시청)를 이어갈 만한 마땅한 유소년 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당구계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92년생 김행직과 98년생 조명우 아래에 2000년대생 청소년 선수들이 김행직과 조명우만큼 가능성이 보여야 하는데, 딱히 눈에 띄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김경률을 비롯한 현재 한국의 정상급 선수들처럼 세계 무대에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어느 정도 실력이 향상될 수도 있겠지만, 김행직과 조명우처럼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인 선수로 치고 나갈 만한 인재가 없었다.
일각에서는 한국 당구의 계보가 조명우에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까지 했으나, 당시 한국 당구의 시스템에서는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인식이 커서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유소년 선수 풀이라도 커져야 하는데 대한당구연맹(KBF)의 주도로 국내 대학에서 선발하는 당구 특기생 인원이 차츰 늘어나기는 해도 많지 않았고, 지원 또한 제한적이어서 선수 수는 늘지 않았다. 또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유소년 선수가 세계 무대 정상급 선수 수준으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한국 당구는 후진 양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조금 나은 정도였고, 이러한 환경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를 육성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김행직-조명우 잇는 후진 양성 어려워
유소년 문제 보이지만 '해결 논의 및 지원' 부재
그동안 유소년 선수의 양성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코치들이 개별적으로 지역에서 인재를 찾고,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현재 20대와 30대 초반까지 선수들은 대부분 이렇게 당구선수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계속 큐를 잡게 만드는 것은 처음에는 해당 코치들의 고민이었다가 나중에는 당구계 전체의 문제가 됐다.
실제로 재능이 보였던 유소년 선수 여러 명이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당구를 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고, 남자 선수는 성인이 된 후 군 복무를 마치기까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복귀하는 공백이 발생하면서 실력이 늘지 않았다.
나이가 찬 이들은 베테랑인 선배들과 대결해서 성적이 나야 하는데, 이러면 당연히 경험이 많은 기성 선수들을 이길 수 없다. 이로 인해 직장 운동부 자리도 자연스럽게 선배들이 차지하게 됐고, 후원받는 것도 어려운 주니어 출신 선수들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됐다.
이런 구조 안에서 김행직과 조명우의 뒤를 이을 만한 후진은 양성될 수 없었다. 당구계 사정을 아는 여러 사람들은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올라온 선수들이 큐를 놓지 않고 계속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딱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당구 산업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업체들도 여유가 없다 보니 유소년을 전폭 지원하는 것은 어려웠다.
당시 국내에서 발생하는 당구의 상당수 자본이 신흥 당구 시장으로 주목받던 베트남이나 유럽으로 흘러갔다. 베트남 선수들은 국내 기업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고, 국내 방송사에서 당구 콘텐츠 확보를 위해 투자한 억대의 자본은 모두 유럽으로 흘러갔다.
현재 한국의 투자를 받은 베트남의 당구 시장은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 또한, 엘리트 선수들이 세계 정상을 차지하면서 아시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한국의 자리는 위협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들 입장에서 앞을 내다보면 포화 상태인 국내에 투자하는 것보다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가는 것이 사업적으로는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유소년 육성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한국 당구계는 어린 당구선수들이 국내에서 계속 큐를 잡고 훈련할 수 있도록 공론화하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물론,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 이후에 한국 당구 시장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해결책을 찾을 만한 여유가 더 없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PBA 키즈'와 김영원의 우승
PBA 데뷔한 중학생 김영원은 '애버리지 2.5, 하이런 16' 기록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불과 17세의 어린 한국 선수가 프로당구(PBA) 투어를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PBA 투어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 선수조차도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는 게 쉽지 않은 무대다.
'3쿠션 사대천왕'으로 아마추어 무대를 30년 넘게 주름 잡았던 다니엘 산체스(에스와이)나 국내 정상급 선수인 이충복(하이원리조트)도 128강전 통과가 쉽지 않다.
그런 PBA 투어를 17세의 선수가 우승한 것은 유소년 양성에 문제가 많았던 한국 당구계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일이다.
2019년에 PBA 투어 출범 당시에 '우승상금 1억원'이라는 목표를 두고 어린 선수들이 큐를 잡게 될 것을 기대했다. 유소년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출범한 PBA 투어는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번에 나왔다. 이번에 프로당구 24-25시즌 6차 투어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을 우승한 김영원은 막연하게나마 기대했던 'PBA 키즈'다.
김영원은 TV에서 나오는 PBA 투어 경기를 보고 처음 당구를 시작했다. 당시에 김영원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PBA 투어가 없었으면 지금의 김영원이 있었을까. 설령 그가 큐를 잡고 현행 당구 유소년 시스템에 기대 선수가 됐더라도 목표가 작거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이처럼 성장하는 것은 어렵다. 마땅히 김영원은 PBA가 낳은 'PBA 1호 키즈'라고 말할 수 있다.
큐를 잡고 2년 뒤에 김영원은 KBF 학생부 전국당구대회에 출전해 중등부에서 우승 세 차례를 차지했다. 중등부라고 해봐야 선수가 몇 명 없어서 김영원처럼 재능이 있고 열심히 훈련한 선수라면 우승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듬해 21-22시즌 2부 투어 마지막 대회에서 김영원은 처음 프로당구 데뷔전을 치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때 김영원이 보여준 활약은 놀라웠다.
큐를 잡고 불과 3년 만에 도전한 프로당구 무대였다. 그런데 중학생 김영원은 무려 애버리지 2.5와 1.765, 하이런 16점, 13점 등을 기록하며 3승이나 거두었다.
이처럼 PBA 투어를 목표로 큐를 잡은 12세의 어린 김영원은 3년 만에 성인 선수를 압도하는 기량을 갖추었다.
그동안 유소년 육성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당구계는 김영원이 보여준 역사적인 우승을 계기로 거듭나야 한다.
유럽은 이미 몇 년 전에 유소년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그 결과로 현재 주니어 레벨의 선수 중에서 유럽 국가의 여러 선수가 한국 선수들보다 좋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대로라면 주니어 3쿠션 최정상을 지켜 온 한국이 유럽과 베트남에 역전당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번 김영원의 우승을 기점으로 유소년 육성 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 앞으로 당구에 도전하는 유소년 선수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그들이 더 열심히 연습해서 과거 김행직과 조명우가 그랬던 것처럼 10대의 나이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를 기대한다.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출처 : 더빌리어즈 https://www.thebilliards.kr/news/articleView.html?idxno=26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