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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0
사랑의 신비는 이해의 관계를 넘어섭니다. 사랑과 동행을 언약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마음이 흔들릴 때,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 다시 한 번 한걸음을 내딛기로 선택하는 것이 사랑의 방향입니다. 생떡쥐베리의 말처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랑이어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공주야! 인터넷에 누군가의 글이 올라오면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지지하는 이들, 무관심한 이들, 악플 을 다는 이들 등등,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올라온다면, 그 말씀을 지지하거나 악플을 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The mystery of love goes beyond the relationship of understanding. When you are shaken by the reason that you cannot understand the promise of love and companionship, it is the direction of love to choose to take one step again at the moment you want to give up. As Saint-Tteok-Gwi Beri said, it must be love that looks in the same direction to accompany you. Princess! When someone posts on the Internet, there are various reactions. Supporters, indifferent people, malicious comments, etc., what if God's words were posted to support or post malicious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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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주님의 말씀에 다양한 반응을 보인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어려워한다. 단지 이해력이 부족한 데 그치지 않고 걸림이 될 정도였다. 예수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하게 되고 그를 끝까지 따를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말씀으로 들렸다는 뜻이다. 그들이 이 땅에서 추구하는 나라와 예수가 이루려는 나라는 같지 않았다. 그들에게 예수는 속세를 떠나서 아주 신비적인 어떤 세계를 추구하려는 지도자로 비치기 시작했을 것이다.
The text introduces those who have shown various reactions to the word of the Lord. The disciples who listened to Jesus find it difficult. It was not just a lack of understanding, but a catch. It means that it sounded like a word that made them seriously reconsider about Jesus and wonder whether to follow him to the end. The country they sought out on this earth and the country Jesus was trying to achieve were not the same. To them, Jesus would have begun to be seen as a leader who wanted to pursue a very mysterious world, away from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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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는 식인을 조장하는 실성한 사람처럼 비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예수를 계속 따르고 기대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예수 믿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할 만큼 낯설고 충격적인 말씀이 전해지고 있는가? 예수는 제자들 가운데 이미 자신을 따라온 시간을 후회하고 관계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아셨다. 심지어 정리하기 전에 그간 자신이 허비한 삶을 조금이라도 금전적으로 보상받으려는 뜻에서 예수를 돈 받고 팔아넘길 마음을 품은 자가 있다는 것까지 아셨다.
He would have been severely seen as a maniac promoting cannibalism. Wouldn't he have thought about continuing to follow and expect such Jesus? Are there strange and shocking words that have made him worry about believing in Jesus? Jesus knew that some of his disciples regretted the time they had already followed him and wanted to settle their relationships. He even knew that there were people who wanted to sell Jesus for money in the hope of getting even a little financial compensation for his wasted life before organiz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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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것은 영인데,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육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상당히 많은 제자들이 떠났다. 열두 제자들에게도 가려는 의사가 있는지 물으시자 베드로는 예수가 하신 말씀이 ‘영생의 말씀’이라고 인정하고 그의 곁을 지킬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예수는 열둘 모두가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고 그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이미 예수를 팔아넘길 마음을 품은 것을 아셨다.
It is spirit that saves them, and they are those who refuse God's call to the end and live according to the flesh. When Jesus said that he was the form of life from heaven, a considerable number of his disciples left. When asked if he was willing to go to the twelve disciples, Peter acknowledged that what Jesus said was the "word of eternity" and vowed to stand by him. However, not all of Jesus had that kind of heart, and he knew that one of them, Jarod Judah, was already willing to sell him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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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해서 따르기로 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예수가 하신 말씀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말씀인 것만은 믿었던 것이다. 정확한 교리나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살아있는 관계다. 이성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관계가 빠진 진리는 허위다. 말씀이 어렵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무엇을 책망하셨는가? 아직도 내게는 죽음이 걸림돌인가? 영생을 얻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나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 멈추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주님 곁에 머무는가?
Peter did not decide to fully understand and follow Jesus' words, but at least believed that what Jesus said was a word that led to eternity. A living relationship with Jesus is more important than accurate doctrine and knowledge. Truth without reason is not truth. However, the truth without relationship is false. What did the Lord blame his disciples for saying that the words were difficult? Is death still a stumbling block to me? What is the way to eternal life? Do I stop in front of words I don't understand, or do I stay with the Lord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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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성령과 말씀, 그리고 생명(60-65)
a.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제자들:60-63
b.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이유:64-65
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66)
a.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66
b.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제자들:66
예수님께 남아있는 제자들(67-17)
a.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제자들:67-69
b.예수님께 선택받는 제자들: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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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중 여럿이(60a)
듣고 말하되(60b)
이 말씀은 어렵도다(60c)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6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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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스스로(61a)
제자들이(61b)
이 말씀에 대하여(61c)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61d)
가라사대 이 말이(61e)
너희에게(62f)
걸림이 되느냐(6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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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너희가(62a)
인자의(62b)
이전 있던 곳으로(62c)
올라가는 것을(62d)
볼 것 같으면(62e)
어찌 하려느냐(6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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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것은 영이니(63a)
육은 무익 하니라(63b)
내가 너희에게(63c)
이른 말이 영이요(63d)
생명이라(6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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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희 중에(64a)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64b)
있느니라. 하시니(6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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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예수께서(64d)
믿지 아니하는(64e)
자들이 누구며(64f)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64g)
처음부터 아심이라(6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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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라사대(65a)
이러하므로 전에(65b)
너희에게 말하기를(65c)
내 아버지께서(65d)
오게 하여 주지(65e)
아니하시면(65f)
누구든지 내게(65g)
올 수 없다 하였노라(65h)
하시니라(6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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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제자 중에(66a)
많이 물러가고(66b0
다시 그와 함께(66c)
다니지 아니하더라(6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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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67a)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67b)
너희도 가려느냐(6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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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68a)
주여 영생의(68b)
말씀이 계시매(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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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뉘 게로(68d)
가오리이까(6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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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69a)
주는(69b)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69c)
믿고 알았삽나이다(6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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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시되(70a)
내가 너희 열둘을(70b)
택하지 아니하였느냐(70c)
그러나 너희 중에970d)
한 사람은(70e)
마귀니라 하시니(7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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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71a)
가룟 시몬의 아들(71b)
유다를 가리키심이라(71c)
저는(71d)
열 둘 중의 하나로(71e)
예수를 팔 자러라(7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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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이 되는 예수_Jesus Is Being Caught_
떠나게 하는 예수_Jesus who makes you leave._
따르게 하는 예수_Jesus to obe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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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만이 영생의 말씀인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결핍에서 오는 모든 죽음의 증상들로 부터 채워주시기 위해 다시 위로 올라가신 당신의 새로운 창조를 찬양합니다. 너희도 가려하느냐고 물으시는 물음 앞에 다시 한 번 각오를 새롭게 하게 하옵소서.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 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까?
Thank you for making me realize that only the Lord is the word of eternity. I praise your new creation, which has risen again to fill all the symptoms of death from deficiency. Please renew your determination in front of the question that you are asking if you are going, too. Lord, how will we walk with the word of eternity?
2026.2.20.fri.Clay
신학 비평//
요한복음 6:60.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여기서 ‘어렵다’는 말은 단순한 난해함이 아닙니다. 헬라어 *skandalon* — 걸림돌,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의 방향을 뒤흔듭니다. 그들은 단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기대하던 메시아 상과 충돌했기 때문에 흔들렸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나라는 번영의 왕국이었고, 예수가 말한 나라는 자기 죽음을 통과하는 생명의 나라였습니다.
1) 이해를 넘어서는 사랑
당신은 말합니다. “사랑은 이해를 넘어선다.” 맞습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해는 대상화의 작용입니다. 우리는 이해할 때 대상을 파악하고 정리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파악이 아니라 참여입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말했듯,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제자들은 이해의 관계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동행의 관계를 요구하셨습니다.
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이 구절은 육체 경멸이 아닙니다. ‘육’은 자기 중심적 인식의 틀을 의미합니다. 칸트적 이성으로 말하면, 인간 이성은 현상만 파악할 수 있고 물자체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현상을 넘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초월적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해의 부족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입니다.
3) 떠나는 제자들 — 자유의 비극
6:66은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숫자처럼 보입니다. “많은 제자가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강제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철학적으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유는 떠날 자유도 포함합니다. 예수는 붙잡지 않습니다. 오히려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질문은 협박이 아니라 존재의 초대입니다.
4) 베드로의 고백 — 이해 이전의 신뢰
베드로의 고백은 놀랍습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그는 완전히 이해해서 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압니다. 이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만은. 키르케고르는 이를 ‘도약’이라 불렀습니다. 신앙은 논리의 완성이 아니라 결단의 행위입니다. 이성 없는 진리는 맹목이지만, 관계 없는 진리는 공허합니다. 베드로는 완전한 이해 대신 살아 있는 관계를 선택했습니다.
5) 유다 — 관계의 붕괴
가룟 유다는 이해 부족 때문이 아니라 욕망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는 관계를 계산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랑을 거래로 바꾸는 순간, 신앙은 무너집니다. 신앙은 이해의 완성도가 아니라 관계의 진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묻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인터넷에 올라온다면,
우리는 지지할 것인가, 악플을 달 것인가?” 이미 그 장면이 요한복음 6장입니다. 수군거림, 비난, 떠남, 고백. 말씀은 항상 반응을 요구합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떠나는 자이거나, 머무는 자입니다.
6) 죽음은 여전히 걸림돌인가?
많은 제자가 떠난 이유는 예수의 말씀이 그들의 안전한 신앙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죽음, 자기 부인, 살과 피의 참여. 이것은 종교적 위안이 아니라 존재의 재구성입니다. 영생은 죽음 이후의 시간 연장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관계의 질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멈출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더 내딛을 것인가? 사랑은 이해를 넘어섭니다. 동행은 확신 이전에 선택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너희도 가려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