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는 전 사회적인 ‘상식의 침몰’이자, 교회적으로는 ‘복음의 실종’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옳다고 믿었던 가치가 사실상 ‘죽음’을 향한 것임을 증명한 이 사건을 통해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발견한 것은 신앙의 침몰일까, 아니면 신앙이 희망이라는 확신일까. 좌담회를 통해서 전무후무한 참사에 대한 교회와 신앙인들의 대응을 성찰하는 한편, 이 ‘새로운 사태’앞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함께 물었다.
참가자들은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내적 변화를 경험했다고 고백하면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갔다. 모든 것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됐다. 그런 점에서 고통스럽지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개인적인 이 변화가 교회는 물론 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면서, “이 시점에서 절실한 종교의 역할은 바로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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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 씨(왼쪽), 김재욱 씨.ⓒ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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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위원장, 교회가 세상에 ‘왜 사느냐’는 질문 해 줘야 김재욱 사무국장, 피해지역 공동체 회복의 허브 역할 해 달라
“유병언 사망부터 여론이 반전되고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 행위가 조직적으로 시작됐어요. 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목소리를 정치, 정쟁으로 몰아갔죠. 이런 상황에서 절실했던 것은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누군가 목소리를 내 주는 것이었어요. 교회가 사람들에게 ‘왜 사는가’라고 물어 주기를 바랍니다.”
김혜진 위원장은 정치가 아닌 것을 정치적 사안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 살아갈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이 절실했다면서, “지금이 바로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에 대해 돌아봐야 할 때다. 이럴 때 가장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 종교다. 노골적으로 ‘왜 사는가’라고 묻고 스스로에게 질문들 던지도록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또 앞으로 교회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세월호 참사를 둘러 싼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상 규명을 반대하는 이들은 사실이 무엇인지 들을 기회가 없을 뿐이다. 그 기회를 만드는 것이 현재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고, 각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304명의 희생을 구체적으로 보고 듣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꼭 한번이라도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 현장을 들러 달라는 당부도 간곡히 전했다.
김재욱 사무국장은 교회가 안산과 진도 등 피해 지역 공동체 회복에 나서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신앙인들이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고가 났고 구조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는데도 진실을 밝혀 달라는 요구를 정쟁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세월호참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겠지만, 그것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관점이 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 사무국장은 희생자와 생존자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현재 관계망이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개별적인 치유나 지원활동 보다는 지역 사회안에서 거시적으로 치유와 회복을 위한 허브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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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현우석 신부, 안선영 수녀, 김학일 씨.ⓒ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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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석 신부, 교황의 가르침으로 변화 이끌어야 안선영 수녀, 그리스도인의 생기가 희망의 파동으로... 김학일 씨, “교회가 유가족의 맨 앞에 서 줄 것을 믿습니다”
현우석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에 주목했다. 현 신부는 교황이 세월호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정신으로 살아갈 것인가, 예수와 교회의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 줬다면서, “느리지만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의 본당에서, 주교님들의 선언과 행동을 통해서다. 다만 이런 변화들이 세월호 참사 해결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선영 수녀는 “희망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절망감과 무력감을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깊은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안 수녀는 그 희망은 함께 아파하면서도 움직이는 이들을 통해 발견한 것이며, 움직이는 한 사람을 통해 그 파동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생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회의 추기경님, 주교님, 신부님, 수녀님들께서 저희 유가족의 보호자가 되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시몬과 베로니카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고통 받고 상처 받는 유가족들의 가장 앞 자리에 서 계실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학일 씨는 교회에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그는 참사 직후 팽목항에서 염수정 추기경을 기다렸고, 도보 순례 기간에는 자랑스러웠던 신앙을 부끄럽게 여긴 적도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유가족 맨 앞에 서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간담회를 다니면서, 일부 반대 의견을 가진 신자들로 인해 사제와 수도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면서, “극복하기 힘들겠지만,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의 얼굴을 닦았던 시몬과 베로니카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을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다.
세월호참사 후 8개월. “교회는 과연 착한 사마리아인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교회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직 거대한 시작이 앞에 있기에 아직 우리는 아무도 답을 할 수 없다. 다만 지난 8개월의 여정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단초를 얻었을 뿐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누군가는 이를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팽목항에서 만난 한 수도자는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는 성경 구절이 끊임없이 떠오른다고 호소했다. 예수를 대신해 죽은 베들레헴 아이들의 죽음을 말하는 구절이다.
세월호 참사는 구원을 위한 예수의 죽음, 순결한 이들의 희생에 비견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참사 진상 규명은 그래서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알아보는 것, 권력을 위해 아이들을 죽인 헤로데의 민낯이 무엇인지 밝혀 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교회는 과연 십자가의 죽음과 어린 희생자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을까. 지난 시간 우리의 신앙 또한 이 지점에서 본질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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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6일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와 사제단, 수도자, 신자들은 팽목항을 찾아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배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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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8월 25일 미사를 시작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기도와 매일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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