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7:1
우리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급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때로 늦어 보이지만 그때가 가장 온전한 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순종이 우리에게 있는지 질문해 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따름이란 그의 삶의 방식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 혈안이 된 상황에서 예수께서 보이신 행동은 무엇인가?
If it doesn't go according to our plan, we seem to get impatient. However, like Jesus, we must put down our impatience and trust God's timetable. God's time sometimes seems late, but that is the most perfect time. We must ask if we have obedience that trusts in God and waits for his time. Christians are people who follow Jesus, and following is a reproduction of his way of life. What was Jesus' behavior when the Jews were desperate to kill themselves?
-
공주야! 그분은 경솔하지도, 무모하지도 않으셨다. 철저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고 하나님 방식에 순종하셨다. 형제들은 예수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이미 많이 알려진 갈릴리 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대, 특히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형제들은 육의 기준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정체 그대로 알지도, 믿지도 않았다. 또한 유대에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몰랐다.
Princess! He was neither rash nor reckless. He thoroughly waited for God's time and obeyed God's way. The brothers wanted Jesus to be known to more people by his abilities. To do this, they insist on going to a still unknown bond, especially Jerusalem, rather than a much known Galilee. Still, the brothers were only looking at Jesus by the standards of flesh. He did not know or believe what he was. Nor did he know that there were Jews waiting in Judea to kill Jesus.
-
오직 자신들을 위해 예수가 유명해지기를 바랄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그분이 더 알려지기를 바라고, 우리 교회가 커지기를 바라고,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게 예수 자신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는 형제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런데 그게 형제들의 불신 때문도 아니고 신변의 위협 때문도 아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I only wanted Jesus to be famous for themselves. What on earth do I trust Jesus for? What makes him more known, wants our church to grow up, and wants me to be an influencer? What do I really want? What does that have to do with Jesus himself? Jesus rejects the brothers' offers. But it's not because of the brothers' distrust, nor because of threats to his personal life. It's because it's not yet time.
-
형제들은 그것을 ‘예수의 때’ 라고 알아들었겠지만, 사실 ‘하나님의 때‘를 가리킨다. 예수는 자신의 때도 아니고, 형제들의 때도 아니고, 사람들이 기대하며 정한 때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행동하셨다.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분명하지 않은 형제들은 언제든 자기가 원하면 올라갈 수 있다. 그래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다.
The brothers may have known it as the 'time of Jesus', but it actually refers to the 'time of God'. Jesus acted only according to the time of God, not his own time, not the time of his brothers, not the time that people expected and set. Brothers who do not know the time of God and have no clear relationship with Christ can go up whenever they want. But no one will care. But for those who relate to God, the time of God is now the best time.
-
예수는 형제들 몰래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 형제들의 때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따라 움직이신다. 그 때가 우연히 일치할 수 있지만, 그는 누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분명히 아셨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만 산다는 것을 모른 채 제 각각 그의 정체를 추정한다. 그를 찾지만 그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에 대해 단지 궁금해 할 뿐 그의 참된 정체를 증거 하는 일이 목숨을 바칠 만큼 가치 있는 일인 것을 알 만큼은 그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Jesus goes up to Jerusalem without his brothers knowing. He does not follow the brothers' times, but moves according to the times of God. The times may coincide by chance, but he clearly knew whose instructions to follow. In this way, the people of Jerusalem estimate each of themselves without knowing that Jesus only live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who sent him. We look for him, but we cannot speak openly about him. We are just curious about him, and we do not know about him enough to know that proving his true identity is worth sacrificing our lives.
-
내가 지체들에게 세상적인 관점으로 종용한 일은 없는가?
세상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 예수께서 보이신 방식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Have I ever urged my friends to take a global standpoint?
What is the way Jesus looked at the moment he was threatened by the world?
Am I living a life of obedience, trusting God's time, not my plan?
-
예수님에 대한 형제들의 반응(1-5)
a.유대지역을 피하시는 예수님:1-2
b.예수님을 불신하는 형제들:3-5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한 반응(6-9)
a.자신과 형제들을 구분하시는 예수님:6-7
b.명절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예수님:8-9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10-13)
a.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찬반:10-12
b.두려워서 예수님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함:13
-
이 후에(1a)
예수께서(1b)
갈릴리에서 다니시고(1c)
유대에서(1d)
다니려 아니하심은(1e)
유대인들이(1f)
죽이려 함 이러라(1g)
-
유대인의 명절인(2a)
초막절이 가까운지라(2b)
-
그 형제들이(3a)
예수께 이르되(3b)
당신의 행하는 일을(3c)
제자들도 보게(3d)
여기를 떠나(3e)
유대로 가소서(3f)
-
스스로(4a)
나타나기를 구하면서(4b)
묻혀서 일하는(4c)
사람이 없나니(4d)
이 일을(4e)
행하려 하거든(4f)
자신을 세상에(4g)
나타내소서. 하니(4h)
-
이는(5a)
그 형제들이라도(5b)
예수를 믿지(5c)
아니함 이러라(5d)
-
예수께서 가라사대(6a)
내 때는(6b)
아직 이르지(6c)
아니하였거니와(6d)
너희 때는(6e)
늘(6f)
준비되어 있느니라(6g)
-
세상이 너희를(7a)
미워하지 못하되(7b)
나를 미워하나니(7c)
이는 내가(7d)
세상의 행사를(7e)
악하다 증거 함이라(7f)
-
너희는(8a)
명절에 올라가라(8b)
-
나는 내 때가 아직(8c)
차지 못하였으니(8d)
이 명절에(8e)
아직 올라가지(8f)
아니하노라(8g)
-
이 말씀을 하시고(9a)
갈릴리에(9b)
머물러 계시니라(9c)
-
그 형제들이(10a)
명절에 올라간 후(10b)
자기도 올라가시되(10c)
나타내지 않고(10d)
비밀히 하시니라(10e)
-
명절 중에(11a)
유대인들이(11b)
예수를 찾으면서(11c)
그가(11d)
어디 있느냐 하고(11e)
-
예수께 대하여(12a)
무리 중에서(12b)
수군거림이 많아(12c)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12d)
혹은 아니라(12e)
무리를(12f)
미혹하게 한다 하나(12g)
-
그러나 유대인들을(13a)
두려워하므로(13b)
드러나게(13c)
그를 말하는(13d)
자가 없더라(13e)
-
자기 과시_Showing off.
예수의 거절_Jesus' refusal.
다양한 기대_Various expectations.
-
때에 맞춰 일하시는 주님을 배우겠나이다. 폼 나지 않고 형제들이 달가워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특별히 내게 고난이 없는 것은 타협의 결과인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집니다. 비록 더디고 힘들더라도 제 삶을 계획하신 주님의 스케줄에 따라 올라갈 때와 감춰 살 때를 맞춰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will not learn the Lord who works in time. Even if you're not cool and your brothers aren't happy. My face turns red thinking that it is the result of compromise that I don't have any particular hardships. Even if it is slow and difficult, please help me live on time when I go up and when I live in hiding according to the schedule of the Lord who planned my life.
2026.2.21.sat.Clay
신학 비평//
조급함은 믿음의 결핍인가, 시간의 오해인가? 요한복음 7장은 시간에 대한 본문입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여기서 갈등의 핵심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형제들은 공간 전략을 말합니다. 예수는 시간의 질서를 말합니다.
1) 자기 과시와 하나님의 시간
형제들의 제안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말은 현대적입니다. 브랜딩, 노출, 영향력, 확장...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방식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소비하려 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2) 시간의 철학 —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헬라적 시간 개념으로 보자면, 형제들의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계획, 계산, 적기(適期), 타이밍. 그러나 예수의 시간은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질적 순간.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라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예수는 “시간을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그는 자기 의지의 시간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시간 안에 거합니다.
3) 위협 속의 침묵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그런데 예수는 무모하지 않습니다. 또한 비겁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명절에 올라가기를 거절하지만, 형제들이 간 후에 비밀히 올라가십니다.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주권적 절제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무조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4)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이 말씀은 차갑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사람은 언제든 자기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하는 사람은 자기 계획을 마음대로 실행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자유의 박탈이 아니라 시간의 재구성입니다.
5) 다양한 기대와 수군거림
예수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입니다. a. 좋은 사람이라 b. 미혹하는 자라 c. 그러나 두려워 말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늘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진리는 항상 평가됩니다. 그러나 목숨 걸고 증거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정체를 아는 일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따르는 자.”입니다. 따름은 감정이 아니라 <재현>입니다. 그의 삶의 방식, 그의 시간 감각, 그의 순종 구조를 닮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기보다 순종을, 노출보다 때를, 확장보다 사명을 택하셨습니다.
6) 우리의 조급함
조급함은 믿음이 약해서라기보다 시간을 내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아직인가? 왜 지금이 아닌가? 왜 나는 드러나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성공의 타이밍이 아니라 구원의 타이밍입니다. 예수는 올라가야 할 때를 아셨고, 감춰져야 할 때를 아셨습니다. 그는 형제들의 조급함에 반응하지 않았고, 위협에도 과잉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철저히 보내신 분의 시간표 안에 있었습니다. 조급함은 인간의 시간이고, 평안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순종은 시간에 대한 신뢰입니다. 나는 세상적 관점으로 지체를 종용한 적은 없는가? 고난이 없는 것이 타협의 결과는 아닌가? 드러날 때와 숨을 때를 구분하고 있는가? 내 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때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