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친일파다.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내게 어느 나라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1번 영국, 2번 일본이다.
문자를 깨우치기 시작한 어릴 때부터 익힌 바로는 어른들도 일본을 왜놈이라 부르고 미워하면서 속으로는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일본을 좋아한 첫 번째는 간장이었다. 왜간장이라 했다. 짜고 꾸리한 맛이 났던 조선간장보다 왜간장은 맛이 부드러웠다.
어머니는 장독대에 가득 담긴 간장보다 부엌 찬장에 있는 왜간장을 아주 아껴 썼다.
김을 싸서 먹을 때 왜간장에 고추가루와 참기름 깨소금이 들어간 소스 하나만 있으면 보리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국민학교 때 일제 크레파스를 쓰던 아이가 있었다. 공부는 별로였는데 부잣집 아이라 고급 학용품을 썼다.
내가 빌려 써 본 바로는 일제 크레파스는 확실히 국산과 차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날마다 국산품 애용을 가르쳤지만 우리는 이미 일제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반장이었던 내게 담임 선생님은 방과 후에 시험 문제 채점을 맡겼다.
어느 날 교탁에 놓인 만년필을 호기심에 만지자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얘야~ 그거 만지지 마라. 이거 아주 귀한 일제란다."
그 아이가 자라 인생 후반전에 들어 선 지금도 어느 나라가 가장 좋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1번 영국, 2번 일본, 고로 나는 친일파다.
2. 나의 친일 행적
내 인생에서 실패가 자주 있었지만 한 번은 완전 쫄딱 망해 길거리에 나앉게 된 적이 있다.
아내와 딸을 처갓집에 맡긴 후 고시원에서 절치부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막막할 때 영국에 일자리가 나왔다.
내가 평소 이민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기회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당시 내가 접촉한 일자리가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영국, 이렇게 네 곳이었는데 차례로 나가리가 되고 맨 마지막에 남은 곳이 영국이었다.
조건이 가장 안 좋은 곳이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일단 혼자 들어가 아내와 딸을 부르기로 했다.
비행기 값이 없어서 런던으로 바로 가는 직항편이 아닌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네덜란드항공 KLM으로 갔다.
스키폴 공항에서 환승해 런던에 도착했다. 긴 여정에다 너무 복잡한 공항이라 잔뜩 긴장을 해서 입국 심사를 마쳤다.
붐비는 히드로 공항에서 나는 완전 촌닭이었다. 지하철 입구를 찾고 있는데 웬 동양인이 내게 말을 걸어 왔고 일본어였다.
내가 일본 사람 아니라고 하자 그는 사과를 하고 떠났다. 영국에서 듣는 스미마셍이란 일본어가 생소했다.
런던 시내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는데 그가 서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열 량이 넘을 지하철 승강장에서 그를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을 위해 접촉했던 4개국 중 내가 가장 조건이 안 좋은 영국에 가게 된 것도 첫날 그 사람을 만난 것도 다 운명이다.
지하철 안에서 인사를 나눴고 나의 서툰 중학교 영어를 그는 용케 알아 들었다.
그가 8년 전에 영국에 왔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취업을 위해 아내와 딸을 두고 혈혈단신 영국에 온 한국인임을 알았다.
헤어지면서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자기도 8년 전에 혼자 영국에 왔다면서 힘을 내라고 했다.
이튿날 새 직장에 가서 인사를 하고 머물 집을 구하려는데 막막했다. 임시 선불폰을 개통하고 나서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귀찮을 법도 하련만 그는 자기 일처럼 나서 아주 저렴한 방을 구해 줬다. 그가 살고 있는 런던 북쪽 지역이었고 내가 입주한 집 주인도 일본인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그로부터 생활 적응 정보뿐 아니라 여러 도움을 받았다.
함께 사는 일본인들은 행여 내가 불편할까 늘 배려를 했고 가끔 그의 아내가 들러 안부를 묻고 가곤 했다.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운 일본인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점점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나중 내가 한국에 있는 아내와 딸을 데려 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할 때도 그의 도움이 컸고 가끔 우리는 부부 동반으로 모이곤 했다.
아내들끼리 더 친해져서 친구가 되었고 딸과 아내가 영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영국에 적응이 될 무렵, 나는 취업비자 연장이 거절되어 추방 위기에 처했는데 이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긴 법정 싸움 끝에 승소를 했다.
이때 일본인 친구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몇 년 후에 일본으로 돌아 갔고 우리는 가끔 전화나 이메일로 소통을 했다.
내가 영국 시민권을 반납하고 한국으로 돌아 온 해에 그는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전에도 몇 번 한국을 온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해마다 한국을 방문한다.
내가 친일파이기에 앞서 그는 나보다 더한 친한파인 셈이다.
나는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 그리고 독도 문제 등 일본과의 역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와 나는 한 번도 이런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없다. 애써 피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친일파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부정적이지만 나의 친일은 그런 방향이 아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분쟁도 이웃끼리 일어나듯이 국가도 그렇다. 꼭 한일 관계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가 이웃 국가끼리 갈등과 분쟁을 겪는다.
내 가족의 평화를 위해 이웃집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우선이듯이 나는 국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당연 일본 관광청 통계로 한국인 관광객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는 일본인 친구를 알기 전부터 일본을 여러 번 방문했다. 일본 문학, 일본 영화 등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문화도 무난히 받아 들이는 편이다.
역사를 잊지는 않되 나의 친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내 일본인 친구의 한국 사랑도 계속될 테고,,
첫댓글 막막한 해외에서 첫운명 같은 일본인 을
만났기에 빠른 안정을 찿을수 있었을것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어려운일이 있지요
길가에 내몰릴 정도로 극한 상황에 얼마나
심정이 착찹 했을까요
친일파 라고 제목이 있길래 긴장 했는데
해피엔딩의 글 ..^^
유현덕 님
역시나 입니다^^
♡♡♡
ㅎ 당시 너무 막막할 때의 제 심정을 리즈향님께서 알아 주시네요.
누구 인생인들 굴곡이 없겠습니까만은 쫄딱 망했던 그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작 가고 싶었던 나라는 못 가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나라가 영국이었는데 나중 보니 그게 행운이었네요. 제가 운명론을 믿게 된 결정적인 계기지요.
제가 말하는 친일은 일본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뜻이 가장 크답니다.ㅎ
어느 나라던 배타적인 국수주의자가 일할 정도는 있기 마련이고 구할의 평민들은 사람간의 정을 인륜으로 여기며 사는듯 합니다
개인이 겪은 인과를 두고 그나라 국민성어 어쩌니 더쩌니 하는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지요
직장생활 할때 만난 바이어들중 일인들 메너가 최고였습니다 꼭 필요한 요점은 철저히 다루지만 그렇지않은 부분은 너그럽기까지 합니다
한번 맺은 관계는 특별한일 없는한 의리 지키구요
아웃나라이기에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한것이고 애증이 교차되는것이지요
하지만 그들과의 국가적 관계는 양반입니다
내륙을 국경으로 하고있는 나라들 보십시오 유럽이든 중앙 아시아든 바람잘날 없습니다
일본? 그정도면 참 괜찮은 이웃이고 서로 배울점 많은 사촌입니디
함박산님의 댓글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한 만큼 일본에도 한국을 벌레 보듯 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우리 아파트에서도 모든 주민이 이웃끼리 잘 지내는 것은 아니더라구요.ㅎ
영국에 살 때 느낀 건데 아일랜드가 바라보는 영국인도 한일 관계 못지 않게 앙금이 깊습디다. 같은 국가로 묶인 스코틀랜드도 잉글랜드 사람을 싫어하지요.
한일처럼 바다를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를 업신여기며 조롱하기도 하데요.
지구촌 시대에 국제 교류가 많아지면서 국익을 위해서라도 나라끼리 불필요한 분쟁은 피하는 것이 좋겠지요.
과거를 무조건 없던 것으로 치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고 가자는 뜻입니다. 함박산님의 솔직한 댓글이 참 좋습니다.
댓글이란 이래야 하거늘,,ㅎ
그래요~과거에 매몰돼
현재를 부정하기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유지하는게
국익을 위해 바람직한 처사임에도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전근대적이고 몰이성적 사고는 사라져야!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그들의 배려 국민성은 배워 마땅하지요..
모렌도 선배님이야 매사 긍정적이고 순한 양처럼 사시니 누구하고 분쟁 겪을 일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그런 마음이니 국가관 또한 이웃끼리 가능한 친하게 지내자는 생각이겠지요.
저도 일본인과 한집에서 살아본 결과 그들의 배려심을 배우고 싶었답니다. 제가 친일파가 된 것도 그들과 한집에서 살고 나서입니다.ㅎ
일본에서
거의 5년을
살아봤어요..
미국 시민권자 로서
파견 근무 였지요.
도쿄에서 전철로
한시간
정도 거리였어요.
운전 하면 시내
에선밀려서
한국같이 시간에
따라 밀리고요.
메너 공손하고
참좋치요.
히로시마 폭파로
항복 했기 때문에
더구나 미국 사람
이나 영어를 하면
더 공손 합니다.
물건살때
게이진(외국인)
하면 쏘데스까?
하고...
강고꾸진. 하면
왠지 눈을 내리깔고는....묵묵무답.
이건 제경험 인데
거기 사는 교포들도
같은말을 하더군요.
아주 친절 해요!!
ㅎㅎㅎ
이상하게 우린
IMF. 시절에
미국회사 주식이
대박이 나고
거기서 수입이
몇배나 올라서
미국에 집사놓고
거의 값고 들어 왔어요.
타이밍이 좋았고,
무시당하거나
싫었던 기억은
없어요 .
그럼 됀거죠..
영국 의 체류기
감명깊게
읽고 감사 합니다!
아하~ 수샨님께서 일본에서 5년을 사셨군요.
5년이면 웬만한 성품 파악은 충분히 하셨을 겁니다. 며칠 관광으로 가서 본 것과 직접 생활하면서 겪은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일본을 여러 번 갔는데 갈 때마다 나쁜 인상을 받진 않았네요. 제가 한국인임을 아는데도 어찌나 친절한지 감동 먹을 때가 자주 있었지요.
백인 우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가 봅니다.ㅎ
저는 영국에서 15년 넘게 살았지만 차별 같은 거 크게 느낀 적이 없었답니다.
내가 너무 드세서 그랬을까요?ㅎ
그렇군요.
인간이란 동물이 우주에 달랑 지구혼자에 있다보니
넘 고독해서 땅에 선긋고 니땅내땅 했다는데
그게 싫어서 영국 유명가수의 이매진에서
지구땅은 지구인이 누구든지 맘대로 다닐 수 있다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설파도 했을까 싶으니...
저역시도 개인적으론 그냥 지구인이다라고 생각하며
인위적 선긋는 국경의 국가론은 별로 라는 생각이 드는
나름의 자유인인가 싶기도요, 하하
고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미국인이든 다 똑같은
지구땅 밟고있는 지구인이니 함께 교류하며 나름대로
각자 자기터전에서 열심히 생활하며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청소년부터 지금까지 그리 imagine하는가 봅니다.
유현덕님과 자유인이라는 생각이 비스무리 한 것 같아
기분 좋게 얼릉 2번째로 추천(推薦) 드립니다., ^&^
와우~ 폭넓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삼족오님의 진정성 가득한 댓글입니다. 세계를 누비는 자유인다운 생각이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좁은 한국땅에서도 서로 고향을 묻고 따지는 사람이 있지만 일찍 고향을 떠난 저는 밥벌이 하며 사는 곳을 바로 고향이라 여기며 살았답니다.
제가 영국에 살 때는 영국을 고향이라 여겼고 지금은 서울을 고향이라 여기며 살지요.
일제시대에 살길을 찾아 만주로 떠났던 한국인의 남부여대를 기억합니다. 초근목피 시절 멕시코와 하와이로 떠났던 이민 행렬은 또 어떻구요.
그 땅에 살던 본토인들이 받아 줬기 때문에 한국인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쓰다 보니 댓글이 엉뚱한 곳으로 흘렀네요. 그만큼 지구인의 교류를 말씀하시는 삼족오님 의견에 공감을 했단 뜻이겠지요.ㅎ
모쪼록 건강하시길요.
좋은 글입니다
자신의 올바른 주관이 돋보입니다.
짧지만 명료한 리디아님 댓글이네요.
제가 주관이 올바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겠다는 끈기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답니다.ㅎ
평온한 밤 되세요.
(제목을 보고 댓글을 안 쓸수가 없어서..)
저희 족보에..이름만 들면 다아는 친일파 할아버지가 있습니다..한일합방후 일 황실의 은사금도 엄청 받았다지요..
그러나 저희집안 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았는지..저희 집안은..그 옛날 엄청 가난해..밥을 엄청 굶었다 하네요..
1924년생 저희 부친은 일제시대 덕수상고를 나와 일본인 회사 경성지사(소공동)에 근무했고 군대도 일본 본토로 갔다 했습니다..
그리고..그 일본인 지사장님하고 관계는 80년대 후반까지 이루어 졌습니다..매년 연하장 및 관광방문차..
일본 사람들은 한번 신뢰를 하면 끝까지 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통치를 받은 조선에서 불가피하게 친일과 엮이는 일도 있었을 겁니다.
해방 후에 제대로 청산을 못한 것도 다 우리 탓이기에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번질 수 있어서 저의 역사 언급은 여기서 그칠랍니다.
아프리카 우간다, 남미의 과테말라가 우리와 아무런 갈등 관계가 없는 것처럼 붙어 있는 국가끼리 분쟁이 생기지요.
한일 관계 역사를 하나 하나 들추면서 파고 들어 가면 끝이 없습니다. 저도 울분이 생길 때가 많거든요.
정치냐 친선이냐를 고르라면 저는 친선을 선택하겠습니다. 아마 내 일본인 친구도 그리 생각할 겁니다.ㅎ
수려한 댓글 속.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 다 들어 있네요.
아직 일본 땅과, 일본인을 개인적으로
접해 본 적이 없는 지라 딱히 덧붙일 이야기는 없습니다.
유현덕님의 솔직한 고백에 엄지 척
커쇼님이 하고 싶은 말을 제가 대신했다니 다행이네요.ㅎ
친일파라는 단어 자체가 예민한 것이지만 제가 경험한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것뿐입니다.
한국인의 친일은 나쁘고 일본인의 친한만 좋다고 하면 일본과 우리는 영원히 냉랭한 관계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무조건 일본을 찬양한다로 비칠까 염려되지만 오랜 기간 일본인들을 겪어 보니 좋은 사람 많았습니다.
정치색만 걷어 내면 다 같은 지구인일 뿐입니다.
근데, 개인의 친분관계가 아닌 국가간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인거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또 스포츠 경기서도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깝고도 먼나라가 바로 일본이지요..
이정도만..ㅎ
남동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국가 간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또한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경력이 친일파들이었을 테고 가장 공격하기 좋은 상대도 친일파였습니다.
내 어릴 적 고향에서 8.15 기념 배구대회가 열렸는데 각 마을 별로 출전하는 대회였지요.
우리 마을과 옆 마을이 결승에서 붙어 승부가 났는데 그날 양쪽 마을 청년들끼리 패싸움이 일어나 불을 지른다 어쩐다 대단했답니다.
그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봄이 되면 서로 도우며 농사를 지었지요. 개천도, 저수지 물도 함께 써야 하니 논에 물을 댈려면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농사 힘들거든요.
이듬해 배구 대회에서 만나면 또 서로 잡아 먹을듯이 피터지게 막 싸우고,,ㅎㅎ
이것으로 답글 대신합니다.ㅎ
일본ᆢ
좋은점은 본받아야겠지요
코로나전 딸 아이와 열흘정도
일본여행했는데 도심은 물론
시골에도 골목들이 깨끗하고
친절해서 참 인상깊었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둥근해님께서도 일본을 가 보셨군요.
영국에 살 때 일본인과 공동 주방을 쓴 적이 있는데 그들이 사용하고 난 후에 싱크대며 식탁이며 어찌나 마무리가 깔끔한지 반짝반짝하데요.
나중에 이용할 사람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절로 느껴졌답니다.
역사적으로 미운 것은 미운 거고, 둥근해님 말씀처럼 배울 것은 배워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요.ㅎ
네 세계는 한 세상입니다.
넵!
자연이다님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ㅎ
일본
저 개인적으로 감사한 나라입니다.
여행 ,특히 자유여행시 일본 말을 전혀 못 하지만
영어 단어 몇개로도 어렵지 않게 안내도 잘
받았거든요.
버스와 지하철이 우리나라와 다르기에
곳곳에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쿠루즈 여행도 ,할로윈 데이도
일본 현지에서 맞이했었는데 외국인들과
함께 미국이나 유럽 못지 않게 잘
챙겨주셨어요.
예전에는 나리타 공항을 거쳐 캐나다를 가야했기에
곳곳의 공항도 낯설지 않아서 좋습니다.
현덕님 글 속의 나라들이 저도
낯설지 않네요.
제가 시간이 없어 잠시 다녀가다보니
댓글에 집중하지 못해
글의 맥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횡설수설 합니다.
헤알님께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저도 오래전 일본 자유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보름 정도씩 머물다 오곤 했습니다. 지갑이 가벼운 터라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그들의 친절은 대단하데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 한장 들고 갔는데 그들은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가 버스 갈아타는 곳까지 데려다 준 적도 있었답니다.
일본이 일찍 서구화 되어 우리와는 정서가 다른 점도 있으나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민족이 한국과 일본 아닐까요.
헤알님이 제 글 맥을 잘못 짚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저나 헤알님의 결론은 일본인한테도 배워야 할 좋은 점이 있더라 이거니까요.ㅎ
@유현덕 빙고 ㅡ🤗🤗🤗
현덕님께서 답댓글에 쓰신 결론은ㅎ
제가 이 대답을 냉큼하지 못하고
먼길 돌아와보니 현덕님께서 답을 주셨네요
춥습니다 .따습고 안전하신 일상 되세요.
어느나라도 주변국들과의 갈등은 존재하죠
영광도 있으면 상처도 있는 역사죠
정말 과거에 몰입되지말고
오늘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음 좋겠네요
일본이미지는 저에게도 아주 좋은이미지로 있어요
정치는 그들이 풀어가고
우리 개개인은 배울건 배우고
앞으로 앞으로
일어 재능기부 다녀온 날이라 더욱 훅 와 닿네요
눈이 폭설수준입니다ㅠ
내일 엄청 미끄러울것 같으니
우리 모두 조심하입시다
정아님께서 일어 재능 기부를 할 정도면 일본에 대한 이해가 아주 높겠습니다.
저도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비교적 좋은 편인데 누가 주입시켜서가 아닌 제가 몸으로 겪고 생긴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참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밉다고 아예 상종 안 하고는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옛날 이웃보다 더 좋다는 보장이 없듯이 국가도 사람 관계처럼 현재 처한 상황에 맞춰 잘 헤쳐나가야 하지 싶네요.
서울에도 오후부터 눈이 내려서 퇴근 길이 북새통이네요. 내일 새벽에는 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안전문자도 방금 왔습니다.ㅎ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ㅎ
정아님도 평화로운 밤 되세요.
굳이 다른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일본을,
아니 일본 여자를 좋아했었답니다
음~~
왜냐므~은~~
보편적으로 예쁘니까
그리고 그녀는 아주 예뻤으니까
근데 그녀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서울 여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아깝게도 처가를 일본에 두고 싶은 꿈은 사라졌답니다 ㅎ
ㅎㅎ 아주 유쾌한 댓글입니다.
각시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국가든 사람이든 다 좋아하는 이유는 있게 마련이겠지요.
일본 좋아한다고 하면 무조건 친일파로 몰아 붙이는 사람도 있는데 예전엔 일본 여성과의 결혼은 아주 대단한 결정이었을 테지요.
예비백수님, 지금 아내와 알콩달콩 잘 사시면서 옛 아쉬움은 잊으시길요.ㅎ
주위에 지인들 일본하면 엄청싫어하고 쪽바리 하면서열변을 토하지요
저는 뭐 그냥
시대도 변했구 별감정 없어요
부산에서 배타고
대마도 한번 여행했구요
딸아이들은 일본
가끔씩 여행가더라구요
친절하고 질서도
잘지키고 깨끗하고 배울점
많다고 그러네요
제 주변에도 무조건 일본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저는 그러려니 하지요.
일본 사람이라고 다 좋은 것만도 아닐 테지만 쪽바리라고 우리가 혐오하면 일본인은 우리를 무슨 말로 혐오를 할까요. 혐오는 혐오를 낳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쪽바리니, 짱깨니, 하는 단어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랜 외국 생활에서 터득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누구든 밖에 나가면 외국인이고 지구촌 시대에 소통하지 않고는 국가도 살아 남지 못합니다.
문선이님, 고운밤 되시길요.
ㅋ
글 제목이 조금 와일드? 하네요
요즘의 친일은.....
familiar 또는 친근한 익숙한 맘에 드는
과는 많이 다르고 틀리고 차이 나겠지요.
출장 자주 가 봐도
다른 거는 딱 하나
거리 골목 이 왜 이리 깔꼼하지 ?
아하~ 향적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제목 밖에는 붙일 게 없더라구요. 저는 제목을 먼저 정해야만 글이 써지는데 저 제목 적고 나니 손가락이 오토바이 타는 것마냥 부르릉,,ㅎ
안중근 선생을 존경하는 제가 설마 과거 친일파를 찬양하겠는지요. 향적님 말씀처럼 저의 친일은 familiar를 말하는 거였답니다.
제 의중을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친일 친한 다 좋지요 국민이 무슨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 간 이해 관계에 얽힐 것도 아닌 우리들이 여행가고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게 뭐라고 하면 안되지요
한국사를 배우는 입장이지만
과거는 과거 인데 과거를 거울 삼아
내 나라에 대한 사랑과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 버린 그들의 애국심도
항상 가슴에 비밀 주머니처럼 숨겨 둬야 겠지요
사람은 가고 없어도 역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운선님 댓글에 동의합니다.ㅎ
친한파 일본인들과 오래 어울리다보니 저도 저절로 친일파가 되었습니다.
요즘 일본 사회는 K 컬쳐 열풍이 불어 일본 젊은이들이 한식을 즐겨 먹고 한국 문화를 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입니다.
동남아 여행을 해 보면 그곳 사람들이 한국 제품 최고다. 일본을 이미 넘어섰다 등, 이런 말 자주 듣습니다. 일본한테 꿀릴 거 하나도 없지요.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사람들의 일생을 가슴에 새기며 사는 것도 맞습니다.
그들 또한 이미 독립한 나라에서 일본과 등돌리고 철천지 원수처럼 대립만 하면서 살기를 원치 않을 겁니다.
날이 많이 춥네요. 건강 관리 잘 하시길요.
요즘도 어디파가 어디있나요.. 늘 건강 하세요
요즘도 파를 가르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외고집파보다는 협력파가 좋겠지요.ㅎ
밝은빛님도 건강하시길요.
타인이나 타국에게도 배울건 배워야한다는...
언제 현덕아우의 삶을 다시 들어봐야겠네~
공장에서의 진한 삶의 추억만 알고 있었는데
일본과 영국까지 ? 글로벌 인재이구만~ ㅎ
ㅎ 그동안 적토마 형이 본게 바로 제 모습이기에 다시 들어봐도 뭐 특별한 것이 나올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직 살아 남기 위해 참 별짓을 다하면서 살았다는 것 빼고는,,
실패한 자의 궁색한 변명 같긴 하지만 부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사람답게 살겟다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빈깡통일지라도,,
어쨌거나 나는 나다.ㅎ
@유현덕
우리네 인생은 아직 진행형이니 이번에 다시
깡통을 사게되면 꽉 채우면서 튼튼한 울트라
마징가제트 스텐 깡통을 구입하자고라~ 앗싸
저도 일본을 두지릿수 이상 가 보았는데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남을 속이지 않는 나라더라고요!
선조시대 남의 나라를 먹으려 하는 군국주의가 나쁜 것이지 현재의 젊은이는한국의 젊은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아직도 옛날 교육을 대대로 이어받아 사상이 변치않는 일부 일본 위정자들도 한 몫 있지만요!
송지학님이 제대로 보셨습니다.
일본을 여러 번 가셨다니 어쩌면 지학님의 경험이 저보다 정확할 겁니다.
저의 얕은 경험으로 봐도 일본에서 물건을 살 때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 받은 적이 없거든요.
하다 못해 시장통 난전에서도 참 정직한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보지 않을 지나가는 나그네 손님한테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국민성이 있습니다.
친절과 배려는 아무리 작은 거라도 언어를 뛰어 넘는 만국공통어이자 그 나라를 인식하게 만드는 문패이자 입장권이기도 합니다.
후쿠시마 해일이 있은 후로
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 땅이 좋고 여기 사람들이 좋다 ~ 라고요
지금도 가끔 일어나는 재해로 말없이 뭉치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감동을 하고
마시는 공기도 물도 맛있고 일본이 좋습니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과거 역사 들먹거리며 게거품 물며
애국자 행세하는 사람들 보면 개무시 합니다
저처럼 유현덕님도 역마살이 ㅋ
수많은 역경과 풍파를 헤쳐 나오신 유현덕님
그래서 지금 평온하게 잘 살고 계시는지도요
아~ 그러고 보니 가리나무님은 일본에 계시는 분이지요. 재난재해를 당하면 난국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랍니다.ㅎ
어쩌면 일본이 재해가 자주 일어나는 나라여서 그런 위기 극복 습관이 잘 단련되어 있지 십네요.
세계 어디든 혐오론자들이 있듯이 일본에도 한국인을 혐오하며 상종 못할 인간 취급하는 사람들 있더라도 그러려니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래 살았던 영국의 차량 진행 방향과 일본이 같아서 저한테는 길거리가 익숙하데요.ㅎ
역마살도 닮았다니 반갑네요.
살은 음식으로 조절 가능한데 이 역마살은 빼기가 힘들어 수위 조절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답니다.
가리나무님의 평화로운 일본 생활을 기원합니다.
글쓰기를 이렇게 기술적으로 잘 표현하셨군요!
잘읽었습니다
2025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길요!
과거의 친일과는 다른 저만의 방식으로 친일파를 표현해 봤습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평화를 사랑하면서 공존하는 방식입니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지만 이렇게 하니 저한테도 더 이득이더라구요.ㅎ
썬시티님도 항상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