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외갓집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었다.
그리고 수 십 년이 흐른 후~
고향 다녀오던 길에 그 추억을
더듬거리며 들른 고래등 같던
기와집 앞에 서서 바라보니집은 세월의 흔적을 빼고 나면
그대로인데 크기가 예전과 달리
그렇게 작아 보일 수 없다.
당황스럽다.
모처럼 들른 고향에서 바라본
것들이 모두 작아져 있다.
드넓던 학교 운동장도~
까마득하게 보이던 미루나무도~
짝이 두릅밭 가는 오솔길이
지저분하다 해 요즘 주변을
정리해 새로운 정원을 만드는
중이다.
소나무가 밀식되어 있고
사철나무와 도토리나무가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자라고 있어
엔진톱으로 잘라내는 일이 엄청
힘들고 위험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 보람도 크다.
어이 김사장~
뭐 하시는가? 하며 서울에서
사업으로 성공했다고 소문이 난
분이 찾아오셨다.
시골생활이 그렇다.
해야 할 일들이 아무리 많아도
누군가가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하는 얘기를 끝까지
들어줘야 그 사람 참 좋더라~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 사장님~
나 어릴 적 이 산이 진달래 먹고
다람쥐 잡고 숨바꼭질하던
최고의 놀이터였는데~
지금 보니 딱히 산이랄 것도
없는 나지막한 동산이더라고~
그때는 이 산이 왜 그렇게 높고
커 보였는지~ 허허~
그러게요~
나도 고향에 가보면 사장님과
똑같은 것을 느낍니다.
12인치 TV를 보면서~
180리터짜리 냉장고를 사놓고
채울 거리가 없어 음료수만 잔뜩
넣어 놓고 흐뭇 해 하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70인치
TV를 봐도~
900리터가 넘는 냉장고 두고도
부족하고 적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칠십에 들어선 두 남자들의
수다는 아득히도 먼 기억 속에
남겨진 것들을 하나 둘 꺼내며
모처럼 이야기가 통함에
작은 희열을 느낀다. 세상은 가만있는데 우리만
변한 줄 모른 체~~~~~~!!!
첫댓글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날이 춥습니다.감기 조심하세요.
어릴 적엔 내가 작으니 세상이 모두 크게 보여 경이로웠고공포스러웠고 위대하다 숭배했었는데 세월따라 내가 크다고 여기는 즈음엔 왜 모든 게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지 나는 큰 게 아니고 마음만 큰 채로 있고 육신은 어릴 적 보다 나날이 더 오그라져 가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어릴 적 품었던 경이로움 위대함 희망에 매달려 있나 봐요 그래서 왜 이렇게 작아졌능가 왜 이렇게 보잘 것 없는가 하는 말들 하지요 다들 그렇게 여기나 봐요
추억을 꺼내는 날들이 잦아지는것 보니 늙어가는구나 싶습니다.생각은 늘 그자리에 머무는데~내가 살고있는 집이 작은 동산이라서 이렇듯 찾아와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상은 무섭게 변했는데,나이든 노인들은 적응하질 못하나봅니다.
바쁘게 가는 도시에서 살다 100년을 넘긴 집들이 수두룩한 시골에 살다보면 간혹 햇갈립니다.동내입구 서낭당도 당상나무도 그렇고 100년을 넘긴 미류나무와 팽나무 귀목나무들까지 그대로인데 우리만 늙어가는구나 싶습니다.그래도 느리고 변함없는 시골이 좋은것 보니 촌놈이 체질인가 봅니다.
워낙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고향 동네(50호 정도)는 기와집은 한 채도 없었고 한학(공자님 말씀)을 배우던 정자만이 기와지붕이었었죠.국민핵교, 면사무소, 우체국, 지서, 등이 있던 면소재지에 나와야 닐리리기와집을 구경하곤 했던 촌뜨기가 나였지요.국민핵교 1~2학년까지만 해도 천안에서 우리 고향 수신면까지(면소재지) 오가는 버스가 있었는데버스 한 번 못 타 본 나는 버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는데셋째 누나가 천안시 외곽의 한 동네에서 방앗간(정미소)을 하는 남자(매형)한테 시집 가는 바람에국민핵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누나네 집에 놀러 가느라 당시 고등학생이던 형이 나를 데리고 가느냐고버스라는 걸 처음 타 보았지요. 지금도 선산이 고향에 있어 1년에 벌초, 시제 때, 그리고 큰누님(작고) 큰아들이 고향당에서 멜론 농사를 짓기에멜론이 출하되는 5월말이나 6월초에 두세번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면소재지를 지나면서 초등학교 건물(직금은 새로진 건물이라 삐까뻔쩍)이 눈에 들어오면내가 국민핵교 5학년 2학기까지 꿈을 키우던 곳이라 생소하지만 반갑기는 하더라구요.
내가 사는 동내에 분교인데도 100년을 넘긴 초등학교가 있습니다.한 때는 1000명을 오가는 학생들이 다녔다는데 지금은 열명 안팍으로 줄어 모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그나마 대부분이 다국적 자녀들입니다.바로 옆 동내 북일초등학교는 언젠가 방송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등학교 교정 5개교를 선정했는데 그 중 하나에 선정되어 면 주민들이 나서 학교살리기에 나선 결과 지금은 폐교위기에서 벗어나 모두가 뿌듯하게 여깁니다.댓글 감사합니다.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에 가 있는듯 합니다잔손이 많이 가는 정원도 손수 가꾸시니대단 하세요 저도 외딴곳 에서 방음벽 없는곳 에서피아노 건반을 실컷 두드리고 싶은 소망을 아직버리질 못했네요 그부분은 아직도 남편과 타협이 안되더라구요부럽네요 ^^♡♡♡~*
외딴곳 방음벽 없는 곳.그 마음 충분하게 동의합니다.오래전 우리 학원 뒷집에서 민원이 계속 들어와 아이들이 맘 놓고 피아노 치는 그런 학원을 꿈꾸다 디지털피아노가 생기면서 좋아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막바지 추위가 기승입니다.감기 조심하십시오.
너무많이 변하는 세상사 변함에 속도가빨라지네요
그래도 제이정님은 한국과 미국을 번갈아 다니며 지내시니 얼마나 좋으십니까?늘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향은 산처럼 변하지 않고 묵묵히 지키고 있다.그러나고향 주변의 모든 것은 은 변하고 변질 되어 가고 있다,세월 또한 어디로 가는지 자꾸만 가고 있다.
그러게요.변함이 있어야 발전한다는데 나만 뒤쳐진것 같아 참 거시기합니다.그래도 자꾸 가는 세월을 쫒아 오늘도 달립니다.
귀농하신 곳이 외갓댁이신가봐요.낯선 타향도 아니고참 좋은 곳으로 오셨네요.저희 손녀도 외할아버지 휴계자를 꿈꾸고 있는데요.어제도 촌장님 화이트정원에 새 흰손님이 방문했나요?
아닙니다.내가 고향방문때의 얘기를 쓴겁니다.청풍명월~제천에 딸과 사위가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있어 늘 반가움으로 남습니다.해남에는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베리꽃님 건강하시고 나중 꼭 뵙기를 기대합니다.
첫댓글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날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어릴 적엔 내가 작으니 세상이 모두 크게 보여 경이로웠고
공포스러웠고 위대하다 숭배했었는데
세월따라 내가 크다고 여기는 즈음엔
왜 모든 게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지
나는 큰 게 아니고 마음만 큰 채로 있고
육신은 어릴 적 보다 나날이 더 오그라져 가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어릴 적 품었던 경이로움 위대함 희망에
매달려 있나 봐요 그래서 왜 이렇게 작아졌능가
왜 이렇게 보잘 것 없는가 하는 말들 하지요
다들 그렇게 여기나 봐요
추억을 꺼내는 날들이 잦아지는것 보니 늙어가는구나 싶습니다.
생각은 늘 그자리에 머무는데~
내가 살고있는 집이 작은 동산이라서 이렇듯 찾아와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상은 무섭게 변했는데,
나이든 노인들은 적응하질 못하나봅니다.
바쁘게 가는 도시에서 살다 100년을 넘긴 집들이 수두룩한 시골에 살다보면 간혹 햇갈립니다.
동내입구 서낭당도 당상나무도 그렇고 100년을 넘긴 미류나무와 팽나무 귀목나무들까지 그대로인데 우리만 늙어가는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느리고 변함없는 시골이 좋은것 보니 촌놈이 체질인가 봅니다.
워낙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고향 동네(50호 정도)는 기와집은 한 채도 없었고 한학(공자님 말씀)을 배우던 정자만이 기와지붕이었었죠.
국민핵교, 면사무소, 우체국, 지서, 등이 있던 면소재지에 나와야 닐리리기와집을 구경하곤 했던 촌뜨기가 나였지요.
국민핵교 1~2학년까지만 해도 천안에서 우리 고향 수신면까지(면소재지) 오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 한 번 못 타 본 나는 버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는데
셋째 누나가 천안시 외곽의 한 동네에서 방앗간(정미소)을 하는 남자(매형)한테 시집 가는 바람에
국민핵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누나네 집에 놀러 가느라 당시 고등학생이던 형이 나를 데리고 가느냐고
버스라는 걸 처음 타 보았지요.
지금도 선산이 고향에 있어 1년에 벌초, 시제 때, 그리고 큰누님(작고) 큰아들이 고향당에서 멜론 농사를 짓기에
멜론이 출하되는 5월말이나 6월초에 두세번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면소재지를 지나면서 초등학교 건물(직금은 새로진 건물이라 삐까뻔쩍)이 눈에 들어오면
내가 국민핵교 5학년 2학기까지 꿈을 키우던 곳이라 생소하지만 반갑기는 하더라구요.
내가 사는 동내에 분교인데도 100년을 넘긴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한 때는 1000명을 오가는 학생들이 다녔다는데 지금은 열명 안팍으로 줄어 모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대부분이 다국적 자녀들입니다.
바로 옆 동내 북일초등학교는 언젠가 방송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등학교 교정 5개교를 선정했는데 그 중 하나에 선정되어 면 주민들이 나서 학교살리기에 나선 결과 지금은 폐교위기에서 벗어나 모두가 뿌듯하게 여깁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에 가 있는듯 합니다
잔손이 많이 가는 정원도 손수 가꾸시니
대단 하세요
저도 외딴곳 에서 방음벽 없는곳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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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질 못했네요
그부분은 아직도 남편과 타협이 안되더라구요
부럽네요 ^^
♡♡♡~*
외딴곳 방음벽 없는 곳.
그 마음 충분하게 동의합니다.
오래전 우리 학원 뒷집에서 민원이 계속 들어와 아이들이 맘 놓고 피아노 치는 그런 학원을 꿈꾸다 디지털피아노가 생기면서 좋아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막바지 추위가 기승입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너무
많이 변하는 세상사 변함에 속도가
빨라지네요
그래도 제이정님은 한국과 미국을 번갈아 다니며 지내시니 얼마나 좋으십니까?
늘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향은 산처럼 변하지 않고 묵묵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고향 주변의 모든 것은 은 변하고 변질 되어 가고 있다,
세월 또한 어디로 가는지 자꾸만 가고 있다.
그러게요.
변함이 있어야 발전한다는데 나만 뒤쳐진것 같아 참 거시기합니다.
그래도 자꾸 가는 세월을 쫒아 오늘도 달립니다.
귀농하신 곳이 외갓댁이신가봐요.
낯선 타향도 아니고
참 좋은 곳으로 오셨네요.
저희 손녀도 외할아버지 휴계자를 꿈꾸고 있는데요.
어제도 촌장님 화이트정원에 새 흰손님이 방문했나요?
아닙니다.
내가 고향방문때의 얘기를 쓴겁니다.
청풍명월~
제천에 딸과 사위가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있어 늘 반가움으로 남습니다.
해남에는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베리꽃님 건강하시고 나중 꼭 뵙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