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특활 시간엔 주산반 들어라! 주산을 잘 놓아야지 은행에 들어 갈 수가 있단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 부모님들은 안정된 직장 즉 공무원이나 은행 선생님 이라는 직업을 선망하셨다
. 농사일 대신 양복 입고 출퇴근하며 월급 받고 보장된 생활 한다는 것이 하루하루 힘들게 농사일을 하며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살아가던 이들에겐 얼만 부러웠으랴! 월사금 걱정도 안하고, 6.25 전쟁을 통해 살아남긴 했으나
배고픔과 가난이라는 험한 길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에 인내심의 한계를 오가며
물자 부족이라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만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어쩜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특활시간의 주산반은 인산 인해였다.
재미없는 더하기 빼기가 무어 그리 좋은지 그렇게 많이 모여와 좀 늦게 가면 자리에 앉지도 못하였으니.
주산 몇 단 따면 상급학교 그러니깐 2대째 대통령을 배출한 상고에 특기생으로 장학금 받고 들어간다기에
몰려 올 수밖에. 손가락 놀음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까짓 것 암산으로 다 되는 것을
(두세 단위였으므로 당시의 내 머리로는 암산이 가능했다)
힘들게 손가락 운동 안하고도 먼 산 바라보고 있다가도
선생님의 질문에는 정답이 바로 나왔기에 벌은 면할 수가 있었다.
몇 번 가 보았지만 도무지 나에겐 적성이 맞지 않아
어느 날 슬며시 뒤로 빠져나와 달걀귀신이 나온다고 다들 기피하는
문예반 교실 한 구석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3학년이었고 지도하시는 선생님은 4학년을 담임하는 선생님으로 기억을 한다.
“여러분. 시는 함축된 언어의 예술입니다. 글 솜씨의 꽃과도 같습니다.
영롱한 꽃망울과도 같은 시라는 형식에 여러분의 생각과 글을 함축된 언어로 표현해 보세요!”
그 가슴이 찡하고도 내 몸을 전기에 감전시킨 초롱초롱하고 예쁜 여선생님의 모습과
이 한마디가 나를 뿅(?)가게 만들어 버렸다.
한참을 카운터 펀치에 맞은 듯 하던 나는 드디어 “꿈” 이라는 제목으로
노트 한 장 쭉 찟어서 나의 꿈을 토해내기 시작 하였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내용인즉, 꿈은 우리를 취하게도 만들고,
미래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게도 만드는 신기루지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우리는 지금 어떤 꿈도 꿀 수가 있고,
현실로도 만들 수가 있는,
어떤 꽃도 피울 수가 있는 꿈 덩어리라는 내용을 몽당연필로 단숨에 써 내려갔다.
마치 화가가 연필 하나로 스케치 하듯이. 전부 연필만 입에 대고 빨고 있었는데
(옛날의 연필은 딱딱하고 잘 써지지 않아서 침을 묻혀야 굵게 잘 써졌음)
나는 이미 한 장을 마무리 하여 놓고 먼 산을 바라보며,
과연 이 꿈 덩이가 무엇이 될꼬?
하며, 미래를 정말 꿈꾸고 있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화장품 내음이 내 코를 자극한다.
직감적으로 여선생님이 내 뒤에 오신 것을 알아챘다.
내 뒤에 성큼 다가온 선생님은 내 찟긴 노트를 낚아채더니 앞으로 천천히 걸어 가셨다.
이거 큰일 났구나. 문예반도 아닌 녀석이 남의 반에 왔지,
원고지 공책도 안가지고 와서 연습장 한 장 찢어 가지고 낙서처럼 썼지,
몇 방 얻어터지거나 개망신 당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있었다.
고개 푹 쑤셔 박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앞으로 나오라는 게 아닌가?
불려나간 나는 무릎은 헤져서 다른 천을 덛대어 꽤맨 허름한 바지에,
꾀죄죄한 모습의, 산으로 들로 새 알 꺼내고(뜸부기나 꿩, 새) 참새 잡으러,
물고기 잡으러 뛰어 다니던 시골 깜둥이 장난꾸러기가 아닌가!
혼나는 것을 각오한 나에게 전혀 의외의 모습이 펼쳐진다.
60 여명의 학생들 즉 4, 5, 6 학년의 선배들이 가득한데
3학년인 나를 앞에 내세워 쓴 시를 낭독하게 하였다.
몰래 왔다고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 나는
안도의 맘으로, 그러나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시선 때문에,
거기다가 우리 동네 분홍색 원피스 입은 곱상한 상급생 누나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읽어 나가기 시작 하였다.
조용하다 못해 교실 바닥을 지나가는 쥐새끼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들리는 듯 하였다.
“여러분! 바로 이겁니다. 시는 이렇게 써야 합니다.”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버렸고 별명은 어느새 “글쟁이”가 되어 있었다.
비록 옷 한두 벌로 1년을 버티어야 했고,
윗옷은 대물림하는 헌 옷만을 입고 지내야 하였던 어린 시절의 가난함은 불편함과 창피함으로 뒤섞여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성적만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였기에 무시의 대상은 면 할 수가 있었다.
반장 선거에도 몇 번 당선이 되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이 더 재미나고,
부모들이 가끔은 찾아와 선생님들 식사대접 하여야 하는 일이 부담스러워,
아니 혼날까봐 사퇴했던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글은 한이 맺혀야 좋은 창이 나온다는 판소리처럼 응어리를 풀어낼 만큼의 매력이 있는 장르임에 틀림이 없다.
한해가 더 가고 5학년이 된 어버이날 전교생이 참가하는 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진 어머니에 대한 글짓기 대회에서
“전교 최우수상”을 받는 날이 오게 되었다. 거짓 없이 있는 현실 그대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우리집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대로 글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부지런하지만 순진하여 사기 잘 당하고 돈을 자주 떼이는 아버지와, 이러한 모습에 바가지 긁고,
욕심쟁이 였던 우리 어머니가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며,
4남매를 키우는 힘든 모습을 나의 입장에서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가정내의 갈등과, 사람 사는 인간미가 가득한 내면세계를 11살짜리 소년의 모습에서 조명해 본 결과었다.
6학년 상급생을 제치고 5학년이 최우수 상을 받았다!
그때 문예반을 지도했던 선생님은 1년 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참교육.
참 스승이 많았던 시절에 우리는 그래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촌지 없이도 학교에서 떳떳했던 시절에 미술, 실과, 서예, 준비물 못 챙겨가도
동지가 많아 약간의 벌로 때우는 것에 이골이 난 우리는 지금 돌이켜 보면 이야기 거리가 많으니 말이다.
그 후 철이 들어가면서 어느새 내가 쓰는 글은 체면을 생각하게 되었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으로 어느새 잘 도색된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해져 갔다.
이내 순수함을 상실한 모습에 실망한 나는 스스로 글쓰기를 접고야 말았다.
가난은 창피 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터득하였다.
진실성이 결여된 과대 포장 되거나 미화된 글은 폄하되기 마련이고 어딘가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 희망을 북돋우어 주고 재능을 개발해 주는 선생님들이 오늘 우리의 교단에 많았으면 좋겠다.
* 저는 어려의 꿈을 실현하여 45년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정상에서 아주오래 머물렀고 지난해 다 내려놓고 이제 쉬는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일이 많아 까페에 자주 방문하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자주 들어오겠습니다.
꿈은.
만질 수도 없는 것 잡을 수도 없는 것 낮에도 나타나고 밤에도 나타나고 친구하려 다가가면 도망가고 눈감으면 나타나고 잊으려면 찾아와 힘도 주고 감동도 주는 꿈아!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
제가 처음 쓴 "꿈"이라는 시입니다.
첫댓글 아 좋아요. 어릴적 꿈.
이제 후반에 왕창 핍니다.
고맙습니다. 지난해 퇴직 후에 정말 편안하고 좋습니다.
이제서야 제 맘대로 가고싶던 저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쓰는 글은 친구와 이웃과 대하 하는 듯 쓰시면 됩니다
이웃과 소통이 잘되는 사이처럼 이곳에서는 모두가 편해집니다
독수리닉이 혹시 폴리스? 였나요 ㅎㅎ 그냥 죄송합니다
자주 들려 주셔서 글을 사이에 두고 재미있게 놀아 봐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요.
장구한 글 보다가 그만 중단 하였습니다.
인터넷 특성상 간결하게 나누는 것도 독자를 위한 것입니다.
책 한 페지 정도가 좋다고 자는 생각합니다.
바쁜시간에 잠시 글을 읽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글을 길게 쓴다고 무슨 문제 될 것이 있나요?
제한을 두면 좋지 않다고 봅니다.
바쁘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큰독수리 악플이 아니면 무플 보다는 좋습니다.^^
독수리님 안녕하세요
저도 시골 국민학교때 한반에 80여명 이었지요 콩나물교실 ᆢ
특활시간 ᆢ 산수시간에 주산도 배우고
글읽다보니 그시절이 떠올려져 피식웃음이 났어예
독수리님께는
아주 고마운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어린시절부터 글솜씨가
뛰어나신듯 합니다
재능을 타고나신듯
꿈이란 시
몇번읽어봅니다
와 대단하세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삶방에서 자주 글뵙길 희망합니다
차가운 날씨ᆢ 따습게 보내시길요
고맙습니다. 같은 시대를 사셨군요. 힘들게 살았지만 정직하게 살았더랬지요. 지금은 풍요로운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 그시절을 음미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참으로 오랫만에 삶방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길어서 지루하다고 댓글달았는데요 저 역시 너무 긴글은 읽다가 중간에서 탈출합니다 허나 제 경우에 이글은 아닙니다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발굴한 글쟁이 답게 잘쓰신 글입니다 부산상고는 저의 둘째형과 자형이 나왔습니다 두분다 재수해서 들어가서 56회입니다
그학교가 과거에 주산 잘 놓으면 입학시켜주기도 했군요 그학교가 나오는거 보니 부산경남분이신걸로 추정됩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안봤습니다 글 자주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산수는 계산기가 다 해결해 주더라구요.
복잡한 수학과 알고리즘은 AI가 해결해 주구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잘하고, 준비하고, 적극 밀고 나가는 것!
강한 추진력이 성공의 지름길 이더라구요.
45년의 직장생활 마치고 자서전 쓰고 있구요.
그동안 경험했던 나만의 노하우를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남기려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