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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7:25
참 신앙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종종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의 선생이나 성인으로 오해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진리 자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가 가진 프레임에 가두지 말고, 참된 진리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공주야! 익숙함이 바른 앎을 방해할 때가 있다. 너무 잘 안다고 하는 안이함이 관계의 위기를 초래하거나 신앙의 정체를 야기한다. 따라서 늘 대상을 낯설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True faith begins with knowing exactly who Jesus is. People often misunderstand Jesus as a teacher or saint from Nazareth, but he is the truth itself from God. We should also believe in the truth, not keep Jesus in the frame we have. Princess! There are times when familiarity interferes with correct knowing. The ease of knowing too well leads to a crisis in relationships or identity of faith. Therefore, it is always necessary to view objects unfamilia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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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바른 앎과 믿음이 우리를 온전한 관계로 이끌어준다. 너무 익숙하여 경외심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예수가 드러내놓고 말해도 유대인들이 제지하지 못하자 혹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는 유대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아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예수의 출신지는 다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메사아일 리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참 출신지는 갈릴 리가 아니라 하늘이다.
Better knowledge and faith lead us to a full relationship. Have you been so accustomed to losing your awe? There are Jews who question whether Jesus was recognized as the Messiah when the Jews were unable to restrain him even if he spoke openly. However, they argue that he cannot be a Mesa because although they do not know where the Messiah comes from, Jesus' place of origin is known. Jesus' true place is heaven, not 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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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예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자신들의 제한된 정보가 말해주는 예수가 그에 관한 전부 라는 전제하에 내려진 것들이다. 진리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겸손을 낳고 경청으로 이어진다. 예수의 소속은 유대인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곳이 아니다. 진정한 예수의 유래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이며, 그곳은 유대인들은 모르지만 예수님만은 아시는 곳이다. 그분은 유대인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요셉의 아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The public evaluation of Jesus in our time was also made on the premise that Jesus was all about him, which their limited information tells us. A serious attitude toward the truth leads to humility and listening. Jesus's affiliation is not a place where all Jews think they know. The true origin of Jesus is the sky where the Father of God is, and that is a place that the Jews do not know, but only Jesus knows. This is because he is not only the son of Joseph, but the son of God, contrary to what the Jews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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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스스로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서 하시는 중이다. 유대인들이 이 말에 격분하여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실패한다. 그것은 아직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실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어디서 오셨는지도 모르지만,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유대인들이 찾아도 찾을 수 없고, 오려고 해도 올 수가 없는 곳이다. 예수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실 것을 말씀 하시는데, 유대인들이 이것을 알 리 없다.
Jesus did not start his ministry on his own, but he is doing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sender. The Jews were outraged by these words and tried to catch Jesus, but they failed. That is because it is not yet the time of God to hand over Jesus to them. The Jews do not know where Jesus came from, but they do not know where he is going. It is a place where Jews cannot find it even if they try to come. Jesus says that he will ascend to heaven by God assisted mail after death and resurrection, but the Jews cannot know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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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예수가 여느 유대인들처럼 헬라인들 중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가서 사역할 것이라는 뜻으로 짐작한다.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예수가 하시는 모든 말들을 땅에 속한 그들의 지식에 따라서만 이해하게 될 것이니 오해는 불가피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올바르게 고백하고 있는가? 나는 성경의 확인 없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양하게 나타나는가?
They assume that Jesus, like any Jew, will go and serve the diaspora Jews scattered among the Hellans. Misunderstanding was inevitable because all Jesus said would only be understood according to their knowledge in the earth until they knew the identity of Messiah Jesus, the son of God in heaven. Are our beliefs correctly confessing to Jesus? Didn't I teach the truth without confirmation of the Bible? How do people's reactions to Jesus appear in various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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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25-27)
a.드러내 놓고 예루살렘을 거니시는 예수님:25-26
b.예수님의 기원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27
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28-31)
a.유대인들의 반대에 대한 예수님이 반응:28-29
b.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30-31
예수님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32-36)
a.예수님을 잡으려는 유대 지도자들:32-34
b.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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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사람 중에서(25a)
혹이 말하되(25b)
이는(25b)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25c)
그 사람이 아니냐(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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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드러나게 말하되(26a)
저희가 아무 말도(26b)
아니하는 도다(26c)
당국자들은(26d)
이 사람을(26e)
참으로 그리스도인줄(26f)
알았는가(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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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27a)
이 사람이(27b)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27c)
그리스도께서(27d)
오실 때에는(27e)
어디서 오시는지(27f)
아는 자가 없으리라(27g)
하는지라(2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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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28a)
성전에서 가르치시며(28b)
외쳐 가라사대(28c)
너희가 나를 알고(28d)
내가 어디서 온 것도(28e)
알거니와(28f)
내가 스스로(28g)
온 것이 아니로라(28h)
나를 보내신 이는(28I)
참이시니(28j)
너희는(28k)
그를 알지 못하나(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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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노니(29a)
이는 내가(29b)
그에게서 났고(29c)
그가 나를(29d)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2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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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예수를(30a)
잡고자 하나(30b)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30c)
이는(30d)
그의 때가(30e)
아직 이르지(30f)
아니하였음 이러라(3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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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31a)
예수를 믿고 말하되(31b)
그리스도께서(31c)
오실 찌라도(31d)
그 행하실 표적이(31e)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31f)
더 많으랴 하니(3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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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 대하여(32a)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32b)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32c)
대제사장들과(32d)
바리새인들이(32e)
그를 잡으려고(32f)
하속들을 보내니(3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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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33a)
내가 너희와 함께(33b)
조금 더 있다가(33c)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33d)
돌아가겠노라(3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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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찾아도(34a)
만나지 못할 터이요(34b)
나 있는 곳에(34c)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3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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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유대인들이(35a)
서로 묻되(35b)
이 사람이(35c)
어디로 가기에(35d)
우리가 저를(35e)
만나지 못 하리요(35f)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35g)
자들에게로 가서(35h)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3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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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도(36a)
만나지 못할 터이요(36b)
나 있는 곳에 (36c)
오지도 못하리라 한(36d)
이 말이(36e)
무슨 말이냐 하니라(3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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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부정하는 메시아 예수_
Jesus the Messiah that Jews deny
유대인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_
Jesus, son of God that Jews don't know
유대인들이 만날 수 없는 예수님의 승천_
Jesus' ascension that Jews can't m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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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때가 되기까지 울 주님을 보호하셨던 손길이 그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믿기 때문에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주님의 자태를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말씀 안에서 보여주시는 주님을 깊이 알아 친밀한 사랑으로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Praise the Lord who came from God. Let us learn the appearance of the Lord who knows how to wait for the time because we believe that the touch that protected our Lord until the time comes applies equally to the people. May the Lord know deeply about the Lord I show in his words and give glory to the Lord with intimate love.
2026.2.16.mon.Clay
신학 비평//
1)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 — 지식의 오만
요한복음 7:25의 핵심 문장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식의 선언>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이미 이해된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철학적으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가장 큰 오류를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익숙함은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해를 멈추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이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출신: 나사렛-가족: 요셉의 아들-직업: 선생 즉, 예수는 설명 가능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메시아일 리 없다.” 문제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겸손 부족입니다.
2) 익숙함의 역설 — 가까울수록 보지 못한다
이 본문은 신앙의 가장 아이러니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를 가장 모릅니다. 이 현상은 철학에서 익숙함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낯선 것은 관찰하지만 익숙한 것은 해석 없이 통과시킵니다. (부모를 이해했다고 착각/배우자를 이해했다고 착각/하나님을 이해했다고 착각) 이처럼 신앙의 위기는 무지가 아니라 이미 안다”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3) 예수의 선언 —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예수의 반응은 매우 철학적입니다.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이 말은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예수는 “출신”이 아니라 기원(origin)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질문→ 어디서 왔는가? (지리) 예수의 대답→ 누구에게서 왔는가? (존재) 여기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예수는 자기 정체성을 관계(보냄)로 정의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존재론의 핵심입니다. 존재는 스스로 정의되지 않고 보내신 분과의 관계로 정의됩니다.
4)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 시간의 신학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의 핵심 개념인
하나님의 시간(kairos)을 보여줍니다. 철학적으로 인간은 시계 시간(chronos)*속에 살지만 신앙은 의미의 시간(kairos)속에 삽니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행동하지만 하나님은 때가 찰 때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항상 조급함과 싸웁니다.
5) 같은 예수, 다른 반응 — 진리의 분열 효과
본문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1. 부정 2. 믿음 3. 적대 흥미로운 점은 같은 예수를 보고 다른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누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정보가 아니라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6) 현대 신앙의 가장 위험한 상태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현대인은 예수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압니다.(역사적 예수-윤리 교사 예수-종교 창시자 예수-인문학적 예수) 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인가? 이 질문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7) 신앙은 낯설게 보기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던진 문장이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익숙함이 바른 앎을 방해한다.” 신앙의 위기는 죄 이전에 익숙함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익숙해지고-말씀은 익숙해지고-예수는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경외가 사라집니다. 신앙은 새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다시 놀라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아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를 계속 새롭게 알아가는 것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예수’는 실제 예수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든 익숙한 이미지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