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신 부모님 집= 요양병원]
이 등식은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급속한 공업화와 산업화로 대가족제도가 무너져 서구적인 핵가족화사회가 돼버린 공업국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국가적인 문제.
자식사랑이 유난한 한국의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주거나 빼앗기고 이제는 요양병원 침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평생동안 아부지와 함께 뼈 빠지게 농사를 지으시며 많은 자식들을 길러낸 우리 엄니는 자식들을 전부 객지로 보낸 후에 홀로 되신 후 노구를 이끌고 힘든 시골생활을 하시다 급기야 육신이 망가져 조선대병원에서 대수술을 거친 후에 연세가 88세가 되신 현재 동두천 소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하셔서 오직 자식들만 바라보고 계신다.
시골에 계실 때 어찌어찌하여 손에 쥐신 천여만원의 예금을 나에게 주지 못해 안달하신 것을 본 나는,
"엄니, 그 돈은 엄니 병치료를 위해 꼭 가지고 계시시요. 우리들에게 폐를 안끼친다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품삯일을 하시는 등 절대 힘든 일도 마시고 집에서 편하게 계시요. 우리들은 젊으니 그 돈 없어도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요. 자식들이 급전이 필요하다며 달라고 해도 꼭 꼭 숨겨놓고 절대 주지 마시요잉? 형이 달라고 해도 말이요..."
"그래, 알겄다.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잘 살아라."
하지만 얼마 후에 동생이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며 엄니의 통장에 든 돈을 전부 가져가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아이고~ 엄니. 왜 그렇게 사시요. 그 돈은 마지막 남은 엄니 피요, 피!"
"00이가 돈이 필요하단디 안주면 쓰겄냐? 그 놈 결혼식 때 한푼도 못보태 줬는디..."
"엄니............................"
그런 일이 생긴 얼마 후 엄니는 국민의료보험이 있더라도 병원비가 천만원이 넘는 대수술을 해야 했다.
물론 부자가 아닌 우리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부담하여 치룬 당연한 자식의 도리지만, 배움도, 지혜도, 삶의 요령도 없으셔서 부모로써의 기본적인 자존적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결국 남은 여생을 자식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동두천에 있는 성지요양병원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 엄니는 우리 자식들이 민망해 할 정도로 병과 죽음에 대해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하고 두려워 하신다.
늙고 병들면 누구나 겪는 병고와 죽음...
옆 침대의 전주가 고향이며 엄니보다 세살 연상이신, 비록 여위었으나 아직도 눈에 총기가 살아계신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엄니에 비해 너무나도 크게 대비된다.
"세상 모든 생명은 늙으면 반드시 죽는 거여. 죽음이 왜 무서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데. 오래 살아서 자식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지만 죽을 땐 반드시 죽어야 하는 법이여...."
죽음을 걱정하는 엄니를 보고 너무나도 당당히 웃으며 말씀하시는 모습에 나는 존경심과 더불어 부러움까지 들었다.
(저 할머니가 우리 엄니였더라면 우리 자식들이 오래도록 맘고생을 안했을 것인데... -,.-)
"걸어 들어갔다가 죽어서 나오는 요양병원에 나는 절대 갈 수 없다"고 아이처럼 앙탈(?)부리시던 우리 엄니...
건장한 자식이 있더라도, 다들 팍팍한 도시생활을 하기에 현실적으로 곁에서 봉양하는 자식이 없는 우리 엄니와 같은 그런 부모들이 고용된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는 그 요양병원에는 많이 계신다.
물론 사회구조상 요양병원 생활은 피할 수 없는 우리 노후의 모습이 될 것이지만, 휠체어나 침대생활을 하기 이전까지는 옛 어른들처럼 지팡이를 짚더라도 두 발로 걸어다니며 취미생활이나 공원산책을 즐기는 그런 건강한 노년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무자식 인생을 사는 산중의 스님들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사는지 소개를 해 본다.
언젠가 나는 채식을 하며 평생을 공부(수도정진)하는 산중의 스님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독특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죽는 법을 들은 일 있다.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는 뜻)...!
만물이 생동하는 따스한 어느 봄날, 90이 넘은 노스님이 어느날 시자스님(어른스님들을 옆에서 받들어 모시는 스님) 몰래 지팡이를 짚고 뒷산으로 향했다.
바람소리, 솔소리, 새소리만 들려오는 적막한 산 속 깊이 들어간 스님은 지팡이를 옆에 두고 바위에 기대어 푹신한 낙엽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되어도 노스님은 가부좌를 한 채 꼼짝을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스님 몸에 구더기가 끓자 각종 산새들이 날아들었다. 배고픈 중생들을 위한 너무나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지막 몸보시다.
어느덧 낙엽지는 가을이 되었다. 마치 죽음을 축복이라도 하는 듯 수목에서 떨어지는 단풍과 낙엽이 유골로 변한 노스님의 머리와 어깨 무릎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한 나뭇꾼이 그 옆을 지나치다 소스라치게 놀라 절간에 있는 스님에게 알리자 시자스님이 스님들과 함께 찾아와 합장하며 지게에 냄새까지 사라진 유골을 지고 내려와 예를 갖춰 다비식을 치룬 후 그 사리(뼛가루)를 둥그렇고 아담한 부도(浮屠: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에 안치하며 경건히 합장했다.
(아래 사진은 광명스님이 찍으신 작품임)
첫댓글 좀 섬뜩하지만 저는 이 말(노스님)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부족한 중생에 불과하기에 평생 수양을 쌓은 스님 흉내야 낼 수 없지만, 이런 자연스런 모습이 대자유를 갈구하는 자연인의 본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스런 죽음... 방법은 다양하겠지요.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았더라도, 사랑하는 님의 손을 잡고 만면에 웃음을 짓고 죽는다면 그 인생은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
글을 맛깔나게 잘쓰시네요.
어머니가 삶과 죽음에서 편안해 지셨음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안되니 우리 자식들이 아직도 맘고생 하는 것이지요.
우리 엄니를 봐서라도 삶을 달관할 경지에 들어야 비로소 어른이란 소리를 듣지 않나 여깁니다.
노스님같은 경우는 제가 소설을 썼지만, 이게 사실인지 아직도 의구심이 생깁니다.
신비로 가득한 아름다우실 오로라님의 실재 모습... 저는 아직도 궁금궁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