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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7:37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영혼의 갈증을 채우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새 생명을 누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을 경험합니다.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그분 말씀을 마시는 자입니다. 선입견이나 제한된 이해로 진리를 가로막고 있지 않는가? 자유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심리, 종교적으로 각기 다르게 정의됩니다. 물론 기독교에서 자유란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Through the Holy Spirit, Jesus thirsts the soul. When Christians progress toward Jesus, they enjoy new life and experience the joy the world cannot give them. A believer is a person who looks at Jesus in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 and drinks his words. Isn't prejudice or limited understanding blocking the truth? Freedom has a wide spectrum. Political, social, economic, psychological, and religious definitions are different. Of course, freedom in Christianity refers to freedom from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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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부터의 자유는 매우 근원적이어서 다른 분야에서 언급되는 자유를 가능케 합니다. 이 자유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곧 구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의 비전과 인간의 비전을 반비례 관계로 조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듯이 우선되면, 인간의 뜻은 감춰지고, 이에 비해 인간의 뜻이 앞서면, 하나님의 뜻이 빛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바로 이 순간에 인간은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말합니다.
Freedom from sin is so fundamental that it enables the freedom mentioned in other fields. How do we obtain this freedom? This question is also a matter of salvation. Oswald Chambers highlighted the vision of God and the vision of man in an inverse relationship. If it comes first, like God, the will of man is hidden, and if the will of man is ahead, the will of God loses its light. Chambers says that at this very moment, man becomes a slave of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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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살고자 했지만, 오히려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죄에 빠지는 아이러니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단지 진리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의지와 실천까지 포함합니다. 진리는 우리가 알아야 할 대상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자신을 관철시킵니다.(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5,토기장이)
Freedom from sin is so fundamental that it enables the freedom mentioned in other fields. How do we obtain this freedom? This question is also a matter of salvation. Oswald Chambers highlighted the vision of God and the vision of man in an inverse relationship. If it comes first, like God, the will of man is hidden, and if the will of man is ahead, the will of God loses its light. Chambers says that at this very moment, man becomes a slave of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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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초막절에 실로 암에서 물을 길어 성전 제단 서편에 붓는 의식을 거행한다. 광야에서 반석을 갈라 물을 공급하셨던 은혜를 기념하는 의식이다. 주님은 초막절 마지막 날, 생수의 공급을 약속하시며 풍성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은혜의 초청에 어떻게 응답할까? 예수는 자신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는 자신이 죽고 부활한 뒤 예수가 보낼 보혜사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자들도 당장 모를 말을 유대인들이 알 리 없었다.
Princess! On the first day of the curtain wall, a ceremony is held to draw water from the thread and pour it on the west side of the temple altar. It is a ceremony to commemorate the grace of dividing rocks and supplying water in the wilderness. On the last day of the first day, the Lord invites us to a rich life, promising to provide bottled water. How will he respond to the invitation of grace? Jesus promises that rivers of bottled water will flow out of the belly of those who believe in him. It referred to the Holy Spirit of Bohye Temple, which Jesus will send after he dies and is resurrected. However, there was no way that the Jews would not know something that even the disciples might not immediately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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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예수를 가리켜 ‘그 선지자’로 이해하기도 하고, 메시아로 주장하기도 하고,그가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메시아임을 부정 하기도 했다. 예수에 대해 정확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가 한 말에 근거하여 지금껏 예수처럼 말한 사람이 없었기에 그를 체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예수에게 미혹되었다고 책망하였지만, 실은 그들은 있는 그대로 예수를 평가한 것이다. 차마 그를 메시아라고는 말 못했지만 메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They referred to Jesus as the 'prophet', claimed him as the Messiah, and denied him because he was from Galilee, not Bethlehem. Although there was no accurate knowledge of Jesus, some said that he could not be arrested because no one had spoken like Jesus so far based on what he said. The Pharisees reproached them for being fascinated by Jesus, but in fact, they evaluated him as he was. They couldn't say he was the Messiah, but they must have thought they had heard something that only the Messiah couldn't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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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 전에 예수에 대해 이 보다 더 근접하여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또 있었을까?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비추어 예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저주하자 니고데모는 예수가 한 말과 그가 행한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것이 율법에 비추어 얼마나 정당한지를 평가하기 전에 섣불리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이는 예수와 예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그의 의도를 드러낸다.
Was there another way to understand Jesus more closely before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When the Pharisees cursed those who were favorable to Jesus in the light of the law, Nigodemo disputes that it is not reasonable to declare a curse prematurely before properly grasping what Jesus said and what he did and how justified it was in the light of the law. He was a man who did not judge people by their appearance, revealing his intention to protect Jesus and those who were favorable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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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밤에 예수를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묻던 자였는데, 이제 점점 빛으로 나아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영적인 목마름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다. 이미 구약성경(욜2장, 슥14;8,겔47:1-5)에서 성전에 넘쳐흐를 것이라던 그 물이 우리 가운데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주어질 것이다. 이제 십자가와 부활을 거치고 승천하여 영광을 받으신 후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풍성하게 영생을 누리게 하실 것이란 약속이다.
He was the one who visited Jesus at night and buried the path of eternal life, and now you can see that it is gradually coming toward light. Jesus will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truly seek God on spiritual thirst. The water, which was already said to overflow the temple in the Old Testament (욜2, 슥14;8, 갤47:15), will be given through Jesus, who came to the temple among us. Now, it is a promise that he will ascend through the cross and resurrection and receive glory, and then let him enjoy eternal life in abundance through another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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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로 그 약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누구든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하고 주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게 하신다. 말씀을 들은 무리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 선지자’로 보는(신18;15)이들,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이들, 예수는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 또 예수를 잡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를 잡고자 했지만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
We are living in that era of promise. Personally, communityally, anyone acknowledges their thirst and makes them live with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and the fruit of the rich Holy Spirit as long as they move forward before the Lord. The reactions of the group who heard the words were different. There were those who saw him as the 'prophet' (God 18;15), those who said 'Christ', those who said Jesus could not be Christ', and those who wanted to catch him. Thus, he tried to catch Jesus, but no one touched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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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는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잡으라고 보낸 하속들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설득 당했습니다. 초초한 것은 쫓기는 예수님이 아니라 쫓는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께 미혹된 이들을 향해 율법을 알지 못하고 저주받을 자라고 악담하지만, 실은 그것이 자신들을 향한 저주라는 것을 몰랐다. 바야흐로 때라는 것이 무르익었던지 주님은 초막절에 죽기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에서 외치셨다.
Ultimately, it was because it was not God's time yet, but in reality, even the subordinates who were sent to catch him were persuaded by Jesus' words. It was not Jesus who was chased, but the Pharisees who chased him. They did not know the law and told those who were deceived by Jesus to be cursed, but they did not know that it was a curse against them. The Lord shouted in Jerusalem, ready to die at the beginning of the curtain wall, as the time was r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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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다들 아는 것처럼 초막절은 출애굽 때 초막을 짓고 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구원을 체험했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다. 이 날 마지막 밤에 실로암 물을 길러다가 제단에 퍼붓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은 출애굽 때에 므리바에서 물을 공급해 주심을 기념하며 올 해 에도 물을 넉넉히 주셔서 풍년을 달라는 일종의 기우제다.
"If anyone is thirsty, come and drink to me. Anyone who believes in me will have a river of bottled water flowing from the ship as the name of the Bible says." As everyone knows, the First Day is a season to commemorate the time when he built a first curtain in Egypt, worshiping God, and experiencing salvation. On the last night of this day, there was a ceremony to raise xyloam water and pour it on the altar, which is a kind of ritual to celebrate the provision of water from Mriba during the time of Exodus and to give him plenty of water this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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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대 축제가 그렇지만 초막절도 과거의 출애굽을 기념하고 동시에 종말에 있을 새 출애굽을 기대하는 것 이었다. 요엘서나 에스겔서에 보면 종말에 하나님께서 물을 퍼주심을 여러 번 언급 했는데 바로 이러한 배경가운데 나온 성령에 관한 언급인 것이다. 근데 지금 그 초막절 의식이 행해지는 날 주님이 바로 그 물을 공급하는 분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막절에 고대하던 물 긷는 행사를 종말에 성령을 퍼 부어 주는 것으로 대치하시겠다는 것이다. 죄를 범한 자는 누구의 종인가? 종이 자유하게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를 상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As with all Jewish festivals, the first curtain wall was also to commemorate the exodus of the past and look forward to a new one at the end. In Joel and Ezekiel, it is the reference to the Holy Spirit that came out of this background that mentioned several times that God would pump water at the end. But now, on the day of the first curtain wall ritual, the Lord is declaring that he is the one who supplies the water. In other words, they will replace the water raising event that they have been looking forward to on the first curtain wall with the pumping of the Holy Spirit to the end. Whose servant is the one who committed the sin? What is the way for the species to be free? What is the assumption of true freedom? Do we enjoy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and the lif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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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37-39)
예수에 대한 일반 유대인들의 두 반응(40-44)
a.긍정적 반응:40
b.부정적 반응:41-42
c.결과:43-44
예수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두 반응(45-52)
a.부정적 반응:45-49
b.니고데모의 긍정 반응:50-51
c.부정적 반응자들의 반박: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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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끝날(37a)
곧 큰 날에(37b)
예수께서(37c)
서서 외쳐 가라사대(37d)
누구든지 목마르거든(37e)
내게로 와서 마시라(3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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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 자는(38a)
성경에 이름과 같이(38b)
그 배에서(38c)
생수의 강이(38d)
흘러나리라 하시니(3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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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39a)
그를 믿는 자의(39b)
받을 성령을 가리켜(39c)
말씀하신 것이라(39d)
(예수께서 아직(39e)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39f)
성령이 아직(39g)
저희에게(39h)
계시지 아니하시더라)(3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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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들은(40a)
무리 중에서(40b)
혹은 이가 참으로(40c)
그 선지자라 하며(4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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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그리스도라 하며(41a)
어떤 이들은(41b)
그리스도가 어찌(41c)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4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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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이르기를(42a)
그리스도는(42b)
다윗의 씨로(42c)
또 다윗의 살던 촌(42d)
베들레헴에서(42e)
나오리라 하지(42f)
아니하였느냐 하며(4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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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인하여(43a)
무리 중에서(43b)
쟁론이 되니(4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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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는(44a)
그를 잡고자 하는(44b)
자들도 있으나(44c)
손을 대는 자가(44d)
없었더라(4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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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속들이(45a)
대제사장들과(45b)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4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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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묻되(45d)
어찌하여 잡아오지(45e)
아니하였느냐(4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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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속들이 대답하되(46a)
그 사람의(46b)
말하는 것처럼(46c)
말한 사람은(46d)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4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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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47a)
대답하되(47b)
너희도 미혹되었느냐(4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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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자들이나(48a)
바리새인 중에(48b)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4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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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알지 못하는(49a)
이 무리는(49b)
저주를 받은 자로다(4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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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한 사람(50a)
곧 전에 예수께 왔던(50b)
니고데모가(50c)
저희에게 말하되(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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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율법은(51a)
사람의 말을 듣고(51b)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51c)
판결하느냐(5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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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25a)
대답하여 가로되(52b)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52c)
상고하여 보라(52d)
갈릴리에서는(52e)
선지자가(52f)
나지 못하느니라(52g)
하였더라(5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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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주시는 예수와 사람들의 오해_
Misunderstanding of Jesus and people who give the Holy Spirit.
예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들_
People who acknowledge Jesus as he is.
예수를 신중하게 두둔하는 니고데모_
Nigodemo, who carefully supports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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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나의 목마름이 교회 가서 성경공부하고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는 육체의 갈증이 아니고 주의 뜻대로 살기 위해 타는 목마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시고 그분을 통해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겠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알량한 신학이 걸림돌이 되어서 삶이 없는 신앙인이 되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 특별히 우리의 교회가 진리를 당당히 변호하는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시며 찾아오는 무리 중에 코드가 다른 사람들도 수용하고 감동시키는 따뜻한 교회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주님, 예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시는 삶을 사셨는데 저희도 주의 말씀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에 목숨을 걸게 하옵소서. 오늘도 내가 주의 다스리심에 순종할 때 영광 받으실 주님을 생각하며 내 목마름이 구원의 촉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ord, let my thirst be not a thirst of a body to go to church and study the Bible, make money, eat well, and live well, but a burning thirst to live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Lord. Thank you for saying that when Jesus is resurrected, another bohisa will come and let the river of bottled water flow through him. Please hold my humble theology in the way so that I do not become a believer without life. Lord, in particular, help our church become a kingdom of God that proudly defends the truth, and help us become a warm church that accepts and impresses others in the crowd. Lord, who came from God, Jesus did not seek his glory but lived a life that revered God, so let us live your words. I will risk my life when you say that if a man keeps my word, he will not die forever. Today, I think of the Lord who will be honored when I obey your rule and pray that my thirst will be a catalyst for salvation.
2026.2.24.tue.Clay
신학 비평//
1) “목마르거든 오라” : 인간 존재의 출발점은 결핍이다
요 7:37은 복음서 전체에서도 가장 <실존적인 선언*>중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는 죄인을 먼저 부르지 않았습니다. 믿는 자를 먼저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목마른 자를 먼저 부릅니다. 이 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목마름 → 접근 → 믿음 → 성령 → 생수의 강 구원의 시작은 도덕이 아니라 결핍의 자각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결핍으로 정의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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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까지 불안하다.” (아우구스티누스 ) "인간 안에는 하나님 모양의 빈 공간이 있다.”(파스칼) 예수는 이 결핍을 죄보다 먼저 다룹니다. 왜냐하면 <죄의 뿌리는 잘못된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2) 자유의 역설: 왜 인간은 자유를 원할수록 노예가 되는가?
당신이 정리한 챔버스의 통찰은 이 본문의 핵심과 정확히 맞닿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려질 때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된다.” 여기서 요 7:37은 자유의 역설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선언 “나는 자유롭게 살겠다.” 성경의 진단 “그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왜 이런 역설이 생길까요? 철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선택지는 둘뿐입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욕망
2. 세계를 향한 욕망 인간이 하나님 없이 자유를 선택하면 욕망 자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만 세속으로 이동합니다.그래서 예수는 자유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서 자유는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의 해방입니다.
3) 성령: “외부의 물”이 “내부의 강”이 되다
예수의 선언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것입니다. 구약 : "하나님이 물을 주신다" 요 7 : 인간 안에서 강이 흐른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변화는 신학적으로 엄청난 전환입니다. 구약의 구원(외부 공급/외부 성전/외부 제사), 신약의 구원(내부 공급/내부 성전/내부 생명) 즉, 하나님은 더 이상 목마름을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목마름의 근원을 바꾸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존재 방식의 변화”입니다.
(외부 의존 존재 → 내부 충만 존재) 그래서 성령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존재론적 재창조>입니다.
4) 초막절: 종교 의식의 종말 선언
이 장면이 초막절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초막절 의식(실로암 물을 길어 제단에 붓는다-광야의 물을 기억한다-미래의 풍년을 기도한다)그런데 예수는 의식의 한복판에서 말합니다. “내가 그 물이다.” 이 말의 의미는 매우 급진적입니다. 예수는 새로운 의식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의식 자체를 끝냅니다. 이것은 종교의 종말 선언입니다.(종교 : 하나님을 향해 올라감 복음 : 하나님이 인간 안으로 내려옴)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분노합니다. 예수는 단순히 새로운 가르침을 말한 것이 아니라 종교 체계를 무력화 했기 때문입니다.
5) 반응의 분열: 진리는 항상 공동체를 나눈다
요 7장의 특징은 “반응의 다양성”입니다. 사람들의 반응 스펙트럼(선지자다-그리스도다-갈릴리 출신이라 아니다-잡아야 한다-잡을 수 없다)이 장면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는 항상 통합보다 분열을 먼저 만든다" 왜냐하면 진리는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이 분열 속에서 등장합니다. 그는 믿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정함을 요구합니다. “사람의 말을 듣고 판결해야 하지 않느냐?” 이것은 믿음의 시작 단계입니다. 빛으로 나아오는 과정입니다.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습니다. 공정함 → 개방성 → 믿음의 순서를 거칩니다.
6) “목마름의 신학”: 왜 하나님은 갈증을 허락하시는가?
이 본문의 가장 깊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목마르게 만드셨는가? 답은 역설적입니다. 목마름은 고통이 아니라 구원의 촉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두 종류의 갈증을 경험합니다. 1. 채워지는 갈증 (세상) 2. 채워지지 않는 갈증 (하나님) 두 번째 갈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즉, 갈증은 저주가 아니라 초청입니다.
7) 자유란 무엇인가?
요 7:37의 자유 정의를 정리하면 이것입니다. a. 세상의 자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b. 복음의 자유→ 목마르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물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물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구원은 개인적 만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은 개인의 위로가 아니라 공동체로 흐르는 생명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갈증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그 갈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신다. 그 순간 인간은 처음으로 자유로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