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 고려대학교 앞 막걸리 촌에 고층 아파트 단지를 건축하겠다며 주민들이 재개발 신청서를 동대문 구청에 냈다고 한다. 그러자 고려대학교 측에선 이를 반대하는 의견서를 동대문구와 서울시에 3차례나 제출했다고 한다. ‘수십 년간 고려대 학생들의 과격시위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고, ‘학교 주변에는 대학 문화에 맞는 타운이 형성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고대측의 반대 이유이다.
주민들 아파트 단지 짓겠다는데 나는 고려대학교 출신이 아니지만 대학시절을 고려대 주변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른바 ‘고대의 막걸리 문화’를 잘 알고 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막걸리는 고대의 상징이었다. 고대생이 즐겨 부른다는 ‘막걸리 찬가’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마셔도 고대답게(혹은 사나이답게) 막걸리를 마시자 /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 /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취하도록 /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함께 마시자 / 고려대학교 막걸리 대학교 …” 오랜 동안 막걸리는 고대의 ‘교주(校酒)’인 샘이었다.
너무도 유명한 일화 한 토막. 어느 날의 고대 앞 ‘이모집’. 고대인들의 영원한 고향인 이모집에 중년의 신사가 들어와 주인을 보고 “오늘 여기 온 후배들 술값 내가 다 냅니다” 그러자 먼저 와있던 또 한 명의 사나이가 “학형은 몇 학번이시오?” “85학번인데요” “난 81학번인데 오늘은 참으시지” 눈물이 날 만큼 정겨운 이런 풍경이 사라질 판이니 재개발을 반대 할만도 하다.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10년 아니면 15년 전 쯤이었을까? 지금은 작고하신 민영규 선생께서 갑자기 동경 유학시절 학교 근처에서 먹었던 카레라이스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갔더니 아직도 그 집이 그대로 있어서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고 한다. 얼핏 사치스러운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 개인에 있어서 옛 추억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동숭동의 서울 문리대도 옛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오감도(烏瞰圖)」의 시인 이상(李箱)이 설계했다는, ‘아까렝가’라 불렀던 붉은 벽돌 강의실도, 학교 앞에서 막걸리 팔던 ‘쌍과부집’도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 대학본부 건물과 마로니에가 있어 아쉬움을 조금 달래주기는 하지만 옛날의 그 정든 교정은 아니다. 졸업 후 먼 훗날 다시 찾은 학교를 정답게 느끼도록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민들 재산권 행사에 사라질 막걸리촌의 추억 그러나 이렇게 마냥 개인적 감상에만 젖어있을 일은 아니다. 고대 앞 주민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대학 문화에 맞는 타운” 운운하며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더구나 고려대학교는 최근 ‘막걸리 대학’의 이미지를 벗고 ‘와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겠다고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는가? 지난 2005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서는 프랑스로부터 와인 2만 병을 주문하여 라벨에 대학 사진을 넣어 교내 판매까지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포도주 개론’이란 강의도 개설했다고 한다. 막걸리 대학에서 와인 대학으로 변신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와인이 고대의 교주(校酒)가 되지 못하리란 보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막걸리 촌의 재개발을 반대하기에는 어딘가 명분이 약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고대와 주민들 중 어느 편에 서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주민들의 재산권도 보장해주고 고려대의 전통도 살리는 길이 있다면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원로(元老)가 된 어느 노교수가 학창시절에 외상술을 마시고 맡겼다는 학생증을 전리품처럼 내걸고 있는 그 막걸리 집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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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쉽기는 하지만 새롭게 들어서는 멋진 빌딩에 와인촌의 새 거리가 조성됨도 바람직 하지 않나요...
나 같으면 '막걸리'를 고집하겠는데 학교 측에서 '와인'을 수입해 새로운 학교 이미로 바꾸겠다는 발상이 속상해! 막걸리를 개발해 와인을 능가하는 술로 개발해서 100년 전통을 이어가면 좋으련만.. 내가 극 보수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