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에서 한때
한강의 찬 바람속에
글/ 만장봉( 김용상)
어머니,그리운 어머니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반세기가 넘었건만
세월이 갈수록 더욱 더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초하루나 보름날에는
꼭 새벽에 정화수에 두손을 모아 비시던
우리 아들 잘 되라고 그 모습이 아련히 떠
오릅니다.
한 평생 가난을 머리에 이시고 그
눈물의 세월을 어이 참아 오셨습니까
45세에 얻은 늦둥이 커나가는 모습이
그렇게 대견하셨습니까?
늦둥이의 외아들 그리고 막내 아들
누나들의 사랑까지도 독차지 하였으나
무능하고 철 없는 젊은 시절에 겨울이면
한강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문풍지를 때리고
가난의 혹한(酷寒)이 가슴을 메이게
하는 시절에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효도 한 번 못한 불효자는
흐르는 눈물, 통한의 그 옛날을
어이 잊을수가 있을까요
이 시는 제가 66년도에 서울로 공부를 하여 보겠다고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다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이 아들 하나를 믿고 시골의 살림을 다 정리하고 올라오셨습니다
저는 사실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형편이 못 되어 부모님이 올라오시니 대학생이 아니라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부양 의무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도시로 생활을 하게 된 셈이지요 .마포구 도화동 산8번지 산꼭대기에 허름한
전세방에 기거를 하게 되었으며 마포 꼭대기의 산동네의 겨울의 추위는 이루 말 할 수가 없이
추었고 ,나는 직장다운 직업도 없어서 , 그 때 인천교육대에서 초등학교 선생이 부족하여
어머니는 병환속에 인천교육대 단기 교육생을 모집하여 ,그 추위에 어머니는 병환이 나시고
나는 인천교육대의 치열한 시험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공부를
하여 ,이제는 직업다운 직장을 가지고 부모님들을 부양할 생각을 하니 세상이 이제는 살것
같았으나, 어머니는 병원 한 번 가보지를 못하고 그 이듬해 이른 봄철에 저 세상으로 떠나
셨습니다 .내 인생에 가난의 혹한속에 당한 내 설음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삶에 제일 가슴아펐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이 학교 선생님이 된다는
소식을 가슴에 안아 드렸습니다 .나의 위에 있는 시(詩)는 그러한 나의 가슴 아펐던 사연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댓글 이 글은 농경 사회를 떠나 서울이라는 도시 사회에서 산 꼭대기의 가난한 삶을 살았던 과도기의
어려운 우리들의 삶을 이어가면서 서울생활에 적응을 하여가는 이야기이며 부모님에게 자식다운
대접을 하지 못하였던 가슴아픈 사연의 글입니다
저도 엄마가 그립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ㅠㅠ
눈물이 납니다..
주옥같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선생님..
독감조심 하세요^^
감사합니다
주옥 같은 글이라니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여 노후에 문학공부를 하여 정성껏 써 볼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6십년대에서 오늘날의 산업화를 거쳐 도시화가 이루기까지 그 배경에는 부모님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 만큼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이룩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 을 찿아 보고 있습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님 처럼
전통문학 처럼 제 눈에는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다빈1 아이구 어이 우리한국의 대문호 박경리 선생님하고 ...ㅎㅎ
그냥 저는 정년후에 노후에 소일거리로 문학을 즐겹기도 하고 힘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어머님이 초교6학년 가을
도토리주워오시고는
쓰러지셨습니다.
나중에보니 중풍
그렇게 고생하시다
고교1년때
아들셋을 남겨두고
떠나셨어요.
너무. 가난한게 죄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신미주 후배님도 그러한 어머니의 고생으로 일찍 작고 하시여
어머니 않 계신 자녀들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 정말 이해가 감니다
좋은 글을 소중히 간직하셨군요 다시 읽어도 감동입니다
운선 작가님 감사합니다
시 문학 공부를 하면서 지난 나의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에 대한 자식 노릇을 못하여
평생 한 이었습니다. 격려를 하여주시니 글을 쓰는 보람이 큼니다 모두가 방송통신대 교수님과 모든분들의 덕분입니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모두에 공통점같군요
그리운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 성장을 하며 학교 교육을 받고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이 세상을 살아 가는 것 같습니다
아들믿고 서울로 오신 부모님.
부담이 많이 되셨겠어요.
이제 직장을 잡고 효도를 하려고 하니
기다려주지 않으시고 세상을 뜨셨군요.
그 가슴아픔이 전해져 오네요.
지금 수락산은 눈모자를 쓰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베리꽃님 ......자고 날이 새면 수락산.도봉산을 바라보고 6십만 노원구민들과 함께 한세월이
내 인생에 제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그 겨울에도 아이젠을 차고 겨울산행을 즐겨하였는데
내 삶에 제일 많이 오른산이 수락산 같습니다. 아! 수락산이여 .......
중량천에 떠 내려가지 않도록 잘 지켜 주십시요 언어의 창조자님 저 대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