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 인사합니다. “임마누엘!” “마라나타!”
교회 달력으로 오늘이 새해 첫 날입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의 시작입니다. 성탄절까지 네 주간 동안 대림 절기입니다.
라틴어 Adventus(advent, ~에 오다)를 따라, ‘내릴’ 강(降) ‘임할’ 림(臨)을 써서 강림절, 또는 ‘기다릴’ 대(待)를 써서 대강절(待降節) 대림절(待臨節)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한 해를 기다림으로 엽니다. 교회인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뭘 기다리나? 오심을 기다린다! 누가 오나?
1) 아기 예수, 첫 번째 오심, 성육신, 성탄을 기다립니다.
방금 부른 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2) 두 번째 오심, 종말 재림,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립니다.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고전 16:22)
초대교회는 성찬 때 ‘마라나 타’라고 환성을 질렀답니다. “오소서! 우리 주님!” 예수 재림을 재촉하는 환성이지요.
요즘 성찬도 못 나누니, 외치기라도 합시다. “마라나 타!”
외치며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나의 ‘진정’인가?
‘마라나 타’를 외치는 초대교회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2.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입니다. 50년 경
임박한 종말을 살았던 제자들,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겠지, 기대를 품고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그 당시 편지들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릅니다. 기록자의 이름으로 시작, 편지 받는 이들의 이름과 간단한 인사(1절) 후 감사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1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은혜와 평화는 둘 다 하나님의 참 좋은 선물, 저도 바울처럼 빕니다.
바울은 감사의 기도(2-10절)에서, 편지 본론에서 논할 주제들을 미리 언급합니다.
1) 2-5절)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우들과 복음을 나누었던 과정을 2~3장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3절은 고린도전서(13:13)보다 앞서 ‘신망애’가 가장 먼저 언급된 구절입니다.
3절)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4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했다고 믿었습니다. 선민이라 불렀지요. 유대인들이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적용하는 용어였습니다.(사 19:25, 41:8, 44:1)
바울은 이 말을 이방인 회심자를 포함하는 교회에 사용합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이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했다고 믿었으니, 새 이스라엘(엡 1:4, 골 3:12, 살후 2:13)!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원인입니다.
5절)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2:7),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2:11)
2) 6-10절) 환난 속 모범과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태도는 4-5장에서 다시 다룹니다.
6절)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환난’은 행 17장의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끌어다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다.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7절)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지배 아래 있던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는 지금의 그리스와 얼추 겹칩니다. 그리스를 넘어 각처에 울려 퍼진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바울은 극찬 을 합니다. 모범의 내용은 크게 2가지지요.
먼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많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방인들이었고, 그러므로 이교도들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구약의 표현법(렘 10:10 오직 주님만이 참되신 하나님이시요, 주님만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임금이십니다)입니다. 그분은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참되신 분입니다.
다음, 10절)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
이 구절은 예수 재림을 표현한 신앙고백문입니다.
3. 데살로니가전서에는 매 장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2:19)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3:13)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5: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1) 이러한 임박한 종말(그리스도의 재림) 기대 때문에 던져진 질문 2가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죽은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영생,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가?” “언제 그리스도가 다시 올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살전 4:13-5:11입니다.
4:15)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16)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께서 재림할 때까지 자기가 살아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2) 심지어 ‘주님의 날, 재림이 이미 도래했다’는 교인까지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살후 2:2)
4.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기를 바랍니까? 2천 년 전, 바울 때와 똑같기는 어렵지요
말씀 제목은 10절의 한 부분을 따왔습니다. “오시기를 기다리는지”갈망 표현이 ‘아기 예수, 재림 예수 오시기를 기다리기는 하는지?’ 물음으로 바뀌니, 내 마음의 갈망과 욕구를 들여다봅니다.
우리는 말세(末世),‘예수가 탄생한 때부터 재림할 때까지 세상’ 즉, 처음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환난으로 ‘말세’란 말이 실감납니다. 이 환난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1) 예수 재림에 대한 바울의 답은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지금까지와 같이 열심히 일하면서, 희망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라’입니다. ‘신망애’가 언급된 또 다른 구절에서 이를 잘 드러냅니다. 5: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2) 그리고 두 절 밑, 놀라운 표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5: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몇 년 뒤 쓴 빌립보서에는 표현이 조금 바뀝니다. 잘 알려진 구절이지요!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 구원이요 영광이며, 영생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내 마음에 계시니, 내 마음이 하늘이다!”
‘오소서, 성령이여, 사랑의 길로 인도하소서.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오소서.’
죽으나 사나, 지금 여기, 주님과 함께 사는, 저와 여러분, 대림절기이길 바랍니다.
* 성찰질문) 주님께서는 왜 자꾸 오시는지?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립니다.
* 2020년 11월 29일 대림 1주일 예배 말씀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