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1981系列報導,鄧麗君無意與台視續約之始末 May 24, 2010.
1978~1981 연재 보도, 덩리쥔의 TTV(대만 텔레비전)과 재계약을 하고 싶지 않았던 본말
[恒久的溫柔 永遠的巨星 鄧麗君博客] Teresa Teng テレサ・テン
언제까지나 오래도록 부드러운 영원한 큰 별 덩리쥔 Blog
[발췌]☜ 번역 김강현 2010-6-20/
一、文章轉載自你我他電視周刊第018期 1978年2月6日~2月12日 發行
你我他電視周刊(당신,나 그리고 그 사람 텔레비전)주간 018회 1978년2월06~2월12일 발행에서 전재된 문장
[사진1]
1978年鄧麗君像南歸的燕子,在寒冽的深冬,去國多日的鄧麗君,陪著爸爸媽媽,
由寒冷的雪鄉-日本,悄然飛回台灣,逗留短短三日,
在飛機隆隆聲催促下,這隻小燕子又展展翅膀,飛向更溫暖的南方。
1978년 덩리쥔은 남녘으로 날아가는 제비처럼, 매서운 깊은 겨울에, 며칠간 나라를 떠난 덩리쥔이 아빠 엄마를 모시고,
차가운 눈나라 일본에서 말없이 대만으로 날아서 돌아와서, 짧은 사흘만 잠시 머물고는, 부릉릉 소리를 내며
재촉하는 비행기에서, 이 외로운 작은 제비는 또 날개를 쫙 펼치고, 더 따스한 남녘으로 날아갔다.
[사진2]
從十四歲踏上歌壇,十年來,鄧麗君一直像個遠放的風箏,飛飛遙遙遍及天涯,
到處留下可資記憶的爪痕片羽,
可是一根牽著她的線還是在台灣,直到四年前,她在好奇心的驅使下,
和日本一家唱片公司簽下了一紙一年的合約後,她在台灣的時間就太少、太少了。
14살에 가요계에 발을 디딘 이래 십년이 되도록 덩리쥔은 그간 쭉 멀리 날아가 버린 연처럼,
훨훨 멀리 하늘 저 멀리 두루 다녔다. 곳곳에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손톱 흔적, 깃털 조각을 남겼다,
그러나 그녀와 이어지는 한 가닥 끈은 대만에 여전히 있어서, 쭉 4년 전까지 그녀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일본의 한 음반 회사와 1년간의 계약을 하여서, 그녀는 대만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어지게 되었다.
愛穿旗袍的女孩
청나라 전통 여성 원피스(치빠오) 입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
[那時,東南亞我都走遍了,惟獨沒到過日本,他們找我,我想,去日本看看,
趁機學學日文也不錯嘛!]
그때 동남아를 저는 다 두루 다녔으나, 단지 일본만 가보지 못하였고, 그들이 나를 찾았기에
저는 일본을 한 번 가 보려고 갔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일본어를 좀 배워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正面看看挺漂亮的,可是側面不能看。"她自己掩嘴笑了。
"앞에서 보면은 너무나 예쁘지만 옆에서는 볼 수가 없어요" 그녀는 스스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缺乏運動的原因還不是因為忙,她現在是在英國 [寶麗來唱片公司]的基本歌唱,
這家唱片公司是世界上最大的唱片公司之一,
其麾下歌星都是在世界歌壇相當盛名的明星,如 [Bee Gees]、[Donny & Marei] 等都是,
鄧麗君一共替該公司灌錄了十幾張唱片,日文、中文都有,在日本、台灣、東南亞的銷路都非常好。
운동이 부족한 원인은 또한 바빠서가 아니고, 그녀는 지금의 영국 폴라로이드 음반회사에서
전속으로 노래를 하였는데, 이 음반 회사는 세계 최대의 음반회사 중 하나이다.
소속되어 있는 가수는 모두 다 세계 음악계에서 상당히 높은 명성의 스타들로 예를 들면
"Bee Gees", "Donny & Marei" 등이 그들이다. 덩리쥔은 이 회사를 위해서 모두 10여 장의
일본어, 중국어 음반을 취입하였는데, 일본 대만 동남아에서의 판매가 매우 잘 되었다.
日本作法精確可行 台灣可仿效 "日本電視台的歌唱節目,和台灣有哪些不同呢 ?"
일본의 작업은 매우 정밀하고 확실하여서 대만이 본받을 만하였다
"일본 텔레비전의 가요 프로그램은 대만과는 어떤 점들이 같지 않았나요 ?"
日本電視的歌唱節目很少錄影,大都是現場播出,所以他們一分一秒都計算得十分精確,
所以絕不能遲到,更不能拖延,所以他們上節目都好緊張。
일본의 텔레비전의 가요 프로그램은 매우 조금 녹화방송을 합니다.
대부분은 현장에서 방송을 하기에 그들은 일분 일초도 아주 정확하게 계산하여서 절대로 늦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더욱이 지연은 할 수 없기에 그들은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다 매우 긴장을 합니다.
可是任何一個節目,他們在事先一定經過很周詳的計劃、設計,並且把演出者找來參與企劃,
然後花上五、六倍的時間來排練、修改,一直做到每個細節都完美無缺,然後等到正式演出,
才可順利、從容的演出,這種有系統、有計劃的工作態度,和台視仗恃錄影,
就根本不在乎事先的準備是否充份,臨了猛吃NG、到處瞎抓,是絕對不一樣的。
而且日本電視沒有「合約」的限制,所以演藝人員演出即能有較大的發揮餘地。
그러나 어떠한 프로그램이라도 그들은 사전에 언제나 매우 세밀하고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고
아울러 출연자를 기획에 참여 시킵니다. 이런 뒤에 5-6배나 되는 시간을 리허설이나 개선하는데 사용하여서,
오로지 쭉 모든 프로그램을 완전 무결하게 합니다, 이후에 정식 연출을 기다리게 됩니다.
비로소 순조롭고 편안하게 연출이 되어 이런 계통적이고 계획적인 작업 태도는
녹화방송에 의지하는 대만 텔레비전이 근본적으로 사전 준비나 충분한 준비가 없기에 마지막에는 NG가 마구 외쳐지고
곳곳에서 닥치는 대로 행해지는 것과는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텔레비전에는 계약의 제한이 없어서 연예인들 바로 비교적 넓게 연기를 할 여지가 있습니다.
證實華視找過鄧麗君
CTS(중화 텔레비전 방송국)이 덩리쥔을 찾다
談到 [合約],大家不免想起前段日子電視圈盛傳華視曾想動過鄧麗君的念頭,
挖角挖到東京去了,問及這件事,她只淡淡的談到在日本時,
有人請她回國做個節目談到後來才發現對方是華視的人。
계약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은 미리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못했으나 CTS(중화 텔레비전 방송국)은
덩리쥔를 일찍이 생각하여서, 도오쿄로 가서 스카우트하려고 이런 일에 대해 질문하니,
덩리쥔은 그저 담담하게 일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사람이 그녀에게 귀국하여서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이야기 하니 비로소 그 상대가 CTS(중화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인 것을 발견하였다.
"結果妳怎麼說呢?"
"我說我和台視的約今年十二月才滿(1978),我是不可能違約替你們做節目啊!"
"결과적으로 그녀는 무엇이라 말하였나요 ?"
"나와 TTV(대만 텔레비전)의 계약은 올해 12월이 되어야 비로소 만기가 되므로,
나는 당신 등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어요."
"後來呢?"
"後來就沒有人再和我連絡過了。
不過,昨天我看到台視管理組的人曾對他們說
到九、十月的時候,我們就會寄出存證信函給公司。"
"나중에는 요"
"나중에는 나와 연락할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러나 어제 나는 TTV(대만 텔레비전)의 관리팀 사람과 만나서
일찍이 그들에게 9,10월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우리들은 계약문서를 회사에 보낼 것이다."
"說著她自己先嘻嘻笑起來,有人追著問:「真的嗎?"
"哪裡,我是開玩笑的。"
"那麼妳會不會寄存證信函呢?"
她又笑了: "還是要寄的。"
그녀는 스스로 먼저 하하 웃기 시작하여서 어떤 사람이 "정말인가요?" 물었다.
"뭘요, 나는 농담한 것이에요."
"그럼 당신은 계약문서를 맡겨 둘 것인가요?"
그녀는 또 웃으면서 "맡겨 두는 것이 좋겠지요." 라고 말했다.
[사진3]
鄧麗君接受本刊記者王家珠採訪。
不嫁日本郎
덩리쥔은 본지 기자인 왕가주(王家珠)의 탐방을 받아들이다.
일본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는다
鄧麗君說話總帶幾分玩笑口吻,誰也弄不清她說的是真話還是假話,
像談到男朋友的事,她也是一派嘻笑:
"男朋友總是有幾個,可是沒一個真要好的。"
덩리쥔은 말할 때 언제나 농담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느 누구도 그녀가 말하는 것이 진담인지 아니면 농담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의 일을 물으면 그녀도 크게 웃으며;
"남자 친구는 언제나 몇이 있으나 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問她會不會和歐陽菲菲一樣,也嫁個日本人。她笑著說:
"那誰知道呀?緣份到了,誰也擋不住呀!現在我根本不和日本男孩出遊,可是誰知道哪一天碰上了,
那還管是不是日本人呀?
像菲菲以前還不是不喜歡日本人,可是緣份嘛!誰說得準?"
그녀에게 구양비비 처럼 일본인에게 시집을 갈 지를 물었더니 그녀는 웃으며 말하였다;
"어느 누구가 알겠어요? 연분이 닿으면 누구도 막지 못하겠지요!
지금은 제가 애초부터 일본 남자와 사귀지 않아요.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만날 지 누가 알겠어요,"
"그럼 아직은 일본인이든 아니든 관계없나요?"
"비비처럼 이전에는 여전히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연분이란 것을 어느 누가 확실히 알겠어요?"
問她選擇對象的第一條件。
"是漂亮?"
"才不,第一要有錢!"
她一本正經的說,又嗤的笑開; "有錢一切好談。"
"其實," 她想了想還是說了:
"我認為一個人學識最重要,有學識、有見地的人才有出息。"
그녀에게 상대의 첫째 조건을 물었다.
"잘 생긴 건가요?"
"정말로 아니에요, 첫째는 돈이 있어야 해요!"
그녀는 진진하게 말하는데 또 피식하는 듯 웃으며;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좋아요."
"사실은" 그녀는 정말로 말할까 생각을 좀 해 봤어요;
"나는 사람은 학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식나 견해가 있는 사람은 정말로 발전 가능성이 있어요."
"半年沒回來了吧? 為什麼不多留些時日呢?"
"我這次去新加坡舉行演唱會,路過台灣,只能略作逗留。"
"반년 정도 안 돌아왔지요? 어째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나요?"
"저는 이번에 대만을 거쳐서 싱가포르에 콘서트를 하려고 가기에 단지 잠깐 머물 수밖에 없어요."
名家演出 聲勢浩大
유명한 사람이 명성과 기세넘치게 연출하다
平時她都是在日本灌唱片、上電視或作公開演唱,每隔半年,她的經紀人就會安排她到香港、
東南亞等地舉行演唱會,她自己帶樂隊、合聲等共二十餘人,
보통 때 그녀는 늘 일본에서 음반을 녹음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하거나 혹은 공개 콘서트를 하는데
반년씩 걸러서 매번 그녀의 매니저가 홍콩, 동남아 등지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도록 안배를 하여서,
그녀는 스스로 밴드, 음향 등 모두 30여 명을 인솔하였다.
配上當地的小提琴手伴奏,聲勢頗為浩大。
"這一類型的演唱會彷彿國內還沒舉辦過,我有個構想,如果可能,我想在今年八、
九月再回國時能舉行一場這種演唱會,我將把所有的收入全捐給慈善機關。"
雖說只是構想,不過地點已看中了國父紀念館,不只要付諸實行,還是要經過?詳細的策劃。
현지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반주하도록하였는데 음향의 기세가 매우 웅장하였다.
"이 같은 콘서트는 국내에서도 아직 해 보지 못한 것 같아서
저는 만일 가능하다면 금년 8,9월에 다시 귀국할 때에 이런 스타일의 콘서트를 할 수 있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저는 장차 모든 수익을 모두 자선 기관에 기탁할 거예요."
비록 단지 구상이었지만 그러나 장소는 이미 국부기념관으로 점찍었다.
뿐만 아니라 실행을 하려고 하였고, 또한 진행하고자 상세한 계획을 하였다.
[사진4]
1978年鄧麗君在日本接受採訪時的照片,桌上擺著一款高貴的 Louis Vuitton 手提包。
"充份的計劃,先做了再說吧。"
1978년 덩리쥔의 일본 탐방 당시의 사진으로 탁자 위에 명품 루이뷔통 핸드백이 놓여 있다.
"충분한 계획을 먼저 세우고 나중에 말해요."
這是鄧麗君一向的作事方法,可是這次回台北的時間實在太短,[大螢幕]的製作單位不願再失之交臂。
(本來 "今是公司",也曾將鄧麗君列為台北總主持人或東京方面主持人的候選人,
可是由於鄧麗君太忙而作罷,後來想找鄧麗君上節目,正好遇上鄧麗君到北海道演唱,兩方沒碰頭,)
이것은 덩리쥔이 줄곳 일하는 방법인데, 그러나 이번 대북에 돌아오는 시간은 실제로 너무나 짧아서,
[大螢幕: 대형 스크린]을 만드는 팀이 다시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본래 "今是公司"도 일찍이 덩리쥔을 대북 총 사회자 또는 도오쿄 방면 사회자의 후보자에 속하게 하였으나
덩리쥔은 너무나 바빠서 이를 취소하였다, 나중에 덩리쥔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려고 생각하였으나
마침 우연히 덩리쥔이 홋카이도 콘서트로 가게되어서 양측은 만나지 못했다.)
竟因此傳出鄧麗君有心跳槽,拒上 "大螢幕"的傳說,著實令遠在台北的台視大大擔心了一陣子。
趕緊抓著鄧麗君到新公園、攝影棚錄影、存檔,結果雖然事先未做完全計劃,
還是一口氣錄了七、八條歌曲。"有的是春節的特別節目,有的是給大螢幕存檔用。"
마침내 이로 인하여 덩리쥔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大螢幕:대형 스크린"을
거절한 전설이 실제로 저 멀리에 있는 대북의 대만 텔레비전 방송국을 너무나 한바탕 걱정하여서,
얼른 덩리쥔을 찾아서 새로운 공원으로 가서, 세트장에서 녹화를 하고 파일로 보관하는 등
결과적으로 비록 사전에 완전한 계획을 만들지 못했으나 한숨에 7,8여 곡을 녹화하였다.
"어떤 것은 춘절의 특별 프로그램이고 어떤 것은 대형 스크린의 파일용이었다."
新公園擠滿了爭睹這位玉女歌星和 [嬌嬌], [張琍敏]風采的群眾,
製作單位呼籲了好久,還是沒辦法讓越多圍觀的人後退一點,
想起鄧麗君的一句玩笑話,不禁莞爾: "我還是不要逗留太久,才能讓大家保持新鮮感。"
새로운 공원에 이 아름다운 미녀 가수 스타와 嬌嬌, 張琍敏의 자태를 보려고 앞다투어 군중이 가득찼기에
제작팀은 아주 오래도록 호소하였으나 둘러싼 관객들을 뒤로 조금 물러나게 할 방법이 없었다.
덩리쥔의 우스개 말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나는 아직도 너무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요, 그래야만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어요."
看了以上1978年的文章報導,得知鄧麗君自從到日本發展之後,經過長時間的磨練與洗禮,
長期在日本參與許多節目現場演出,並讚嘆其製作水準,再把時間拉到1981年對照以下報導,
鄧麗君對台灣當前電視台的節目製作方式,無怪乎對台灣節目製作水準頗有抱怨與微詞,
由於日本沒有"合約"的限制,在台灣更無意與台視續約,期望有更大的演出發揮空間。
이상의 1978년 문장 보도를 보고서 덩리쥔은 일본의 발전을 알고 난 뒤에 장기간 연마와 수련을 하여서
일본에서 오래 머물며 수많은 현장 출연을 하였고, 아울러 그 제작 수준에 감탄하였으며,
다시 이하의 보도와 대조하여 1981년까지 시간을 이끌어서 덩리쥔은 대만의 현재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제작 방식과 어쩐지 대만의 프로그램의 제작 수준에 대해서 상당히 원망과 불평이 있었다.
일본에는 계약의 제한이 없어서 대만에서 TTV(대만 텔레비전)방송국과 재계약을 할 마음이 없었고
더욱더 커다란 연출을 발휘할 공간을 기대하였다.
1980年9月4日晚上,台視的[大螢幕]節目播出了,特別赴美國為鄧麗君錄製的特輯,
介紹鄧麗君在美國洛杉磯的家居生活近況,並由鄧麗君在節目中演唱歌曲"陣陣春風柔"。
這一個特輯的播出,揭開了鄧麗君回國的序幕。
1980년 9월4일 밤에 TTV(대만 텔레비전) 방송국의 대형 스크린 프로그램이 방송되었고, 특별히 미국으로
덩리쥔을 위해서 녹화 특집을 하러 갔는데, 덩리쥔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기거 생활 근황을 소개하였고,
아울러 덩리쥔이 프로그램에서 [陣陣春風柔]를 노래하였다.
이 특별 방송에서 덩리쥔의 귀국 서막이 밝혀졌다.
첫댓글제비처럼 연처럼 날아다니다 깃털처럼 머물렀다는 그런 표현도 맘에 닿아와요,,,, ..그때도 일본은 정교함으로 유명했군요... 언젠가 보아도 그러더군요..일본방송은 리허설때 두 발자국 앞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살짝 비키면서 도는 것까지 미리 다 계산에 넣는다구요... 그래서 일본방송의 치밀함을 느꼈는데...등님이 활동하시던 그때도 그랬나보네요.. 그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등님 가까이서 보려던 공원의 인파들...상상이 갑니다..
첫댓글 제비처럼 연처럼 날아다니다 깃털처럼 머물렀다는 그런 표현도 맘에 닿아와요,,,,
..그때도 일본은 정교함으로 유명했군요...
언젠가 보아도 그러더군요..일본방송은 리허설때 두 발자국 앞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살짝 비키면서 도는 것까지 미리 다 계산에 넣는다구요...
그래서 일본방송의 치밀함을 느꼈는데...등님이 활동하시던 그때도 그랬나보네요..
그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등님 가까이서 보려던 공원의 인파들...상상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