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을 싣고 로마까지.
낙타를 이용해 짐을 싣고 떠나는 짐꾼의 역할은 이슬람인들.
시안에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온 지금의 회족은 그때의 이슬람인 후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회回족.
우리는 회족거리에서 사진도 찍고 나는 친구들이
어울린다 꼬드겨서 만 원을 주고 베레모도 샀다.
산더미처럼 쌓여서 먹음직스럽던 음식물들 생각난다
진한 향기만 덜했으면 .
시안에서 로마의 거리가 도데체 얼마더냐,
물물교환의 원조 중국의 상술은 오늘날에까지 이어 내려와
세계곳곳에서 반짝이나니.
이 조각들은 비단길을 출발하는 중국인들과 짐꾼 이슬람인과
말을 타고 동행하는 중국인 관리들을 형상화.
기원전 2200년전 사람들이 이토록 거대한 규모의 정교한 작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으며 보존의 방법도 입이 벌어질 정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을 건설하며 흙으로 빚은 호위무사들이다.
3개의 갱과 아직도 발굴중인 갱들.
시안을 여행지로 선정한 첫번깨 목적은 이 병마용갱을 보기위함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나는 하필 고장난 이어폰을 만나서 가이드의 설명을
원할하게 듣지못했다.생생한 해설을 놓친 점이 지금까지도 아쉬움인데
병마용갱 안에서도 작동이 시원찮아서 설명을 놓치는 사태를 맞았다.
앞으로도 발굴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도 산적한 또 다른 용갱들이 많다는 걸
발전된 투시경으로 확인이 되었다 한다. 미래에도 조상들이 남긴 유물로 중국은
오랫동안 먹고 살 길은 걱정없겠다는 생각.
들어갈덴 쏙 들어가고 볼록 나와할 곳은 또 볼록 나온 볼륨의 양귀비 조각상 ㅎㅎ
진 시황과 양귀비가 여기 온천에서 몸을 씻었다는 실제 탕을 찍었다.
절세미인 양귀비의 몸에서 좋지않는 냄새가 풍겼다는 설도.
관절염에다 먹지못해 비실한 내가 화산의 정상을 오르다니.
난코스 대부분은 케이블카를 이용했지만 그래도 걷는 구간 많았다.
혼자 낯선 산아래에 고립된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사소한 일로 민폐가 되기 싫어서
용기를 불끈 몇 번이나 냈는지 모른다.
중국의 3대 비경이라는 황산을 오른 경험있어서 놀랍지는 않았지만
드디어 화산의 서봉과 북봉의 정상에 오르고 그 희열을 만끽했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사진도 찍었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