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서(唐書)에 나오는 말로 당나라때 관리를 등용하는 평가기준으로 사용한 네가지 즉 몸(體貌), 말씨(言辯), 글씨(筆跡) 그리고 판단(文理)를 말합니다.
딸자식을 가진 사람은 사위감을 고를 때 기준으로 삼으면 실수를 걸러 낼 수 있는 인재 판별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말씨(言辯)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논어(論語)에 대미를 장식하는 요왈(堯曰)편 마지막 장에 “부지언(不知言) 무이지인야(無以知人也)”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아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로 풀이하면 뜻이 통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속에는 사와 정(邪正), 현과우(賢愚), 진과가(眞假), 충과역(忠逆)이 다 조금식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 안다는 말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편에 이렇게 이르고 있습니다.
“비루한 것을 묻는 자에게는 대답하지 말 것이며, 비루한 말을 하는 자에게는 묻지 말 것이며, 비루한 얘기를 하는 자의 말을 듣지 말 것이며, 다투려는 자와는 말 다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권혁주 옮김 순자 중에서-
총선이 한달도 남지 않아 마음이 급 한지 주요 정당의 당직자들은 서로 인신공격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정책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논쟁을 할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여야정치인들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국민이 원하면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통크게 약속하니 표면적으로는 정당 간의 정책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야 할 것 없이 누가 국민의 환심을 더 사느냐가 선거 전략으로 둔갑한 요즘 유권자들의 선거접근방법은 사람의 옥석(玉石)을 분별하는 판단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을 고르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선남선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대할 때는 서로 좋은 면만 부각시키고 단점은 꼭꼭 숨기고 내 보이지 않으니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면서 막연한 호감속에 백년가약을 맺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남녀가 부부의 연연을 맺어 오래 살다 보면 배우자의 진면목을 나중에 적나라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과 인연에서 막연하게 상대방에 대해 기대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기대수준이 높을수록 나중에 생활속에서 실망 또한 동반 상승하고 실망이 쌓이면 불화의 위기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경우 부부관계에 연륜이 늘어나면서 자녀 양육에 관한 부부의 공통관심사로 인하여 두사람의 관계가 부부관계에서 가족 관계로 범위가 확대됩니다. 이경우 관계의 진폭이 단기적으로 돌변하는 예측불허의 일기예보수준에서 장기적 기상도를 형성하는 기후변화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안정적 국면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다시 선거 이야기로 돌아와서 국민의 대표로서 나라일을 돌볼 성실한 사람을 뽑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책속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조조의 인사 참모였던 위(魏)나라시대의 명신인 유소(劉邵)가 쓴 인사교과서 “인물지(人物志)”에 그 사람의 말이나 글 또는 그가 참여하는 논쟁에서 반응하는 태도를 관찰하여 사람의 성정을 구분하는 9가지 유형이 나와 있습니다. 상대방의 언담(言談)을 관찰하여 파악할 수 있는 9가지 유형의 성정(性情)은 아래 와 같습니다.
첫째, 굳세지만 건성 건성한 사람은 미세한 일을 처리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큰 원칙을 이야기 할 때는 원대하지만, 섬세한 이치를 분석할 때는 약하다.
둘째, 강직하고 엄격한 사람은 자신을 굽힐 줄 모른다. 그러므로 법을 적용할 때는 공정하지만, 꽉 막혀서 변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셋째, 고집스럽고 강경한 사람은 사실을 따지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작은 기미를 잘 파고 들지만 큰 도리에 대한 견해는 없다.
넷째, 구변이 좋은 사람은 말이 번화하고 뜻이 날카롭다. 그러니 세상 잡사는 철저히 따지지만, 큰 의리에 대해서는 말만 요란하지 면밀하지 못하다.
다섯째, 정견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외관상 박식해 보이지만, 일의 요체를 세우지 못해 이리저리 휩쓸린다.
여섯째, 이해력이 낮은 사람은 깊이 있게 논박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이해가 피상적이어서 정심한 이치를 살피는 데는 이랬다 저랬다 하여 근거가 없다.
일곱째,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민첩하지 못하다. 인의를 논하는 일에 대해서는 넓고 자세하며 우아하지만, 시급한 일을 처리 할 때는 늘어져서 제때 완수 하지 못한다.
여덟째, 온유한 사람은 강성한 기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의심나는 논란거리를 헤아릴 때는 우유부단하여 지지부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아홉째, 기발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유 분망하고 특이한 것 만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계책이나 속임수를 낼 때는 탁월하지만, 맑은 도를 살피는 데는 상식에 어긋나 멀리 우회하게 된다.
또 인물지는 말은 그럴싸하고 이치에 닿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내용이 없는 사람을 사이비 (似而非)라고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막힘 없이 말을 늘어 놓는 것은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인 듯하지만 사이비이다.
둘째, 알고 있는 이치는 적은데 말이 많은 것은 박식한 이해가 있는 듯하지만, 역시 사이비이다.
셋째, 왜곡된 밀로써 상대의 뜻에 영합하는 사람은 마치 상대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듯하지만 사이비이다.
넷째, 맨 뒤에 처하여 시간을 끌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후 마치 스스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판단을 내린 것처럼 가장하는 사이비도 있다.
다섯째, 어려운 문제를 피하여 응답하지 않는 것은 마치 다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모르는 사이비이다.
여섯째,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로만 이해했다고 하는 사람도 사이비이다.
일곱째, 이기려는 마음 때문에 평정을 잃고, 말이 궁색해지면 이를 오묘해서 말로 다 하기 어렵다고 하고, 남이 반박할 때 강경하게 이치를 다투어 수긍하지 않고 실제로는 비기기를 구하는 것은, 마치 이치상으로는 굽힐 수 없는 듯이 가장하는 사이비이다.
사이비들은 내실이 없는 데도 말이 화려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치 유능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특히 이들에게 현혹되어 중책을 맡겼을 경우 그 폐해는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조직의 수장이라면 이런 사이비를 골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상 제왕들의 인사 교과서 유소(劉邵)가 지은 “인물지(人物志)”에서 인용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알아 보기 위한 또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후안흑심(친닝 추 지음,월요일의 꿈)에서 제안하는 일곱가지 시험방법과 여섯가지 관찰 방법이 있습니다.
◎일곱가지 본성 시험방법.
1. 인생관을 알아보기 위해 토론을 해보라.
2. 마음의 변화를 보기 위해 말로 시비를 걸어보라.
3. 지혜를 측량하기 위해 병법을 논해 보라.
4. 어려움과 위험이 있음을 일깨움으로써 용기를 시험해보라.
5. 술에 취하게 하라. 그러면 진짜 본성이 나온다.
6. 돈을 쓴 모양을 지켜보라. 그의 품성을 알 수 있다.
7. 일을 맡겨보라. 그 역량을 잴 수 있다.
◎여섯가지 본성관찰법.
1. 어려운 시기에 그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 지를 보라.
2. 잘 나갈 때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는지 보라.
3. 고위직에 있을 때 누구를 기용하는 지 보라.
4. 난국을 만나서 그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
5. 빈곤에 처했을 때 뇌물을 받지 않았는가?
6. 난잡한 관계를 갖도록 유혹하여, 그의 견실함을 시험하라.
정직하지 못한 말이 거짓말이고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 위선(僞善)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말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한 행동 즉 위선은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한 가려 내기가 어렵습니다. 신음어(呻吟語)에서 여곤(呂坤)이 실토한 말에서 위선(僞善)의 무서움을 감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두고 진지하게 노력해 왔지만 가짜 위(僞)자를 끝내 제거하지 못했다. 위(僞) 란 위선(僞善)'을 말한다. 이것은 언행에만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다. 본심으로 제법 백성을 위해 노력한 셈이지만, 마음 어딘가에 해주었다 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면 그것은 가짜이다. 본심으로 좋다 라고 생각한 것이라 해도, 그 선행을 남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가짜이다. 도의적으로 충분히 해냈다 해도 사소한 부분에서 남과 다투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이 또한 가짜이다. 사회정의를 목표로 삼고 온몸과 마음을 바치면서도 이것저것 망설이고 정설을 갖지 못한다면 이것도 가짜이다. 9할 정도 밖에 완성하지 못했다고 내심 생각하면서도 외부에 대해서는 마치 완벽하다는 듯이 처신하는 것도 가짜이다.
이것들은 모두 남들은 알지 못하고 나만이 알고 있는 가짜의 일부분이다. 나는 이런 모든 위선을 내 몸으로부터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위는 신음어(呻吟語)의 저자 여곤(呂坤)이 한 말입니다.
정치를 하는데 좋은 말은 가능의 공간을 확대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말은 중요합니다.
정치적 말의 힘 저자 박상훈이 강조한 민주정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준수해야 할 말의 책임성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인용합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자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도,지켜질 수도 없다. 민주정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말의 책임성이 준수되어야 한다.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정치 언어는 인간사회를 자연상태내지 정신적 내전 상태로 이끄는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조롱, 모욕의 언어는 정치가 아니다.
-중략-
민주주의는 정치적 말하기의 규칙과 규범이 존중되지 않으면 그 가치를 발휘 할 수 없다. 상대 정당이나 상대 파당과의 경쟁과 합의를 위해서는 성실한 준비와 책임있는 대화가 필요한데, 이런노력을 게을리하는 대신, 돌아서서 자신의 지지를 향해 상대방을 고자질하는 팬덤정치나, 서로 모욕주기위해 여론을 동원하는 소셜미디어 정치는 절제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의 정치로는 사회분열을 막을 길이 없다. 이견을 야유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이적시 하는 것은 정치적 범죄행위이다.
말이 나쁘면 정치는 인간미 없는 상호파괴의 장이 되고 만다. 그러면 정치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시민과 사회가 고통받는 다. 정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이에 대한 존중, 합리적인 대화, 책임 있는 협의가 당연한 행위 규범이 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 도 서로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문제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박상훈 지음, 정치적인 말의 힘 374-375쪽에서 축약하여 인용 했습니다.
우리는 총선기간동안 정치인들이 손쉽게 표를 얻기 위해 당선 후 실천 할 수 없는 거짓공약을 남발하고 경쟁자를 인신 공격하여 정치판을 살벌한 싸움터로 만드는 분노와 증오의 정치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제도권 언론에서 앞장서야 하나 앞장서기는 커녕 부추기나 말았으면 합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특종이 되는 기현상이 오늘날 미디어 세계의 문법인 것 같습니다. 언론인을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지만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마음은 콩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권 특히 권력을 가진 자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니 정론직필(正論直筆)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의무 없이 군림하기만 하는 왕이 오래 자리를 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입지에 걸 맞는 건설적인 역할을 찾아 나섰으면 합니다.
사익(私益)보다 공익(公益)을 앞세우고 야심(野心)보다 양심(良心)에 충실한 국민의 대표가 국회에 많이 진출하도록 유권자들이 신성한 주권을 행사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인재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강고한 진영정치의 틀을 깨고 100% 대한민국의 통합을 이상으로 하는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위하여 시동을 걸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국민들 사이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일고 있음을 정치권에서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