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다녀온 김에 내쳐
북경 시내와 인근의 절을 다니면서 정리했던 글의 단편을 올립니다.
아래 글은 2003년 2월 15일에 쓴 것입니다.
북경에는 절이 엄청 많습니다.
담자사, 계태사, 법화사, 백마사, 법원사, 홍라사, 대각사, 법해사,..
그리고 옹화궁과 그 옆에 있는 국자감, 공자묘...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법해사의 벽화입니다... 明대 것입니다.
潭자寺
2003.2.15.
1. 담자사는 한마디로…
- 스스로 皇家第一寺院이라고 주장한다.
- 북경 근교에서 그래도 제일 큰 절이다.
- 꼭 한 번 가볼만하다.
* 담자사의 자字는 木+石이다.
2. 담자사 개요
- 위치 : 門頭溝區 담자사鎭
- 전화 6086-2500, 6086-2505 팩스 6086-2513 tanzhesi.com.cn
- 입장료 : 35/17원 서관음전 3원 동관음전 ?원
- 개장시간 : 08:00~18:00 (08:20~14:30)
- 소요시간 : 천안문에서 50분. 30Km? (45Km?)
3. 가는 법
- 장안가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가다가, 5환과 만나는 곳에서 좌회전(여기서부터 담자사까지 22.4Km)한 후
- 京原路를 계속 따라가면 됨.
- 5환에서부터 만수교까지는 길이 복잡하나 漫水橋를 벗어나 石門營Rotary만 지나면 산길(108번 국도)을 따라 거의 외길임.
- 다른 방법은 航天橋에서 阜石路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雙유(山+谷)Rotary에서 석문영쪽으로 접어들면 됨.
- 대중교통은 萍果員 전철역에서 731번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되며, 주말에는 前門/阜城門에서 游7을 타도 됨
- 가는 도중에 戒臺寺가 있고, 거기서부터 다시 10Km
4. 담자사에 관한 일반사항
4-1. 절 이름의 유래
이름이 연못 담자와 산뽕나무 자자로 이루어져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절 안에는 연못이 있고, 절 뒤 산에는 옛날에 산뽕나무가 가득했다고한다.
그런데 산뽕나무가 불임치료에 효과가 있다 하여 모두 베어감에 따라 현재는 산뽕나무는 거의 없다. 참고로 이 나무는 껍질의 즙이 노란 색이어서 고대에는 황제의 옷을 염색하는데 사용했다고한다. 꼭 산뽕나무를 보고싶은 분은, 절 산문 밖에 일부러 심어놓은 몇 그루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
4-2. 입지
태행산 자락에 있다. 절 양쪽으로 용(=山)이 뻗어 있는 가운데 아늑하게 위치하고 있다.
* 참고로 태행산은 유명한 항일유적지이며, 당시 帥總이 존경하는 항일투사 故김학철 선생이 부상을 당한 곳이며, 석정 선생이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4-3. 역사
담자사가 있고 나서 북경이 있었다(先有潭自寺 後有北京城)고 할만큼 담자사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西晉때 창건되었다 하니 이미 1700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嘉福寺라 불리다 수차례 重修/改名을 거쳐 淸 康熙 31년(1692년)에 확장한 후 Xiu4(山+由)雲寺 라 했는데, 절뒤의 龍潭과 산속의 산뽕나무로 인해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담자사라고 하면서 이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산문의 현판은 勅建Xiu4(山+由)雲禪寺라고 쓰여있다.
역대 황실로부터 존경을 받아와 皇家第一寺院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康乾시대에는 최전성기로써 무려 3,000명의 僧衆이 살았다고 하며, 청 대에서는 귀족들의 참배 및 야외 나들이 장소로 애용되었다고 한다. 그 흔적이 流杯亭이다.
공산당 집권후 종교기능이 폐쇄되었다가 1997년부터 다시 종교활동이 재개되었다.
4-4. 가람배치
中路-西路-東路로 나누는데, 중로는 牌樓-石橋-山門-天王殿-大雄寶殿- 毘盧閣이 있다
산문은 다른 절이랑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황제가 이름을 내렸다”는 표시로 칙사OO이라고 쓰여있다. 산문 입구 다리 옆에 元代 것이 확실해 보이는 조그만 석사자 한 쌍이 양쪽에 있는데 유리로 사방을 막아 보호하고 있다. (이것은 帥總의 추정입니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천왕전 가운데 포대화상이 웃으면서 반겨준다. 중국불교의 특징중 하나는 주요 부처를 의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대화상은 실재인물이라고 하며,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상체를 벗은 배불뚝이, 위엄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인자스럽기 그지없는 외모, 이것이 포대화상의 상징이다. 항상 마대자루(포대)를 메고다니며 소외된 사람들을 돌봤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한다. 참고로 지장보살의 화신은 신라스님 김교각이며 구화산에 그 등신불이 있다. (불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종합정리 예정)
대웅전에는 복해주륜(또는 반대방향)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석가모니의 좌우에는 아난과 가섭만 있고 통상 보이는 다른 불상은 없다. 중담(목+담)대지(갈비?) 양끝에 대형 유리저(지+조)문이 있는데 元대 것이라한다.
동로에는 방장원, 연청각, 기헌정, 행궁원, 사리탑 등이 있다. 유배정은 고대의 곡수유상의 습관을 본떠 만든 것으로 철경건축이다. 한백옥에 용 모습의 물길을 세기고 물을 흘린후 술잔을 띄우며 놀았다고 한다. 신라 경주의 포석정을 생각하면 된다.
西路에는 관음전이 있는데, 元世祖 忽必烈의 딸 妙嚴공주가 이곳에서 장기간 예불을 올렸다고 하며, 그 흔적인 拜塼이 남아있다.
그 다음이 毘盧閣 인데 절에서 가장 좋은 곳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비로각을 이야기 할려면 비로자나불과 티벳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 불교는 티벳불교의 영향을 많이 (아주 많이) 받았다. 원대에 알탄칸이 티벳을 점령했는데, 그때 티벳불교가 몽고족(즉 원나라)에게 전파되었다. 몸은 정복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정복당한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내몽고에 가보면 모든 사원이 티벳식이다. 원과 청을 거치면서 티벳불교는 중국불교와 융합되었고 중국의 거의 모든 사원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부분은 사이비 해석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찾아보시라.
戒臺는 수계를 하는 장소로서 계태사의 것이 가장 크지만, 이곳도 황가의 사원으로써 독자적인 계대를 가지고 있다.
특징은 무려 4개(3개?)에 달하는 관음전인데, 각각 한 번씩 둘러봄직하다.
절의 서편 계대 뒤쪽에는 죽림이 있다.
4-5. 그외 특징들
4-5-1. 고목
대웅전과 비로각 사이에 넓은 뜰이 있는데, 이는 여늬 사원과 큰 차이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다. 이 뜰에 네 그루의 큰 나무가 있어 각각 帝王樹, 配王樹, 사라수(두 그루)라 하며, 그외 자수, 紫玉蘭, 百事如意樹가 있다. 제왕수는 높이 30여M, 둘레 9M의 은행나무로써 唐 貞觀때 심었다고 한다. 황제가 바뀔 때 마다 새 줄기가 올라와 기존 줄기와 조화롭게 성장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건륭황제가 제왕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북방의 고승들은 이 나무를 보리수로 여기고 불가의 성수로 간주했다한다. (믿거나 말거나)
4-5-2. 石魚
관음전 앞에 메달린 돌로된 물고기 조각이다. 이 조각의 특정부위를 만지면 몸의 그 부위가 건강해진다는 속설에 따라 줄을 서서 쓰다듬고 있다. 帥總은 간절히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
4-5-3. 서관음동
서켠 산중턱에 있다. 강희 무렵 절에서 쫒겨난 스님이 혼자서 수도하던 곳이며 주민들의 병을 고쳐주고 가르침을 베풀어 풍마(마풍?)스님이라고 불렸다 한다. 옆에는 호랑이가 지켰다는 샘이 있고 풍마스님이 수도한 동굴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곳곳에 쓰여진 이곳의 전설 안내문 끝에다가 “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덧붙여 놓은 것이다. 즉 믿거나 말거나니까 니네 알아서 생각하라….는 뜻인가?
4-5-4. 大銅鍋
스님들의 밥을 짓던 엄청 큰 가마솥이며 산문 오르쪽에 있다.
4-5-5. 그외 절 바깥에 安樂堂, 上下塔院, 東西觀音洞, 老虎廳經洞 등이 있다. 탑원은 절 바깥 산밑 주차장 옆에 있으며 사리탑?들의 밭이다. 복발식 탑도 있고 전탑도 있는데 한 눈에 사리탑?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중에는 OO의 탑도 있다고 한다.
5. 담자사 1.5배 즐기기
5-1. 가기 좋은 때
시내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어 사시사철 언제든 내키면 갈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좋기는 역시 꽃피는 봄인데, 4월 초부터 시작해서 OO, 목련(옥란), 정향(라일락?)이 5월 초까지 연이어 피므로, 4월 중순이 가장 좋다. 특히 4.11~12 무렵에는 옥란절이 시작되며, 4월말~5월초에는 축하공연도 있다고 한다.
춘절 때 특별공연이 있다고 안내서에는 쓰여 있으나 속지마시라. 실제로는 없다.
5-2. 담자사를 갈려면
대략 4시간은 걸린다. 따라서 하루를 완전히 투자할 생각을 하고 계태사와 인근관광지도 같이 둘러보기 바란다.
그리고 반드시 가람의 배치와 건물의 특징 및 불상의 모습을 기억해두었다가 다른 절에 갔을 때, 그리고 한국의 절에 갔을 때와 비교해보기 바란다. 느낌이 콱 오는 분은 그만큼 성불할 가능성이 높은 분이다. 나무아미타부~울
5-3. 인근 관광지
계태사는 담자사 가는 도중에 있으니 오갈 때 들리면 된다. 그외 청룡호?, 華北奇險大溶洞(석회동굴, 6086-3056/7 www.bjgrly.com), OO, 石花洞이 있다.
석회동굴 : 절 초입의 길옆에 석회동굴 안내판이 있다. 가보지는 못했다.
담자사鎭 : 이곳의 행정구역이 아예 절 이름을 따서 담자사진이다. 최근 마을 전체를 완전히 새로 단장했으며, 중심도로가 무려 왕복4차선의 깨끗한 아스팔트 도로이다. 35원씩이나 하는 담자사의 입장료가 어디에 쓰였는지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嘉福반점. 절 부설 호텔. 거의 2성급. 6086-2781. 굳이 절에서 숙박을 한다면 계태사의 반점이 훨 낫다. 지난 번 왔을 때는 가라오케가 있었다. 절 안에 가라오케… 흠…
계태사
0800~1800 (0820~1630)
35/17원
4월 중순 苦丁香이 필 때 가볼 것
저녁 무렵 돌아오는 길에는 산길 한 켠에 차를 세우고 노을에 잠긴 北京시내를 내려다 보라.
가는 길 가에는 화교의 공동묘지가 있다. 농가도가촌도 있는데, 다음 기회에 들러본다.
호텔 6980-6611 팩스-5940
팔대처 02.11.14. 10/5원
등산, 사찰관광, 산책, 산림욕, 사색, 놀이터, 숙박, 단체활동를 겸할 수 있는 조용한 종합공원. 가족 나들이 코스로써 적당
서산의 8개의 절을 통칭. 절 자체는 대부분 새로 지었거나, 오래된 것도 청대를 벗어나지 못함. 나무 보다는 숲을 본다고 생각
1처 : 장안사
2처 :
8처 : 방향이 틀림.
가는 법 : 팔달처 주차장
등산코스 : Lift Car (20/10원)로 올라가서 7처부터 걸어서 내려오는 것이 무방
산정상
7처의 뒤켠. 북경시 전체 조망에 좋음. 서산의 끝을 알 수 있음. 반대편으로 수도강철도 보임.
7처
일출을 보기에 좋으나, 새벽에 이곳까지 오기는 무리
본전 뒤 바위밑에 동굴
뒤 산길로 올라가면 산정상에 다다름
6처
제법 큰 절. 강희제가 쓴 경불 비석. 보리수 나무. 팔달처배훈중심(6887-4661). 빙하가 미끄러진 돌
印章골짜기 : 골짜기 바위에 도장을 새겨놓음
다음에는 : 봄철 덜 덥고 신록이 만발할 때. 배훈중심. 단풍. 아침 일찍부터
雍和宮 (’02.10.13.)
? 추가조사사항 : 향 피고 절하는 사람의 사고방식. 종교관
? 건물의 순서 확인할 것
건륭제가 부친인 옹정제의 사택을 개조하여 창건. 황가사택을 개조하였으므로 대웅전이 없음. 그러나 문의 못은 황제와 같은 9개씩임.
티벳불교의 사원. 스님은 장족
오백나한상과 미륵상이 대표적 유물이다.
북동2환 근처에 있어 찾기 쉽다. 인근의 국자감, 공자묘를 같이 둘러보면 좋다.
옹화궁. 쫑카파의 좌상과 그 뒷면에 오백나한상, 魚龍盤이 있다. 어용반은 건륭제가 태어났을 때 몸을 씻긴 것이라 한다.
영우전. 藥師-無量壽-獅口+孔佛
만복각. 가장 안쪽에 있다.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세계 최대의 통나무 미륵상이 있다. 높이 18m이나 땅 속에도 8m가 묻혀있어 총 26m라고한다. 7대 달라이라마가 건륭에게 기증한 것이란다.
계태루와 반선루는 중국에 강점 당한 티벳현대사의 비극을 보여준다.
戒台樓. 황제가 수계식을 거행한 장소. 티벳불교의 각종 불구 전시
班禪樓. ’95.12.8. 신임 11대 반선라마가 강택민에게 취임신고차 왔닥 여기에 들렀다.
입구 양켠의 은행나무가 제법 일품이다. 10월말쯤 단풍철에 가볼만하다.
불구를 살려면 절로 간다. 불경, 염주, 불상 모두 있다. 단 가격흥정은 불가능.
광제사 02.11.10.
입장료 없음. 西四 4거리의 서쪽.
중국불교협회 본부 (한국의 조계사에 상당함)
창건 |
금(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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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건 |
명 순천(1457~1464) 보혜, 원홍 |
황실의 지지를 받아 홍자광제사 사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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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
산문, 천왕전, 대웅전, 원통전, 다보전, 장경각, 계단(17C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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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
경전 10여만책
탁본
사리
비각 등 |
명판대정경 전질
방산 운거사 탁본 3만여편 |
불교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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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협회
중국불교학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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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四북대가와 부성내대가가 만나는 곳에 위치
절의 남쪽부분은 대외공개하나, 북쪽에는 중국불교협회가 있어 대외 비공개지역임.
같은 이유로 입장권도 팔지않는다.
산문에 강희제가 쓴 칙건황자광제사라고 쓰여있다.
殿脊 : 대웅전 지붕위에 속징 香水 海, 華藏世界海라고 불리는 산 모양의 기와가 있다. 물, 연꽃, 梵語 1글자로 구성. 이 글자의 의미는 永恒世界, 不生不滅을 뜻하며, 북경에서는 이 절에만 유일하게 있다.
대웅전의 불상 : 3세불상(釋迦牟尼. 우-燃燈佛. 좌-彌勒佛) 18나한이 북경에서는 드물게 각각의 龕室에 모셔져있다.
대웅전 앞뜰에는 명청대 세운 4기의 비석과 청대에 주조한 八寶紋靑銅이 있다.
미륵동불 : 천왕전. 명대 주조. 일반적인 포대화상의 미륵불과는 다른 정통 불상. 가는 곳마다 포대화상만 보신 분은 이 절에서 중국식 미륵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자비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계대가 있는 몇 안되는 사찰중의 하나 (계대사, 담자사, 용화궁, 광제사)
시간이 되면 西四 사거리 남쪽에 있는 蜀香村(6613-2999)에 가서 사천식 간단요리를 꼭 맛볼 것을 권하며, 인근의 地質博物館(보수중. 2003년), 羊肉胡同의 천연진주백화점 등도 권할만하다.
- 스님이 있는 절
- 입구에 불구/불교서적 판매
- 유일하게 입장료 없음
- 매주 예불 이외에 주1회꼴로 교리강좌가 있음
- 불구는 옹화궁 근처에도 많음
白塔寺(=妙應寺)
02.11.10.
Prologue
북경시내를 다니다 보면 멀리서 백탑을 볼 기회가 있다. 그때마다 “저게 어디 있나” 싶다가도 또 잊어버리곤 하는데, 정말 작심을 하고 한 번 찾아 나서보자. 西四 근처에는 백탑외에도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백탑사는
- 티벳불교 사원으로써 정식 이름은 妙應寺이며,
- 사찰겸 박물관이다.
- 무엇 보다 절 뒤켠에 있는 백탑으로 유명하다.
- 문화혁명이 남긴 비극의 한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위치 : 西四의 서쪽 약 1Km
전화 6616-0211
입장료 20/10원.
개장시간 09:00~16:30
개요
옹화궁 보다 먼저 북경에 건립된 티벳불교 사원이다.
13/14세기 원황실의 종교활동 및 역경의 장소이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북경시 문물국 문물보관소”으로써, 사찰이면서 동시에 元明淸대의 유물을 보관하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물이 매우 많은 사원인데, 백탑 및 거기서 나온 유물들, 티벳불교의 소형불상들, 탕카(=탱화), 돌사자 등등이 있다.
바뜨 원대의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소문과는 달리 정작 원대의 유물은 그리 많지않다.
가람 자체는 대부분 새로 지었으나 그래도 고적관광으로서의 가치는 있다. (그렇나?)
북경에 2기의 Tibet식 백탑이 있는데, 각각 동쪽의 영안사, 서쪽의 묘응사다. 서로 10리 거리이며, 모두 사찰보다는 탑으로써 유명하다.
역사
1. 창건(1279) : 탑이 절 보다 먼저 건립되었다. 1271년 원세조 쿠빌라이가 현재의 백탑 위치를 콕 찍어주면서 새로운 탑을 세우라고 칙령을 내렸다. 이에 帝師 八思巴(元에 티벳불교를 공인 시킨 인물)가 직접 주도하여 네팔 건축가 阿尼哥를 데려와 1279년에 탑을 준공하였고, 그리고나서 탑에서 4방으로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자리를 경계로 절부지 결정하였는데 무려 16만m2에 달하였다. 절을 지은 후 大聖壽萬安寺라고 명명하였다.
2. 재건(1457) : 136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원래 면적의 1/12로 재건하고 明天順元年.妙應寺로 개명하였다.
3. 중건(1753) : 건륭 18년에 대규모로 중건하였는데, 그때 유물이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다. 이 유물들은 1978년 당산 대지진(1976)후 탑을 보수하면서 발견되었으며, 청의 대장경, 건륭의 친필 반야심경 등이 있다.
참고 : 요대에 燕京城의 5방에 5색탑을 지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가람
크게 사원과 탑원으로 구분하는데, 중건하면서 모든 건물을 탑의 앞으로 배치하였다. 따라서 탑이 사찰의 제일 뒤쪽에 있다. (해설 : 대부분의 백탑이 그렇다.)
- 사원 : 산문, 종고루, 천왕전, 대각보전. 칠불보전.
- 탑원 : 삼세불전, 백탑
건물은 새로 지었으나, 내부의 불상은 元淸대의 것이다. (맞겠지?)
건물의 구조는 대체로 산문, 종고루 이외에는 중건 당시의 格局을 유지하고 있다. (사견 :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느라고 했는데 산문, 종고루는 어떻게 생겼었는지를 몰라서 대충 맘대로 복원한 게 아닐까…)
- 칠불보전 : 元. 楠木. 3.3m 높이. 삼세불(석가모니+가섭/아난. 좌-東方淨琉璃世界-藥師佛. 우-西方極樂세계-阿彌陀佛)이 있고 천정에 3개의 藻井이 있다.(사견 : 얼마전 한국에 가서 보니까 한국 사찰에는 조정이 없더라.) 九龍十二鳳(龍鳳呈祥)을 찾아보면서 전체를 찬찬히 감상해볼만하다.
- 천수천안관음 : 銅. 2m. 淸. 칠불보전 뒤켠. 11면 관음이라고도함. (사견 : 소개자료에 이 불상을 “기이”하다고 한다. 글쎄?)
- 호법신상 : 칠불보전 양측에 18위. 명. 銅質流+金金 (해설 : 18나한과는 다른지 같은지 검토가 필요함. 18나한이라면 북경에서 본 중에서는 가장 멋진 조각임. 근데 摩利支天이 18나한중 하나 아니던가?)
- 백탑 : 원명은 勅建釋迦舍利靈通寶塔. 현존 중국 최대/최고의 Tibet식 불탑(해설 : 이거 뻥이다). 1961년 최초의 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중 하나로 지정. 51m. 바닥면적 1,422m2. 수려하고 독특한 모습으로 수Km 밖에서도 보임. 백탑은 Tibet불교의 독특한 양식. 건립후 10차례 대규모 보수. 기단(810m2). 탑신(覆鉢體). 탑찰로 구성. 탑찰은 13중 상륜으로 구성.
(해설 : 중국은 이 탑을 네팔기술자가 만들었으므로 중-네팔인민의 우의와 역사교류의 증거라고 설명한다. 바뜨 이 말은 곡해하자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네팔아, 오래 전부터 우린 이렇게 잘 지냈다. 그러니까 인도편에 붙지말고 우리랑 잘 지내자. 그라고 티벳 독립주의자들 받지마라. 우리가 남이가?” 만약 이런 생각이 없었다면 그렇게 잘난 중국이 이런 중요한 문화재를 외국사람이 지었다는 사실을 굳이 그렇게 강조할 이유가 없겠지요?) 절 한가운데 이 기술자의 동상까지 있다.
1978년 전면 보수시 탑정에서 대량의 鎭寺寶物을 발견하였다. 龍藏版 大藏經(옹정/건륭이 만든 중국 최대의 대장경으로써 총 724함)이 그중 하나이다.
대각보전(=전시장)
상설전시장으로 사용된다. 藏傳萬佛造像藝術展이라하여 소형 Tibet불상 수 만개를 전시중이다. 중국 사상 최대의 불상 수량과 다양한 연대/지역/형태의 불상이 망라되어 있다. 모두 문화혁명때 전국 각지의 라마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원래 모택동 동상을 주조할려고 가져왔다나 어쨌다나. 당시 인부들이 빼돌린 것을 현재 전시하고 있다한다. 소개자료에는 Tebet불교예술의 궁전이라고 말하지만 바꿔 말하면 티벳의 슬픈 역사, 비극을 한 눈에 느끼게 해준다.
대각보전 앞 사자상 : 원래 평안가에 있던 것을 길을 내면서 이리로 옮겨온 것이다. 유심히 보면 오른쪽이 수컷임을 알 수 있다. 원을 세운 몽고족은 한족과 달리 오른쪽을 높게 친다.
삼세불전 : 청. 具六神通이라는 건륭의 친필. 탕카(=탱화) 8폭이 볼만함.
백탑사 1.2배 즐기기
가깝고, 시간 때우기 좋으니 꼭 한 번 가보시라.
언제 가느냐? 음력 10.25.이 백탑 창건일인데, 매년 이 날 탑돌이를 한다.
’02.11월 당시 마침 창건730주년 및 티벳평화해방50주년기념 白塔寺珍藏文物展(천왕전內)이 열리고 있었는데, 백탑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근처에 廣濟寺(중국불교협회 본부), 지질박물관(수리중), 魯迅박물관이 있으니까, 아예 하루를 투자하여 한 큐에 때려버리는 것도 좋겠다.
절 동쪽 사거리 부근에 能仁居(6601-2560)라는 양고기샤브샤브식당이 있는데 能仁街라는 옛날 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식당주인은 能仁의 그 지픈(=깊은) 뜻을 아는지? 참고로 맛 없어보이는 집이니까 굳이 …
西四 사거리 동남켠에 蜀香村(6613-2999)이라는 사천식 패스트푸드점이 있는데 권할만하다. 맛도 좋고, 먹기 편하고, 무엇 다 값이 엄청 싸다. 帥總이 잘 아는 아줌마가 엄청 좋아하는 집이다. 왕부정에도 분점이 있다(8511-0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