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노조가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소속 13개 기업별노조와 함께 산별노조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는 보도를 보면서 나는 TV드라마에 나오는 집착증환자를 연상
했습니다.
좌절된 가난한 소년의 동전 소유욕이 심리적으로 고착되어 부자가 된 다음에도 가정부 방에 들어가 동전을 훔치는 집착증을 묘사한 에피소드입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영국의 전투적 노조가 전성기에 달성한 최고수준의 특권을 기업별노조 이름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19년 동안 파업을 반복하면서 한국 최상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실현했고, 작업통제권을 장악하여 생산라인 하나도 회사 마음대로 바꿀 수 없게 만드는 권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새롭게 산별노조 간판을 단다고 회사에서 나올 것이 더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산별노조에 집착하는 이유
여기에서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집착증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노조왕국을 이룬 현대자동차노조가 산별로 전환한 내면적 이유를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눈길을 끄는 것은, 대공장 노조의 전투성이 전체 노동운동을 선도하는 전략은 한계점에 왔으므로 전체 노동운동을 산별로 전환하는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점입니다.
노사관계를 투쟁관계라고 생각하는 노사관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전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계급적 단결의 토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점입니다.
기업단위 단결보다 한 단계 높은 계급적 단결체인 산별노조가 더 효과적으로 자본의 횡포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셋째, 눈길을 끄는 것은 산별노조를 건설하여 전체 노동조합운동을 민주노총이 통일한다는 원대한 목표입니다.
이상을 연결하면 기업별조직을 산별로 전환하여 계급적 토대를 만들고 총력투쟁을 전개하여 한국 노조운동을 민주노총이 통합한다는 말이 되며, 이것을 뒤에서 읽어 들어가면 민주노총이 노조운동을 통일하기 위하여 계급적 단결 토대인 산별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이 점에 한국노동의 문제가 보입니다.
민주노총이 강조하는 산별전환 이유 속에는 작업현장에서 조합원의 현실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는 노조 본래의 목적은 빠지고, 그 대신 자본집단의 횡포?노동자 전체이익 옹호?계급적 단결 토대?총력투쟁?전체 노동조합운동 통일, 노사관계 선진화 등 정치적이며 선동적인 용어만 즐비합니다.
그리고 그 최종목적이 한국노총을 밀어내야 실현되는 노조운동 통합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대기업을 앞세운 전투적 노동운동의 속뜻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산별노조의 역사성
1960년대 군사정부 밑에서 기업별노조를 16개 산별노조로 개편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군대를 통솔한 경험밖에 없던 군사정부가 노조도 군사조직과 같이 통솔하면 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민주노총이 말하는 산별노조는 역사적 뿌리를 알아야 진실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산별노조의 출생배경을 보면 그것이 노사관계 선진화와 전혀 관계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직업별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천대받던 미숙련 잡노동을 조직화했지만 구성원의 통일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직업별노조와 구분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산업별노조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입니다.
문제는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선언 말미에,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선동한 다음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단결금지법을 폐기시키고(1779~1824년) 합법적으로 노동운동 꽃을 피운 영국을 제외하면, 반세기 이상 늦게 공업화에 들어간 후발공업국인 유럽 제국에서는 정치적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이 뒤얽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럽노조가 정당과 밀착하여 산업별로 전국차원의 교섭방식을 고수하게 된 전통은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며 선진화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혁명 환상이 사라진 다음 EU 노조가 사회적 파트너로 변신한 것도 이런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후 우리는 좌우 노동충돌을 경험했으며, 지금도 한반도에는 계급혁명 환상의 나무에 마지막 잎이 붙어 있습니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계급적 단결과 투쟁적 노동운동에 연결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민주노총 전략에서 마르크스의 계급혁명 그림자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노동현실에서 노조의 조직률은 계속 하락하여 10% 대로 떨어져 있습니다.
출범 이후 10여년 동안 민주노총이 계급적 단결과 전투적 투쟁을 선도해 왔지만 조직률이 떨어지는 이유를 생각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과 같이 조직률이 10% 대로 하락한 미국에서는 노동의 작업현장 대표성에 문제를 느끼고 근로자의 소속과 영역을 초월한 차세대조직(next-generation union)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체 조직률이 하락하는 속에서 민주노총이 세력을 키우면 상대 조직에서 조합원을 밀렵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조간 조합원 빼내기를 영국에서는 밀렵 미국에서는 약탈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불안한 노노 세력경쟁 구도 속에 한국 노조운동의 암운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노사관계 진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네덜란드, 아일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수 많은 나라 이름이 노사관계 벤치마킹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마치 손으로 더듬어 보고 코끼리 모습을 그리는 장님과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날까요?
리스트에 오른 나라는 하나같이 계급지향적 노동투쟁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계급지향적 노동투쟁을 용인하면서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지 못하고 변죽을 울려 시선을 돌린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을 열심히 그리고 있지만 건강한 노동시장 기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계급지향적 노동투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법정기관인 노사정위원회가 기능을 상실하는 변란도 같은 이유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계급지향적 노동투쟁을 용인하는 환경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로드맵이나 선진국 벤치마킹은 빈 말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호소력을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헌법질서라 생각되므로 헌법 속에서 노사관계 틀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하여’
근로자에 노동3권을 준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33조①).
이 간결한 표현 속에는 ‘노동시장에서 기업을 상대로’ 노동3권이 허용된다는 근본 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근로계약을 확장한 단체교섭은 노동시장 기능이며,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는 주체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업존속을 위협하고 노동시장기능을 초월하여 벌이는 계급지향적 노동투쟁관행은 헌법질서에 반하는 것이므로 막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불법폭력파업이 용인되어 왔으므로 이제 헌법정신이 존중되는 노사관계 틀을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업을 상대로 허용된 파업의 피해가 시민에 미치면 공해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며,
불법파업 피해에 시달리는 시민을 20년 동안이나 방치해 왔으므로 이제부터는 정부가 시민권리 보호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남습니다.
계급지향적 불법폭력파업을 주도한 리더가 출세하고 성공하는 풍토입니다.
지금도 출세하고 싶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불법폭력파업을 주도하는 리더가 나오고, 그 결과로 조합원은 고달퍼지고 시민과 기업은 그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권리 보호장치는 더 절실한 과제가 됩니다.
김영환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yhkim030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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