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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統一敎會)는 하나님을 중심(中心)삼고 하나되자는 교회(敎會)
<말선209-116~120> (1990,11,28, 국제연수원) 통일교회(統一敎會)를 중심삼고 전(全) 세계(世界)의 신도(信徒)들은 모두 식구(食口)라는 말을 사용(使用)하고 있습니다. 그 식구(食口)의 중심(中心)이 누구냐 하면 부모(父母)예요. 같은 부모(父母) 아래서 태어난 형제(兄弟)들로 묶어진 가정(家庭)을 식구(食口)라고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한 하나님을 부모(父母)로 모신 가운데 오색인종(五色人種)을 초월(超越)한 식구(食口)인 것입니다. 모든 역사적(歷史的) 습관(習貫)과 전통(傳統), 문화배경(文化背景)을 넘어서 한 하나님을 중심(中心)삼고 형제적(兄弟的) 입장(立場)에서 묶어질 수 있는 통일(統一)된 무리(武吏), 하나 된 무리(武吏)를 통일교회(統一敎會)에서는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말선209-117> 그런데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 이 세상(世上)은, 자유세계(自由世界)나 공산세계(共産世界)나 어떤 주의주장(主義主張)을 갖고 있는 모든 단체(團體)나 사회(社會), 또 어떤 가정(家庭) 할 것 없이 중심(中心)이 없는 혼란(混亂)한 시대(時代)에 처(處)해 있습니다. 미국(美國)이 지금 자유세계(自由世界)를 주도(主導)하고 있지만, 미국(美國) 자체(自體)를 중심(中心)삼고 미국(美國)의 중심(中心)이 무엇이냐 할 때 자신(自信)있게 대답(對答)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神)이 중심(中心)이냐, 아니면 미국(美國)사람이 중심(中心)이냐, 아니면 미국(美國) 나라가 중심(中心)이냐 할 때 확실(確實)한 대답(對答)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사회(美國社會)에서는 신(神)에 대(對)한 관심(關心)을 갖는 사람이 점점(漸漸)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또 미국(美國) 나라에 대(對)해서 ‘우리나라만이 세계(世界)를 지탱(支撑)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中心)이다. 우리나라가 없으면 안 된다’ 하는 생각(生角)을 하는 사람도 점점(漸漸)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 나라를 그만두고라도 우리 가정(家庭), 더 나아가서 ‘나만이 이 세계(世界)를 지탱(支撑)시킬 수 있는 중심(中心)이다, 세상(世上)이 아무리 혼란(混亂)하더라도 나를 중심(中心)으로 남아져 가지고 이 혼란(混亂)한 환경(環境)을 수습(收拾)하여서 나로하여금 하나의 전체(全體)의 중심(中心)까지 변화(變化)시키겠다’ 하는 개인(個人)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美國)뿐만 아니라 소련(蘇聯)도 마찬가지예요. 소련(蘇聯)도 사상적(思想的) 기원(紀元)이 붕괴(崩壞)됨으로 말미암아 체제(體制)가 와해(瓦解)될 수 있는, 위기일발(危機一髮) 도상(途上)에 처(處)해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경제적(經濟的)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나왔지만, 오히려 경제문제(經濟問題)에 있어서 최악(最惡)의 자리에 처(處)해 가지고 신음(呻吟)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解決)하기 위해서 그동안 인간(人間)으로서 구상(構想)하고 인간(人間)으로서 노력(努力)해 가지고 이루려 했던 모든 이상(理想)은 역사(歷史)를 통(通)해 20세기(世紀)를 지나면서 이미 실험(實驗) 필(畢)했다는 것입니다. 철학(哲學)을 중심(中心)삼은 무슨 사상(思想)이나 무슨 주의(主義)니 해 가지고 다 실험(實驗)해 봤지만 그 사상(思想)이 이루어놓은 결과(結果)는 혼돈(混沌)과 혼란(混亂)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러한 모든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方法)으로서 제시(提示)할 수 있는 내용(內容)이 무엇이냐? 만일(萬一) 절대적(絶對的)인 신(神)이 있다면 그 신(神)을 중심삼고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적 여건 (環境的與件)이라도 수습(收拾)해서 하나의 중심(中心)에, 절대적(絶對的)인 그 신(神)이 원(願)하는 하나의 목적(目的)의 세계(世界)에 결부(結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사상(思想)도 절대적(絶對的)이요, 뜻도 절대적(絶對的)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뜻을 중심(中心)삼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중심삼고 그 뜻을 대(對)하게 되면 하나의 방향성(方向性), 하나의 목적세계(目的世界)로 귀결(歸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당(妥當)한 결론(結論)인 것입니다.
<말선209-118> 지금 민주세계(民主世界)고 공산세계(共産世界)고 전부(全部)다 희망(希望)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한 가지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세계적(世界的)인 문화권(文化圈)을 형성(形成)하고 있는 종교권(宗敎權)입니다. 유불선(儒佛仙)을 중심(中心)삼은 극동문화권(極東文化圈), 인도를 중심삼은 힌두교 문화권(文化圈), 마호멧트를 중심삼은 회회교(回回敎) 문화권(文化圈), 그다음에 서양(西洋)을 중심삼은 기독교(基督敎) 문화권(文化圈)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수천(數千) 년(年) 역사(歷史)를 거쳐오면서 자기(自己) 종주(宗主)들의 뜻을 연결(連結)시켜가지고 세계구도(世界求道)의 목표(目標)를 중심삼고 투쟁(鬪爭)의 노정(路程)과 환경(環境)의 어려움을 극복(克復)함으로써 세계적(世界的)인 문화권(文化圈) 판도(版圖)를 형성(形成)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問題)되는 것이 뭐냐? 앞으로 이 종교(宗敎)들을 중심삼고 이 세계(世界)를 수습(收拾)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問題)를 두고 볼 때 이미 그럴 수 있는 차원(次元)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基督敎)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2차대전(二次大戰) 직후(直後)에는 기독교(基督敎)를 중심삼은 통일세계권(統一世界權)이 벌어졌습니다. 한때 기독교(基督敎)가 인류(人類)를 규합(糾合)하여 세계적(世界的)인 뜻을 이어받아서 하나의 통일적(統一的) 세계판도(世界版圖)를 이루었 음에도 불구(不久)하고, 그것을 지도(指導)할 수 있는 역량(力量)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후퇴(後退)했던 것입니다.
그 외(外) 다른 모든종교(宗敎)들도 현세(現勢)에 급변(急變)하는 양대진영(兩對陣營)의 사회 실상(社會實相)을 수습(收拾)하고 소화(消化)할 수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 주체적(主體的) 내용(內容)을 제시(提示)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內容)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宗敎)를 중심삼은 문화권(文化圈)도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종교(宗敎)의 종주(宗主)들은 우리는 4대 성인(四大 聖人)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하고 석가모니가 그러하고 마호멧트가 그러하고 공자(孔子)님이 그러하듯이, 4대 성인(四大聖人) 뜻을 펴나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신(神)을 중심(中心)삼고 출발(出發)한 것이 종교(宗敎)입니다. 그들 모두 출발(出發) 당시(當時)에는 신(神)과 더불어 생활적(生活的) 터전을 합(合)해 가지고 나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신(神)을 잃어버리고 그 체제적(體制的) 내용(內容)만을 남겨가지고 구태의연(舊態依然)한 하나의 흘러가는 역사(歷史)와 더불어 사라져가는 현실(現實)인 것을, 우리는 직시(直視)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권(宗敎權)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 희망(希望)이 없다면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통일교회(統一敎會)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통일교회(統一敎會)가 뭐냐? 이게 문제(問題)입니다. 통일교회(統一敎會), 통일교회(統一敎會)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모든 종교(宗敎)가 일대(一帶) 충격(衝擊)을 받았다 이겁니다 기독교(基督敎)는 물론이요, 불교(佛敎), 회회교(回回敎), 유교(儒敎), 할 것 없이 모든 종교(宗敎)들이 통일교회(統一敎會)를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事實)입니다. 또 통일교회(統一敎會) 하게 되면 민주세계(民主世界) 공산세계(共産世界)에서도 무서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지사(普通指事)가 아닙니다.
역사시대(歷史時代)에 흘러가는 종교권(宗敎權)을 바라보게 될 때 더 이상(以上) 희망(希望)이 없고 급변(急變)하는 사회(社會)에 있어서 종교자체(宗敎自體)가 현실(現實)을 포용(包容)하고 소화(消化)할 수 있는 능력(能力)이 없다는 것을 직시(直視)하면서도 왜 통일교회(統一敎會)가 나왔다고 야단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통일교회(統一敎會)는 이 시대(時代)에 있어서 민주세계(民主世界)가 문제시(問題視)하고, 공산세계(共産世界)가 문제시(問題視) 하고, 유교(儒敎) 불교(佛敎) 기독교(基督敎), 회회교권(回回敎權)이 문제시(問題視)하는 종교(宗敎)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이런 문제(問題)에 대(對)해서 그 내용(內容)을 제시(提示)할 수 있는 장본인(張本人)이 누구냐 하면 여기에 서 있는 문(文) 아무개입니다. (박수) 왜 문제(問題)가 되느냐? 통일교회(統一敎會)에서는 종교(宗敎)는 이래야 된다는 결론적(結論的) 논리(論理)를 제시(提示)한 것입니다. ‘종교(宗敎)는 이렇게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망(亡)한다. 또 민주세계(民主世界)와 공산세계(共産世界)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亡)할 것이고, 이렇게 하면 안 망(亡)한다.’ 하는 주체적(主體的)인 방향(方向)을 제시(提示)해 준 것입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文)이 제시(提示)하는 통일교회(統一敎會)는 뭐냐? 교회(敎會)라 하게 되면 가르치는 모임을 말합니다. 또 종교(宗敎)라 하게 되면 마루되는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과학(科學)이 문제(問題)가 아니고 무슨 철학(哲學)이 문제(問題)가 아닙니다. 맨 마루예요. 마루만 든든하고, 서까래가 든든하고, 기둥이 든든하면 아무리 태풍(颱風)이 불더라도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마루되는 가르침, 중심(中心)되는 가르침을 종교(宗敎)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선209-121.> 국가(國家)가 형성(形成)되려면 법(法)이 있어야 됩니다. 그 법(法)을 중심삼고 국가체제(國家體制)가 형성(形成)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神)도 이론적(理論的) 근거(根據)에 의(依)해서 체제형성(體制形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신(神)을 중심삼고 그와 더불어 관계(關係)되는 모든 체제(體制)는 이렇게 형성(形成)되고 그 체제(體制)를 중심삼은 상대적(相對的) 여건(與件) 세계(世界)도 그와 같은 관계(關係)를 중심삼고 전진(前進) 발전(發展)한다는 이러한 사실(事實)을 이론적(理論的)으로 설명(說明)할 수 있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체험(體驗)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科學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학(科學)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가설(假說)로부터 시작(始作)해서 실험(實驗)을 통(通)하여 그것이 실제적(實際的)인 사실(事實)로 증명(證明)될 때 과학적(科學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선209-121> 이렇게 볼 때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宗敎)가 신(神)을 중심삼고 출발(出發)한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현재(現在)의 통일교회(統一敎會)가 어느 종교(宗敎)와 다른 것이 뭐냐? 통일교회(統一敎會)는 현대적(現代的) 감각(感覺)을 중심삼은 신(神)의 생활적(生活的) 기반(基盤)에서 출발(出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統一敎會)와 현재(現在)에 처(處)해 있는 역사적(歷史的) 종교(宗敎)와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統一敎會)’입니다. 통일(統一)할 때 ‘통(統)’ 자는 ‘지도(指導)받는 통(統)’ 자가 아니라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거느려야 된다는 거예요. 거느리기 위(爲)해서는 거느릴 수 있는 내용(內容)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자(主體者)로서의 모든 것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자(主體者)는 책임(責任)을 져야 되고, 주체자(主體者)는 보호(保護)해야 되고, 주체자(主體者)는 육성(育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심존재(中心存在)는 그것을 책임(責任)져야 되고, 보호(保護)해야 되고, 육성(育成)해야 됩니다. 그래서 거느릴 통(統) 자다 이겁니다.
<말선209-122> 그러면 무엇을 중심(中心)삼고 거느리느냐? 주체적(主體的) 입장(立場)에 서있기 때문에 책임(責任)을 져야 됩니다. ❶종교(宗敎)로서 하늘땅에 대(對)한 책임(責任)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범위(範圍)가 달라집니다. ❷그다음에는 보호(保護)해야 돼요, 악(惡)한 세계(世界)로부터 침범(侵犯)을 받고 있는 이 모든 실상세계(實像世界)를 성별(聖別)해 가지고 보호(保護)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善)만의 환경체제(環境體制)로서 보호(保護)를 해줘야 됩니다. ❸악(惡)한 것은 저지(沮止)해 버려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전(發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立場)에서 볼 때 통일교회(統一敎會)는 거느려 가지고 하나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中心)삼고 하나 만드느냐? 통일교회(統一敎會)를 중심(中心)삼고가 아닙니다. 통일교회(統一敎會) 문총재(文總裁)를 중심(中心)삼고가 아니에요. 그 동기(動機)는 문총재(文總裁)가 아닙니다. 이 온 우주(宇宙)를 창조(創造)한 근본(根本)된 하나님을 중심(中心)삼고 생활(生活)하기를 바라시는 주체(主體)되는 하나님을 중심(中心)삼고 하나 되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統一敎會)는 이 시대(時代)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中心)삼은 가정적환경(家庭的環境), 사회적환경(社會的環境), 국가적(國家的) 환경(環境), 세계적(世界的) 환경(環境)을 중심삼고 뜻의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실현(實現)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 앞에 있어서 식구(食口)로서 그 뜻을 성사(成事)하기 위한 무리(武吏)가 통일교회(統一敎會) 무리(武吏)입니다. 누구를 중심(中心)삼고 하느냐? 절대적(絶對的)으로 하나님을 중심(中心)삼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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