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택의 마지막편지. 포덕102년, 1961년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표방하면서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한국과도 이때 외교관계가 끊겼다.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임천택은 더이상 편지를 부쳐올 수 없었다.
“한 인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임천택의 장남 임은조가 이순종 회장에게 쓴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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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5일 쿠바의 피델 카스트가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카스트로의 서거와 관련하여 조의를 표하고, “정부는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쿠바와의 교류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쿠바는 일제 때 천도교인 임천택의 노력으로 천도교 종리원이 세워졌던 곳이다. 카스트로 사망에 즈음하여, 임천택의 편지를 소개한다.
196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순종 전前천도교여성회 회장은 쿠바의 임천택과 서신연락을 하게 되고 수차례 서신왕래가 오가다 1961년 1월 이후 연락이 끊어진다. 즉 1959년 쿠바혁명이 발발하고 1961년부터 쿠바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쿠바와 한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임천택 선생이 이순종 회장에게 보낸 4편의 편지와 임천택의 장남 임은조가 이순종 회장에게 쓴 편지 한 편을 소개한다.
4편의 편지 중 하나는 『신인간』1960년 12호에 게재되었던 것이고, 나머지 3편은 이순종 회장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 편지는 쿠바혁명 이후의 쿠바 민중과 쿠바한인들의 생활상, 쿠바인들의 미국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적대감, 4.19혁명과 쿠바혁명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사상에 대한 임천택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맞춤법이 어색한 것을 제외하고는 임천택의 표현을 그대로 살렸고 중간 제목은 임의로 붙인 것이다. 먼저 임천택의 생애를 간략히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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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택, 쿠바에 천도교 종리원을 세우다
임천택은 1903년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1905년 홀어머니 품에 안겨 멕시코로 갔다가 18세 때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하여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자로 살았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 지역에 한국어학교를 세우고 천도교식 성미방식으로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임천택은 1926년 개벽사의 이두성과 서신 연락이 되어 천도교를 접하고 1928년 4월 1일 천도교에 입교하여 오관실행을 하고 이듬해 쿠바에 천도교종리원을 세운다.
1930년 후반 이후 세계전쟁과 한국전쟁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1955년 이후 서울의 천도교 신인간사와 다시 서신연락을 하게 되고, 『신인간』, 『한국사상』 등을 구독하고 성미납부도 재개한다.
임천택은 1985년 쿠바에서 환원하였고,
장남 임은조 등 후손들은 1995년 광복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하고 천도교중앙총부도 방문하였다.
임은조 등은 이때 이순종 회장과도 만나게 된다.
이후 정부는 임천택의 공적을 기려 1997년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했고, 2004년 대전현충원에 임천택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한편, 임천택의 장남 임은조는 이번에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와 대학동기동창이자 쿠바혁명 동지로, 쿠바의 한인으로는 최고위 관료직인 차관급을 역임하고 쿠바한인협회 회장 등을 지내다 2006년 80세로 환원하였다.
※임천택 관련 더 자세한 것은 이 카페에서 '임천택'을 검색하면 된다.
대전국립현충원에 있는 임천택의 묘.
2015.9.6 임천택 환원 30주기 / 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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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택 선생이 이순종회장에게 보낸 편지들■
“본국으로부터 신문, 잡지, 서신을 받을 때처럼 기쁜 일도 없습니다.”
의외로 이순종동덕여사님의 편지를 받아볼 때 그 기쁜 정서는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학생이신 여사가 우리 교회인으로 많은 노력으로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심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 반갑고 고마운 추모지심을 억제치 못하였습니다.
해외 이역생활 50여 성상에 본국으로부터 신문, 잡지나 서신을 받을 때처럼 기쁜 일이 없으며 특히 우리 교회로부터 내도하는 것을 받을 때는 더욱 더 반갑고 기쁩니다. 이번에는 우리 민족과 교회 향상 발전의 주인공 특히, 꽃다운 여성 동덕으로부터 의외의 서신을 받아보게 되니 그 기쁨과 앙모의 애착지심을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습니다.
작년 9월경에 중앙총부에 최후 회신을 받았고 금년 초에 신인간제16호를 받아 본 이후로는 중앙교회로부터 종 무소식 중에서 매우 궁금하게 있었던 차에 신인간제17호 발행의 소식을 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탁하신 이곳의 학생들과 서신상통하실 것은 장남 장녀들의 번지를 첨기 하오니 시험해보시옵소서. 장남 임은조는 아바나에 있고 장녀 은주는 금년 봄에 미국 라성 이우희 군에게로 시집가서 삽니다. 그들은 서반아 언어는 능통이나 한국어는 몇 마디 알아듣고 영어는 그저 그만합니다. 다음 기회에 다른 학생들의 번지를 알게해 드리겠습니다.
이순종 동덕 여사님은 공사 간에 다번다사하실 터이나 자주 국내 소식과 교회 소식을 종종 전해 주시는 서신 연락 계속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남동생과 부모형제께 안부를 전달해 주시며 중앙총부 내 간부 동덕 제현과 특히 계연집, 고문해 두 분께 특별 안부를 전해주시옵소서.
포덕 101년(1960) 7월 13일 쿠바 마탄사스에서 임천택 심고 /
“백년 중일변의 시기에 교회 발전에 노력하심을 치하합니다”
나의 경애하는 이순종동덕여사님! 이 여사님의 7월 25일부 애교 애국에 넘치는 혜서를 8월 3일에 기쁘고 고맙게 감격의 정서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신인간 제17호도 8월 2일에 반갑게 받아 보았습니다.
국내 교회가 6월 1일 임시대회로 시기에 맞는 정치를 당면하려고 3관장을 다시 선출함을 치하하오며 아울러 이영복, 주동림, 이광순 세분 선생님과 도령비서로 승무케 되신 장기운 선생님께 백년에 중일변의 시기에 교회향상의 발전에 노력하시게 됨을 치하하시옵소서.
국내는 10여 년 간 미국자본주의가 옹호하는 이승만 악정치로 신음하여 오던 중에 학생 청년민중에 의해 혁명데모운동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제2공화국을 건설케 한 그 애국적 공로를 해외에 있는 우리는 충심으로 경모지심을 억제치 못하며 150여명의 순국하신 학생영전에 추모의 모자를 벗지 않을 수 없습니다.
쿠바도 50여 년 간 미국자본주의의 착취로 신음하였고 최근 7년간은 미국의 후원으로 바티스타 독재정권 하에 2만 명 지사가 피살된 값으로 혁명영수 카스트로 영웅이 재작년 1월 1일에 혁명정부를 수립하여 제반 계급차별을 없애버리고
공산도 아니요 자본도 아닌 인간주의 실천으로, 50여 년 간 미국자본주의의 착취로 신음하여 온 살인강도의 멍에를 벗어버리는데 가장 담대하고 용감하고 씩씩하고, 이를 저지하는 일대 부국강국인 미국자본주에 저항하여, 경제독립의 운동을 전개하는 중에 있습니다.
물론 미국자본정치는 이를 성사치 못하게 자국의 제반 언론기구까지, 전 세계에 쿠바 혁명정부 및 애국자 중추 인물들에까지, 무근지설을 조작하여 험담 중상 인신공격 모함으로 악선전을 하며, 자국의 국제공약에 위반하여 내정간섭 위협책으로 경제적 압박정책을 주저치 않고 단행할 뿐 아니라, 군사력으로까지 혁명정부를 말살시키려는 흉계를 도모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쿠바 민중 6백만 중 5백여만 명이 혁명영수 애국자 카스트로 수상과 혁명정부를 절대옹호 단결하여 죽음으로써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수립한 절대자주 독립국과 경제독립을 지지 보전하려고 결심 투쟁 중에 있으므로,
아무리 강대한 미국자본주의의 부강한 세력이라도 정의의 약소 미약한 쿠바혁명정부를 없애지 못할 것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쿠바에서 민심이 이를 죽음으로써 대항할 결심이며 따라서 세계 약소민족의 민심이 이를 후원하며 협조하는 까닭입니다.
“쿠바의 인간주의와 한국의 인내천주의”
미국이 좋아하며 옹호하고 좋게 선전하는 것은 거의 다 좋지 못한 것입니다. 실제로 독재정권들을 다 후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반면에 미국이 조작 부언으로 나쁘다고 악선전하는 나라와 민족들은 오로지 좋은 것이며 약소민족의 복리를 가져다 주는 운동이 아닙니까.
이를 미루어보면 그네가 가장 몹시 악선전에 전력하는 아라사나 중국 기타 여러 나라의 주의가 참으로 좋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쿠바만하더라도 민주주의 맹주라고 자칭하는 미국은 쿠바의 가장 큰 원수이며 아주 나뿐 공산주의의 아라사 중국 기타 여러 나라들은 쿠바에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닙니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나 미국 자본주의를 저주치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쿠바의 인간주의를 찬성하며 한국은 하루속히 인내천주의가 실현되어 완전한 복리를 가져오리라 믿습니다. 우리 한국도 쿠바의 카스트로와 같이 문무겸전한 인물이 하루바삐 나오기를 천사(天師)님께 빌고 비는 바로소이다.
아나바의 장자 은조에게서 본국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 장녀 은주에게는 지난 번 주소대로 하시면 통신연락을 지을 수 있습니다. 현재 은주가 현재 있는 곳은 미국 라성 시에서 자동차 3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교회 일에 매우 다 번다다사하실 터인데 너무나 장황 황설수설 기록하여 미안합니다.
끝으로 교회 중앙총부 전체 간부 일동 제현동덕님께 안부의 말씀을 전달해주시며, 남동생과 기타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주시옵소서. 자주 교회와 국내소식을 전해주시길 바라며 이만 실례를 들입니다. 포덕101년(1960) 8월 8일 쿠바 마탄사스에서 동덕 림천택 심고 /
“천도교인은 인내천주의의 소유자로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 천도교인은 인내천주의의 소유자이므로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부러워할 이유가 없이 오로지 하루속히 지상천국건설에 분투노력할 뿐입니다.
본국에서 지일기념을 대성황으로 치루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심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학생회에게 그처럼 이채를 내이신 것에는 경의를 금치 못하며 치하를 들이는 바입니다. 더욱이 학생회원 동덕들의 면영을 볼 때 친밀해지는 정서를 억제치 못하였습니다.
언제나 생전에 그리워하는 본국 동덕님들을 직접 상면할 수 있을까하는 심경도 억제치 못하였습니다. 쿠바에 산해한 우리 동포 수는 남녀노소를 아울러 현재 3백 칠, 팔십여 명가량이며 그들의 생활 정형은 전자에는 몹시 가난한 고비를 여러 번 겪었으나 혁명정부시절 이후로는 그 혜택을 받아 점차 안전한 생활들을 하는 중에 있습니다.
포덕101년 11월20일 작성, 신인간(1960.12월호)에 게재된 <쿠바의 인내천주의> 중에서
“우리 민족의 복리는 인내천주의 실현에 달렸다”
경애하는 이순종 동덕님! 저간 신체 불건강한 탓으로 즉시 회신하지 못하고 정월 초하루에야 붓을 들었습니다.
쿠바에서는 혁명정부에서는 금번 성탄절에 전국노동자에게는 물론 고용살이 부녀와 퇴직보조금을 받는 인민에게까지 상여금을 주게 하여 전국 민중이 성탄절을 일체로 기쁘게 치루었으며 정월 초 1, 2일에 혁명 2주년 기념식을 전무한 대성황으로 거행하는 때에,
나의 마음은 인일기념일을 성대히 거행하는 본국 천도교당을 동경하였으며, 우리나라 민족의 복리를 가져오는 주의는 자본제국의 착취적 민주주의에 의해 구하려면 망상입니다.
오로지 하루 속히 우리 교회의 인내천주의 실현 여부에 있다고 봅니다. 이점에서 우리 천도교인의 당면한 임무가 지중 차대합니다.
포덕102년 1월 2일. 쿠바 마탄사스에서 동덕 임천택 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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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끝으로 쿠바로부터 편지는 더 이상 부쳐져 오지 않았다. 포덕102년은 1961년으로 쿠바혁명이 사회주의를 표방함으로써 미국 등과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한국과도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이 편지는 임천택의 장남 임은조가 1995년 광복5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순종 회장에게 스페인어와 한글로 쓴 감사의 편지.
[Cuba에서 온 임천택의 가족은 이 작은 작품을 이순종씨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이순종씨는 천도교를 대표하여 가족과 조국을 위해 살아오신 한 인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담아 임은조, 1995년 8월 14일, 서울. ]
임은조가 이순종 회장에게 선물한 자수작품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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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의 대학동창이자 혁명동지였던
임은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 참고
동학의 후예 쿠바혁명에 참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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