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와 보아스
룻은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입니다.
그는 유대인들 틈에 끼여 사는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권면에 따라
계대결혼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대상자는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가까운 친족 중 일순위자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룻은 일순위자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친족 중 한 사람인
보아스 사장님을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아버지의 땅을 찾아주고,
며느리인 저에게 아기를 낳게 해 주시고,
태어날 아이의 이름으로 땅을
등기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아스는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는 이순위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일단 보아스가 그 사람을 찾아내어
기업 무를 용의가 있는지를 묻겠다고 합니다.
[룻 3:13 중간부분]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
룻 입장에서 일단 좋은 결과는 받아두었습니다.
일순위자이든지 아니면 이순위자인
보아스 사장님이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일순위자는 냉정하게 거절을 하며
이유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룻 4: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
손해날 것을 두려워하며
책임지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이제 보아스가 일순위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보아스는 룻에게 아들을 낳게 해 주었고
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 해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책임감! 입니다.
일순위자는 자기가 맡아야 하는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반면 보아스는 꼭 맡지 않아도 되는
책임까지 감당하며 룻과 나오미를 도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엄청나게 차이가 났습니다.
일순위자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냥 ‘아무개’ 로만 나옵니다.(룻 4:1)
다윗의 증조할아버지가 될 수 있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쉽게도 무책임한 것 때문에 기회를 놓쳤습니다.
반면 보아스는 이순위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많은 이들의
칭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는 ‘아무개’인가 아니면 ‘보아스’인가?
내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이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자녀로서,
국민으로서, 세계인으로서,
아니면 집사, 권사, 장로,
찬양팀, 안내팀, 주방팀, 영상이나 음향팀......
그 주어진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아무개’도 될 수 있고 ‘보아스’도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감당하고 싶으나 능력이 부족함을 알기에
늘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무책임한 방관자나 구경꾼 되지 않게 하시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
고백할 수 있는 사람 되게 해 주옵소서!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