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용재 오닐 공간사 강의(펌)

[봄눈]

용재오닐 공간사 강의 (2008년 10월 29일)

공간사 강의: 리처드 용재 오닐



안녕하세요.



한국어를 잘 못해서 오늘 강의는 영어로 진행해야 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로 비올라로 관객분들과 소통을 하는데 오늘은 비올라라는 악기 뒤에 숨을 수 없고, 저의 목소리로만 소통해야 하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인생의 “구조”에 대해서 조금 말씀을 드리고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저를 만들어낸 삶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삶은 제가 살아오면서 내린 많은 선택과 결정에 의해 빚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아껴주시고 챙겨주시는 분들의 좋은 조언을 늘 받으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1978년 12월 31일에 워싱턴 주의 시애틀 근처에 있는 벨뷰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의 이름은 이복순, 영어로는 컬린 오닐입니다. 할아버지는 페리, 할머니는 밀드리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병리학자이자 세계 2차 대전 참전자이셨고, 할머니는 대리 교사이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1958년 입양아로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으로 가기 전 한국의 길거리에서 생활하며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환경은 뇌에 손상을 입혀 발달 장애라는 결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제 조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셨고 타인을 도우며 사는 것을 임무라고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정말로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36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생활하셨습니다. 이 중에는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 가출 소년/소녀, 베트남 전쟁 반대주의자도 있었지만 모두를 똑같이 당신들이 낳은 아이들처럼 아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소외 받은 그룹에 대한 편견 없는 사랑의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생후 5개월 때 저와 저희 가족은 스큄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로 이사했습니다. 스큄은 올림픽 반도, 시애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대부분이 은퇴한 노년층으로 구성된 3000명의 적은 인구를 가진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15개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저의 저의 어머니는 스큄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 유일한 동양인, 어쩌면 올림픽 반도 전체의 유일한 동양인이었을 겁니다. 저희 조부모님은 저가 미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게 저를 미국인으로 키우길 원하셨고, 그래서 영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우셔서 저에게 한국문화와의 연을 남겨주셨습니다.

스큄에서의 어린 시절은 즐거웠습니다. 끝도 없는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여러 시간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었고 밖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 놀 때에 범죄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학교생활도 아주 잘 했습니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착실한 학생이었고 저희 조부모님은 저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늘 누군가를 돕는 분들이셨기 때문에 저희 조부모님은 가난했습니다. 대학 진학할 돈도 없어서 우표, 동전 등을 모아 되팔아 학비를 마련해보겠다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는 시도도 해보셨습니다.

조부모님은 고등 교육을 받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할머니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셨지만 할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제가 똑똑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픽 앤드 스펠”이라는 장난감도 사주셨습니다. “XXXX라는 단어의 철자를 대라”라고 말하면 올바른 철자법을 제가 입력하게 하는 장난감이었고 이것을 가지고 논 저는 훌륭한 “speller”가 되어 “스펠링 비”라는 철자법 맞추기 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스펠링이 뛰어나다고 대학에 입학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다른 방법, 즉 장학금을 타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저는 5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바로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집에 있던 수백 개의 클래식 음반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깍기 인형을 즐겨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제 음악 재능을 개발하는데 헌신적인 도움을 주셨고 레슨 때마다 차로 몇 시간씩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데려다 주셨습니다. 해가 가면서 운전 거리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1시간 거리가 2시간, 3시간 떨어진 곳이 되었고 따라서 저는 할머니와 단 둘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만으로도 나를 아껴주는 누군가가 있구나, ‘나는 꽤 중요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잦은 장거리 여행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 늘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을 즐기는 오늘의 저는 어쩌면 어린 시절 할머니와 같이 다니던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스큄처럼 작은 곳에서 제가 필요로 하는 음악 교육을 받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되어서 15살 때 미국 반대편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부모님을 떠나 갑자기 자유를 얻어 품행이 바르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서 혼란도 느꼈습니다. 실제로 룸메이트 두 명은 마약 거래로 퇴학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환경 속 외로움을 달래고 대학에 가겠다는 당시 뚜렷한 삶의 목표 때문이었는지, 저는 힘든 시간에 더욱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마침내 대학 실기 시험이 다가왔고 노스웨스턴 대학, 라이스 대학, USC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 통지서를 받았는데 USC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이 때 18살이었습니다.

LA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해변가도 아름답고 사람들 또한 다정다감했습니다. 학교라는 곳도 정말 마음에 들었고요. 여러 차례 공쿨에 나갈 기회도 있었고 LA필과 협연을 하며 데뷔 무대를 치르게 됐습니다.

불행히도 1990년도 7월에 갑작스럽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심장에 구멍이 난 것과도 같이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제 주변에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기는 처음이었고, 특히 할머니처럼 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죽음은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죽게 된다는 생각과 나 역시 언젠가는 죽게 될거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고 때문에 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저는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줄리어드에 가고 싶어서 피나는 노력을 했고 마침내 합격하여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에 이사간지 얼마 안돼서 불행히도 9/11 테러가 났습니다. 어느 날 귀가 길에 길에서 만난 놀란 표정의 여인을 통해 조금 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두 대의 비행기가 크래시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집으로 돌아가 티비를 켠 저는 충격적인 소식을 알고 세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걱정하실 어머니를 생각해서 무사하다고 바로 전화를 드렸지요. 이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역 이곳 저곳에는 월드트레이드 센터에서 일하던 가족/친지의 행방을 확인하려는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사건이 일어난 후 꽤 오랜시간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떼어지지 않은 이런 포스터는 정말 가슴을 찌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도에 비극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줄리어드에서 강효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교수님은 바로 저를 세종 솔로이스츠의 멤버로 뽑아 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는 이 앙상블의 멤버가 되고 삼성재단으로부터 받은 200만달라 짜리 비올라를 받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을 맞았습니다.

세종 솔로이스트 활동을 시작한 동시에 뉴욕의 아방가르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뉴욕은 현대 음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 슘베르크 음반을 내게 되었고 이 음반은 5년 후에 그래미상 후보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링컨 센터의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단원으로 뽑혀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라디오로만 들어왔던 분들의 연주에 동참하여 무대에 함께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곧이어 카네기 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갖게 되었고 유니버설 음반사와 음반 계약을 맺게 되고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이버리 피셔 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솔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되었습니다. 에이버리 피셔 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저의 첫 악기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연주자가 본인 소유 악기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한 환경의 어린 연주자가 귀하고 비싼 현악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현재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선택한 악기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지오반니가 1699년에 제작한 비올라였습니다. 세계 열 개 밖에 없는 이 악기를 구입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정말 특별하고도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UCLA에서 교수직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은 계기로 LA로 가게 되었습니다.

학계를 떠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른 예술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게도 공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과학에서 제시된 이론을 또 다른 학자가 반론하며 그 이론을 확인해 나가듯이 학생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저만의 음악 이론을 다지고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제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이제부터는 저의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는 것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창작을하게 하고 열정을 가지가 하느냐에 대해 생각해 보았더니, 조금 진부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결국 제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축복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목록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자주 부르던 “본인의 축복을 세어라, 하나하나 세어라”라는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이 가사는 여전히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그럼 지금 그 목록을 읽어보겠습니다.

첫째,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감사합니다.

둘째, 건강하기 때문에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어머니가 계시고 조부모님이 계셨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넷째, 제 삶속에 음악이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다섯째,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섯째,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일곱째,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런 날이 제게 올 것이라고는 생가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덟째, 제게 주어진 시간에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홉째, 아주 오래된 훌륭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열째,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인생에 고통이 있었기에 상대적인 행복을 분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에 행복합니다.

제게 감각이라는 것이 있어서 감각으로 인한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목적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심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에 맞설 용기를 가지고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을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겐 내보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배려와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머물지 않고 스스로에 대적해 내 자신을 조금 더 푸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하는 꿈이 제겐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소 긴 리스트이지요. 그런데 정말 제가 늘 마음 속에 되뇌는 것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22가지를 행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 있어 이것들을 늘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저의 창작 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몇 주 전 뉴욕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러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직업이 한 사람의 말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도중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집에 가서 한 번 이 질의응답 놀이를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답이 뻔한 질문일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재미있게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답이 모두 달랐습니다. 저의 경우 눈을 떠보니 해가 눈부시게 떠있었다는 등의 감성적인 답변을 늘어놓았죠. 다른 사람들은 반대로 이를 닦고, 커피를 만든다는 등 사실적인 내용을 이야기했죠.

예술가로서 내 안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론과 이론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내 안의 감정도 이론적, 구조적 해석이 필요하기 대문입니다.

연주 준비과정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지난 일요일에 예술의전당에서 2히 공연을 했는데요,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제가 15살 때부터 수차례 연주한 경험이 있어 아주 익숙한 곡이지요. 그럼에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정에 늘 긴장합니다. 말도 안 g고 불안해지곤 합니다.

오늘날 연주자의 어깨는 무거운 것 같습니다. 영화나 책의 경우 작업 후 수정/보완을 하여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무대 위에 오르고 난 후에는 중단을 할 수도 없고 되돌아가 편집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지 모릅니다. 그래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준비과정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 중에 “카네기 홀에 가는 방법 좀 알려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는 답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데요. 사람마다 연습하는 방법이 다르기 마련이고 저는 제가 연습에 임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 작곡가 중에 아놀드 셴베르크라는 12음 음악기법의 원조가 있습니다. 이 사람도 그랬듯 사람은 무언가를 분해한 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분해해놓은 것들이 다시 하나의 큰 덩어리로 모아지지 않을 때 짜증을 내죠.

무언가를 분해하기 위해서는 큰 덩어리를 작은 단위로 잘라서 분석하죠. 연주가들 중에는 책을 읽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품을 먼저 훑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작은 부분부터 보기 시작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연주 방법은 무의식이 내 연주를 지휘하게 놔두는 것인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해석이 몸에 베어 무대에 섰을 때 무의식 중 세계가 연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무의식이 드러남으로써 좋은 연주를 하기란 어려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연습이 지루하고 재미 없을 수도 있지만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었을 때 비로소 그 안에서의 자유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예술의 비판과 해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에는 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전통이 있습니다. 연주자마다 이 전통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고 이 중에서 무엇이 옳고 잘못됐다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를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은 이게 맞다고 말씀하셨는데 너는 왜 다른 얘기를 하냐며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고요.

최근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바로크 음악의 이번 4집 앨범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낭만주의 음악 연주가로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8월 녹음을 하기 위해 독일에 갔을 때 아르테 뮤직 퀼른 이라는 고음악 앙상블과 작업을 하게 됐는데요 전통에 깊이 묻혀있는 것 같았고 때문에 큰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때에는 오늘날 연주에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 금지되어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것은 금물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실과 하나의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실과 이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모던 연주자로서 저의 임무도 그 공존하는 많은 사실과 이상을 모두 표현해내야 하고요.

예전에는 비판자가 소수의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무엇의 옳고 그름을 판단했습니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 속에서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블로그와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소수의 지식인만이 아닌 그 누구나 자신의 의견과 비판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친구이자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를 실력고 탤런트로 뒤흔들어 놓은 중국인 피아니스트 랑랑씨의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10년 전쯤에 그가 데뷔를 했을 당시 과도한 스테이지 매너 때문에 예술을 가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렸었는데요 랑랑 본인에게는 그런 연주 스타일이 생겨나기까지의 뒷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랑랑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너무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나는 깨달았다.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집중하느냐에 달려있다. 비판이 음악을 하게 해주지 않는다. 나는 비평가, 평론가들을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저도 한 번 크게 비판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탱글우드라는 곳 근처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공연장이었기 때문에 음향 확대 장치를 설치해야 했고 마이크는 오일리스트인 제 자리 바로 옆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제 연주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게 되었고요. 공연 다음날 리뷰는 주제 넘게 큰 소리로 연주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비아냥거리듯 비판하였고, 저는 제 잘못이 아니었기에 몹시 화가 났지만, 음향 장치를 설치한 사실이 알려지면 안됐었기에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비평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독일 작곡가 맥스 레거가 설명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명성 높은 한 음악 단체로부터 비판적인 리뷰를 받은 후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방에 앉아있다. 당신들이 쓴 리뷰가 지금 내 앞에 놓여져 있다. 잠시 후에 이 글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고 잊혀질 것이다.”



이제 잠시 음악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법을 제가 대학 초년 시절에 미술사를 공부했던 방법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고대 미술에서부터 르네상스까지의 수많은 종교적 그림, 성당 등을 공부하였는데 현대 미술에 대한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박물관/미술관을 찾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술을 감상할 때는 그 작품에 대한 개개인만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미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따라서 평가하는 기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직감입니다. 예술을 감상하는데 옳고 그름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실 때 참고하실 만한 가이드라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클래식 음악을 좀 들으시는지요?

아무도 안 들으십니까? 사람이 없어요~ 아 저기 한 분 계시는군요! 하하

클래식 음악은 지루한 것이고 부자들만을 위한 음악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이렇게 길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린 이유도 그 편견을 지워드리기 위함입니다. 저야말로 흔히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과 연관짓는 배경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이 음악은 제 인생을 바꿨주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 않으시는 분들께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전시회에서 벽에 걸려있는 한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처럼 우선 처음 듣게 되는 그 음악을 들을 때의 기분/느낌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세요.

그 다음에는 그 음악이 머리 속에 어떤 그림을 그려주는 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들려오는 음악이 과거의 어떤 감정이나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지…



이 세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방법이 흥미롭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듣고 있는 곡의 테마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클래식 음악은 대부분 하나의 주제선율이 있고 그것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이것이 잘 들리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반복해서 청취하시면 귀에 들리시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곡 특유의 리듬/박자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이후에는 곡에서 연주되고 있는 악기를 가려낼 수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이 소리를 내는 악기는 이것이다, 혹은 다른 악기다라고 말하며 듣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각 악기의 소리가 구분이 가능해지시면은 그 악기만의 특성을 찾아보십시오. 저 같은 경우 비올라는 어머니의 음성을 닮았다고 표현한 적도 있고 따뜻한 초코릿과 같은 악기라고 말한 적도 있지요.

주제 선율이 귀에 들리고 리듬도 들리시고 난 후에는 곡에 깔린 화음을 찾아보십시오.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음의 조화가 곡의 주제선율을 강조시켜주기도 최소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끝까지 다 들으신 후에는 곡의 전체적인 인상은 어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는 그 작품이 어떤 길이와 속도로 펼쳐지고 끝맺어졌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강하고 짧게 끝이 났는지 강약이 뚜렸했는지 등을 생각해 보시는거죠.

음악은 시간 요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미술과는 다릅니다. 미술 작품은 접하고 난 순간 이해를 하고 그 후에도 물질적으로 남아있지만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리가 됩니다. 빛의 속도가 소리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뇌가 그림을 보고난 후의 반응을 전달하는 속도와 음악을 듣고 난 후 그것을 머리속에서 정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음악은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감상해야 합니다.

미술 작품은 또 액자에 둘러싸여있지 않습니까? 음악은 이러한 프레임이 없습니다. 감상하게 되는 공간이 프레임이 될 수 있겠죠. 이것은 공연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경우는 녹음된 음반을 통해 감상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꼭 그렇게 단정짓기도 뭐하죠. 따라서 본인이 음악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직장에서, 잠들기 전에, 운전하면서 등 사람마다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 때와 장소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 중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을 감상할 때의 분위기가 그 음악을 즐기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긴 얘기를 간추리자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공연장을 찾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그리고 혹 실수로 악장 사이 박수를 쳤다 할지라도 무대 위에 있는 연주자들,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자면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관중석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클래식이 생소하게 여겨지시는 분들이 공연장을 찾는 것은 제가 현대, 국제 갤러리 등에 들어가서 중국 자기 등을 볼 때와 다를 것이 하나 없습니다. 중국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용기를 내어 그런 곳을 드나들 수 있다면 여러분도 얼마든지 공연장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이제 실내악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12살 때 처음으로 흔히 12명 이상, 20명 이하의 단원들이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실내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주에 있던 집에서 가까운 실내악 캠프에서 처음 이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때가 처음 집을 떠나 몇일밤을 보내보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음악이란 고독한 예술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연습하느라 혼자 보낸 시간이 참 많았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협력하여 작업을 할 수 있는 예술형태이고 이 과정에서 서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실내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음악에 있어서 1+1+1+1 = 4가 아니라 16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4명의 연주자들이 모여서 내는 소리는 16명이 힘을 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4명이 연주하는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16사람이 모여 낼 수 있는 울림과 여운을 남길 수 있다고 합니다. 합심하여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이룬 가장 큰 일 중에 하나도 실내악단 앙상블 DITTO를 결성한 것입니다. 솔로이스트로의 생활이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은 예술가끼리, 관객끼리, 그리고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나누고 소통하면서 그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앙상블을 창단한 것은 그리고 실내악이라는 것은 제 인상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 클래식 음악이 작곡됐던 당시 세상이 너무나도 많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기, 자동차, 컴퓨터, 산업의 발달 등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들이 지금은 가능해졌죠. 물론 스티브 라이쉬, 필립 글라스, 존 아담스 등의 미니멀리스트 작곡가들과 같이 굉장히 리드믹하고 반복적이어서 모차르트, 하이든 등 보다 이 시대 특유의 기계음, 소음 등을 지워내고 귀에 친근한 작품을 만드는 클래식 작곡가도 있습니다. 클래식도 많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특정한 소리를 막아내고 작품의 멜로디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미국 미니멀리스트 작곡가들의 곡을 한 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란 항상 작곡되는 시대의 특성에 맞춰지기 때문에 오늘날을 사시는 분들은 현대곡을 더 찾게 될 수도 있지요. 바흐의 골드베르크 협주곡 같은 것을 듣는 것은 물론 바깥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런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으시겠죠. 오늘날의 다양해진 클래식 장르의 폭을 잘 활용하시면 분명히 적합한 작품들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악기를 보시면 비올라가 바이올린보다 사이즈 크다는 것을 알아보실겁니다. 과학적으로 비올라는 바이올린의 손잡이 부분을 제외한 부분의 1.5배 길이 만들어지고요. 바이올린이 일반적으로 14인치라고 하면 비올라는 21인치 정도의 크기가 되는 거죠. 사실 그렇게 되려면 지금 제가 들어 보여드리는 것처럼 팔을 이렇게 많이 뻗어야 할 겁니다.

첼로는 신체에 딱 알맞게 맞춘 사이즈입니다. 더블 베이스가 만일 원래대로 크기에 맞춰져야 했다면 약 6피트(180cm)정도의 길이가 되야 합니다. 사다리에 올라가서나 연주가 가능하겠지요.

그래서 지난 시간 사람들은 악기의 크기를 조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악기가 그렇게 커서는 도무지 연주가 불가능하니까요. 비올라 중에 실제로 21인치 짜리가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수도사들이 연주했었죠, 이쪽에 이렇게 체인이 달려있었고요.

비올라는 결국 그 소리에 비해 사이즈가 작은 것입니다. 사이즈가 더 컸다면 그저 큰 바이올린과 같은 소리를 냈을 겁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5개의 추가음을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의 ‘라’와 비올라의 ‘라’는 굉장히 다른 음을 냅니다.



(연주)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팔이 길어지고 실제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해졌습니다. 비올라를 잡은 지금은 굉장히 포즈가 편안해졌죠. 연주자로서 악기를 쥐는 것이 신체적으로 편안한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행히 제 손이 비올라를 편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도 하고요.



(연주)



비올라의 어두운 음색에 매력을 느껴서 이 악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있습니다. 늘 첼로라는 악기에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그 아름답고, 커다랗고 묵직한 음을 내는 악기요. 바로 서서 연주하는 바이올린에서 앉아서 연주해야 하는 첼로를 전환하기에는 그때 너무 늦은 감이 있었고 그래서 비올라를 잡게 됐습니다. 바이올린도 물론 좋아합니다. 그 나름의 아름다운 음을 내지요. 그런데 이 비올라는… 제가 정말 사랑합니다.



이 비올라의 경우 아치가 굉장히 넓은 편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깊은 음을 내게 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깊은 소리를 선호합니다. 다른 비올라 중에는 조금 더 가벼운 소리를 내기도 하거든요. 또 어떤 비올라들은 굉장히 커서 연주자와 악기에 따라 비올라의 소리가 첼로의 소리처럼 들리실 때도 있을 겁니다. 사실 저는 이런 점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때로는 깊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첼리스트 인 것처럼, 또 어떨 때는 빠르고 가벼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출처 : CIELOS http://www.crediacielos.com>

[운정]

멋진 강연이었습니다. 정말 사려깊고 반듯한 우리의 젊은이를 보는 즐거움까지 더하게 만들더군요.

[서예린]

멋진 글 옮겨다 주신 봄눈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글은 나눠야 효용가치가 더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