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이유정
관심
전설의 녹색 연필 ㅎㅎ
8년 만에 연락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서 이런 짤막한 답이 왔습니다. 독일의 필기구 브랜드 파버카스텔 스토리를 취재하기 전,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른 ‘연필 전문가’가 한 장관이었는데요.
한 장관의 연필 사랑은 법조 취재기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얘기입니다. 그는 2015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 조세조사부 부장 시절부터 기자들에게 연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펜잡이’라고 불리는 기자들에게 자기가 쓰던 연필 클립을 나눠주기도 했고요.
지난해 8월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 회의에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그의 손에 들린 녹색 연필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당시 한 장관은 “마음이 번잡할 때면 연필을 깎는다”고 하더군요. 검투사가 칼을 갈 듯, 한 장관은 연필을 깎아온 셈입니다. 그의 ‘연필깎이’는 기자가 법조 분야를 떠난 후에도 계속됐나 봅니다. 장관이 된 이후에도 공개 석상에 종종 연필을 들고나온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한 장관이 말한 ‘전설의 녹색 연필’을 구글에 검색해 봤습니다. 파버카스텔의 시그니처 연필 ‘카스텔 9000’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파버카스텔 가문의 6대손 오틸리에의 남편 카스텔 백작이 1905년 직접 디자인한, 말 그대로 ‘전설적(legendary) 연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더군요.
파버카스텔은 ‘연필 덕후’들이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브랜드입니다. 1761년 독일 바이에른주 슈타인의 목수 카스파어 파버의 작은 공방에서 탄생한 이후, 260년 넘게 예술가와 문호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고흐, 괴테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가 대표적이죠.
챗GPT의 인공지능(AI) 시대인 오늘날에도 파버카스텔은 여전히 아날로그 필기구 시장의 강자로 남아 있습니다. 문득 비결이 궁금해졌습니다.
아니 그런데, 아직도 연필을 쓰는 사람이 (한 장관 말고도) 더 있단 말인가요. 이 질문의 답도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목차
“연필은 아름다워야”
262년 연필 왕조 이야기
초연결 시대, 연필에 빠진 2030
佛 상젤리제 메운 1700개의 책상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호모 아키비스트
이 기자’s pick: 연필 도서 3권
파버카스텔의 카스텔 9000 연필로 ‘브랜드로 본 세계'를 그렸다. 이어 취재한 내용들도 스케치북에 기록하며 기사를 정리했다. 오른쪽 위 ‘브랜드로 본 세계’ 손글씨는 인플루언서 '펜크래프트' 유한빈(30)씨가 적어줬다. 이유정 기자
“연필은 아름다워야”
파버카스텔은 당초 2대손 안톤 빌헬름 파버의 이름을 딴 'A.W.파버'란 사명을 썼다. 1928년 이후 파버카스텔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사진 파버카스텔 홈페이지 캡처
영국의 디자이너 가이 필드가 쓴 『연필의 힘』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연필은 연간 150억~200억 개로 추산된다. 이 중 절반 넘는 물량을 중국이 생산한다. 나머지 상당수는 인도에서 만든다. 영국·미국의 중소 연필 회사들은 줄도산하는 가운데, 파버카스텔만은 꾸준히 매년 20억 개의 연필·색연필을 생산하고 있다. 오히려 ‘강소 브랜드’로 각광받고 있다.
이를 두고 라이언 라파엘리 하버드 경영대학원 부교수는 2017년 하버드대 팟캐스트에서 “파버카스텔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이 브랜드가 연필의 미적 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급 필기구이자 ‘손안의 명품’이라는 차별화 전략이 먹혔다는 의미다.
파버카스텔 창업주가 “아름다운 연필”을 강조했다는 이야기는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1761년’이라는 업력을 로고에 명시한 건 연필 업계에선 처음이었다. 1890년 출시된 체코의 코이누르 하르무트사의 노란 연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파버카스텔은 차별화를 위해 연필에 짙은 녹색 페인트를 입혔다. ‘연필로 창을 이긴다’는 의미로 마상 창 시합 로고를 금박으로 새기고, 고급스러운 금속 캔에 연필을 넣어 팔았다.
마상 창 시합을 하고 있는 두 기사의 로고는 파버카스텔의 고급화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연필로 창과 칼은 물론 잉크 펜과 각종 필기구를 이긴다'는 파버카스텔 일가의 의지도 볼 수 있다. 사진 파버카스텔 홈페이지 캡처
1300원(자루당 300~500원짜리 국산에 비하면 비싼 편!)이면 살 수 있는 카스텔 9000부터 1000만원대 ‘그라폰 파버카스텔 만년필’까지, 연필·샤프·만년필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춘 것도 ‘생활 속 명품’ 이미지에 도움이 됐다.
물론 산업 발전과 시대 변화에 따라 부침도 겪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계산기 사업을 접었고, 코로나 팬데믹 땐 학교들이 닫아 매출이 급감했다. 유럽 기업데이터 업체 노스데이터에 따르면 파버카스텔의 매출은 2017년 6억6700만 유로에서 2021년 4억5200만 유로로 떨어졌다. 전 세계 8000명이 넘던 직원을 6500명으로 줄여야 했다. 그래도 엔데믹 이후엔 두 자릿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연 매출을 약 6억4920만 유로(약 9098억원)로 예상하는데, 전년에 비해 19.9% 상승한 수치다.
262년 연필 왕조 이야기
독일 바이에른주 슈타인의 파버카스텔 성. 1945년부터 49년까지 이곳은 미군에 의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취재하기 위한 외신 기자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사진 파버카스텔 홈페이지 캡처
파버카스텔은 1대 창업주 카스파어 파버가 공방에서 하루 5자루의 연필을 만들었던 이래 262년째 9대가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연필 기업 중에 한 가문이 경영권을 독점적으로 지켜온 사례는 흔치 않다. ‘노란 연필’을 유행시킨 체코의 코이누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유화됐다가 1992년 민영화됐다. 독일의 스테들러는 연필 시장 경쟁이 본격화했던 1880년대 창업주에서 크로이처 가문으로 회사가 넘어갔다.
파버카스텔 가문도 1800년대 중반 ‘형제의 난’을 겪었다. 4대손이자 장남인 로타어(1817~1896)가 가업을 물려받자, 차남·삼남이 뉘른베르크와 미국 뉴욕에 별도의 파버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본사와 브랜드 이름을 놓고 소송전까지 벌였으나, 결국 파버카스텔 그룹에 흡수됐다.
6대 때는 남자 후계자들이 모두 병사한 탓에 당시 16세의 장손녀 오틸리에(1877~1944)가 상속자가 됐다. 오틸리에의 할아버지 로타어는 “파버란 이름을 사명에 유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때문에 오틸리에는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하우젠 백작과 결혼하며 성(姓)을 ‘파버-카스텔’로 바꾸게 된다.
6대손 오틸리에(왼쪽)와 남편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베르크 백작. 사진 파버카스텔 홈페이지 캡처
오틸리에는 카스텔 백작 사이에서 장남 롤랑트(1905~78)를 포함한 아이 5명을 뒀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카스텔 백작이 벨기에의 성으로 이주하면서 다른 이와 사랑에 빠졌다. 오틸리에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며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남편에게 보내고 집을 나갔다. 당시엔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7대손 롤랑트는 대공황·전쟁 등 격동의 시대 속에 회사를 지켜냈다. 그는 부유한 유대계 은행가의 딸과 결혼했으나, 당시 독일을 휩쓴 반(反)유대주의 탓에 7년 만에 이혼했다. 집권 나치당이 1935년 9월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 겸 특별 의회에서 ‘독일인과 유대인의 결혼을 금지한다’는 법을 통과시킨 지 몇 달 만에 부부는 헤어졌다.
1906년 완공된 슈타인의 파버카스텔 성은 현재도 본사로 쓰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땐 나치 정부에 의해 점령됐고, 연합군이 승리한 뒤인 1945년부터 49년까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취재를 위한 외신 기자실로 쓰였다. 미국의 종군기자 출신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이곳에서 취재를 했다고 전해진다.
김경진 기자
독일 본사 슈타인 성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연필 비
지난 2011년 파버카스텔이 공개한 '연필 던지기'. 바닥에 떨어진 연필들은 8대손 안톤 볼프강 그라프 폰 파버카스텔이 25m 높이의 성 꼭대기에서 던진 것이다. 사진 파버카스텔 유튜브 캡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통 큰’ 투자를 한 게 파버카스텔의 생존 비결로 꼽힌다. 19세기 연필의 대중화 시대엔 ‘연필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이 때부터 파버카스텔은 시베리아 흑연 광산 개척, 브라질 숲 매입 등 공급망을 망라한 고품질 전략을 실행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1861년 무렵부터 20세기 초까지 ‘연필=파버’로 불릴 정도로 파버카스텔 연필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됐다. 특히 4대손 로타어 때 둥근 형태였던 연필이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육각 형태로 만들고, 길이를 174㎜로 제작하고, 16단계 경도(6H~8B)로 분류했다. 파버카스텔의 이같은 혁신이 업계 표준이 됐다.
파버카스텔은 요즘도 본사인 슈타인 성 꼭대기(25m 높이)에서 연필을 던져 내구성을 실험한다. 바닥에 떨어진 녹색 연필들을 깎아 흑연심이 부러지거나 손상 없이 유지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초연결 시대, 연필에 빠진 2030
팍팍한 서울살이에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그저 앉아서 손글씨를 열심히 썼던 '펜크래프트' 유한빈(30)씨는, 10년 만에 유튜브 구독자 9만, 인스타그램 구독자 6만의 인플루언서가 됐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영국의 한 컨설팅 회사는 2022년 세계 나무 연필 시장 규모를 133억9390만 달러(약 17조5100억원)로 추산했다. 아울러 오는 2029년까지 연평균 7.7%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치도 내놨다. 이런 시장 전망의 배경엔 2030이 주도하는 ‘손글씨 열풍’이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올 초 기준 틱톡·인스타 등에 #손글씨(#handwriting) 관련 포스팅은 무려 74억 개. 손글씨, 연필 스케치를 찍어 공유하는 게 젊은 세대에겐 일종의 놀이이자 밈(meme)이 됐다. 손글씨와 스케치를 통한 힐링 열풍은 초연결 사회의 피로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투영한다. 또한 이조차도 소셜미디어(SNS)로 게시하는 요즘 세대의 복잡성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2015년 무렵 시작된 컬러링북(어른용 색칠공부) 열풍도 색연필 부문 매출을 견고하게 이끌고 있다.
1993년생 유한빈(30)씨는 서울 망원동 동교초등학교 앞에서 동백 문구점을 운영한다. 10년 전 상경한 그는 팍팍한 서울살이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손글씨를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펜크래프트’란 이름의 인플루언서가 된 한빈씨의 유튜브·인스타그램 구독자는 약 15만 명에 달한다.
지난 9일 동백문구점에서 만난 그는 기자에게 “연필의 손맛은 아이패드로 그리는 그림과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서울 연남동의 연필 전문 가게 ‘흑심’도 몇 년 전 젊은 여성 미술 작가 두 명이 합심해 시작됐다. 이곳에선 20세기 초반 미국·독일제 골동 연필을 구할 수 있다.
佛 샹젤리제 메운 1700개의 책상
올해 6월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서 '세계 최대 받아쓰기 대회'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교육계에서 ‘손글씨 유용론’이 힘을 받는 것도 연필 시장을 유망하게 하는 배경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2010년 이후 미 학교들에서 폐지됐던 필기체 의무 교육을 되살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교육 당국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저하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통적으로 손글씨, 작문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선 지난 6월 전 국민 받아쓰기 대회가 열렸다. 대회를 위해 수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전체를 막고 1700개의 책상을 놓았다. 10대부터 70대까지 참가자 1700명이 연필과 샤프, 볼펜으로 동시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물론 “기업 실무에선 디지털 기기 활용법이 더 중요하다”는 반박도 여전히 나온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종이 문서를 줄이고, 각종 행정 업무를 전자화하는 추세다.
다만 학습 과정에선 “손글씨가 도움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2014년 프린스턴대와 UCLA대 연구진은 대학생들에게 짧은 강연을 연달아 보여줬다. 한 그룹은 손으로 필기하게 했고, 다른 그룹은 노트북만으로 타이핑하게 한 뒤 관련 내용을 묻는 시험을 봤다.
실험 결과 환경에 관계없이 손글씨 그룹의 시험 점수가 일관되게 높게 나왔다. 이를 두고 연구진은 “노트북으로 받아친 학생들은 손글씨 필기 그룹보다 65%나 많은 정보를 기록했지만, 생각 없이(mindless) 받아치면서 기억력이나 개념적인 이해력은 떨어졌다”고 풀이했다.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호모 아키비스트
'칼의 노래' 등을 쓴 김훈 작가는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집필을 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200자 원고지'를 파는 문구점이 의외로 흔치 않았다. 어렵게 구한 원고지에 정진규 시인의 '연필로 쓰기' 시를 필사해 봤다. 이유정 기자
파버카스텔을 취재하는 시간은 곧 카스텔 9000과 함께하는 여정이었다. 무엇보다 고소한 나무와 흑연 냄새가 정겨웠다.
동시에 연필은 ‘시간의 사치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 빈곤자’인 상당수 직장인에겐 연필은 너무 느리다. 사실 기자는 처음 이 기사를 원고지에 카스텔 9000으로 쓰려고 했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방대한 양의 문단을 옮기고 문장을 서너 개씩 재배열하는 일은, 연필 쓰기에만 의지하기엔 솔직히 너무 불편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흑연이든, AI 손가락이든…수단이 그렇게 중요한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지난 9월 실린 “손글씨만이 정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내용의 칼럼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암기 능력을 떨어뜨린다”며 글쓰기 자체를 반대했다는 거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제자인)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꼬집었다.
스승님의 생각도 가볍게 무시하는 ‘기록 본능’. 뭐가 됐든 간에 손에 잡히는 대로 끄적이고 퍼뜨리길 좋아하는 게 ‘호모 아키비스트(Homo Archivist, 기록하는 인간)’인 우리 존재의 본질은 아닐까. 이런 본능이 있는 한, 스마트폰 첨필 시대에도 연필은 당분간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 같다.
필기구의 진화…인류 최초의 연필은?
고대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각종 역작들은(원본은 없지만) 파피루스에 기록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깃펜과 잉크는 주요 기록 수단이었는데, 잉크는 휴대하기 어렵고 한번 틀리면 수정하기도 어려워 불편함이 컸다.
이후 인류는 납을 뾰족하게 만들면 연하게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납 첨필과 밀랍 서판은 한동안 휴대용 필기구로 애용됐다. 훗날 납 성분이 ‘1도 없는’ 흑연으로 만든 연필(鉛筆)에 ‘납 연’자가 들어가는 이유다. 영어로도 흑연은 그래파이트(graphite) 또는 검은 납(black lead)으로 불린다.
근대적 개념의 연필은 언제 등장했을까. 영국 디자이너 가이 필드는『연필의 힘』에서 “1560년경 이탈리아 시모니오 베르나코티 부부가 나무 막대기 속을 파내고 흑연 심을 끼운 게 최초”라고 썼다. 반면 미 듀크대 공학자 헨리 페트로스키는 “1565년 나무 연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있을 뿐, 누가 처음 나무에 흑연을 끼워 썼는지는 알 수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전하고 있다.
페트로스키에 따르면 연필 발달사에는 몇 가지 중요한 모멘텀이 있었다. 첫째, 1560년대 초 영국의 컴벌랜드 보로데일 광산에서 질 좋은 흑연이 우연히 발견됐다. 당시 영국 정부는 보로데일 광산을 국가 보안 시설로 취급했다. 흑연은 지금의 코발트·리튬 같은 전략 광물이었다. “광부들이 입에 흑연을 몰래 한입씩 물고 나오면 하루 일당”일 정도였다.
두 번째 분기점은 프랑스의 공학자 니콜라스 자크 콩테가 현대적 연필심 제조법인 ‘콩테 공법’을 발명한 때(1794년)다. 이후 꼭 영국산 흑연을 쓰지 않더라도, 질 좋은 연필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후 상품으로서 연필의 대중화를 이끈 건 파버카스텔을 필두로 한 독일 연필 기업들의 사업 감각이었다고 페트로스키는 평가하고 있다.
이 기자’s pick: 연필 도서 3권
세상에 별의별 ‘연필 덕후’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회사에서 가까운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연필’을 키워드로 나온 도서들 가운데 세 권을 골랐다.
📌『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연필의 역사부터 연필의 제조법까지 연필 백과사전이다. 미 듀크대 공학·역사학자인 저자가 안식년 동안 직접 고문서들을 뒤져가며 집필했다. 정부·학계 기록에 의한 고증을 중시했다. 다만 미국의 연필 산업 발달사에 좀 더 중점이 가 있다.
📌『연필의 힘』 가이 필드
연필의 역사, 역대 연필 덕후 등을 삽화와 함께 소개한다. 연필에 관해 상식선에서 훑고 싶다면 추천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수천만 달러를 들여 우주용 볼펜을 개발하다 실패했는데, 소련의 우주비행사들은 그냥 연필을 썼더라” 등 검증 안 된 비화들도 있다.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펜크래프트, 흑심 등
국내 도서·펜·연필 인플루언서들의 연필 예찬 에세이. MBTI ‘T(이성)’ 성향 독자들은 이들이 추천하는 연필 목록을 참고하면 되고, ‘F(감성)’ 성향 독자들은 연필에 담긴 낭만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