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부 1
마슬로바가 끼여 있는 죄수 대열은 약 5천 킬로미터를 지나왔다. 페름까지는 마슬로바도 형사범들과 함께 기차와 배로 왔지만,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보고두호프스카야의 권고대로 그녀를 정치범 쪽으로 옮기려는 네흘류도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페름까지의 여행은 마슬로바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웠다. 육체적으로는 협소하고 불결한 공간과 짓궂게 달려드는 벌레 때문에 한시도 편히 쉴 수가 없었고, 정신적으로는 이러한 벼룩이나 이에 못지않게 징그러운 남자들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맛보았다. 그들은 숙박지마다 교대되기는 했으나, 아무리 교대해도 성가시게 쫓아다니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조금도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여죄수와 남죄수, 간수, 호송병들 사이에는 파렴치한 성적 방종의 관습이 있었으므로 여자는 누구나, 특히 젊은 여자는 만약 자신이 여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끊임없는 이 공포와 싸움의 상태는 매우 괴로웠다. 마슬로바는 특히 매력적인 용모와 누구나가 다 아는 그 전력 때문에 유달리 더 이런 습격을 받기 쉬웠다. 그녀가 귀찮게 집적거리는 남자들에게 응수했던 단호한 거절은 남자들에게 모욕으로 간주되어, 그들 사이에서는 그녀에 대한 증오심마저 생겨났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다소나마 그녀의 처지를 편하게 해준 것은 그녀가 페도시야와 타라스하고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처가 그런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타라스는 아내의 몸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체포당하기를 지원해서, 니즈니에서부터는 죄수로서 여행을 같이하고 있었다.
정치범 쪽으로의 이동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마슬로바의 처지를 개선해 주었다. 정치범들은 숙사도 식사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난폭한 대우를 받는 일도 적었는데, 무엇보다도 마슬로바가 정치범 대열로 옮겨 오면서 앞서 얘기한 사내들의 행패가 없어지고 지금의 그녀가 안타까이 잊으려고 애쓰는 과거를 줄곧 생각하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처지가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이 이동이 가져다준 가장 큰 이익은 그녀가 몇몇 인물을 새로 알게 되고 그들에게서 가장 유익하고도 결정적인 감화를 받았다는 점이다.
마슬로바는 숙박지에서만은 정치범과 함께 있도록 허락받았지만, 건강한 여성인 이상 행진은 형사범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톰스크에서부터 줄곧 이런 식으로 걸어왔다. 그녀와 함께 역시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 가운데 정치범 둘이 있었다. 한 명은 보고두호프스카야와 면회했을 때 네흘류도프에게 깊은 감동을 준 양처럼 상냥스러운 눈을 한 아름다운 처녀 마리야 파블로브나 시체티니나였고, 다른 한 명은 역시 면회 때 네흘류도프의 주의를 끈, 아미 맡에 눈이 깊숙이 꺼져 들어가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거무죽죽한 남자로 야쿠츠크로 유형되어 가는 시몬손이라는 정치범이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도보 대열에 끼게 된 것은 짐마차의 자기 자리를 임신한 여자에게 양보했기 때문이지만, 시몬손은 계급적 특권을 이용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 세 사람은 마차로 늦게 출발하는 다른 정치범들과는 별도로 언제나 아침 일찍 형사범들과 함께 출발햇다. 큰 도시에 도착하는 전날 밤 숙영지에서도 역시 그랬다. 그 도시에 도착하면 새로운 호송 지휘관이 수인대를 인계하게 되어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9월 이른 아침이었다. 싸늘한 돌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눈이 내렸다가 비로 변했다가 했다. 남자 약 4백 명, 여자 약 50명으로 이루어진 죄수들은 모두 숙영지 구내에 모여 있었는데, 일부는 각 반장에게 이틀 치 식비를 내주고 있는 호송 하사관 둘레에 모여 있었고, 일부는 숙박소 마당에 들어온 물건 파는 여자들에게서 음식을 사고 있었다. 돈 계산을 하거나 값을 흥정하는 죄수들의 떠드는 소리와, 물건 파는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카튜샤와 마리아 파블로브나는 둘 다 반코트에 머릿수건을 푹 쓰고 자오하 차림으로 숙박소에서 마당으로 나와, 물건 파는 여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물건 파는 여자들은 바람을 피해 북쪽 건물 담 옆에 앉아서 앞다퉈 서로 자기 상품을 권했다. 갓 구운 빵, 만두, 생선, 국수, 보리죽, 간, 쇠고기, 달걀, 우유 등이었다. 돼지 새끼 통구이를 파는 사람도 있었다.
고무 입힌 잠바를 입고 털양말 위에 고무 덧신을 노끈으로 잡아 맨 시몬손(그는 채식주의자였으므로 동물을 죽여 만든 가죽 제품은 사용하지 않았다)도 수인대의 출발을 기다리면서 역시 마당으로 나와 있었다. 그는 입구 계단 옆에 서서 머리에 떠오른 사상을 수첩에 적어 넣고 있었다. 그 사랑이란 이런 것이었다.
'가령 세균이'하고 그는 적어 넣었다. '인간의 손톱을 관찰하고 연구한다면 이를 무기물로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각을 관찰하고 지구를 무기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마슬로바가 달걀이며, 도넛 다발이며, 생선이며, 갓 구운 빵 들을 사서 자루에 넣고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물건 파는 여자에게 돈을 치르고 있을 때, 죄수들 사이에 동요가 일더니 곧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모두 정렬하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나와서 출발 전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모든 것이 여느 때처럼 진행되었다. 인원 점호가 끝나 족쇄를 검사하고, 수갑을 채우고, 행진하는 자는 둘씩 한쪽으로 묶였다. 그때 갑자기 지휘관의 노기등등한 외침 소리와 사람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조용해졌으나, 이윽고 웅성거리는 불평 소리가 군중 속에 퍼져갔다. 마슬로바와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소동의 현장으로 발을 옮겼다.
부활 3부 2
소동의 현장으로 접근한 마리야 파블로브나와 카튜샤는 다음과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큼직한 갈색 윗수염을 기른 체격 좋은 장교가 얼굴을 찌푸리고 죄수의 얼굴을 때린 오른쪽 손바닥을 왼손으로 문지르면서 쉴 새 없이 상스럽고 난폭한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그 앞에는 짧은 겉옷에다 더 짧은 바지를 입고 머리를 반쯤 깎인 깡마른 남자 죄수가 피가 나도록 두들겨 맞은 얼굴을 한 손으로 문지르면서, 또 한 손으로는 요란스러운 소리로 울부짖는 계집아이를 수건에 싸안은 채 서 있었다.
"이 자식아, 말썽 부리면 치도곤을 당한다는 걸 가르쳐주마. 애새끼를 여자들한테 넘겨주란 말이야." 장교는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고함을 쳤다. "빨리 채워!"
장교는 추방령을 받고 유형되고 있는 이 농민조합원에게 수갑을 차라고 요구했고, 이 농부는 톰스크에서 티푸스로 아내를 잃은 다음부터 자기 손으로 딸을 줄곧 안고 왔으므로 수갑을 찰 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기분이 좋지 않던 장교의 비위를 거슬러 순순히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해서 때려눞혀진 것이었다 (D. H. 리네프의 책 <수인숙박소>에 쓰여 있는 사실이다).
얻어맞은 남자 앞에는 호송병 한 명과 한 손에 수갑을 낀 검은 턱수염의 죄수가 어린아이를 안은 매 맞은 죄수와 장교를 어두운 표정으로 흘끔흘끔 번갈아 보며 서 있었다. 장교는 딸을 빼아스라는 명령을 호송병에게 되풀이했다. 죄수 무리에서는 불평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갔다.
"톰스크에서부터 수갑을 차지 않고 왔단 말이오." 뒤뜰에서 목쉰 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를 어디로 보낸다는 거요?"
"그런 법은 없어." 다시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야, 지금 말한 놈은?" 장교는 마치 벌에라도 쏘인 것처럼 죄수 무리 속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내가 법을 가르쳐주마. 누구야. 말한 놈은? 네놈이냐? 네놈이지?"
"모두 다 말했어요. 그건....." 얼굴이 넓적하고 뭉툭한 사나이가 말했다.
그는 말을 채 끝마칠 수가 없었다. 장교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네놈은 폭동을 일으킬 셈이냐? 폭동이 어떤 건지 보여줄까? 닥치는 대로 개새끼처럼 쏘아 죽일 테다. 그쪽이 더 상관한테 칭찬을 받을 거야. 자, 아이를 빼앗아!"
죄수 무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기를 쓰며 울어대는 딸아이를 호송병 하나가 떼어놓자, 또 하나가 순순히 한 손을 내밀고 있는 죄수에게 수갑을 채웠다.
"여자들에게 넘겨버려."
군도의 가죽 끈을 매만지면서 장교가 호송병에게 외쳤다. 계집아이는 수건 속에서 손을 빼내려고 바둥거리면서,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고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군중 속에서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나와서 호송병 쪽으로 걸어갔다.
"장교님, 저에게 이 아이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너는 누구냐?" 장교가 물었다.
"정치범입니다."
맑고 아름다운 눈을 한 마리야 파블로브나의 아름다운 얼굴이(장교는 인계받을 때부터 그 여자를 눈여겨보앗었다) 장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무슨 궁리라도 하는 듯이 말없이 그녈르 바라보았다.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좋도록 하시오. 이놈들을 동정해주는 것은 괜찮지만, 만일 탈주하면 누가 책임을 지지?"
"아이를 데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탈주할 수 있겠어요?"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말했다.
"당신하고 얘기할 틈이 없으니 원한다면 데려가요."
"내주어도 좋습니까?" 호송병이 물었다.
"내줘라."
"자, 이리 온." 계집애를 달래면서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말했다.
그러나 계집아이는 호송병 손에서 아버지한테로 가려고 바둥거리며 악을 쓸 뿐, 마리야 파블로브나한테는 오려고 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요, 마리야 파블로브나. 나한테는 올 거예요." 봉지에서 도넛을 꺼내면서 마슬로바는 말했다.
전부터 마슬로바를 알고 있던 계집아이는 그녀의 얼굴과 도넛을 보더니 그 손에 안겼다.
주위는 조용해졌다. 문이 열리고 죄수들은 밖으로 나가 정렬했다. 호송병들은 또 인원 점호를 했다. 짐마차에 배낭을 쌓고 새끼줄을 치고 그 위에 병약자를 태웠다. 마슬로바는 계집애를 안은 채 페도시야와 나란히 여죄수들 대열에 섰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줄곧 지켜보던 시몬손은 모든 지시를 마치고 이미 자기 여행 마차에 올라타려는 장교를 향해 성큼성큼 단호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당신이 하신 일은 옳지 않습니다. 장교님." 시몬손은 말했다.
"제자리로 돌아가 있어. 자네들이 참견할 일이 아냐."
"당신에게 꼭 알려야겠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당신이 한 일을 옳지 않습니다." 짙은 눈썹 아래서 뚫어지게 장교를 응시하면서 시몬손은 말했다.
"준비는 다 됐나? 앞으로 가!" 장교는 시몬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령을 내린 뒤에 마부인 병사의 어깨를 붙들고 마차에 올랐다.
죄수 대열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열은 길게 줄지어 양쪽에 도랑이 있고 마차 자국이 있는 밀림 속 진흙길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