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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게시판 스크랩 고조선은 연방국가!
나비우스 추천 0 조회 461 17.08.27 21: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조선은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을 통해 혈맹국으로 서로 왕래하며 단일 문화권에 연방국가였습니다.

 

환단고기에서의 잘못은 고조선이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고 저술하지만 지배한 것이 아니라 각기 국가와 혈맹국으로서 문화, 교역, 법과 제도, 풍습이 하나로 엮여진 연방제 국가였고, 단지 각기 국가에는 왕이 있었고 그 나라 국가 왕중에서 고조선에 단군이 선출직 대표로 뽑힌 일종에 대표직이였습니다.

 

한반도 또한 마한 진한 변한이 나뉘어져 있지만 각나라마다 왕이 있었고 그 각자국가에는 무사도 있고 제사풍습도 있고 농경도하고 유목도 하였지만 그나라에서 제일로 하는 특성을 나누어 움직였고 농사를 위주로한 국가, 사냥을 위주로한 국가, 제천의식을 위주로하는 국가로 나뉘어 있었으며 그리고 그들은 서로 물물교역을 하였으며, 어떠한 일정한 의식이 치루는 날을 잡고 모든 연방국가들의 대표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풍물놀이를 하면서 춤추며 즐겼으며, 각 국가연방에 국민들은 그나라에서 그날을 기념하면서 각자의 나라에서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그것은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방식인 전쟁을 통해서 다른나라를 침략해서 영토를 빼앗아 지배한 시스템이 아니였습니다.

 

즉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고 서로 혼인이 가능하고, 각 나라와 동의를 얻어 법을 하나로 통일하며 문화와 풍습 복장등이 흡사하게 일치 했던 연방제 국가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과거 고조선시대로 복기중인 것입니다.

.

즉 한국과 북한이 연방제 통일등으로 해서 앞으로 북한의 길이 열리면 우리는 과거 고조선 시대처럼 유라시아 대륙을 통해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유럽까지 왕래할 것이며, 유럽연합처럼 화폐가 단일화되고 여권이 필요 없으며, 자유롭게 왕래하며 문화와 교역을 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그 과도기에 있을 뿐이며 하늘은 그것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고려연방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같은 민족이지면 혈맹국으로 연방제국가를 완성하면 그것이 후에는 만주와 중국에 묘족 그리고 스키타이 페르시아, 아리안족인 독일까지 미칠 파장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철도와 도로와 수로를 개설하는 순간 단일 문화권이 형성되면서 어떠한 새로운 국가의 형태를 만들 것입니다.

 

 

한민족사의 주역 한국코리족의 위대한 역사 발자취

윤복현 역사칼럼

인류사적으로 민족사적으로 위대한 역사를 실현한 한국-코리아족의 발자취를 역사추적해 보기로 한다.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한반도와 만주,그리고 지나지역과 일본열도,유라시아-아메리카의 모든 한민족은 모두 한인.한웅.한검의 후예들이지만, 한민족 중에서도 머리역할을 했던 종족이 바로 코리족이다. 그래서 대한민국.한국.코리아라는 국호는 우리 민족이 앞으로 인류의 중심으로 부활한다는 미래적인 희망을 담고 있는 국호라 할 것이다.

 

 

 

한반도에 갇혀 살 것인가? 유라시아로 나갈 것인가?

 

유라시아 대제국을 건설하여 동서를 하나로 연결하고 현인류문명이 진보하는데 크게 공헌한 징기즈칸의 '몽골'은 [한단고기]에 기록된 '몽고리(마고리=마쿠리=말갈=메르키트)'에서 기원한다.

 

단군조선당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고리(몽골)과 어로수렵생활을 했던 고리(고구려)는 모두 단군조선(진조선)의 제후국들이였다. 수렵어로유목생활을 했던 고리족은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지로 삼고 유라시아를 경영했던 한국.신시배달국.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일본).몽골제국를 통치한 천손족(황족)이다. 고리족의 위대성은 고구려.고려,그리스의 아고라(아!코리아),아메리카(아!몽고리=메리키트=말갈),코란.거란(코리안) 등으로 남아 있다.

 

고구려.백제, 그리고 경주지역에 정착한 진조선.부여유민의 나라 사로국은 어로수렵생활을 했던 코리족 부여의 나라들이며, 4세기 이후 지나대륙에서 한족화된 흉노후예 김알지세력과 연합하여 경주지역의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신라를 개국한 주체는 바로 성을 선비족 모용씨에서 김씨로 바꾼 선비족이다.따라서 신라는 혈통적으로 당나라와 동일하며 유목생활을 했던 흉노.선비족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동맹이 이해되고, 부여족인 고구려와 백제의 군사동맹이 이해된다.

 

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하기도 했던 흉노.선비족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국통맥으로 따지자면 선비족의 나라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동맹을 통한 단군조선의 황족 부여족의 나라 고구려.백제를 공격하여 멸족시킨 행위는 반란행위이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폐륜행위라 할 수 있다. 황족의 나라는 그 만큼 전통이 있기 때문에 당당한 자부심도 강하고 위엄이 있고 질서체계가 명확하고 통합적 리더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후국들은 하위나라들이기 때문에 천황국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교육대상이며, 반란적 기질이 강하다.

 

 

수렵유목문화의 상징 신라왕관 유목문화의 상징 경주지역 적석목곽분

 

경주지역의 북방유목민들의 무덤(적석목곽분)이 이를 증명한다.

 

[한단고기]에 흉노의 시조는 단군조선당시 열양(황하북쪽지역)의 욕살(지방관) 색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색정이 폭정을 자행했는지 반란을 일으켰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단군이 약수(고비사막지역)으로 유배보내서 갇혀있게 한 후에 색정이 뉘우치자 약수지역의 다스리게 하는 관리로 봉하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색정을 시조로 삼는 흉노후예들은 유전적으로 보아도 어진 정치하고는 거리가 먼 족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시대에 최첨단기술에 해당하는 철제조기술을 일찍이 보유한 코리(고리)족은 현인류문명의 요람으로 부각되고 있는 요서지역(유라시아 초원과 만주-한반도를 연결하는 지역)을 터전으로 삼아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과 부여(고구려.백제=일본)의 지배족으로 군림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코리족이 유라시아 초원세력을 지배하고 서방.아메리카로 진출하여 청동기.철제무기를 개발하고 피라미드 문명을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방에서 문명이 이동해 왔다는 역사논리는 거짓말이다. 요서지역의 요하문명자체가 서방보다 훨씬 연대가 빠른 9천년전의 문명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요하문명은 바다가 되기 전 서해지역의 마고문명이다.다시 서해가 육지가 되면 대서양속에 감추어진 아틸란티스문명처럼 마고문명의 실체가 드러나리라 본다.

 

지나지역의 우두머리 황제헌원이 배달국에 도전하여 전쟁을 일으키자 치우천황은 배달국 신시(백악산 아사달-장춘)에서 북경지역인 청구로 수도를 옮겨 황제헌원과의 전쟁을 10년이 넘게 71회에 걸쳐 한다. 그리고 탁록에서 죽사발을 내고 황제헌원을 사로 잡아 신하로 삼는다. 이후 번개와 폭풍의 신으로 신격화된 치우천황은 동.서방에서 전쟁신으로 군림했다. 그리스 제우스(치우스)가 바로 치우이며, 중동지역에서 최초로 철을 제조한 히타이트족의 민족신이 바로 치우이기도 하다.그리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한 왕조가 치우왕조다. 치우족의 서방진출과 관련된다.그리고 지나에서는 진시황과 한나라 유방이 전쟁신으로 삼는 배경이다.

 

이 치우가 바로 청구지역(북경부근 난하강 지역에 살던 고리족)에 사는 고리족의 천자라고 지나국에 기록되어 있다. 고리족은 수렵생활을 했던 이유로 철제조기술이 일찍부터 뛰어 났다. 단군조선 후기 다물천황 때 국호를 부여로 고친다. 그리고 해모수가 개국한 나라도 부여다. 해상제국 백제의 황족씨도 부여씨다. 서울에서 충청도지역으로 수도이전을 할 때 웅진(곰나루)다음 지역을 백제 성왕 때 부여라고 정했다.

 

 

 

불을 상징하는 백제왕관

 

부여는 '불이야'에서 어원한다. 철제조에 필요한 불을 상징하는 나라명인 것이다. 바이칼호수지역 알흔섬지역에 사는 브리야트족이 바로 '불이야'족이다. 이 브리야트족은 본래 흑룡강지역에서 살았던 부여족인데, 광개토태왕이 부여를 정벌하면서 몽골지역으로 이주시킨 부족이다. 흑룡강지역의 코리족을 몽골지역으로 이주시킨 셈이다. 징기즈칸의 출생지를 몽골에서는 이 알흔섬지역으로 본다. 징기스칸의 부족인 몽골은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북부여 즉 '부리얏트'족 후손이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시조 볼테치노는 탱그리(단군-하느님)의 천명을 받아 태어났으며 10대를 지나 '알랑고아'란 모계로 이어지고 알랑고아에서 다시 12대가 지나 징기스칸이 태어났다. 1대를 30년이라 보면 약 700년 전이 바로 볼테치노 시대이다. 징기스칸이 1155년에 태어났으므로 징기스칸의 시조 볼테치노가 4세기 후반의 인물이고 이때가 바로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군주인 광개토대왕의 통치시기이다.

 

따라서 징기즈칸 조상인 코리족이 바로 고구려의 이주정책에 따라서 바이칼 호수지역으로 이주해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동부여에서 망명해 온 고추모가 당시 한나라 침략을 물리치고 민족영웅이 되는 바람에 해모수왕조를 접수한 동명성왕 고두막이 지배하고 있던 북부여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아들이 없었던 고무서단군의 둘째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단군에 오르자 이에 고추모 왕위계승에 반대한 토착세력이 바로 바이칼 호수지역으로 이주한 코리족 부여(브리야트족)이며, 고구려와 부여의 정통성을 놓고 싸운 만주와 한반도지역에서 패권을 다툰 구태백제세력이라 할 수 있다. 요서지역에서 한반도 평안도(대방군)지역으로 100가구를 데리고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바람에 백제가 된 구태백제는 이후 한강지역에 십제를 개국한 고주몽 아들 온조세력을 통합하고 서남해 해상세력(마한해상세력)을 흡수하여 서남해 바다를 장악하여 해상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단군한검은 단군조선을 개국한 후에 이 치우족에게 철을 제조하는 일을 맡겼다. 고리족은 본래 북경지역에서 살다가 흑룡강지역으로 이주한 것 같다.고구려가 선조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북경지역을 장악한 배경이기도 하다.

 

고리(코리)족 출신 고등은 단군조선 21대 소태단군 때 우현왕이였고, 백악산 아사달(장춘)에서 일어나 22대 단군천황에 올라 국가기강을 강화하고 지나대륙 동남부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한 색불루는 고등의 손자였고, 부여를 개국한 해모수와 계승한 고두막, 코리(고구려)를 개국한 고추모 모두 고리족 출신이다. 그리고 몽골지역으로 이주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경영한 징기즈칸 역시 고리족의 후예다. 우리 민족또한 위대한 고리(고구려)족의 후예로 역사의 주역이 되야 한다.

 

몽골족으로 편입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코리(고리.구려)족

 

[몽골비사]에서 몽골의 시왕모는 알랑고아다.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을 잘 키워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몽골에서는 유득히 어머니에 관한 노래가 많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였다.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리(고리)족-투메트 부족의 귀족인 코릴라르타이-메르겐, 어머니는 바르코진-고아였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 가족이 살던 곳은 사냥감이 많은 축복받은 땅. 그러던 어느날 이 곳에서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사냥을 못하게 만든 코리-투메트 부족과 사이가 아주 나빠졌다. 결국 그는 그들과 결별하고는 코리라르라는 새로운 씨족을 만들었다. 코리라르타이-메르겐이란 코리라르의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메르겐이란 말은 보통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이미 코리-투메트 부족과는 결별했지 않은가. 이제 그들은 남이다. 보르칸칼돈이란 산에는 큰 사냥감이 아주 많다.

 

알랑-고아는 도본-메르겐과 결혼해서 두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도본-메르겐은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고 알랑-고아는 아들 셋을 더 낳았다. 집에는 알랑-고아와 아들 오형제 밖에 없다. 다섯 형제를 제외하고 남자라고는 오직 도본-메르겐이 주워 온 노예 한 명이 있을 뿐이였다. 몽골족을 통합하고 유라시아를 경영한 징기즈칸의 선조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고, 지금까지도 몽골인들이 아버지보다도 더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존경하고 모시는 역사적 배경이라 하겠다.

 

 

 

몽골 북서부 자우황아이막에 있는 만년설산 오트깅 텡게르를 자수로 표현했다

 

몽고의 기원은 작은 몽고리 마을에서 기원한다.[한단고기]에 보면 몽고리는 단군조선시대부터 존재했으며, 4대 오사구 단군의 동생 오사달이 몽고리 칸으로 임명됐다.

 

단군조선시대부터 존재하던 몽골족(4대 오사구 단군의 동생 오사달이 몽고리칸으로 몽골족의 시조)은 본래 유목생활을 하던 북방 한국인들이고, 고리족은 어업과 수렵을 주로 하던 북방 한국인들인데, 코리족은 이동이나 어업에 동물의 기름으로 방수처리를 한 가죽 보트나 북미 인디언들이 썼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카누 비슷한 것이 이용된 듯하다.

 

따라서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강을 따라서 살았던 코리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리(코리)족의 일부(보르지긴씨족)가 몽골족속으로 들어가 훗날 몽골족을 통합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경영하게 되니 코리족 출신의 징기즈칸인 것이다.

 

지나국 기록은 고리국 또는 북부여를 대체로 서주시기 (BC12 - BC 8세기)경 이미 고리족의 본거지인 북경지역에서 흑룡강 지역에 이주해 와서 백금보 문명이라는 한 미니문명을 만든 부족으로 보기도 한다.

 

하여튼 부여와 고구려가 개국하기 전 고리족이 씨족, 또는 부족 국가 형태로서 흑룡강 중류와 상류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몽골비사에 기록된 코리족의 군장으로서 알랑고아의 아버지 설화와도 관련되는 이야기로써 코리족이 몽골족과 헤어져 흑룡강이나 구 만주 쪽으로 이동한 이유를 당시의 먹는 문제와 결부시켜 봐야 한다.

 

즉, 본래 목축을 전문으로 했던 종족인 몽골족은 더 목축하기 좋은 몽골초원 쪽으로 이미 흩어져 들어갔을 것이다. 강가에서 살던 코리족은 가장 동쪽의 몽골족과 같이 있다가 동쪽 구만주쪽으로 더 이동해 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 때 중국문헌에서 청동기문명의 주역인 맥족 또는 코리족이라고 부르던 종족은 수렵과 채집 그리고 내륙 민족 답지 않게 어업으로 먹고 살았었다. ( 어업은 나중에 흑룡강 연안에 살던 흑수 말갈들이 이어 받는다)

 

 

 

코리족의 이동경로(노란색)-왜 산동.양자강지역에서 북상했나?

 

그 배경은 [한단고기] 23세 단군 아홀 때의 기록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갑신 원년(BC 1237년), 웅갈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은나라 땅에 여섯 읍을 설치하는 것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은나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서 결판을 보지 못하니 마침내 병력을 진격하여 이를 쳐부셨다.을유 2년,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靑邱)의 임금, 구려(句麗고리.코리)의 임금과 주개에서 회합하고,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성책을 부수고, 깊숙히 오지로 들어가 회.대의 땅을 평정하더니...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기세를 두려워 했다."

 

산동.양자강유역의 코리족이 정착하거나 본래 자기 터전(몽골지역.북경지역 청구)을 찾아서 북상했다는 의미가 된다. [한단고기]는 이 처럼 우리 민족사의 고대사를 명확히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산동.양자강유역에는 단군조선의 유적유물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으며 지역의 풍습 또한 단군조선의 풍습으로 증명되고 있다.

 

흑룡강은 이동하기 좋은 교통로 였었고 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사는 식량의 보고이다. 평소에는 이동에 작은 보트를 썼을 것이고 겨울에는 결빙한 강위로 썰매를 이용했을 것이다. 러시아 민족의 시베리아 개발사를 읽어보면 겨울의 결빙한 강처럼 더 좋은 고속도로는 시베리아에 없었다.

 

[몽골비사]에 의하면 AD 8 세기경 코리 부족은 흑룡강 상류와 하류에 걸쳐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거주했었다. 후기의 연구에서도 이 지역에 고리국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부여가 길림.농안.장춘 지역에 있다고 했으니 북쪽에 있었던 이 지역은 부족국가 상태였을 고리국, 또는 고리족이 살던 북부여 (北夫餘)였을 것이 분명하다.

 

할힌골이 흘러 들어가는 보이르 호수는 지나국과 몽골의 국경을 이루는 경계선에 위치하며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길이가 40킬로미터, 폭이 21 킬로미터이다. 마치 조개 같은 모양으로 실제로 호수에 많은 민물 조개가 산다.

 

보이르호는 오르숀 강을 통하여 헐런호로 물을 흘러 보내는데 이 헐런호는 흑룡강의 상류로 흘러가는 지류로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결국 보이르호는 흑룡강과 통한다고 하겠다.

 

보이르호 지역에 대리석으로 만든 석인상(石人象)이 하나 있다.

 

이런 지역 배경을 가진 지역의 촌로는 역사적 증언을 들려 준다.

 

“저 석인상의 동쪽에는 고리 사람이, 서쪽에는 몽골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곳 할힌골에는 살고 있는 고려인과 몽골인은 서로 내왕이 잦았고 서로 혼인을 하였다. 예컨대 초원에서 양부족의 여자들이 오줌을 누다 만나면 몽골 여자들은 왼쪽 손을, 고려 여자들은 오른쪽 손을 들어 흔들어 서로간에 우의를 표시했다. 고려인들은 할힌골에 성을 쌓고 살았다.그 성의 페허가 남아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이곳에 오랜 세월 살지 않고 동남쪽으로 이동해갔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보이르호 지역에서는 달랐다. 먼저 중국과 국경이 있는 몽골의 최 동단(東端)인 보이르호 지역에서는 1920년 몽골이 독립 할 때까지 한국(또는 조선)을 고올링고스라고 불렀다. 고올리(고구리=고구려)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때까지 솔롱고스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더해서 몽골학자에 의하면 이 지역의 주민들은 신체적인 조건이나 각종 풍속이 몽골에서 한국인들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한국과 몽골 학자들에 의한 이 할힌골 일대에 대한 탐사와 조사가 92년도, 그리고 93년,94년 여러 곳에서 실시되었다.

 

여러 유적 중에는 95년 6-8월까지 실시한 이루어진 숨팅토이롬 고올리 성읍터에 발굴에서는 고구려 석실 무덤 2기와 벽화 고분을 발굴하여 도깨비 무늬 숫막새 기와등의 고구려 유물이 많이 나왔었다.

 

고구려가 최대 강성할 때도 고구려 영토 북방의 경계선(흥안령) 밖일 수 있었던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고리의 유적이 고구려의 것과 거의 같은 특징을 가졌다는 것은 고리와 고구려가 강한 유대가 있었던 관계임을 입증한 것이다.(몽골족은 성을 만드는 일이 드물다) 쉽게 말한다면 고리와 고구려는 같은 민족이라는 추측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였다.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리-투메트 부족의 귀족인 코릴라르타이-메르겐, 어머니는 바르코진-고아였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 가족이 살던 곳은 사냥감이 많은 축복받은 땅. 그러던 어느날 이 곳에서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사냥을 못하게 만든 코리-투메트 부족과 사이가 아주 나빠졌다. 결국 그는 그들과 결별하고는 코리라르라는 새로운 씨족을 만들었다. 코리라르타이-메르겐이란 코리라르의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메르겐이란 말은 보통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이미 코리-투메트 부족과는 결별했지 않은가. 이제 그들은 남이다. 보르칸칼돈이란 산에는 큰 사냥감이 아주 많다.

 

알랑-고아는 도본-메르겐과 결혼해서 두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도본-메르겐은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고 알랑-고아는 아들 셋을 더 낳았다. 집에는 알랑-고아와 아들 오형제 밖에 없다. 다섯 형제를 제외하고 남자라고는 오직 도본-메르겐이 주워 온 노예 한 명이 있을 뿐이였다. 몽골족을 통합하고 유라시아를 경영한 징기즈칸의 선조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고, 지금까지도 몽골인들이 아버지보다도 더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존경하고 모시는 역사적 배경이라 하겠다.

 

 

 

몽골화가 쳄벨도르즈의 그림, 마음속의 성산-부르칸 산

 

알랑고아 아버지는 사냥을 아주 잘했다는 것으로 보아 주몽처럼 화살을 매우 잘 쏘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모수의 직계후손(해모수 둘째아들 고진의 손자 불리지의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낳기만 하고 키우지 않는 사생아 출신으로 사방을 떠돌아 다니며 고생 고생하며 살았던 고구려 개국시조 고추모의 고난이야기와 같다. 고추모가 동부여 금와왕의 시기질투를 받아 무리를 이끌고 북부여(골본부여)로 망명하여 왕이 되었다가 토착부여인들의 반대로 다시 졸본천(심양방면)으로 이주하여 혼강 위 골본성(오녀산성)에서 bc54년에 고구려의 터를 잡은 고추모야 말로 마치 알랑고아의 아버지의 신세와 같다 하겠다. 우리 민족사의 아리랑이다.

 

 

 

밝은 산(불함)이라 불렸던 백두산 모습. 촬영:백두산 전문 사진작가 이정수

 

 

그리고 알랑고아 아버지가 이동한 몽골의 부르칸산은 바로 눈이 덮여 '밝은 산'을 의미하는 백두산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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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한국코리아인가?

 

위 지도에서 보듯이 세계 최강 4대강국과 얽혀있는 나라가 우리말고 또 있는가? 4대 강국의 한복판에 자리하면서 그렇게 모진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고 버텨낸 이 저력은 무엇인가!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고리를 가진 반도 국가가 있는가? (이탈리아는 반도 국가이지만, 거대 대양으로 뻗어 있진 않다.) 과거, 대륙에 우리만큼 거대한 연고권을 가진 국가가 있는가? 다종교를 수용하는 국가면서도 우리처럼 종교적 균형잡힌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미래에 세계를 선도할 사명을 가졌다고 말하는 민족은 히브리족(슈메르인 아브라함을 선조로 하는 유태인)과 한민족이 유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시원은 우리 한민족과 한뿌리(한국=>슈메르=>이스라엘)를 공유한다.그러나, 히브리족은 민족의 구성면에서 혼혈화로 순수성을 잃었고, 이미 종교가 히브리 민족을 나타내는 요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히브리족 다수를 구성하는 아슈케나지 유태인은 이미 혈통적으로 진정한 히브리족이 아니다.

 

물질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히브리민족과 정신문명을 지배할 한민족의 영적 전쟁에서 과연 누구 승리할 것인가? 그것은 정신문명이 공허한 작금의 세계상황에서 물질문명을 선도할 정신문명민족이 인류의 중심민족이 될 수 밖에 없다. 한민족에게는 일부 우리가 남이가 유전인자들을 제외하고 유전학적으로도 어질고 순박하고 의롭고 살리기를 좋아하고 주기를 좋아하고 섬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인심을 사로 잡고 인류평화를 주도할 우리 한민족과 한반도의 미래는 매우 밝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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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가 증언하는 단군조선 시대 인물들

단군 왕검(王儉)-제1대 단군

부루(扶婁.단군왕검의 태자)-제2대 단군

부소(扶蘇.단군왕검의 차자)-구려(君)에 봉해짐. 해모수의 선조의 고향임.

부우(扶虞.단군왕검의 삼자)-진번(君)에 봉해짐

부여(扶餘.단군왕검의 사자)-부여(君)에 봉해짐. 대부여, 북부여, 동부여, 설부여(서라벌, 東明, 신라), 남부여(백제)의 부여라는 국호가 여기에서 시작됨.

*8봉후국 : 구려, 진번, 부여, 청구(靑丘君.고시씨 후손), 남국(藍國君. 치우천왕 후손), 예(濊. 여수기), 개마(개마. 朱姻), 숙신(肅愼), 9. 옥저(선라) 기타(비류, 졸본, 낙랑, 몽고리, 남선비, 고죽(君), 서(徐), 회(淮), 엄(淹)...)

*몽고리, 낙랑, 남선비는 단군의 아우가 봉해진 나라

*고죽국의 성씨가 묵(墨)씨라 함. 묵자는 고죽국의 후손이 된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고죽국이 은나라 제후국으로도 적혀 있음.

*구려는 고구려의 원조, 진번은 진한과 번한의 중간지역으로서 요동반도 좌측 지역으로 추정되고, 부여는 하얼빈의 서쪽에 있는 부여라는 지역이며, 청구는 치우천왕의 수도였던 산동지역이며, 남국은 산동지역 남쪽 지역으로 추정되고, 예국은 백두산 동쪽 지역, 개마는 백두산 남쪽 지역, 숙신은 송화강 유역, 옥저는 예의 서쪽 지역이 된다.

*낙랑은 번한의 관할하에 있고 발해만 유역으로 북경 우측지역이 된다. 서국은 서언왕의 나라로 유명하고, 회국은 회수 지역에, 엄국은 청구와 남국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다.

*숙신은 시대에 따라 말갈, 읍루, 여진 등으로 적히고 있다.

*구이의 분포로 따진다면, 청구, 남국, 서, 회, 엄은 남이(藍夷) 지역이고, 구려, 진번, 부여는 황이(黃夷) 지역이며, 예는 우이(于夷) 지역이고, 개마는 양이(陽夷) 지역이며, 숙신은 방이(方夷) 지영이고, 옥저는 방이와 우이의 중간지역이 된다. 우이, 양이, 방이는 원래 황이의 파생족이다.

*구이 : 황이, 백이, 남이, 현이, 적이, 우이, 양이, 방이, 견이-황이는 황인종, 백이는 백인종으로 서쪽 사막(서안 서쪽 지역)에 거주하고, 현이는 흑인종으로 흑룡강 유역에 살며, 적이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양자강과 그 이남 지역에 살고, 견이는 원래 황이의 파생족으로 삼위산에서 서안 부근에 걸쳐 백이 근처에 살았음. 남이는 갈색피부(아마도 푸른 색을 띠는 갈색?)를 가지고 황하~산동~양자강에 걸치는 섬지역에 주로 살았다 함.

팽우(彭虞)-풍백(風伯)(=원보(元補))

신지(神誌)-기록 담당

고시(高矢)-농사 담당

순(舜.虞나라 임금)

우(禹.夏나라 시조)

도라(道羅.비류국 제후)

동무(東武.졸본국 제후)

선라(仙羅.옥저국 제후)

대련(大連.攝司職)-4선인(仙人)의 한분.

* 4선인 : 발귀리(서기전3500년경), 자부선인(서기전2700년경), 대련(서기전2240년경), 을보륵(서기전2180년경)

소련(小連.司徒=교육 담당)

귀기(貴己)-신지

가륵(嘉勒)-제3대 단군

석자장(石子丈)

나함연(邏함蓮)

오사구(烏斯丘)-제4대 단군

가록(嘉綠)-가륵의 동생

을보륵(乙普勒)-삼랑(三郞). 4선인의 한분.

고설(高契)-태수관(太修官) *契은 소리가 "글"로서 글과 관계가 있는 글자임.

색정(索靖)-열양욕살(요동태수)-흉노의 시조

고신(高辛)-태학태사(太學太師=태학의 스승(국립대학 총장))

*태학은 지금의 국립대학을 가리킴. 논어 중용 대학의 대학은 대학에서 가리키는 학문임.

애묘(愛苗)-반란자로 실단(悉段)에서 토벌

강거(康居)-반란자로 지백특(支伯特=티벳)에서 토벌.

*티벳은 한국 배달 단군조선의 영역이었음.

여수기(餘守己)-9봉후국 중 예(濊)국 제후

소시모리(素尸毛犁)-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여수기가 진압하여 참함.

*일본의 이세신궁은 천조대신을 모신 신궁인데, 여기에 남아 있는 원시한글에 ..."...두디도리 하마 요하유가 수이 시두다후"라 하고 있는데, 이 두디도리가 바로 두지주의 추장이었음을 나타내며 "요하유"는 "오(大)하(日.해)류(靈)"가 변한 말이며, 대일령존은 바로 천조대신임.

*협야노(陝野奴)-소시모리의 후손으로서 일본의 참칭 왕=신무천황(서기전660년~)으로 추정.

*원래 협야후(陝野侯)는 협야의 제후를 가리키는데, 배반명이 협야후였고, 그를 따르던 형제중에 신무가 있어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권력을 잡아 천황이라 참칭하여 협야노로 적인 것이 됨.

구을(丘乙)-단군 오사구의 태자

오사달(烏斯達)-몽고리한(왕)-단군 오사구의 동생.

*한(汗)은 왕과 같은 계급으로서 다만 군사권이 없고 천왕(단군)의 명을 받아야 하는 점에서 군사권을 가진 왕과 구별된다. 단군조선에서 군사권을 인정해 준 왕국은 원칙적으로 없었고 서기전323년 기후가 윤허를 받아 번조선왕이 되었으며, 비왕(裨王)인 삼한(三韓)과 그 아래 군(君), 후(侯)가 있었고, 왕에 버금가는 한(汗)이라는 제후가 있었다. 욕살이 승진하여 한(汗)이 되기도 하였다. 단군조선에서 왕이 된 경우는 서기전1289년 우현왕이 된 고등이 처음이며 서기전1286년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이 되었다가 군사쿠데타로 서기전1285년 단군이 되었다. 군(君), 한(汗), 후(侯)를 왕(王)이라고 적기도 한다. 즉 후(侯)이상의 제후를 그냥 왕(王)이라고 적는 것이다. 대부(大夫)는 왕이라 적지 않고 대부라 적는다.

*고대중국의 하, 은, 주나라는 자칭 왕국인데, 단군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라는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자칭 왕국이라 한 것이고 단군조선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거나 봉해준 사실이 없어 내놓은(포기한) 자식처럼 묵인한 왕국이었고, 은나라와 주나라는 하나라를 이은 나라이므로 자치 왕국으로 묵인된 것임.

상(相)-하나라 왕-실덕하여 어지러워지자 단군조선이 정벌함

식달(息達)-남(藍), 진(眞), 번(番)의 군사를 이끌고 하나라 왕 상을 정벌

소나벌(蘇奈伐)

달문(達門)-단군 구을의 태자

유응씨(有應氏): 번역자로 소나벌이 정벌

황보덕(皇甫德)-감성관(監星官=천문관측 담당)

한속(翰粟)-단군 달문의 태자

을지선(乙支仙)-단군 달문의 재상

연석천(淵石泉)-단군 달문의 상장(上將)

진무경(陳無競)-단군 달문의 섭사직

관기을(關基乙)-단군 달문의 숙정사(肅政使)

소강(少康)-하나라 왕-신년하례 옴

갈모후(葛毛侯)-반란자로 정벌함-갈모의 제후인 듯

팔부루(八夫婁)

발리(發理)-신지-서효사(誓效詞)를 지음

우서한(于西翰)-단군 한속의 태자

윤파로(尹巴老)-방사(方士)

온백(溫伯)-주부(主父)

아술(阿述)-단군 우서한의 태자

지우속(支于粟)-상장(上將)

오간(烏干)-재상

노을(魯乙)-단군아술의 태자

우착(于捉)-청해(靑海) 제후-반란자

우지(于支)우속(于粟)-우착의 반란을 진압-지우속(支于粟)과 같은 인물로 추정

고소(高蘇)-국법전서 편찬자

을성문덕(乙成文德)-상장(上將)

도해(道奚)-단군 노을의 태자

혁보(赫普)-태자태부(太子太傅=태자의 스승)

풍오(風五)-수상

내양(來良)-용가(龍加), 호군(護軍)

이아한(伊阿漢)-숙정처장(肅政處長)

엄년(嚴年)-반란자. 제후국인 듯

지우속(支于粟)-엄년의 반란 진암

아한(阿漢)-단군 도해의 태자

유위자(有爲子)-태자태부,국태사(=국자랑의 스승), 이윤(은탕의 재상)의 스승

근-하나라 왕-사절을 보내 조공함

왕조명(王朝明)-일토산(一土山=王山) 사람, 왕수긍의 후손으로 추정

신우(神祐)-하나라에 간 사신

홀달(홀達)-단군 아한의 태자

개기파(開基波)-재상

마간득(馬干得)-상장

홍경(弘景)-간관(諫官), 간의대부(諫議大夫)

걸(桀)-하나라 왕

탕(湯)-은나라 왕

한불배(韓不倍)-청아(菁莪)대부(=丕信) *불배와 비신은 한자가 오기될 가능성이 많고 성씨가 한(韓)이 됨.

고사심(高士深)-옥저 대부(=高士琛)

신돌개(申突蓋)-맥(貊) 대부

고불(古弗)-단군홀달의 태자

이윤(伊尹)-단군조선 국자랑 스승을 지낸 유위자의 제자. 상(은)나라 탕왕의 재상

한작(寒爵)-하나라 신하-하나라를 되찾고자 단군조선에 도움 요청

양무(楊武)-수상

단성자(段成子)-상장

벌음(伐音)-단군고불의 태자

팽운(彭雲)-수상

오성(吳成)-상장, 만고후의 반란 진압

만고후(晩考侯)-반란자-만고의 제후인 듯

현육(玄育)-도적

위나(尉那)-단군벌음의 태자

단간선(段干仙)-태자태부

소갑(小甲)-은나라 왕-화친 요청

우속(禹粟)-약수(弱水)에서 금, 철, 기름 채취

고선(高仙)-단군 벌음의 숙부. 반란음모 발각으로 자살

벌심(伐心)-단군 벌음의 동생. 남선비(南鮮卑) 달단왕(達단王=大人?)으로 봉함

태무(太戊)-은나라 왕 -조공함

여을(余乙)-단군위나의 태자

유덕자(有德子)-유위자의 아들. 태자태부

신우천(新尤天)-전략가

황극을(黃克乙)-수상

동엄(冬奄)-단군여을의 태자

외임(外壬)-은나라 왕. 참성단 제사를 도움.

송술(宋術)

고수노(高수老)-국태사. 정법원론(政法原論) 지음. 국사 편찬

하단갑(河亶甲)-은나라 왕. 조공하지 않아 정벌하고 사죄받음.

종년(縱年)-단군동엄의 태자

약목(若木)-수상

김내물(金乃勿)-상장

고홀(固忽)-단군 종년의 태자

종선(縱鮮)-단군 종년의 동생. 청아왕(菁莪王)

*청아왕은 왕국의 왕이 아닌 친왕(親王=곁에 두는 왕)인 듯. 왕국의 왕은 군사를 부리는 권한을 가짐.

서여(西餘)- 청아왕 종선의 증손. 기자조선(奇子. 서기전1285년~)의 태조.

황운갑(黃雲感)-지남차(指南車), 목행마(木行馬) 발명

목아득(牧雅得)-우주원리론 저술

지이숙(支離叔)-주천력(周天曆),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 저술

소태(蘇台)-단군고홀의 태자

을홀(乙忽)-공공(共工). 구한(九桓=구이)의 지도 제작

상유덕(尙有德)-태자태부

소을(小乙)-은나라 왕. 조공함

여심심(黎尋心)-창해군(滄海君)에 봉해짐

무정(武丁)-은나라 왕. 귀방, 색도, 영지 침범. 정벌당하고 화친을 청하고 조공함. 단군색불루에 조공.

고등(高登)-개사원(蓋斯原) 제후. 우현왕(右賢王)으로 임명됨. 이름을 두막루(豆莫婁)라 함.

홀나(忽那)-단군소태의 아우. 회을왕(回乙王)에 봉해짐. *회을왕은 회을한(汗)의 다른 표기로 보임. 왕은 독자적인 군사권을 가지나 한(汗)은 원칙적으로 단군의 명을 받아 군사를 부릴 수 있다.

색불루(索弗婁)-우현왕 고등의 손자.

서우여(徐于餘)-살수 섭주(薩水攝主)=기수(奇首). 단군색불루에 의하여 번한에 봉해짐.

여원흥(黎元興)-단군색불루에 의하여 마한에 봉해짐.

개천령(蓋天齡)

아홀(阿忽)-단군색불루의 태자

육우(陸右)-신지

여파달(黎巴達)-여(黎)나라에 봉해짐

신독(申督)-반란자. 단군아홀 즉위년에 진압하여 참함.

연나(延那)-단군아홀의 태자

오한(吳漢)-태자태부

고불가(固弗加)-단군아홀의 숙부. 낙랑홀에 봉해짐. 단군연나 때 섭정.

웅갈손(熊乫孫)

금달(今達)-남국(藍國)의 왕. 남국군(藍國君)이라 함.

포고씨(蒲古氏)-엄(淹)에 봉해짐.

영고씨(盈古氏)-서(徐)에 봉해짐. 서언왕의 서국(徐國)이 됨.

방고씨(邦古氏)-회(淮)에 봉해짐.

아덕(阿德)-신독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고 참함. 재상

솔나(率那)-단군연나의 아우. 태제(太弟)로 봉함.

조대원(趙大元)-정치원론을 바침. 조(趙)나라 출신?

추로(芻魯)-단군솔나의 태자

주(紂)-은나라 왕.

희발(姬發)-주 무왕(武王)

기자(箕子)-서화(西華) 이주

노월소(路月邵)-북막 토벌

홍운성(洪雲性)-삼랑(三郞)

조윤국(趙允國)-재상

감라덕(甘羅德)-상장

두밀(豆密)-단군추로의 태자

자운(紫雲)-태자태부

강주문(姜周文)

이사금(尼師今)

오성원(吳聖源)

고주만(高朱滿)

위문국(魏文國)-정치론 바침

해모(奚牟)-단군두밀의 태자

황극명(黃克明)-태자태부

한진거(韓眞渠)-수상

김일황(金日黃)-상장

정지선(鄭知先)

마휴(摩休)-단군해모의 태자

황노명(黃老明)-태자태부

탁암(卓岩)-석고(石鼓)를 만들어 바침.

가락(가洛)-변한(弁韓) 사람

나휴(奈休)-단군마휴의 아우. 태제(太弟)로 봉해짐.

이장선(李長善)-태자태부

주태원(周太元)

왕문(王文)-한수(漢水) 사람. 부여인(夫餘人)이라고도 함. 부예(符隸)를 만들고 이두(吏讀)를 만듬.

신운선(申雲善)-재상

등올(登홀)-단군나휴의 태자

고력(高力)-상장

이공(二公)-주나라 사람. 단군조선에 조공함.

박달마(朴達摩)

주태보(周太甫)-서기전882년에 신주역서(新周易書) 바침.

부분석(扶芬錫)-정법원리론(政法原理論) 바침

추밀(芻密)-단군등올의 태자

조자문(曹子文)-단군조선의 중신. *조(曹)나라 출신으로 단군조선으로 와서 벼슬한 사람인 듯

오개(吳介)-상장. 병선(兵仙. 용병의 신선)이라 불리움.

고삼도(高三道)-태자태부

복승자(卜承子)

양화상(楊花相)

감물(甘勿)-단군추밀의 태자

문고(們古)-선비족 추장

호선(胡先)-주나라에서 온 망명객

원회(原檜)-진(秦)나라 사람

이문기(李文起)-초나라 대부

손흥렬(孫興烈)-반란자. 토벌됨.

오루문(奧婁門)-단군감물의 태자

한직(韓直)-주나라 사람.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침

우문술(宇文述)-송나라 사람. 서기전817년 주나라 제후들이 전란을 일킨 것을 고함.

황선문(黃先文)-유황발사총(硫黃發射銃) 발명

순길(舜吉)-장생불로단(長生不老丹) 발명

염선관(廉先官)-조(趙)나라 사람. 보옥(寶玉)을 바침.

범문(范文)-서기전801년 위(魏)나라에서 온 망명자

조석(趙錫)-환관(宦官)

사벌(沙伐)-단군오루문의 태자

서정년(徐正年)-태자태부

황태명(黃太明)-재상

강자삼(姜子三)-상장

을보천(乙普天)-채(蔡)나라 사람. 복술서(卜術書) 바침.

공명지(孔明之)-노나라 사람.

매륵(買勒)-단군 사벌의 태자

누경(屢景)-제(齊)나라 사람.

주태후(周太侯)-한(韓)나라 사람.

백측(伯則)-위나라 대부 입조

서춘문(徐春文)-오(吳)나라 태사(太史)

조태국(趙太國)-좌복야(左僕射)

육연(陸連)-조태국의 아들. 집 뒷뜰에 연이 돋았다함.

적인문(狄人問)-위나라 사람.

명문병(明文柄)-진(晉)나라 사람. 주공(周公)의 전장법도(典章法度)가 구비되었다 아뢰니 단군이 좋다고 함.

언파불합(彦波弗哈)-장군. 해상(海上)의 웅습(熊襲) 평정.

문술(文術)-초나라 문인(文人)

조육련(趙陸蓮)-재상

조을(祖乙)-단군 사벌의 명을 받고 연나라를 돌파하여 제나라 군사와 임치의 남쪽에서 전쟁하여 승리함.

마물(麻勿)-단군 매륵의 태자

서세모(徐世謨)

오자도(吳子度)-초나라 사람. 목면 종자를 바침.

설삼덕(薛三德)-화인(華人)

채저명(蔡著明)-정치형법서 전함

우문충(宇文忠)-오경박사. 유성설(遊星說) 저술

환선(桓善)-몽고대부(몽고리한, 몽고리왕?) *대부는 왕의 아래 계급!

우세숙(虞世叔)-성리학, 심리학 저술하여 바침

장세덕(張世德)-한(韓)나라 사람

배반명(裵반命)-협야후(陝野侯). 삼도의 왜인 반란 평정.

손숙문(孫叔文)-의학, 화학 저술하여 바침

다물(多勿)-단군 마물의 태자

유례(有禮)-모문(毛文)의 제후. 서기전639년 반란자로 토벌됨.

석무득(昔無得)-진(秦)나라 사람. 천리마를 바침

이선량(李善良)-재상

황학노(黃鶴老)-도인. 용사(龍師)

라 불리움.

양선자(養仙子)-장백산 도인.

두홀(豆忽)-단군 다물의 태자

진덕기(陳德基)-위나라 박사

신도회(申屠懷)-정(鄭)나라 사람. 무리를 이끌고 와서 귀화함.

표상술(表相述)-오성판윤(五城判尹)

염관(廉冠)-조(趙)나라 사람으로 가족을 거느리고 입국.

황노술(黃老述)-송나라 사람. 딸에게 명하여 단군의 태자궁에서 살게 함.

문해광(文海廣)-필법

오추정(吳秋亭)-문원상서(文院上書)

김일선(金日善)-진(晉)나라 사람. 천문지리학 바침.

노일명(老一明)-제(齊)나라 사람. 비단을 바침.

번석문(樊釋文)-초나라에서 온 망명자

달음(達音)-단군 두홀의 태자

섭이(攝珥)-슬후(膝侯)의 아들. 슬이라는 제후의 아들인 듯.

정상충(鄭尙忠)-송나라 사람. 50명을 이끌고 입국.

진충노(秦忠老)

음차(音次)-단군 달음의 태자

윤복지(尹卜地)-도덕경 저술하여 바침

진개(秦開)-서기전500년 치국요람(治國要覽)을 저술하여 바침

을우지(乙于支)-단군 음차의 태자

공상의(孔尙義)-종교론 저술하여 바침

물리(勿理)-단군 을우지의 태자

이일선(李一善)-철인(哲人=철학자). 천리경(天理經)을 저술하여 바침

백호돈(白好敦)-지리학, 광물학을 저술하여 바침

전굉(田宏)-제나라 대부로 망명한 자

형필(荊泌)-조(趙)나라 사람으로 귀화.

장자학(張子學)-논리학 저술하여 바침

우화충(于和沖)-융안(隆安)의 사냥꾼으로 장군이라 자칭하고 반란을 일으킴.

구물(丘勿)-백민성(白民城)의 욕살. 단군 물리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일으켜 장당경을 선점하고 우화충을 참하여 난을 진압하고 추대를 받아 단군이 됨.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라 함.

여루(余婁)-단군 구물의 태자

최화덕(崔和德)-동물학, 식물학을 저술하여 바침

소문경(蘇文卿)-위나라 박사

서백원(徐伯元)-사상의학을 저술하여 바침

황운원(黃雲元)-국학박사. 백과서 저술

유종득(柳宗得)-이재학(理財學)을 바침

적우순(狄于順)-심리학을 저술하여 바침

보을(普乙)-단군 여루의 태자

곽태원(郭太原)-양생론(養生論) 저술

마자은(馬子隱)-이기일원론 저술

묘장춘(苗長春)-연(燕)나라의 침범을 물리친 장수

누경(屢景)-정나라 사람. 누시계(漏時計=물시계)를가지고 입조. 이전에 제(齊)나라 사람과 동명이인.

대부례(大夫禮)-대산후(大山侯)에 봉해짐

장소부(莊召夫)-의학대방(醫學大方)을 저술하여 바침

홍문선(洪文善)-태학조문(太學條文)을 저술하여 바침

우문언(于文言)-번조선의 상장으로 연나라의침입을 막음.

오문은(吳文은)-송나라 학사

조문휴(趙文休)-자본론(資本論) 저술

소문술(蘇文述)-노나라 사람으로 예기(禮記)를 가지고 입국.

안사득(顔思得)-노나라 사람으로 주역을 가지고 입국

액니거길(厄尼車吉)-북막(北漠=몽고사막?) 추장

신불사(申不私)-번조선 소장(少將)

해인(解仁)-번조선왕으로 연나라의 자객에게 살해됨.

기후(箕 言羽)-수유(須유) 사람. 은나라 망명자 기자의 후손. 읍차(邑借).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왕이 칭하고 사후 단군의 윤허를 받음.

오성계(吳成桂)-반란자

장노술(張老術)

정발(鄭拔)-정나라 사람으로 음악을 가지고 입국

환윤(桓允)-단군보을의 외척

니사(尼舍)-북막 추장

한개(韓介)-수유의 군사를 이끌고 대궐을 침범하여 왕을 참칭하였는데 상장 고열가가 진압함.

고열가(高列加, 古列加)-단군 물리의 현손. 상장으로 한개의 반란을 진압하여 추대를 받아 단군이 됨.

소정국(蘇定國)-건축학 저술

구노선(毆老先)-종수학(種樹學) 저술

형운(荊雲)-연나라 대부로 망명한 사람

아리당부(阿里當夫)-북막 추장

해모수(解慕漱)-고리국(藁離國) 후손. 서기전239년 4월 8일 웅심산을 거점으로 군사를 일으킴. 수유 제후 기비를 번조선왕에 임명함. 북부여 시조

 

 

 

출처 http://cafe.daum.net/121315/BVCR/3257

 

아무래도 이 가설이 가장 합리적인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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