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 홍관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외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햇빛은
눈부시지만 선한 것만은 아니다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기울면
삶이 경사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좌우 대칭을 이룰 때까지
더와 덜을
천칭저울에 달았다
편견처럼 한쪽으로 기운 어깨에
눈길이 쏠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더는 덜하고 덜은 더하기를 반복하고서야
저울의 좌우 어깨가 대칭을 되찾았다
지루한 장맛비가 그치고
한쪽 어깨에 줄곧 내리던 길다란 통증도
그쳤다
-------------------------------------------------------
나무는 그런데
나무는 내 뒤통수를 수도 없이 봤겠지만
길가에서도 정원에서도 숲에서도
나는 나무의 뒤통수를 본 적이 없다
얼굴이 몇 개나 되는지
내가 나무에게 다가갈 때마다
방향에 관계없이
나를 맞아준 건 언제나 나무의 얼굴이었다
찾아오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무는
뒤통수를 보이지 않았다
뒤통수로 말하는 법도 없었고
내가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면
나무도 내 마음을 따라 돌았다
도는 방향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
뒤통수로 호박씨 까는 법 없이
모두에게 공정한 공정의 교범 같았다
나무는 그랬다
나무는 그런데
홍관희 | 1982년 《한국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랑 1그램』, 『홀로 무엇을 하리』 등이 있으며 나주시 남평 드들강변에서 카페 ‘강물 위에 쓴 시’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 게시글
신작시
홍관희-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외
사이펀
추천 0
조회 48
23.11.16 15:02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