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사망에 이르는 냄새...생명에 이르는 냄새 - 바울에 의해 선포된 하나의 설교가 두가지의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의 향기인 바울의 메시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의 악취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된다. 예수의 죽음이 평범한 한 인간의 죽음이며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그들의 생각에 따라 죽음을 맞게 될 것이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식하고 그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자기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실재가 선과 악, 생명과 죽음과 같이 두가지 효력을 발생하는 것에 대한 개념은 유대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었다. 그 한가지 예로 '토라'를 들 수 있는데 혹자는 소개하기를 "꿀벌이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는
꿀을 간직하고 다른 자들을 위해서는 독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토라의 말들은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의 약이고 세상 민족들에게는 죽게 하는 독약이다"라고 하였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 이것은 바울이 적대자를 염두에 두고하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요함으로 자신만만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름하는 중대한 사역을 인간적인 자격이나 능력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리 - 헬라 원문에는 이 귀절의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이유 접속사가 있다. 진정한 의를 얻는 소망은 율법이 이루어주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저 받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