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무 /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 [2005 농민신문]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
보름 달빛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부러진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여물 냄새를 풍기며 올랐다
봉당 무너져 내린 틈으로 구렁이 허물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오얏나무가 뒤울안에 새까만 알들을 수북이 낳아 놓았다
달빛이 알들을 품고 있었다
방에서 아버지 마른 기침소리가 났다
쪽문이 열렸다
이제 왔니
네 기둥은 비스듬히 개울을 향해 누워있었다
함석지붕에 베인 손바닥에서 붉은 녹물이 흘렀다
오래 전부터 나는 파상풍을 앓고 있었다
덧난 생채기에서 바람이 나고 있었다
바람은 집을 감싸고 휘 돌았다
마당귀 미륵 바위 그늘에서
질경이 씨가 여물고 있었다
달빛이 녹슨 괭이 날을 노랗게 벼렸다
오는 봄엔 굵은 물푸레 자루를 박고
비탈 밭을 팔 수 있을 거라고
널빤지 부엌문 앞에서
짤순이가 벌건 쇳물을 짜내고 있었다
보름 달빛 술렁이는 오래된 집에선
까만 알들이 부화되고 있었다
집이 일어나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뚫린 창호지 안에서 까만 눈의 아이가 마당을 보고 있었다
이제 왔니
당선소감-최종무
어린 시절 열병으로 돌 위에서 잠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돌은 시원함으로 나를 깊은 잠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돌의 시원함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다시 열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욕망이 끓어올라 몸을 벌겋게 달구었습니다. 폐지 통에 처박혀 있는 원고 뭉치를 상상하며 또 하루를 뭉그적거리고 있던 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비로소 나는 시원한 돌에 상기된 몸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어깨를 누르는 두려움의 무게를 느껴야 했습니다. 소식을 듣는 순간 반평생 자식 위해 홀아비의 고된 삶을 사시다 이름없는 들풀처럼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늦은 시작이지만 성대한 결실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좌절할 때마다 격려해주시고 지도해주신 정선생님,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소박함으로 나를 채워주는 아내, 침착하고 정확한 거엽, 항상 여유의 웃음을 머금은 민엽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 영광은 먼 길 떠나실 때 시집 한권 넣어드리지 못한 아버님 영전에 바칩니다.
*심사평-신세훈, 이승훈
총 992편의 응모시 속에서 최종심사까지 오른 작품은 7편이었다. 〈봄빛의 모습〉 〈밥이 내게 말한다〉(추민규),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줄〉〈아버지의 낫〉(최종무), 〈아직은 뿌듯하게 차오르지 않았다〉〈논은 늘 파도를 담고 산다〉(나영미) 중에 어느 작품이 뽑혀도 상관없을 정도로 모두 수준급들이었다. 〈봄빛의 모습〉은 ‘어머니 걸어 나오신다’ ‘익사’ ‘세월’의 시어가, 〈밥이 내게 말한다〉는 ‘당신’(5회), ‘사정없이 올려붙인’ ‘식구’들이 문제가 됐다. 〈아직은…〉과 〈논은 …〉은 ‘바람과 햇빛과 시간’ ‘…다오’(4회) ‘기억·평화·전설·수직·기운…’과 같은 시어가 감점이었다. 결국 〈오래된…〉〈줄〉〈아버지의 낫〉 3편이 남았는데 〈아버지의 낫〉은 소재와 제목이 흔한 점이, 〈줄〉은 ‘이상한·허공·의문’들의 시어가 감점이었고, 주제가 좀 약했다. 그래서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를 뽑았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이미지의 직조가 돋보였다. 농촌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아버지와 아이들의 가족제도와 윤리 정신이 퍽 안정되고 아름다운 그림같은 풍경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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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식 / 집시가 된 신밧드 [2005 대구매일신문]
집시가 된 신밧드
대리석 바닥 틈으로 발을 밀어 넣은 이끼
널브러진 빵조각을 뜯어먹는 푸른 곰팡이
빌붙어 사는 것들도 푸르를 수 있는 그 곳
서울역 지하도 바닥에 사내가 잠들어 있다
종일토록 모래를 이고 날랐을 머리칼 사이
탈출한 사막의 알갱이들도 빌붙어 잠잔다
맹독의 백사처럼 또아리 틀고 치켜든 고개
수건 하나만 사내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신밧드처럼 사내는 저 수건을 머리에 감고
대 낮 온통 사막을 짊어 날랐을 것이다
신밧드를 태우고 날던 양탄자 끝이 풀려있다
드문드문 찢어진 흔적, 상처들이 선명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에 길을 잃은 양탄자
캄캄한 비행, 도시 어느 빌딩 숲을 헤치다
빌딩을 박고 도시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사고는 어린 신밧드의 꿈들을 바스러뜨리고
양탄자의 나는 기능을 상실케 했던 것이
영혼은 밤이면 막차를 타고 어디로 떠나는가
멀리 해가 뜨는 사막을 비행하는 꿈으로
양탄자를 돌돌 말고 잠든 신밧드
그가 따뜻해 보이는 이유는 무언가
심사평]
예선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3편 중에서 다시 논의된 작품은 '집시가 된 신밧드' '무위도' '백설 호랑나비' '어린 골파' '오징어를 구우며' '옹이' '허공' '해변 여인숙' '남편의 외투' '엇각' '문진 메시지' '물속지도' 등이었다.
심사를 계속한 결과 최후까지 당선을 다툰 작품은 '집시가 된 신밧드' '어린 골파' '오징어를 구우며' '남편의 외투' '해변 여인숙' '엇각'이었다. '해변 여인숙'은 한편의 풍경화를 능란하게 그리고 있는 솜씨는 좋았으나, 시적 밀도가 약하다는 의미에서 제외됐다.
'어린 골파'는 유년의 아픔을 골파 냄새와 연결시켜 젖어오는 서정적 물결로 처리하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투고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었다. 이 점에서는 '엇각'도 마찬가지였다.
'오징어를 구우며'는 치열한 시정신이 돋보였으나, 굽고 있는 오징어와 화장터와 죄수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남편의 외투'와 '집시가 된 신밧드'였다.
둘 다 놓치기 어려운 작품이었으나 시적 상상력이 유니크하다는 점에서 '집시가 된 신밧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신인이 보여주고 있는 '얽힌 실타래 푸는 법'이라는 작품도 특이한 시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당선작에서 노숙자의 모습을 유머와 페이소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높이 살만했다.
권기호(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 정호승(시인)
[당선소감]
함께 시를 읽으며 늘 격려하던 아내, 야윈 내 두 팔을 결국 푸르게 만든 아내 김현아와 딸 지민이에게 모든 기쁨을 넘기고 싶다. 사랑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처제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내 형 서영준, 서영직, 하나 밖에 없는 누나 서미화, 친형 같은 자형 정광석, 그리고 늘 곁에서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오늘을 빌어 머리 조아리고 싶다.
나의 서툰 펜 자국에 채찍으로 길을 터주신 채석준 시인님께 은혜 잊지 않을 것임을, 훈훈한 '시마을'의 양현근 시인님과 모든 문우들. 또 나의 동인 '프리즘' 멤버 원성용, 김장진, 노우석, 정영경, 신미순, 유선희, 이군선, 한윤경, 이강희, 이현호, 김명의, 신재한, 백서윤님께 고맙고 사랑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춘문예 당선, 그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야 온전한 입 하나를 얻었다. 입이 있으나 침묵하는 사람의 입이 되라, 세상 모든 무생물과 생물의 입이 되어 침묵만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크게 외치라.
그렇게 소외된 모든 것들의 언어를 뱉어내라고 온전한 입 하나를 달아주신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지치지 않을 것이고 희망을 잃지 않겠다. 오직 사물의 입이 되어 살면서 이 은혜를 시로 대신해 갚아가겠다.
▒ 약력 ▒
△ 1973년 부산 출생
△ 프리즘 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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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 즐거운 제사 [2005 문화일보]
즐거운 제사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신춘문예 심사평]감칠맛 나는 문장 묘한 울림
시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열다섯 명의 작품이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응모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삶의 궁핍과 고단함의 구체적 경험을 다룬 시가 의외로 많았다. 형식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경향보다는 무난한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신인다운 패기와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박지웅과 노양식씨의 작품이었다. 노양식씨의 ‘푸른, 복어의 집’ 외 2편은 시적 형상화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받았으나 의미의 귀결이 단조로운 것이 흠이었다. 한 편의 시에 담겨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결론이 아니라 음미할 만한 어떤 것이다. 이미지와 리듬, 사유 혹은 심리의 전개 과정, 그리고 말을 넘어서는 침묵과 여백까지, 그 모든 것이 언어예술로서의 시에서는 음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 ’외 6편은 섬세하면서도 격조있는 언어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삼색나물처럼 붙어다니는 아이들’ (즐거운 제사)에서 보듯 감칠맛이 나는 문장, 마음이 스며 있는 언어, 한 편의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솜씨는 보기 드문 것이다.
다른 시 ‘대관령옛길’도 언어에 대한 빼어난 감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 짝 앞에 찰랑거리는 곤줄박이의 저 맑은, 흥분/…/명자나무의 몹시 아름다운 한때’. 이견 없이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을 축하한다. 시인 황동규·최승호
시 당선소감 - 박지웅
‘페르시아왕자’라는 게임이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도저히 건너뛸 수 없는 벼랑이 나타난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그 벼랑을 건너는 길은 어이없게도 그냥 달리는 것이었다. 달리면 그 허방에 길이 생기는 것이었다. 목숨을 걸 때 비로소 길은 몸을 내어주는, 시 앞에는 이런 투명한 길이 있고 그 의심을 견디게 해준 것은 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믿음이 월등히 강한 것만은 아니어서 나는 자주 추락하였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키고 부축해준 것은 노부모의 지성과 병고와 땅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나를 일으킨 것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들, 나는 병들고 지친 것을 먹고 일어났으니 우선 그들에게 백배사죄하고 그 발에 입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 않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광주리를 받은 듯 든든한 한나절을 보내며 감사드려야할 선생님을 떠올리니 한두 분이 아니고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방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다만, 마음 둘 곳 없던 내게 서슴없이 책상자리를 내주었던 은영, 재훈, 추계문우, 내게 언제나 기쁨인 황금펜시문학회원들은 따로 적는다. 끝으로, 자발적 수난자를 응원해주신 문화일보와 난사뿐인 내 시의 가능성에 이름을 걸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약력
▲1969년 부산 출생
▲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
▲추계 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3학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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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경/ 라훌라 [2005 영남일보]
라훌라
-길모퉁이에서
누군가를 부르며
부르트며 바람이 거리를 휘감는다
어둔 밤 얼룩처럼 드문드문 가로등이 번지고
막차를 기다리는 내 등뒤에서
멀어져라 뒤돌아보지 마라
바람은 쉰 목소리로 다그치듯 나를 자꾸 떠민다
그는 저 만치서 나를 향해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
자울대다 눈을 거푸 치켜 뜨는 길모퉁이 가게 불빛 사이로
밤은 더욱 자우룩해지고
여전히 그의 눈빛은 차게 떨리겠지
스무 살 적, 객지에 나를 처음 떨구고
곧 목놓아 울 듯 그렁그렁하던 그 눈빛이
내 가슴에 단단히 말뚝을 박고는
녹작지근한 해질녘이면 어지러이 발길질을 해대곤 했었다
어미 소의 말간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처럼
빛의 눈물 자국 다 떠메고
차마 못다한 말 되새김질하듯
그리움도 순하게 견뎌야한다는 것
오랜 후에야 그 눈의 얼룩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한여름 소낙비가 얼룩져 시린 겨울 강 핥는 여울이 되고
사랑은 얼룩져 돌이킬 수 없는 그러나
돌이킬 밖에 없는 괴물같이 눈부신 추억을 매달 듯
얼룩이 마냥 뼈아픈 얼룩만은 아니지
이제서야 나는 나를 다독여준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나의 짓무른 가슴의 얼룩, 아버지가
끝내 저기 서 있다
세상 없어도.
산스크리트명은 라훌라(Rahulla)이다. 장애로 의역되고 있다.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하여 돌아오던 길에 아들이 태어나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라고 통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詩는 모든 사람 손을 잡아주는 일"
*당선 소감
그토록 바라던 것이 언젠가는 온다는 말을 밤새워 되뇌이곤 했습니다. 시는 순결한 영혼에만 깃드는 축복이라 여겨져 저의 불순함에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도 했지만 감히 다가갈 수 없었던 그 시의 손을 처음 잡게 된 것 같아 설렙니다.
어렴풋이 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시간들, 기억들, 풍경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손을 잡아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 꼭 붙들고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던 지난 22일이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는 소리를 듣고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며칠이나 남은 터인데 왜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라고 말할까 한참 생각하면서 몹시 웃다가 그 웃음 끝에 살짝이 눈가가 얼룩졌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제가 무엇이나 되었을까 생각합니다. 한 짐이나 되는 그 무수한 눈물의 출처가 늘 저였기에 그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이제는 그 짐 부려두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 막내 고모, 오빠, 무엇이든 해주고픈 아우, 가족 모두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전합니다.
가볍게 내려와 손등에 스르르 녹아 스미는 하얀 눈 같은 시를 쓰라고 말씀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학교에서 항상 애정어린 마음으로 가르쳐 주신 교수님들과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박경희 선생님, 김문주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와 친구해 준 사랑하는 친구들, 동기들, 선배 그리고 좋아하는 언니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제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익숙한 주제를 남다르게 펼쳐"
*심사평
올해의 시 부문은 응모자의 양과 질에서 예년을 압도하였다. 최종심사로 넘겨진 20여 분의 시편들은 면면에서 저마다의 솜씨와 개성이 두드러졌다. 심사위원들은 숙고를 거듭한 끝에 조은수씨의 '통장정리' 외, 김상윤씨의 '달빛 충전소' 외, 이인주씨의 '모자를 쓴 사철나무' 외, 최해경씨의 '라훌라' 외 등을 마침내 선고 대상으로 압축시켰다.
조은수씨의 장점은 일상이라는 거울 속에 가둬넣은 마음을 시의 세필(細筆)로 그려가는 섬세함인데, 오히려 그 점이 시를 소품이라는 너무 아담한 그릇에 담아버린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판단되었다.
김상윤씨의 시편에서는 시어의 정제를 실현하면서도 환상을 끌어안는 견고한 짜임새가 돋보였다. 그럼에도 생각의 결이나 매듭을 좀더 활달한 상상력으로 풀어헤쳤으면 한층 잘 읽히는 작품들을 선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인주씨의 경우는 환상을 리듬으로 교직시켜 완결로 이끄는 사유의 힘이 매력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관찰과 묘사의 굴곡에 겹쳐드는 말의 파문이 편편마다 시의 파장으로 읽혀져서 응모 시 전체를 출렁거리게 하고 있다.
최해경씨는 시가 감싸 안아야 할 삶의 풍경과 음영을 표 나지않게 드러내면서도 포개진 환상을 읽게 만든다. 그러나 감동적인 것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선의 투명성이 옅었더라면 그의 작품들 또한 익숙한 주제의 변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자들은 마지막까지 이인주씨와 최해경씨의 시편들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읽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라훌라'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익숙한 주제라도 남다르게 펼쳐보려는 최씨의 노력이 이씨에게 거의 기울었던 저울추를 그의 편으로 끌어당긴 까닭이다.
△2005년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예정
△2002년 용아 백일장 운문부 장려상
△2002년 토지 백일장 운문부 장원
△1982년 전남 순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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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규 / 달의 페달 [2005 전북중앙신문]
달의 페달
지상에 새벽 달빛이 내려앉는다
삶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가는
낡은 자전거 위 촉촉한 이슬이 스며들수록
삐걱거리는 생의 다리를 동동 구르며
어두운 길 밝혀줄 눈, 생기 있으라고
힘껏 페달을 밟는다
세상 어디든 달려나갈 듯
의지를 펄럭이는 깃발 아래
개미떼 같은 활자들 사이로
유럽풍의 고급 아파트 한 채,
바겐세일 명동 의류 한 벌씩 단단히 끼워 넣고
한층 두툼해진 신문들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신문이 비대해질수록 우리네 삶의
외투 한 벌 두툼해 질 수 있다면
뒤뚱거리는 생의 어깨를 움켜쥐고
어두운 세상 시원하게 밝혀주라고
힘껏 페달을 밟는다, 자꾸만
따라오는 새벽 하늘가의 초승달
누가 저 달에 페달을 달아놨을까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전정구(문학평론가) 김영(시인)
120여명 400여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개인적 일상에 초점이 맞추어진 응모작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30여편을 선별한 후 심사자들이 최종심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다음의 4편이다. 000의「녹슨 쇠의 마음」, 000의「강은 어디에나 있으니」, 000의「겨울 강가의 사시나무」, 000의「달의 페달」 등이다.
앞의 두 작품은 여운과 함축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고, 소재를 다루는 신선함과 참신성이 뒤의 두 작품에 미치지 못했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달의 페달」과「겨울 강가의 사시나무」이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두 작품에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부각되어 있다.
「겨울 강가의 사시나무」는 “산다는 것은 숨이 내려앉는 순간까지” “제 것이 아닌 목숨들을 껴안고 사는 일”이라는 성찰을 담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주어다” 슬퍼하는 세상 사람들과 “빵을 구워야겠다”는 발상 또한 시적인 자질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삶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겨울 강가의 사시나무」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아쉬운 것은 이것을 뒷받침하는 팽팽한 긴장과 섬세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어들이 정교하게 결합되고 효율적으로 조직되어야 감각의 섬세함과 긴장의 팽팽함이 유지된다.
‘겨울강가’에 있는 ‘사시나무’의 형상화가 모호한 것도 이러한 점들과 연관되어 있다. 시적 언어의 형상과 색조와 운치에 익숙해 있었다면 이러한 단점이 보완되었을 것이다.「달의 폐들」은 새벽달빛 아래서 낡은 자전거로 신문배달을 하는 화자의 모습을 간결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두툼해진 신문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서 “뒤뚱거리는 생의 어깨를 움켜쥐고” “어두운 세상 시원하게 밝혀”주는 화자의 활기찬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그러나 ‘새벽 달빛, 낡은 자전거 페달, 신문배달부’의 설정이 작위적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달의 페달」의 풍경은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속도의 시대에 ‘낡은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신문배달부의 모습이 핍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2연의 ‘활자, 고급아파트, 명동의류, 외투 한 벌’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개도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달의 페달」은 시적 정황 설정의 작위성과 내적 논리를 뒷받침하는 이미지의 전개에서,「겨울 강가의 사시나무」는 표현기법의 다양한 효과와 주제의 집중도에서 문제가 있었다. 어느 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되었다.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두 편의 작품을 선정했다. 두 분 모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시부문 당선 소감>
현장 일을 하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허름한 숙소에 돌아와 시집을 읽었다. 숙소 귀퉁이에 책들이 쌓여가는 걸 보며 마냥 즐거웠고 언제부터인가 시(詩)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체계적으로 시 공부를 하지 않은 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가졌으나 나의 시에 페달 하나 달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작정 시를 썼다. 그때부터 모든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세상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정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암 투병 중이시던 아버지의 병실을 가슴 아프게 지켜야만 했다.
당선 통보를 받던 날 그 기쁨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식어버린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저승 가시는 길에도 자식에게 귀한 선물을 주고 가신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바치며 못난 자식을 언제나 믿어주셨던 어머니께 감사 드린다.
아울러 세심한 지도를 아끼지 않았던 문학아카데미의 주경림 선생님, 이영식 선생님, 신미균 선생님, 김수목 선생님, 박남주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부족한 시의 가능성을 읽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현경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나의 시를 읽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시를 쓰고 싶다.
다시 한 번 나를 아껴준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우규 프로필
1972년 전남 구례출생
건축현장 목수
겨울 강가의 사시나무
- 정지웅
그래 아직은 행복하구나
네 그루터기에
부모 없는 잡풀 몇 키우고 있구나
호주머니에 숨어있는 한 가계의 벌레들
잎사귀에 재우고 나뭇가지에 앉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모두들 잘 보살펴 주었구나
작년부터 꽃 피우지 못하여
영양제 꽂고 긴 겨울을 나더니
올해도 꽃 한 송이 없이 낙엽만 태우고
지붕 없이 살아가는 새들의 엄마가 되었구나
산다는 것은 숨이 내려앉는 순간까지
제 것이 아닌 목숨들을 껴안고 사는 일
죽어서도 발끝을 모아
가까운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었구나
수면 위에 배 한 척 떠 있지 않아도
강물은 흐르고 갈대는 손을 흔든다
어름치는 네 머리 위를 지나 떨어진
가슴 뜨거운 별을 남몰래 주어 먹고
나는 떨어지는 낙엽들을 주어다
세상 슬퍼하는 사람들과 빵을 구워야겠다
잃어도 모든 것이 온전할 사시나무여
눈 내리는 캄캄한 밤이 오면
너의 가지마다 살찐 빵을 달아주어야겠다
<정지웅씨 당선소감>
방어를 위한 자신감이며 거만함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시를 경전삼아 끝없이 낡아져 가는 정신을 외우다 보니 ‘가작’이라는 이런 흥미로운 이력도 갖게 된다.
처음에 전화를 받았을 땐, ‘가작’이라는 음성이 굳어가는 얼음장 마냥 차갑게 가슴을 쓸어 내렸었다. 고통스러운 습작기의 시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보낸 글들이 대부분 완성도를 떠나 내 목소리가 아니었기에 ‘당선’은 어렵겠다 생각했지, 다른 결과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쁨에 버금가는 온당한 준비가 없었을 뿐, 되새김질 하니 하루가 오랜 고독에서 흥겹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나는 이제 외마디 비명뿐인 유랑을 위해 신발 끈을 조였을 뿐, 혹은 이정표 하나 없는 낯선 거리를 위해 무뚝뚝한 감정을 연습시켰을 뿐, 문밖 배회하는 소문들에 대하여 어떤 두려움도 없는 시간이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종착지를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떠나는 자에게는 방어를 위한 자신감이며 거만함이라고 기록하고 싶다.
끝으로 문학에 취하게 해준 글바람 동인들, 박태건 선생님, 박성우 선생님,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더불어 나보다 더 아쉬워 할 심사위원 선생님께 이번 선택을 온 힘을 다한 노력으로 갚겠다는 말을 전한다.
1981년생.
전주교대 2004년도 졸업
이리 남창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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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호 / 꽃 이름, 팔레스타인 [2005 전북일보]
꽃 이름, 팔레스타인
올해도, 고향엔 칡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계집 아이 몇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놉니다. 고무줄이 튕튕 울릴 때마다. 호박이며, 박이며, 수세미 꽃이 핍니다. 어느 새 검정 고무줄에도 꽃이 피어, 달맞이꽃으로 피어, 계집 아이 몇은 노래를 부르며 툭툭 튀어 오릅니다. 미사일 날리듯
양지바른 골목길 벽돌 속에 아비와 오래비를 묻고 옵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예루살렘으로 흐르는 계곡마다 넘쳐나는데 칡넝쿨 얽힌 이국의 틈으로 어김없이 달은 떠오릅니다. 어김없이 총알은 밀알처럼 떨어집니다.
폭격기가 지나간 바위 밑 두 눈만 깜박이다, 꿈벅거리다,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버린 못생긴 계집 아이는 어느 새 어미가 되고 전사가 되어 아이를 안고 모래 틈을 가로 지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군화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바위를 덮고, 돌산 넘쳐나는 꽃이 피었습니다. 동방 외간 사내가 보내는 꽃, 생리를 하고, 배란이 지나 생산을 하는 동안에도 그 꽃이 신화(神話)보다 더 질긴 꽃이었음을, 옆구리에 낀 아이가 그 꽃을 닮았다는 것을 몰랐어도 그녀는 좋았습니다.
"부족한 삶 '우직한 소'로 보답" 경종호씨 당선소감
당선이라는 연락을 받고 처음 생각한, 그리고 묵묵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말.
'가족'.
아버지, 어머니. 한 삶을 흙에서 시작하고, 그 흙에서 아들, 딸을 키워오신, 그렇게 내 삶의 틀을 이미 다지고, 바탕을 마련하셨던 김제 평야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 형님보다도 형수님, 누님과 아우. 어느 땐 단단한 울타리였다가, 어느 땐 어린 시절 마당 한 가운데 멍석 같은. 꼭 그렇게 지푸라기만큼 질겨 어느 순간, 순간이라도 내가 꼭 잡을 수 있는 끈 내밀어 주셨던 '가족'. 그리고 세 살, 우리 은솔이. 내 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주셨던 길을 꼭 그렇게 나도 보여주어야 하는. 그러나 가족이지 못하는 가족이라는 뿌연 안개 같은 이 순간에 또 하나의 가족이, 내 안에 꼭꼭 숨어 있던 문학이 부끄러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 스물 여덟에 처음 입학한 대학, 그리고 글바람 문학회. 내 삼십대의 빈틈마다 촘촘히 파고들었던 목소리. 종필 형, 찬홍 형, 장근, 명철, 정희, 병희, 청필, 석우, 진만, 상렬이. 그리고 아직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시를 담고 살았다는 것으로 이 부족한 삶을 변명처럼 대신해 드리고 싶은, 오수의 장작불이 그리운 이용숙 선생님.
지도 교수님이신 김용재 선생님. 그리고 항상 제 주위에서 저보다 저를 더 위해주는 선배님, 친구, 내가 근무하는 시골 작은 학교의 동료 선생님까지. 특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뻐끔히 바라보는 우리 반 아홉명의 아이들. 항상 곁에 있어도 그리움 사람들로 인해 행복한 오늘.
'가족'
항상 가까운 곳에 있는, 심장에서 가까운 허파 혹은 식도 부근에서 내 마음에서 흐르는 혈액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삶을, 새끼 꼬듯 꼬아도 보고, 멍석처럼 엮어도 보고픈 마음. 그래서 내 마음의 불 더 지피고 싶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저를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신 송하선 · 복효근 선생님께 지금의 이 마음 묵묵히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 우직한 소가 되겠다는 것으로 대신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경종호 약력>
1968년 전북 김제 출생
전주교육대학교 졸업
현 익산용북초등학교 교사
심사평
그 여느 해보다 응모작이 많고 또한 그만큼 우수한 작품도 많았다. 긴 시간 논의 끝에 경종호의 ‘꽃 이름, 팔레스타인’과 김윤경의 ‘마이너스통장으로 지은 집’, 문정희의 ‘길들여지는 슬픔에 대하여’중에서 당선작을 내기로 하였다.
김윤경은 그늘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 또한 매끄러웠으나 오히려 그 점이 감점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평이하고 무난하지만 신인다운 독특한 개성이 아쉬웠다.
문정희는, 밝음(문명)만을 추구하고 어둠과 밤을 타부시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삶에 있어서 ‘어둠’(밤, 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전반부에서 유사한 예를 필요 이상으로 반복하고 결국 그것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지 못하여 구조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경종호의 작품은 그 차분한 전개부터가 눈길을 끌었으며 독자의 생각을 오래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었다. 우선 기법면에서 참신하다. 전쟁상황에 놓인 팔레스타인의 한 여자아이를 먼 이국의 아이로 타자화 시키지 않고, 한국전쟁후 한반도의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하는 한민족의 계집아이에 오버랩 시켜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님을 효과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있다.
시사성 있는 문제,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룸으로써 시대와 동시대인의 아픔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비단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이라크전과 같은 전쟁에 대한 시적 인식을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심사를 하여 신인을 발굴한다는 것은 ‘샘’을 파는 것과 유사하다. 샘은 그 수질이 우수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몇 바가지 퍼내면 곧 그 수원이 고갈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용솟음하며 냇물을 이루고 강에 이어지는 도도한 흐름을 이루어내야 한다. 따라서 당선작 외에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면밀히 살펴서 등단 이후에도 우리시단을 더욱 풍부하게 일궈낼 역량과 가능성이 있는가, 가늠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종호의 작품에서 갈고 닦아온 내공을 읽을 수 있어 당선작으로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큰 물줄기를 이루어내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송하선(시인), 복효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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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forward print
Subject 나무도마 [2005 한국일보]
나무도마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 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 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간혹 매운 몸들이 으깨어지고 비릿한 심장의
파닥거림이 너의 몸으로 전해져도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었다 상처 많은 너의 몸
딱딱하게 막혔다 꼭 무엇에 굶주린 듯
너의 몸 가장 자리가 자꾸 움푹 패여 갔다
그래서 예리한 칼날이 무력해진 것이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
한번에 절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몸 그 움푹 패인 상처 때문에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 어느덧 냄새가 다 빠져나갔나 보다
개들은 밤의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꼬리 내리듯 식육점 셔터가 내려지고 있었다
[ 시 심사평]
존재론적인 고통 생동감있게 풀어 내
당선작을 선정하는 동안, 언어를 다루는 능력과 구성력이 뛰어난 시들이 많아 그 가치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대한 고심이 많았다. 결국 아름답거나 쓸쓸한 것들을 얘기하는 것만이 아닌, 뭔가 고통스러워도 육화되어 있어 속이 후련해지는 작품에 심사의 척도를 두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런 맥락에서 신기섭의 ‘나무도마’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뽑는다. 존재론적인 고통을 풀어냄에 있어서 고통의 근육을 느끼게 하는 생동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서로 오가는데 걸림 없어 자연스러웠다.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통찰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가 시를 오래 써온 장인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당선을 축하하고, 시의 길을 가는데 있어 몸을 끝까지 싣기를 기대한다.
이번 응모작품들을 통해 한국 시의 현주소를 가늠해보았는데, 예술에 온 정신이 팔려 지극히 자아적인 것에 머물러 있거나 언어를 다루는 세련미에 몰두한 흔적들이 엿보여 보는 이의 마음을 아쉽게 했다. 함께 응모한 심은섭의 ‘북쪽 새떼들’과 ‘몸의 악보를 더듬어’의 박신규, ‘대마찌’의 조길성, 등도 최종까지 논의되었음을 밝힌다.
/심사위원= 김정환 장대송 함민복
[당선소감]
얼마 전 안과에 갔었다. 왼쪽 눈의 각막이 좀 벗겨졌단다. “당신은 눈물이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눈물이 없는 눈은 쉽게 상처가 난다. 안과의 처방전대로 약국에서 인공눈물을 샀다. 그걸 자주자주 눈 속에다 몇 방울씩 떨어뜨려야 했다.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끊고 난 뒤에도 인공눈물을 눈 속으로 떨어뜨렸다. 웃기고 슬펐다. 그것은 정말 꼭 한 편의 희극이었다.
플러그 빠진 냉장고 속의 고깃덩어리처럼, 두고 온 고향의 집이 머리 속에서 썩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할머니가 없는 빈집, 썩는 냄새가 후욱 풍긴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시가 당선되는 일이 9급 공무원시험 합격같은 것으로 생각하셨던, 할머니가 지금 곁에 계셨다면 많이 기뻐하셨을 것이다. 9급 공무원 감투를 쓴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을 것이다. 우습지만 이제, 죄책감에서 아주 약간은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고마운 분들이 많이 계시다. 모교의 존경하는 은사님들, 김혜순 선생님과 신수정 선생님께 큰절을 드린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도 함께 드린다. 곁의 문우들, 우리들의 김점진 조교님, 후배이자 선배이자 친구인 김원, 그리운 시골의 친구들, 서울의 친구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이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정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함께 고향집에 다녀와야겠다. 가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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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소백산엔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
푸른 사과 한 알 들어 올리는 일은
절 한 채 세우는 일이라
사과 한 알
막 들어 올린 산, 금세 품이 헐렁하다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
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
가지 끝 편종 하나 또옥 따는 순간
가지 끝 작은 편종 소리는
종루에 쏟아지는 자잘한 햇살
실핏줄 팽팽한 뿌리로 모아
풍경 소리를 내고
운판 소리를 내고
급기야 안양루 대종 소리를 내고 만다
어쩌자고 소백산엔 사과가 저리 많아
귀 열어 산문(山門)소식 엿듣게 하는가
심사평
“水壓 센 한국詩의 바다서 보물 건질 능력있어”
문정희·황지우 시인
김승해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장성실 ‘소금쟁이 메모’, 이병일 ‘빈집에 핀 목련’, 이다연 ‘가설무대’를 최종심 대상작으로 좁혀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는 이들 네 작품이 최소한, 누가 읽어봐도 “이게 시야?” 하는 의문이 들지 않게끔, ‘스스로 시를 성립시키는’ 구성의 내구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당선작을 고르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정을 두 번이나 번복할 정도로 우리 두 심사자들을 꽤 괴롭혔다. 이들 네 작품이 두루 괜찮았다는 말도 되겠지만, 동시에 눈에 확 띄게 스스로를 구별시키는 작품이 없었다는 말도 된다. 결국 우리가 이번 심사에서 기대하고 예감하고자 한 것은 누가 보다 오랫동안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수압이 센 한국시의 해저에 누가 더 오랫동안 잠수하여 보물을 건져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김승해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를 당선작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 시가 그 자체로 잘 다듬어진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과 대등한 수준의 다른 응모작들을 고루 보여줌으로써 앞으로도 그가 계속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한 권의 시집을 가지고 나타나서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부릅뜨게 해 주길 바란다.
당선소감
“삐딱이 부처님 본뒤 절을 꼭 올리고 싶었다”
▲ 김승혜
1971년 대구 출생
2003년 대구 계명대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화순 땅 운주사, 누운 부처를 처음 보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곳엔 부처 아닌 돌이 없었다. 뭉툭하게 문드러진 돌들이 부처라니. 코가 닳은 못생긴 부처님, 귀가 떨어져 나간 삐딱이 부처님을 처음 본 그때, 내게 어떤 간절함이 있었기에 천하 귀신들도 탄복할 절을 꼭 한 번 올리고 싶었던 걸까?
내 마음 안에 돌탑 하나 세우고 돌아선 그날 이후 가끔 꿈속에서 운주사 가는 그 옛길을 타박타박 걷곤 했다. 그저 한 무더기 돌덩이를 만나도 그것이 탑이 되고 부처가 되게 하는 간절한 천불천탑의 땅. 이제 나는 떨리는 첫 마음 모아 새로 돌탑을 올린다. 그러나 이 간절함이 어디에 가 닿게 될지 지금은 모른다. 다만 나를 위해 불문 훨훨 열어놓고 뜨겁게 데워주는 내 고마운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염려와 기도 안에서 운주사 가는 옛길을 가듯 멀고 낯선 길을 간다.
늘 따뜻한 가르침을 주시는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선생님들, 마음놓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는 학형들, 부족한 시를 세상에 내놓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유성찬 forward print
Subject 날아가는 방 [2005 전북도민일보]
날아가는 방
이삿짐을 다 싸두고도 아내는,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하나 어쩌지 못하나보다
산동네 반 지하 단칸 방, 그 밤 내 이삿짐을 싸다가
방안 가득 걸어둔 종이학들은 거두지 못한 채
잠이 든 척 누운 아내,
허공에다 뭘 저리 걸어두었나
날아오른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어디로든 떼 지어 날아갈 성 싶다.
이 방마저 가져갈 수 있다면 좋으려만,
자꾸만 한숨소리에 침몰해 버릴 듯한
半地下의 방,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내일 아침 자고일어나면 어디든
다른 곳에 살고 있다면
좋겠다는 아내.
어디로 갈까
막막한 마음에 아무리 떠올려 보지만
좀처럼 갈 곳은 떠오르지 않고
문득, 고향땅 송도다리께를 떠올려본다.
아내와 처음 만나 살았던 판잣집.
함께 살았던 제비부부는 아직
잘 살고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내 곁에 누워 잠을 청해보는 밤,
멀리, 담장 너머
누구네 집 天井을 이고 가는 중인지,
한 무리의 철새들
무리 지어 떠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부부 누워 잠든 방을 달고
부지런히 이동해 왔을 저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학들이 끌고 가는 저 작은 방 속
어쩌면 어느 九天을 횡단해 가고있을지 모를
아내와 나
심사평
금번 응모작들의 분포를 보면, 서울을 비롯해 가히 전국적이었는 바, 이는 인터넷 시대의 한 혜택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때문이기도 하다. 더하여 110여명의 응모자가 평균 7~8편씩을 투고하였으니 양적으로도 풍성하였다. 다만 몇 가지 주문하고 싶은게 있다. 특히 20~30대의 응모작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신인으로서의 진지함과 주제의 밀도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것은 명실공히 ‘이 한판의 승부사’로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소재부터가 지극히 변방적이고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시의 전개과정도 마치 노련한 투우사가 껌을 질근거리며 소를 다루는 여유 속에 사적(私的) 요설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시는 일차적으로 사적 진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암호는 아니다. 나만의 사적진술이나 암호는 궁극적으로 타자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 스스로가 독도법을 익혀나가는 재미, 또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 작품들이 불과 20행도 안되게 마치 기성시인들의 시집 속에 삽화로 끼어 있음직한 소품들고 이뤄져 있는 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어진 작품들로는 ‘전신주 위의 까치집’, ‘따개비’, ‘화개차’, ‘장대비 속의 양은 냄비’, ‘여의도 공원’, ‘날아가는 방’ 등 여섯작품이었다.
위의 여섯 응모자들은 나름대로 탄탄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전신주 위의-’는 시의 밀도감, 다시 말해 시적 응집력이 다소 미흡했고, ‘따개비’와 ‘화개차’는 기교는 기성시인 못지 않으나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주제의 절실감에서 뒤졌고, ‘장대비-’와 ‘여의도 공원’은 너무 성숙된 기성인다운 여유와 사적진술(난해)이 공감을 이완시켜 아쉽게 밀려났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내세운 ‘날아간 방’은 요즈음 여러모로 살기 힘들 때에, 총체적 갈등의 시대에 산동에 반지하와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과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였다. 산동네 ‘반지하의 방’과 ‘종이학’이라는 두 시어 사이에서 독자들은 ‘절망’과 ‘희망’의 이미지를 쉽게 발견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극심한 갈등 속에서 이 시는 그 잔잔한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해법의 소도구로 ‘아내’와 ‘종이학’과 판자집에서 함께 살았던 ‘제비 부부’를 등장시키고 있다.
반지하의 방에서도 낙심치 않고 ‘그 밤 내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 날아 올랐다.’로 매듭짓는 상향 이미지가 서정시가 갖는 아름다움 속에 잘 여과돼 있다. 더욱 분발을 기대한다.
허소라 시인
당선소감
어릴 적, 나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아니, 하늘에다 집을 짓고 세 들어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까? 다른 아이들보다 나는 몽상하길 즐겼고, 늘 마음 속에다 하늘한켠을 그려 두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더욱 재미있던 것은 단 한번도 비행사나 실제로 하늘을 꿈꿨던 적이 없었다. 단지, 상상 속에서만 아득히 꿈꾸는 게 좋았다.
당선소식을 들었을 때, 그 때 그 하늘이, 그 황홀했던 내 생의 망명지가 내 머리 한켠에서 아직 빛나고 있는 걸 알았다. 누군가,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내 귓가로 다가와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하늘로 날수 있다고 너는. 한번 날아보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늘 하늘만 병적으로 쳐다보고 있던 내 기억 속 아이를 단 한번 꼭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조숙했던 그 아이를 그만 돌려보내고,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서 있고만 싶었다.
더욱 정진하리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게 고집이라면, 그 고집,.. 아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감사해야 할분들 너무 많은 것 같다. 사랑하는 부모님, 든든한 후원자인 나의 형, 귀여운 조카들을 내게 안겨 준 누나, 매형, 그리고 존경하는 송수권 선생님. 김길수, 곽재구, 안광 선생님.
늘, 나를 증명해 주려 애쓰는 성훈, 정련, 승권, 영진, 종석, 용숙누나, 설희누나,..그리고, 끝으로 내 가는 길에 언제나 서 있어 주리라 믿는 “화연”에게 이 소식 전하고 싶다.
변변찮은 작품을 어여삐 여겨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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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채 forward print
Subject 구두코에 걸린 달빛이 흐리다 [2005 동양일보]
구두코에 걸린 달빛이 흐리다
하룻밤이면 달이 차겠다
비우는 일만 남겠다
곁눈질 모르고 달렸어도
여전히 의문투성인 불혹의 세월
강가를 서성이다 구두를 벗는다
조심스럽게, 강물도 호흡을 멈춘다
온쉼표 하나 없던 일상으로
굽이 낮아지고 한쪽으로 기우는 구두
가죽이 닳고 헐거워져 모양 잃은 구두를
시멘트 둑에 가지런히 놓는다
풍덩, 몸을 던지면 꺾이던 순간마다
마디마디 스며든 악취를 씻어 낼 수 있을까
저리 잔잔하게 살아낸 날은 얼마였던가
양말을 벗으니 울퉁불퉁한 굳은 살
군데군데 각질이 일어나는 발이
놀란 듯 움츠린다. 양말은 구두에게
한 짝씩 나눠주고, 일상을 통째로 감아 쥔
넥타이와 채찍질만 일삼아 온
시계를 푼다, 디지털 포위망을 좁혀 오는
핸드폰도 내려놓는다
한여름인데 시멘트 강둑은 차갑다
한 쪽 발을 내 딛는다, 남은 발을
마저 들여 놓는다, 강물은 더 차갑다
한 걸음 두 걸음 흔들리는 횡보에 달빛이
흔들린다, 줄 선 빛고드름이
사납게 일그러진다
풍덩!
강 가운데 떠 있던 바지선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든다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을까
발목을 간질이는 파문은
짧다
이내 고요하다
구두코에 걸린 달빛이 흐리다
하 봉 채
△1963년
△전남 진도 출생
△한양대학교 법과대학·대학원 졸
△한맥문학 신인상 수상
△현 (주)씨아이씨코리아
시 심사평】망가짐 미학속 참신성 넘쳐나
이번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는 모두 1000여 편이 응모됐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시편들을 대하는 순간 다양해지고 참신성이 보여서 더 더욱 반가웠다. 그러나 아직도 신인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응모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도 더러 보였다.
그래서 심사에 앞서 어떤 기준을 두고 작품을 고를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앞세워 의미만을 앞세운 시, 주제가 보이지 않는 시, 아름다운 말만 늘어놓은 시는 우선 골라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것은 17편.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하루 이틀을 두고 감동이 남아있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새롭고도 변화를 주는 시, 최선을 다한 흔적이 보이는 시, 해학과 새로운 리듬감으로 엮어낸 시, 무엇보다 앞으로 가능성이 엿보이는 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고정관념을 망가뜨린 시는 없을까 였다.
최종적으로 하재봉채씨의 ‘구두코에 걸린 달빛이 흐른다’, 심민정씨의 ‘조팝나무 새끼를 치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두 작품을 놓고 오랜 시간 뒤척이다가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으나 모든 면에서 하봉채씨의 작품이 앞선다고 보아 당선작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정진을 빌며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한평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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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향 forward print
Subject 중 심 [2005 불교신문]
중 심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게 안으로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짙어지는 강물보다 더 서늘해졌다
띠를 묶어주기에는 적기인 것 같아
결 재운 볏짚을 들고 밭에 올랐더니
힘 넘치는 이파리가 툭 툭 내 종아리를 친다
널따란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안고
배추의 이마에 짚 띠를 조심스레 둘렀더니
종 모양 부도처럼 금새 단아해졌다
부드러운 짚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다
이제 배추는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우며
꽃과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추수 끝난 들녘에 종대로 서 있는 배추들
늦가을의 중심으로 탄탄하게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시적 화두 하나 품어야겠습니다”
시 당선 소감
맑은 아침에 꿈은 분명 아닌데, 반가운 소식이 배달되었습니다.
잠시 소원하고 접어둔 마음 사이로, 그 소식이 기쁨으로 스밀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로소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고, 그 다음은 모두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은 시도 불교도 잘 모르는 상태이지만, 정일근 선생님께서 시도 불교도 구도의 과정이라고 자주 하시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겨두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그럴싸한 시적 화두 하나 품고 열심히 노력해 보아야겠습니다.
진정한 주먹 고수들은 주먹을 내 보이지 않고도 충분히 고수 노릇을 한다는데… 이 기회를 통해 도구를 보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진정한 고수가 되도록 늘 연마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 보겠습니다.
먼 길을 돌아 여기 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많은 시간을 흘렸습니다만, 느림보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분명 있었습니다. 빠르게 달려간 사람들이 놓친 작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크고 분명한 것보다 작고 낮은 것을 더욱 소중히 아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살아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손으로 길을 열어 주시는 정일근 선생님, 맨 처음 도전 정신에 불을 댕겨준 김옥곤 선생님 그리고 울산 시인학교 문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말없이 후원해준 가족들에게 이 기쁨 돌리고 싶습니다.
아직은 무명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제게 나룻배 이야기를 해 주시는 울산 불교교육대학의 많은 스님들과 교수님들과 도반들께도 함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새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신 송수권 선생님과 불교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당선작, 불교코드 시적 형상화 적절”
시(시조) 심사평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일곱명으로서 8편이었다.
‘농아부부의 빵집’(서상규) ‘고달사지에 가다’(손성조), ‘흔적’(정경호), ‘우화’(김애연), ‘도피안사 금개구리’(권지현), ‘중심’(심수향) ‘가을밤 짧은 편지, 평창강 섶다리’(홍준경)였다.
이중 ‘농아부부의 빵집’은 따뜻한 시선에 의한 제재를 결박하는 힘이 돋보였으나 합장, 묵언수행, 불립문자 등 금기시되는 시어에 문제점이 있었고, ‘고달사지에 가다’는 선취(禪趣)에 머물러 있어 시인의 현실적 아픔이 결여된 느낌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도피안사의 금개구리’나 ‘흔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홍준경의 ‘가을밤 짧은 편지’와 ‘평창강 섶다리’, 심수향의 ‘중심’, 김애연의 ‘우화’로 압축되었지만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의 무게로 보아 심수향의 ‘중심’을 당선작으로 내세웠다.
이는 불교코드를 시로 가져올 때는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란 뜻도 있다. 선취의 아류가 아니라 창작에 있어서도 고오귀속(高悟歸俗)의 입전수수 정신이 필요한 때다.
“부도처럼 금새 편안해졌다”라는 상투어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겨울배추밭을 부도밭으로 연상하는 이미지 확장에 기여하므로 은유체계 완성에 있어서 별다른 흠결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끝으로 홍준경의 수준이 고른 시조작품들과 김애연의 작품들에도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다른 지면에 선보일 것을 당부한다.
송 수 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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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forward print
Subject 단단한 뼈 [2005 동아일보]
단단한 뼈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
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
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
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
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심사평]
짧은 분량에도 많은 것 담아내
황동규(서울대 명예교수·시인) 정진규(시인)
(예심=반칠환 박형준)
예심에서 올라온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을 거듭 읽고 검토한 끝에 남은 작품이 배대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코드(CODE)’ 외 9편과 이영옥의 ‘단단한 뼈’ 외 4편의 시들이었다. 다른 응모시들이 지니고 있는 상대적 결함들이 이들 시에서는 극복되고 있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분명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까닭 없는 우회나 굴절이 야기하는 몽상의 어눌한 언어들을 자제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특히 이른바 화자 우월주의에 빠져 시를 수다스러운 설명으로 이끌거나, 대상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독단의 왜소성으로부터 깔끔하게 벗어나 있었다.
장고 끝에 우리는 이영옥의 ‘돛배 제작소’와 ‘단단한 뼈’로 의견을 압축했다. ‘돛배 제작소’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선 안과 밖을 하나로 짚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호감이 갔다. ‘설계도면에는 오래된 고뇌까지 꼼꼼히 그려져 있었고/돛배가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그의 환멸은 정교해져 갔다’ 같은 대목 말이다. 그러나 ‘단단한 뼈’에서 더욱 중요한 대목들을 확인했다. 짧은 분량으로도 많은 것을 담아내는 자재로움과 절제된 감정이입을 통해 죽은 것들을 또 다르게 살려내는 전환의 힘, 그 핵을 이 시는 지니고 있다.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는 비극적 삶의 전력에 대한 암시도 놀랍지 않은가. 이 시를 읽고 나면 ‘섬쩍지근한’ 침묵 같은 것이 남는다.
배대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코드(CODE)’ 등은 언어의 활달성, 또는 뜨거움을 지니고 있었다. 순수한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천착도 돋보였다. 그러나 표현의 조밀함이 모자라 적잖이 설명으로 기운 흠이 있었다. 지니고 있는 정열의 운용에 따라서는 새로운 시를 열 가능성이 보인다.
[당선소감]
이영옥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2002년 경남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 △2004년 계간 ‘시작’ 신인상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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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도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 밖에서 서성거리게 했던 내 외로웠던 시들아!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문제는 늘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본 죽음이란 것은 또 하나의 완벽한 실존이었다. 그는 뼈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바람의 울음을 듣고 있었다. 세상의 빛들은 일순간 그를 위해 적막해졌다.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린 삶과 죽음의 근사치에 대해, 근접해 있는 존재와 소멸의 함량에 대해, 세포처럼 끊임없이 분열하는 것들을 쓰고 싶었다. T S 엘리엇은 말했다. 시는 언제나 모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면 나의 도전은 무모했다. 시의 중심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난 후, 성탄 캐럴이 울리는 번잡한 거리를 혼자 걸었다. 마치 동굴에서 탈출한 크로마뇽인처럼…. 나는 그날, 화석 속에서 튕겨져 나온 구석기인처럼 외로웠다.
나를 믿고 지켜봐 준 남편과 자신감을 뿌리 깊게 심어주신 하현식 교수님, 이재무 선생님, 감사합니다. 호된 비평가인 딸 다혜와 아들 정빈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두 분께 내 안의 혹독한 다짐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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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forward print
Subject 항아리 [2005 한라일보]
항아리
처음 나는 겸손한 흙이었다
진흙 층층이 쌓인 어둠을 밀어내고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진 숨결
불룩한 옆구리를 뽐내며
어느 집의 연륜을 저장하는,
도대체 우화를 꿈꾸지 않았건만
나는 햇살을 움켜쥐고
내 안의 목록을 삭여내는 중이다
아주 오랫동안
해마다 비밀스런 내력을 보태며
맛과 맛, 그 아귀를 맞추는 시간들은
서로 맥박을 주고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번쩍이는 세월의 빗금하나 그어지고
그리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짜고 싱거움에 길들여진 것들
손꼽아 여닫히던 햇살들
점점 순도 높은 깊은 맛을 우러낸다
내게 저장된 세월을
프리스틱 통에 담아가는 사람들,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겸손한 덕담 하나씩 건네준다.
[심사평]
순도높은 깊은 맛 우러나오길
양의 풍성함과는 달리 질이 그것에 미치질 못해 실망스런 심사였음을 먼저 밝혀둔다. 한동안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들이 일정한 수준을 견지했던 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다. 응모하신 분들이 스스로의 문학적 진지성과 치열성을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경험의 지루한 서술이나 단순한 풍경의 묘사에 빠져 의미있는 언어의 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떤 응모작들은 맥락 없는 언어의 남용, 단절된 이미지들의 혼란, 장식적 비유의 화사함에 갇혀 스스로 시적 품격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또 어떤 응모작들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인지 개별성이 보편성으로 이어지질 않아 유의미한 소통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었다. 주대생 씨의 경우 언어의 재치가, 고옥희 씨의 경우 비유의 참신성이 살만했고, 강란숙 씨는 일상적 체험에 대한 성찰이, 오영희 씨는 서사의 무게가 돋보였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주제의식의 밀도라든가, 시적 구조의 짜임새 등이 튼실하지 못하여 더 이상의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였다.
최재영 씨는 시적 자질이 그 중 나아보였다. 언어의 운용이 자연스럽고, 시를 얽어매는 솜씨가 꽤나 세련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것과 너무 빤한 얘기를 드러내는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언어의 질박함이 미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표현의 수일성의 결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신인임에랴.
정직하게 말하면, 나로서는 어느 것도 당선작으로 밀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젊은 문학도들의 기대와 희망을 헛되게 저버릴 수가 없다는 핑계로 나는 나 자신과 타협을 했다. 아쉬운 대로 최재영 씨의 「항아리」를 당선작으로 내보내는 까닭이다. 최재영 씨는 시의 길에 더욱 정진하여 ‘겸손한 덕담’만이 아니라 정말 ‘순도 높은 깊은 맛’을 우려낼 수 있는 항아리로 성장하길 바란다. 아울러 뽑히지 못한 많은 분들도 실망하질 말고 자신의 시업을 꿋꿋이 가꾸어 나갔으면 한다.
<김승립 시인>
[당선소감]
“詩 쓰는 동안 행복과 고통이”
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게 있어 詩를 쓴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정의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들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한 편 한 편 완성하기 위해 보낸 많은 불면의 밤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그래서 나 스스로를 검증할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싶다.
詩를 쓰는 동안은 행복하고 또한 고통스럽다.
문장을 지우고 고쳐가면서 더 나은 글이 완성될 때의 그 만족스러운 순간들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겸허한 시인이 되고 싶다.
지난 일년을 어떻게 보냈나 싶게 빠르게 흘러간 시간들이다.
바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 시간들 속에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맙다.
詩가 뭔지도 모르면서 다만 엄마가 지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좋아하는 아이들과 우리 가족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주는 남편, 무엇보다도 고맙고 감사하다.
詩가 임재할 진정성에 대해 가르쳐 주신 박경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만나면 즐겁고 편안한 시원 동인 선배님들, 제가 한턱 단단히 쏘겠습니다.
詩의 길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신문사와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쓸 것을 다짐하며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1965년 경기 안성 출생
방송통신대학 일본학과 2학년 재학
경기도 평택문인협회 사무국장 시원 동인
2004년 제 5회 전국 가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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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걸 forward print
Subject 항 해 [2005 부산일보]
항 해
비린내 그윽한 다대포 바닷가
꼼장어 구이집 방문 앞에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뒤엉켜 있다.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놈
물끄러미 정문만 바라보는 놈
날씬한 뾰족구두에 치근대는 놈
신발 코끝 시선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어느새 젓가락 장단 끝이 나고
사람들 한 무더기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다대포 앞바다 썰물 빠지는 소리가
꼼장어 구이집 창 너머로 아득하다.
연방 뭐라고 중얼거리는 꼼장어 안주 삼아
슬며시 쓴 소주 몇 잔 들이켜고는
담배 한 개비 입에 문 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잠시 정박했던 배들이
저 푸른 바다로 떠난 것이었다.
그 순간, 꼼장어 구이집 안으로
환한 웃음 실은 만선(滿船)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시 심사평] 정진 가능성에 높은 점수
응모된 시들 중에서 1차로 20여편을 건져올리면서,우리 시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예비 시인들의 관심이 서정시에 가 있다는 점,소재는 일상적 체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발랄하고 참신한 이미지는 내보이나 내면의 깊이가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응모 시의 전반에서 실험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이는 패기 있는 개성적인 시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잘 꾸며진 소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1차로 걸러진 20여편은 시 공부를 한 흔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시편들이었다. 그러나 소품이 갖는 한계를 시적 응집력을 통해 극복하고,새로운 세계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는 시적 정신을 토대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출해 보려는 의욕보다는 시의 기교 습득에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결과로 보였다.
이런 아쉬움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첩자''소라''항해'였다. 그런데 '첩자'는 너무 기계적인 구도와 시적 언어가,'소라'는 너무나 단정한 틀과 일상화된 이미지가,'항해'는 기성 시에 나타난 이미지의 원용이 각각 문제로 지적되었다. 힘들게 '항해'가 지닌 긍정적 세계 인식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어,이 작품을 가작으로 뽑았다. 정진을 빈다.
시인 이시영·최영철,문학평론가 남송우
[시 당선소감] 새 생명 하나 부여받아
베란다를 두들겨 대는 저 육중한 바람은 제 몸에 힘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을 때 비로소,뒤를 한번 돌아본다는 그런 생각이 근래 들어 부쩍부쩍 떠오른다. 그것은 실명 전,아무 생각 없이 스치고 지나버렸던 그 아슴아슴한 사물들과 사소한 사건들이 요즈음,내 머릿속에서 다시금 환해지는 탓이리라!
사물들의 촉감,미세한 소리,그윽한 냄새,눈이 보일 때보다도 외려,요즘 더 예사롭지 않다. 시각 장애 이후,더욱 집중했던 시(詩) 창작은 사실,죽음의 유혹을 뿌리치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오늘 당선 소식은 새 생명 하나를 부여받은 셈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멀고도 험하겠지만 한참 부족한 제 시(詩)를 뽑아주신 부산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시(詩)와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보답의 길이라고 믿는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물심양면 힘 써 준 고마운 사람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하해와 같은 감사를 드린다.
◇약력:1967년 강원도 동해시 망상 출생. 대관령종합고 졸업. 2004년 백병원 동아일보 주최 투병문학상 입선,2004년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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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화 forward print
Subject 母女의 저녁식사 [2005 세계일보]
母女의 저녁식사
배추김치.... 파김치.... 상추겉절이.... 오이소박이.... 어머니.....
.... 어머니.... 우리 집 식탁에는 온통 풀뿐이네요
우리의 저녁 식사는 말들이 좋아하겠어요
보세요? 하얀 접시 위에 그려진 말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저녁 식탁에 와 있잖아요. 그래요. 거기요. 가만히,
아이처럼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또 다른 말이 들길을 지나 마을 건너
가난한 우리 식탁으로 달려와요. 들리세요?
주인을 버리고 달려오는 말울음 소리요
저기 먼 곳에서는,
젖가슴 하나 달린 여자들이
안장도 없는 말을 타고
드넓은 대지를 흔들며 산다던데... 히잉! 어머니
주홍빛 하늘이 몰려와 대지를 덮으면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여자들이
말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리 식탁을 향해 자신의 말들을 찾아
고단한 하루치 태양을 쉬게 하고 달려와요
... 히잉! 어머니
당신이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이 녹을 때처럼
하늘이 물들어갈 때, 그녀들이 달려와요
가슴 하나를 도려낸 그녀들이, 자꾸만 자꾸만
초대받은 손님처럼 달려와요
어머니, 유방암에 걸린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여
듣고 계신가요?
전사들이
우리의 밀림으로 몰려오는 소리,
그 침묵의 소리들이요
… 히잉! 어머니.
■당선 소감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당선
"더더욱 감사… 열심히 하겠습니다”
올 한해 더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번에 당선된 시는 제 시중에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시입니다. 그래서 본심 심사위원들께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할머니! 당신처럼 곱고 따뜻하고 깔끔한 분이 세상을 떠나려 하신다는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지금은 가지 마세요.
전에 말씀하신 앙고라 스웨터, 이참에 좋은 걸로 사드릴 수 있다고요. 그리고 지금은 너무 춥다고요.
시계 속, 작은 톱니가 큰 톱니에게 머리를 지긋이 눌리며 내지르는 비명- 착각. 이 끔찍한 아비규환에 하루를 열고 닫고, 웃고 우는 아둔한 착각.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맘- 착각. 저 무수한 착각의 셔터를 누르는 거역할 수 없는 시선.
Thanks to:서형순 여사, 테오 같은 동생들과 안나, 아득한 이국의 언어 아버지, 사랑하는 ZEUS, 우리는 시를 믿는다 詩川, 언제나 그 자리 선배 미영, 허방을 향한 농담 스스와타리, 너무 고마운 사람 승렬이 아재, 하늘 아래 효부 큰엄마 황숙자 여사, 삶을 연극처럼 연극을 삶처럼 연극마당, 획을 긋는 국립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따뜻한 명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참삶 참문학 어의문학회·19기, 국정호, 이주영, 김주현, 박상남, 최혜선, 전지원, 경아언니, 안치윤·박수현 부부 그리고 기꺼이 시가 되어준 여러분의 삶.
Special Thanks to: 아픔을 드러내는 법 닥터. 키팅, 한걸음에 달려와 안아주신 이사라 선생님, 죽기 직전에 만난 정신과 주치의 詩와 ‘아무도 몰래 묻어주고 싶었던’ 그들의 詩集에게, 예심 심사하신 선생님께
▲1974년 전남 나주 생
▲국립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 대학원 수료
■심사평
유종호 문학평론가(사진 왼쪽)·신경림 시인
당선작 발상탁월… 우리詩 지평 넓힐것
마지막 후보작 2편도 만만찮은 솜씨
윤진화, 강호정, 이우경의 시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윤진화의 ‘母女의 저녁 식사’는 발상이 아주 신선하다.
풀뿐인 식탁-말-아마존의 여왕 히포리테-유방암에 걸린 어머니의 연상도 재미있지만, 이미지가 청승맞거나 구질구질하지 않고 쌈박하고 날렵한 점도 호감을 갖게 한다.
많은 사람들의 시가 내용이나 형식에서 서로 닮아 있는 데 반하여 이 시는 다른 사람의 시와 전혀 같지가 않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같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리라.
역시 어머니의 잃음을 노래한 ‘두 개의 꿈’도 뛰어난 시다. 슬픔이니 아픔이니 하는 직접적인 표현 한마디 없이도 더 강하게 그것을 느끼게 하는 점, 시인의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강호정의 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 시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문제며 진실을 찾아가는 자세도 돋보인다. ‘몸을 들여다보는 순간’이며 ‘선언에 대하여’는 시적 완성도나 안정감에 있어 결코 손색이 없지만, 다 죽음을 다룬 시여서 신춘시로서는 좀 무겁다. 당선 여부에 관계없이 좋은 시인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우경의 시 중에서는 소시민의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난 ‘문패’가 가장 뛰어나다. 이미지도 선명하고 표현도 아주 매끄럽다.
그러면서도 억지가 없고 자연스럽다. 흠잡을 데 없이 날씬하게 빠진 시라는 칭찬이 조금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한데 다른 시들이 뒤를 받쳐주지 못한다. 너무 편차가 심한 점은 조금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상 세 사람의 시 중에서 윤진화의 ‘母女의 저녁 식사’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시가 가진 분방하고 건강한 상상력은 우리 시의 지평을 크게 확대할 것으로 기대되는바, 앞으로의 활동에 크게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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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령 forward print
Subject 흔한 풍경 [2005 서울신문]
흔한 풍경
시청 앞 작은 연못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비단잉어가 산다
몰락한 귀족처럼 느릿느릿 헤엄치면
양귀비꽃 수면에 비쳐온다
우리는 그걸 주홍빛 슬픔이라 부른다
허기진 햇빛이 정수리 위에 어른거린다
메마른 광장의 오후 2시가 아가미 속을 들락날락하는
지루한 염천(炎天)의 대낮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벽을 두드려보듯 지느러밀 움직여
물의 파동을 느껴본다
배에 와닿는 물의 감촉이 따스하다
눈앞이 침침해지고부터는 소리에 집착하게 된다 좁고 가늘어진 바 람소리
공중에 박음질하듯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
무수한 소문들이 물기를 머금고 부풀었다 사라진 벤치에
빈 종이컵이 실신할 듯 입벌리고 있다
새우깡을 무심히 던지던 손이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던 건 무엇일까
生의 마지막 들숨을 쉬듯 물위로 솟구칠 때 무심코
돌아서던 누군가의 하얘진 귓불을 보았을 수도 그때 잠깐 흔들린 듯
눈을 깜빡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서로가 엿본 것은 아무 것도
들킨 것 또한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 동안에도
애초에 누구의 관심거리도 아니었다는 듯
개미들이 떨어진 여치 다리를 십자가처럼 옮기고 있었고
체인을 오래 매만지고 있던 자전거 옆으로 은색 승용차가
서류뭉치를 신생아처럼 안고 급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모두 외로움을 흙먼지처럼 껴입고 있지만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벤치 밑에 조금 구부러진 쇠뜨기풀이 다시 일어서는 동안
내 어슬렁거림은 어떤 사소함에 비유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보이지 않게 어긋나도록 돼있는 정교한 교차로 같은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에 열중하는 순간 누구나
제 몸에 딱 맞는 표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모두 서로에게 그림 속 배경일 뿐이라는 듯
과자 부스러기들이 바람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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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forward print
Subject 곰팡이 [2005 평화신문]
곰팡이
가마솥에 콩을 넣고 장작불을 지핀다
익은 콩을 절구통에 찧는다
메주는 서늘한 그늘에서 말린다
1
바람 좋은 날에는 가장자리부터 가벼워진다
미세한 햇살조각이 굴절되어 박혀드는 순간에
창을 열듯이 제 가슴을 활짝 열어 벽이 갈리고 있다
거친 난간 위에 포자들은 습한 계곡의 길을 건너고 있을까
밝음과 어둠 속, 빛을 굽는 보름달 아래
숱하게 구멍들이 뚫렸다
담쟁이 넝쿨처럼 곰팡이가 내 몸을 뒤집어썼다
멈출 수 없는 발,
푸른 숨소리 내는 바람 따라 계곡 사이
곰팡이 벌레가 긴 잠을 자고 있었다
2
햇살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속 뜰 가운데
항아리를 묻는다 첫눈을 맑게 틔운 물에
메주, 참숯, 잣, 대추, 고추를 재운다
그 위에 하얀 천을 금실로 싸매고 뚜껑을 덮는다
밤새 애태우다가 헹궈내며 숙성되기 시작한
구수하게 트여오는 숨소리가 밤하늘로 터져버린다
잠에서 깬 새들이 푸른빛을 물어 나르는 아침,
옹글게 견딘 내 몸은 깊은 바닥으로 흩어지는 것일까
어둠에도 눈이 부시는 간기가 흐른다
바가지 닿는 소리가 날 때,
나는 기나긴 여정 속 밥상에 올라와 앉아있을 것이다
심사평-시
심사에 앞서 심사위원들은 나름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것은 좋은 시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좋은 시'라는 단순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정의는 선자(選者)들의 시적 취향과 시적 기준에 의해 약간의 편차를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사물의 마음을 읽어내 줄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의 마음에 깃들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전제한 것이다.
이런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본선에 올라온 시편들을 읽어갔다. 그러면서 늘 들어왔던 이야기를 너무나 익숙한 어법으로 전개한 시편들에게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자신의 견고한 내면세계에 천착한 접근불능의 시편들에는 더 이상의 인내를 발휘할 수 없음에 동의했다.
결선에 올라온 네 사람의 작품들은 이런 측면에서 모두 선자(選者)들의 욕심을 채워주었다. 먼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하였던 하봉채의 「구두코에 걸린 달빛이 흐리다」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신선함과 시편 전반에 자리한 단단한 상징들이 미덕이었다. 그리고 정연희의 「나무들 그 거리가 멀다」는 보편적 삶의 가치를 시적 형상화를 통해 일구어내려는 따뜻한 시심을 보여주었고, 이십여 편에 가까운 시를 투고한 심정미의 「개망초 꽃처럼」은 시의 내적 흐름과 서정적 자아의 호흡이 어긋나지 않는 운율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많은 망설임과 고민 끝에 이병일의 「곰팡이」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견없이 합의했다. 우선 그의 시는 콩이 숙성과정을 통해 메주가 되어 결국 밥상 위에 오르는 모습을 통해 삶의 긍정적 세계를 펼쳐보여 주었으며, 더불어 시의 근원이 삶에 대한 건강한 성찰임도 잊지 않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병일의 시편들이 결선에서 겨룬 다른 시편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은 시행과 시행 사이에서 절묘하게 조절되는 긴장과 시편 전체를 통제하고 구성하는 시인의 세련된 시적 장악력 때문이었다.
시인 김종철/신달자
**당선자 소감-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려고 형이 추천해준 책을 읽고 있었다. 뜻밖의 당선소식을 듣고 나는 부끄러웠다. 이제 시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려고 하는데,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낯설어보이는 하루였다.
군에서 전역한 후, 일정하게 책을 읽고 또 시도 열심히 쓰려고 누구보다 많이 노력한 일년이었다. 이번 계기로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할 것이다. 철없는 막내보다 더 기뻐하신 부모님, 그리고 나의 가족들. 문학을 이야기하며 같이 놀아주던 절정 동기들.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세상의 사물들이 있기에, 오늘도 거리를 걸으며 메모장에 시를 적는다. 나는 아궁이에 윤기 흐르는 시를 지필 것이다. 그리고 살아 꿈틀거리는 시를 쓰기 위해 자연과 연애할 것이다. 자연 속엔 위대한 잠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복학해서 같이 공부한 2반 식구들. 그리고 뒤란 식구들. 매순간 힘이 되어준 지훈형, 성우형에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시 쓰기를 천직으로 여기라는 장석주 교수님, 어머니 같은 따뜻함으로 부족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신달자 교수님, 시의 길에서 새로움을 깨닫게 하고 시를 만들게 도와주신 이경교 교수님, 그리고 명지의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미숙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평화신문사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시인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
이병일
△1981년 전북 진안 출생 △2002년 병영문학상 가작 수상 △2004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2학년 재학중 △시모임 '뒤란'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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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정/오페라 미용실 [2005 경향신문]
오페라 미용실
능선으로 몰려든 검은 구름이
귀밑머리처럼 삐죽삐죽 나온 지붕에 한발을 걸친다
그 사이, 좁다란 골목길이 계단을 오르며 헉헉 숨 내쉬는 곳에
할아범 측백나무와 오페라 미용실이 마주 서 있다
그는 매일 미용실 바깥의 오페라를 감상한다
미용실 눈썹처마에 모아둔 나뭇잎 음표들이 옹알거릴 때
가위를 갈다가 번뜩이는 악보의 밑동,
백지에 오선을 긋던 어머니는 병세를 자르지 못해
머리에 자란 음표를 모두 빼내 옮겨 적었고
연주가 서툰 아버지는 가파른 골목길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오페라를 관람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은
측백나무에서 음표를 떼어 내던 앙상한 어머니를 목격하였다
어머니를 마구 흔들고 지나간 바람이 옥타브를 높이며
구름 떼를 몰고 오기도 했다
미용실 문이 열리자 그는 내내 벌려 예리해진 가윗날을 접는다
머리숱이 적은 손님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 마다
음치인 울음이 미용실에서 뛰쳐나간다
동네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선
울음이 두근거리는 아리아로 변주해 울려 퍼지고
측백나무에서 마지막 남은 음표가 눈썹처마에
떨어질 때
낮은 지붕 위로 함박눈이 음계 없이 쏟아진다
나뭇가지 오선지 끝에 하얀 음표가
대롱대롱 매달리고
악보에 없는 동네 사람들이 돌림노래처럼
몰려나와
희희낙락 오페라를 구경한다
<심사평>
예심을 넘어온 시편들의 기교적 수준은 일반적으로 높았으나 개성과 다양성이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한 편의 시란, 아무리 작은 규모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재현(현실)의 축과 표현(개성)의 축, 그리고 언어(기호)의 축을 가지고 있게 된다. 어느 한쪽이 너무 과부하를 받거나 결핍되면 진정한 시의 역동적인 생명감이 태어나지 않는다. 시 텍스트는 그러한 삼위일체 긴장의 아비투스 속에서 고유한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된다.
많은 응모작 중에서 심사위원은 최명희의 ‘비닐 하우스’와 이해존의 ‘이곳은 난청이다’, 윤석정의 ‘오페라 미용실’에 주목했다. ‘비닐하우스’는 현실감각과 현실의식은 뛰어난데 시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와 이미지의 전개에서 조금 상투성이 엿보였다. 누군가 한번 해본 소리 같다. 아니 누군가 한번 해본 소리라 하더라도 자기만의 상상력과 언어의 힘으로 표현해낼 때 새로운 자기 작품이 태어난다.
‘이곳은 난청이다’는 아주 단단한 작품이다. 그러나 상상력에 한계가 있는 것 같고 ‘나는 비참하다’라는 엄살기가 조금 엿보인다. 그러나 이미지의 전개에 밀도가 높고 단단해서 적지 않은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윤석정의 ‘오페라 미용실’을 당선작으로 선택하는데 두 심사위원은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오페라 미용실’은 ‘늙은 측백나무’와 ‘미용실’이 마주 보고 서있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낯익은 마을 풍경을, 신선한 상상력과 생생한
비유로 하나의 생동감 있는 음악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현실 감각도 없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진부한 재현의 세계는 아니며, 아주 발랄하고 풍부한 상상력인데 그렇다고 낯설게 멀리 나아가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재현의 세계와 표현, 언어의 세계가 잘 어울려 아주 맛있게 배합된 시의 맛을 그득하게 한 상(床) 잘 차려 놓았다. 어디까지나 요약과 압축을 전제로 하는 한 편의 시는 잘 차려낸 ‘모국어의 한 상(床) 성찬이어야 한다’는 시의 매력을 잘 보여준 이 시인은 다른 응모작인 ‘마늘’에서도 그 섬세하고도 단단한 재능을 보여준다. “만삭인 나는 아랫배 쓸어본다./ 아기는 얼마나 여물었을까/ 어머닌 내가 태아였을 때도 씨 뿌려두고/ 탯줄이 잘 이어졌는지, 더듬이가 돋은 마음/ 자라는 것에 먼저 닿게 했으리라”와 같은 아름다운 섬세함과 상상력의 고요한 역동성은 살아 있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당선소감>
윤석정
▲ 72년 전북 장수 출생
▲ 원광대 국문과 졸업
▲ 중앙대 대학원문예창작과 재학중
거주민만큼 계단이 많은 동네, 흑석동에서 겨울을 두 번 맞는다. 시간은 어떤 맨홀에 빠져 허우적거렸을까. 되돌아보면 어둔 구멍에 빠져서 며칠 묵었다고 여기게 된다.
애벌레처럼 웅크린 잠에서 깨던 날이면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인지 녹슨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릴 때가 많았다. 그런 소리들은 적막을 밀어내는 음계 같은 거였다. 혹은 내 가슴속에서 총총히 계단을 만드는 시 같은 것. 나는 반지하방에서 꿈틀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곤 했다. 가끔 퇴고를 하는 꿈도 꾸면서.
고교시절, 나의 유일한 친구는 시였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소중한 존재로 어느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시가 내 곁에 그냥 있는 게 아니라고 알았을 때부터 나는 절망을 알게 되었다. 줄곧 비가 내리던 날이 많았다. 겨울이 오면서 눈이 내리길 간절히 기다렸다. 내게 있어 희망이란 어디서나 공평하게 내리는 눈발 같은 거였기에.
눈 쌓인 거리를 이유 없이 걷고 싶었다. 꼭 그래야만 지금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으므로. 드디어 청천벽력처럼 전해진 당선소식은 눈발이 되어 쏟아졌다.
그 순간 나는 사유의 계단을 찬찬히 오르 내리게 해준 흑석동이 참 고마웠다.
나의 긴 겨울가뭄에 눈발을 내려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분들이 꽤 많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들. 묵묵히 믿어주신 이승하 선생님, 나에게 내릴 눈발을 간절히 기다린 지우 경주. 친구들. 내 시의 고향 그루터기, 시동, 생각만 해도 치열해지는 원광문학회, 멋진 14기 동기들, 선·후배님들, 포에티카 선배님들. 식충이를 한없이 믿어준 사랑하는 부모님과 뚝섬 고모, 미순, 석완, 언제나 봄날 같은 누나 미선, 내 귀여운 동생 석민.
이제는 길이 가려진 눈길을 더 힘차게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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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자/돌에 물을 준다 [2005 전남일보]
돌에 물을 준다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 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 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새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이슬을 생각하며 내거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뒤돌아 볼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웠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다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수 없을때, 긴꼬챙이 같이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로 먹고살았다 아픔도,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문질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강가 밤이슬 사라지고
소리 없이 웅크린 기억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너의 긴 길이 내 몸 속으로 들어 왔다
멈출 수도, 늙어갈 줄도 모르는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준다
<심사평>
이 향 아
예선을 거쳐 올라온 것은 아홉 사람의 시 44편이었다. 그 중에서 이선자씨의 `돌에 물을 준다'를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선자씨가 응모작품으로 보내온 시는 위의 `돌에 물을 준다' 외에 `비닐봉지', `소리의 집', `잠들지 않는 육교', `그림 속의 물' 등 다섯 편이었고 이 시들의 수준은 거의 균일하였다. 한 사람의 작품 수준이 고르다고 하는 것은 그 시작의 능력에 신뢰감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물을 끌어들이는 이선자씨의 싱싱한 감각, 어휘의 적절한 절약,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시상의 흐름도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시든 일반적인 시든,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적 세계관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시각, 지나치게 요설적이어서 부자연스러운 어휘들의 접합은 감동력이 약하다. 시가 아무리 개성의 문학이라고 해도 보편성을 너무 무시하면 요령부득의 암호가 될 수 있다.
최종까지 올라온 작품으로는 구본창씨의 `이 땅에 꽃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사설을 조금만 더 여과하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는 이선자씨의 장도를 축하한다. 지금의 열정이 마르지 않도록 간수하면서 정성을 기울여 이끌어가기 바란다.
〈시인 호남대 명예교수〉
<당선소감>
언제부터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길 하나 품었다. 그 길은 어두웠다.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이 너무 힘든 길이라거나 혹자들은 가보았자 무지개가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갔다. 그들의 길이었다. 나의 길을 꿈꿨다. 부엌의 싱크대 앞에서도, 아이들 꽁무니를 졸졸 따르는 부산한 하루 하루를 원망하면서도 나의 길을 꿈꿨다.
희미한 빛도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뒤돌아설까 생각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일을 하는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려는 것과 싸워야 했다. 시의 길은 나의 무기력과 맞서려는 길이다. 오늘 저녁도 나는 무기력한 길과 시의 길 앞에 망연히 서 있었던가. 아직은 멀었다고, 더 많은 시간을 가야 한다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시의 길을 더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선소식을 듣고 난 한참 후에야 어둡던 나의 길이 나타났다. 길 입구에 작은 불빛이 보인다. 불빛이 참으로 반갑다. 그 불빛을 따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가리라.
불빛이 되어주신 전남일보사와 아직 서툴고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광주대 이은봉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마음 다해 감사드린다. 힘이 되었던 고재종 선생님 격려 또한 잊을 수 없다. 진정으로 기뻐해주는 문우들과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
가장 먼저 이 길을 제시했던 친구 또한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몸 하나로 칠남매를 키우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늘 큰 사랑으로 품어주기만 하는 셋째 언니, 형제들과 기쁨을 같이 하고 싶다. 누구보다 기뻐할 남편과 아이들, 이 모든 것들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약력
1963년 장흥 관산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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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멜순 [2005 광주일보]
멜순
길섶 가시덤불 속에서
용케도 멜순을 찾아내시는 어머니
재잘거리는 내 눈이 서운할까
마주치시는 것도 잊지 않고
말에 간간이 추임새를 넣어주면서도
그녀의 등허리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향해 있다
두 눈 부릅뜨고 그녀의 눈길을 따라가 보지만,
내 눈에는 엉킨 실타래같은
가시덩굴 뿐
선밀 나물은 나를 피해 요리조리 숨어 있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얼른 달려와 다소곳이 앉는다
그 부름으로 환해지는 산보길
멜순도 허겁지겁 봄을 불러와 꽃을 피운다
내 입에서 나오는 선밀 나물과 어머니의 멜순
길바닥에서 엉켜 뒹구는 그 말들을 모아
어머니는 버무리신다
데쳐도 향기는 손끝에 남고,
어머니 몸엔 멜순향 나는 파스가 숨어 있다
**멜순: 선밀나물의 제주도 방언
[시 심사평]덜 길들여진 감수성 높이 사
새롭고 도전적인 목소리를 만나고 싶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갈수록 어려워져가는 것 같다. 투고작들이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소재나 발상이 비슷비슷하고 시단의 유행을 모방하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강윤미, 주영국, 문정희 등의 시는 일정한 궤도에 올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정희는 말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하고 일상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변주해 내고 있지만, 상상력과 어법이 지나치게 낯익은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주영국은 사회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시에 포섭해 들이며 건강하고 뚝심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스케일에 비해 내용이 명료하지 못한 것은 시어가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증표일 것이다.
강윤미의 시는 주영국의 시에 비해 감정의 선(線)이 너무 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선자들은 강윤미의 덜 길들여진 감수성과 발견의 시선을 높이 사서 '멜순'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즐겁게 합의했다.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멜순'이라는 낯선 말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이 작품 역시 그런 특장을 잘 보여준다. 당선자의 이 새로운 출발이 커다란 공명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강 은 교
▲45년 함남 흥원 생 ▲연세대 문학박사. 현 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월간 '사상계' 시 당선 ▲한국문학작가상.현대문학상 수상 ▲'우리가 물이 되어' '사랑법' 등 작품 다수.
나 희 덕
▲66년 충남 논산 생 ▲연세대 국문과 졸. 현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 수상 ▲'뿌리에게' '어두워진다는 것' 등 다수.
[시 당선소감]먼 길 가는 첫걸음 내디뎌
오늘 저녁,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대학원서를 냈던 열아홉의 겨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지평선 위를 달리던 기차를 생각했습니다. 처음 보았던 기차가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올해로 제주도를 떠나온 지 육 년이 되어 갑니다. 그 동안 다섯 번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다시 겨울이 왔습니다. 항상 첫눈을 기다리던 마음이었는데, 막상 당선소식을 듣고 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먼길을 갈 수 있게 용기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힘겨울 때마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시는 이상복 교수님, 믿고 지켜봐 주시는 정영길 교수님, 정동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전동진 선생님, 박성우 선생님, 유재화 선생님, 원광대 문창과 동아리 '시공간'과 대학원 식구들, 나의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물푸레나무 정배오빠, 동생 윤정.수복, 오늘도 집어등을 켜고 딸을 응원해주시고 계실 부모님께 이 기쁨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시를 항상 따뜻하게 읽어주시는 강연호 교수님!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강 윤 미
1980년 제주 출생
원광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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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미/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2005 무등일보]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빵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
개미 가는 길을 신발로 가로막지 마라
끓어질 듯 가는 허리에 손가락을 얹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 한 마리가 손등으로 오른다
언젠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아버지
바짝 마른 허기가 만져질 것이다
아버지가 털털거리는 생선 트럭을 끌고
돌무지 비탈길을 누비고 다녔다
생선 상자 위로 쏟아지는 땡볕
신경질적으로 바퀴를 두드리는 돌덩이들
왕왕거리는 메가폰 소리를 뚫으며
식식거리며 아버지는 나아가고 있었다
거친 시동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괜찮아, 내 허리띠를 붙잡아라
그날도 아버지는 덜컹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손등에 오른 개미를 가만히 내려놓는 당신
개미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치워준다
멀어져 가는 아버지,
당신의 눈 속으로 기어든 개미가
시동을 건다 여섯 개의 다리가 붕붕거린다.
신춘 무등문예 시 -심사평-곽재구(시인·순천대 교수)
시정신 내적인 질박함 구축 돋보여
다섯명의 응모작품이 최종선까지 남았다. ‘사마천을 읽다’외 4편의 경우 군더더기 없는 시어들과 이미지활용이 눈에 띄었다. 반면 전통적인 소재의 선택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확인작업이 미흡해 보였다.
‘궁지댁’외 4편의 응모작은 걸죽한 입담속에 스며있는 삶에 대한 따뜻한 인식이 돋보였으나 이들로써 현대시의 내외적 질량을 채우기에는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외 5편의 응모작품은 탄탄한 습작기를 거치는 과정의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거친듯하면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동감을 주었으나 시어와 이미지의 구성력에 있어 치밀한 미적 정제의 과정이 더 요구되어 보였다.
‘노래가 있는 풍경’과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두 응모작은 서로의 장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노래가 있는 풍경’의 경우 크게 드러내는 목소리는 없으나 시의 외장이 세련되게 보였다. 평범한 일상속에 스며있는 삶의 의미를 바라보는 분은 예비작가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신뢰감을 주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벼운 발상과 풍경의 터치가 신인의 목소리로써 그 울림이 작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경우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외장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노동을 매개로 한 개미의 상상력은 어딘지 진부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려한 고지식한 작가의 눈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바가 있었다.
동봉한 ‘돈 안되는 쑥개떡’ ‘황태덕장에서’와 같은 시편들에게도 이런 질박한 시선은 동일하게 존재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선자는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세련되고 자유로워 보이는 외장대신 시정신의 내적인 질박함을 택한 것이다. 삶의 내종까지 끝내 밀고 가는 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탓이기도 하다.
삶의 끝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의 탄탄한 노동처럼 생의 매순간 순간 시의 정신을 추스려 나가는, 거칠면서도 내실있는 목소리를 현대시의 나약한 울림에 경종을 주는 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신춘 무등문예 시 당선소감 -정경미(본명:정미경)
詩作은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
시를 쓰는 그녀는/조금씩 거미가 되어간다네/무언가 걸려들 구석구석에/시신경에서 실을 뽑아 줄을 친다네//가랑잎 걸렸으면 어쩌나/괜찮은 요리감이 걸렸어야 하는데/겨울이 흘려놓은 사연을/폐부 깊숙이 삭히면서/흑백 필름에 빗줄기 서는/기억을 얇게 펴면서/숨죽여 먹이감을 살핀다네//우두커니 앉은 사람 곁에서/칭칭 하루종일 실을 감기도 하고/포크레인 거친 손아귀에 실 엉켜도/눈길 가는 곳이면 거미줄을 친다네/가정법원에 뛰어 들어가/차갑고 미끄러운 대리석에 씩씩거리며/몇 번인가 줄을 친 적도 있다네//오늘도 그녀는 아테나 여신과/최고의 직물짜기를 시합한 아라크네처럼/몸뚱어리로부터 거미줄을 뽑아내다가/뒤엉킨 거미줄을 둘둘말아 잠이 든다네/그 모습이 불후의 시 한 편이라네.(거미시인)
‘간절한 꿈꾸기는 그 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물이 도와주려 아우성친다’는 문장을 붙들고서....나는 꿈꾸기를 좋아한다. 계속해 나간다. 그 꿈꾸기가 나를 밝히고 곁의 사람들에게 밝음으로 다가가기를 꿈꾸는 것이다. 이런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에 힘을 북돋아주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속 끓이신 김명인교수님과 시모임 선생님들 또한 늘 의지가 되어주는 블루마운틴과 고마운 친구들과 이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부족한 시에 텃밭을 허락해 준 신문사와 이제부터는 심호흡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발성을 하라고 선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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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미/철거지역 [2005 경인일보]
철거지역
굴피집 처마 끝에서 포크레인이 홰를 친다
노란 살수차가 산동네의 새벽을 깨우며
을씨년스런 거리를 적신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철지난 전화부가
다이얼을 돌리며 안부를 묻는 동안
재개발 택지 분양 프랭카드는
부푼 몸을 날리는 햇살에 눈을 뜬다
비닐 하우스의 골담초는
봄을 기다리며 세간들을 살피고
떠도는 개똥지빠귀새 추운 어깨에
살풀이구름이 내려앉는다
찢긴 연체료 고지서가 수화를 건네며
검은 입술에 묻은 상처를 펄럭이고
왼쪽 어깨가 밀려나간 외등이
백밀러 속으로 뒷걸음질 친다
멈춰버린 괘종시계는 언제나
뜨거운 한낮에도 저무는 하늘을 가리킨다
팽팽한 오후가 하수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골목길은 말 잔등처럼 출렁거리며
어두운 길목에서
희미한 등불을 켜고 있다
<심사평>
시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좋은 시와 좋은 시인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원래 그저 좋은 것은 희귀하게 마련이지만 시의 기본적인 품격조차 갖추지 않은 시의 과도한 생산은 시의 위력과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 볼 일이다. 영상 매체의 발달에 따라 활자 매체의 존립 근거가 퇴색해 가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문학 외적인 진단에 의한 시의 위기론보다는 좋은 시의 위기를 우려해야 할 시점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는 기존의 시적 상상력을 무너뜨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언어 표현이 생기를 얻을 때 발아한다. 단 한 편만 뽑는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일까. 모두들 수준이 엇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오래된 집'은 크게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시다. 시에서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도 오랜 수련의 결과로 생각된다. 하지만 소품이라는 점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때로 시의 스케일을 크게 잡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밥상'은 발상이 참신하고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시를 세밀하게 다듬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난데없는 돌부리들이 곳곳에 출현해 시의 품격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마장 풍경'과 '철거지역' 두 작품을 놓고 고심했다. 앞의 시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시에 삶의 온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감각적 표현도 아주 볼 만하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본 듯한 몇몇 이미지들이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선작으로 고른 '철거지역'은 주체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객관적 묘사의 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은 없지만 안정적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 점이 믿음직스럽다. 상처 입은 것들에 시의 렌즈를 들이대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정희성·안도현 시인
<당선소감>
뙤약볕 내려 쬐는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왔습니다. 발이 부르트는 지경에서도 시에 대한 믿음 하나로 마다 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시를 향한 우직한 집념으로 더러는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더욱 시에 대한 오기와 열정을 용솟음치게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바닥이 두껍고 편안한 신발을 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에 대한 절명의 애착 때문에 외로운 수행자의 고행처럼 세속적인 소망을 애써 저버린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결코 앞으로도 평탄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름다움만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노래한 키이츠의 행로를 따라 걸어갈 것입니다.
가장 진실한 지혜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여겨왔습니다.
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곳에 빛나는 시의 소재가 숨어있고 현란한 관념과 이미지가 내재해 있음을 깨달아 왔습니다.
그것이 곧 진실의 표정이요 지혜의 속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다짐해 왔습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자 문득 봉숭아꽃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릴 적 봉숭아꽃 속에는 시의 텃밭이 되어주신 아버지의 영상이 겹쳐져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버리신 아버지께서 사랑과 망각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8년 전 가을 어느날 봉숭아꽃이 피었다고 나들이 오라시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그리움의 울타리 안에서 피어오릅니다.
부족한 글을 눈여겨 살펴주신 경인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부르튼 맨발을 말의 붕대로 감싸주신 하현식 교수님과 이신정 시인을 비롯한 문우들과 악동님께 감격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고집스런 시의 길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준 가족들과 아들 성로, 그리고 올케 송인숙님께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 영광을 아버지 영전에 드립니다.
◇약력
1960년 경남 거제시 연초 출생
현재 부산 금정초등학교 영양사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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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안개 [2005 강원일보]
안개
길을 나서면 안개가 먼저 다가온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내력
지상의 열린 틈마다 안개가 스며들고
사람들은 한번쯤 기침을 호소한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으며
길은 늘 젖어있다
세상의 새벽은 잠 못 이루는 곳에서 먼저 개어나
충혈된 소음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밤새 안개에 젖어 퉁퉁 불은 가로등이
불면의 문장처럼 침침하다
정오가 되기까지는 완전한 침묵이다
이곳의 시간은
안개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다
사물들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때쯤이면
정오의 햇살이 길의 한복판까지 나와 있다
지루한 변명들이 길게 꼬리를 남기고 사라진다
내 안에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것들처럼
대부분의 안개는 길 위에서 소멸해 버리고
구부러진 생의 길목마다
어둠은 먼저 찾아드는 법
새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을까.
<심사평>
-"수련과정 거친 솜씨 탁월"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이번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전국 시인 지망생들이 무려 2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낸 1,500여 편의 시 작품 중에서 오직 한 편만이 당선작으로 뽑힌다. 그래서 시인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시인이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갖는다.
예선을 거쳐 넘어온 12분의 작품 중 조용숙, 최재영, 심은섭, 이순주 씨의 작품들이 최종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네 분 다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작품을 보여주었지만, 많은 논의 끝에 최재영 씨에게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기로 하였다.
심사 위원 두 사람이 무엇보다도 관심을 둔 것은 시의 완결성과 참신성이었다. 시의 완결성이란 곧 시의 구조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는 특히 독자 공감의 의미 구조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참신성이란 언어 선택과 언어 조합에서 느껴지는 시적 탄력을 말하는 것으로, 신인으로서의 신선한 언어감각과 문체의 힘이 확인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 분의 시가 모두 부분부분 구조적 오류와 진부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선택이 어려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최재영 씨의 작품은 많은 수련 과정을 거친 솜씨가 돋보였고, 시적 완결성과 참신성 면에서도 높은 가능성이 인정되는 것이었다. 축하하며, 치열한 분석적 성찰을 통해 보다 좋은 작품 창작에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낙선한 분들이 가진 가능성도 매우 큰 것이었다. 도전 의식도 좋고, 상상력도 남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부분과 전체를 관계 짓는 안목에 미숙함이 보였다. 스스로가 지닌 시적 결함이 무엇인지 살피는 ‘눈’을 형성하여 새로운 창조적 도전 있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심사위원:신승근(강원일보신춘문예75년당선·정선고교사·시인) 박민수(춘천교대교수·시인)
<당선소감>
-"내안의 격랑 희망으로 승화"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격랑때문에 유난히 힘들었던 해였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실체는 잡히지 않았고 늘 짝사랑하는 사람의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가슴이 시렸다. 상처의 흔적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고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면서 나는 내 안의 상처들이 자신에게 독이 되기를, 나태해지지 않고 스스로를 잠재우지 않는 시퍼런 독으로 쌓이기를 희망했다.
기쁘다. 내가 당선소감을 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지나치는 작은 측백나무 숲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마주치면서 우리는 꽤 친숙해진듯 싶다. 나는 숲의 흐름과 고요와 붉은 행로를 들여다보며 미숙하고 어리숙한 나의 시간들을 곱씹어본다.
시를 쓴다는 것, 은 내게 오랜 응시와 인내를 가르쳐 준다.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리라.
당선 소식에 제일 먼저 기뻐해 준 남편과 아이들, 아내와 엄마로서 제대로 한 것이 없는데 미안하고 고맙다. 매운 채찍으로 올바른 시의 길로 인도해 주신 박경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늘 든든한 시원동인 선배님들. 부족한 작품 選해 주신 강원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프로필
△1965년 안성 출생
△방송통신대 일본학과 2학년 재학
△경기도 평택문인협회 사무국장
△시원문학회 회원
△2004년 제5회 전국가사문학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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