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여행3 - 옥스퍼드의 중심 대학인 크라이스트 처치를 구경하다!
누군가 여행자가 옥스퍼드시 에 도착해서는 행인에게 "옥스퍼드 대학교 가 어디 있느
냐?" 고 물으니 현지 주민이 어리둥절 하더라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적이 있는데....
우린 옥스퍼드 대학교 를 이루는 38개의 칼리지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Christ Church 대학의 육중한 교문을 들어섭니다.
그러고는 길을 따라 다시 자그만 철문 을 들어서면 땅 바닥에 실물 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조각된 장검 을 발견합니다
오른쪽으로는 밀림을 방불하는 거대한 숲 이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푸른 잔디밭 너머
담장 안에는......
여러 색깔의 꽃 이 다투어 피어 있고..... 그 뒤로는 수백년 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건물 을 봅니다.
주로 서양인 관광객 들이 많이 붐비는 데, 그 중에서 동양인으로는 우리 외에 신혼
여행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중국인 부부 가 카메라에 자주 잡힙니다.
그러고는 모퉁이를 돌아가니 서양인 관광객 들이 대거 몰려있는 데, 아마도 입장 순서 를
기다리는 것일러나?
유럽이나 미국의 이른바 명문 대학교 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관광객들 에
대해서는 입장료 를 받고 가이드를 따라 한정된 곳을 도는 형식으로 방문을 허용 합니다.
아니, 대학교를 방문하는 데 돈을 받는다니?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도 없지않아
있겠으나....
수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방치하면 정상적인 수업을 하기 힘들 것 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도 그들 관광객 뒤에 섰더니 몇몇 분이 우리더러 앞질러 들어 가랍니다!
이게 왠 횡재냐 싶어 6파운드 씩을 내고 입장하는 데....
처음엔 불어나 독어 가이드 팀이라 그런가 보다 했으나 앞서간 영어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럼.... 개별 방문 도 가능한 것일러나?
여긴 한정된 공간 만을 가이드 없이 화살표 대로 도는데... 작년 가을 미국의 보스턴
에서 하버드 대학교 를 보았는데 알바인 듯 재학생 이 나와 안내 를 해 주고...
비교적 자유롭게 툭 터인 교정을 보면서 가이드를 마친 후에는 방문객들의 열띤 질문
공세에 웃으며 답해주던게 비교가 됩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처음에는 무슨 교회당 인가 싶었을 정도로 높은 천장이 나오고
문을 나서니......
바로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인데 맞은편 탑이 톰 타워 Tom Tower 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밤 9시 5분에 저 Great Tom 탑에서 백 한번 종이 울려서는 대학생들의
야간 통금시간 을 알렸다고 했던가요?
옥스퍼드 가 1,209년에 학술도시 로 되면서 학생과 시민 사이에 분쟁이 발생 하자 학교
는 시 행정에서 독립되어 스스로 자치 를 누리며 자체 징계 를 했는 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처럼 18세기 중반 까지 이런 치외법권 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를 대표하는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는 12세기의 수도원 자리 에서 시작되었
으므로 아직도 처치 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데....
1,546년에 영국왕 헨리 8세 가 성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학 을 세우면서 크라이스트
처치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칼리지에는 존 로크 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이 교수
로 재직 했다고도 합니다.
또 그레이트 홀 은 영화 해리포터 의 호그와트 마법학교 식당 의 배경이 되었다지만......
우째 이런 일이??? 보수공사를 위해 오늘은 관광객에게는 개방을 하지 않는다니!!!
어쩔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대성당 Cathedral 로 옮기는데.... 성당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 대학을 설립한 모태 가 되었듯이 설립자 헨리 8세의 문장 이 새겨져 있습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스테인드 글라스 를 통해 햇빛 이 들어오니 교회 내부가 생각보다
는 밝아서 화사한 분위기 마저 듭니다.
제단 도 크지는 않지만 황금을 칠했는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다가 조각상 들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 사실적으로 보입니다.
조각이며 스테인드 글라스 가 설립자 영국왕 헨리 8세 를 의미하는 그림 들이 많아 마치
왕실 예배당 같은 분위기마저 풍기니......
우리 기억에 헨리 8세 라고 하면 형이 죽자 확실히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형수인
스페인 아라곤의 왕녀 카트린과 결혼 하여 딸 메리 를 얻었으나 아들이 없자....
시녀 앤불린과 결혼 하기 위해 왕비와 이혼 하자 로마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파문 하니
1,534년 오히려 수장령을 공표해 가톨릭에서 독립해 영국 성공회를 창시 했습니다!!!
그후 앤불린이 딸 엘리자베스 만 낳고는 왕자를 사산하자 아들 욕심에 이혼을 요구
했으나 거절당하자 간통죄 누명을 씌워 도끼로 목을 쳐 죽입니다.
이후 시녀 제인 시모어 에게서 그토록 고대하던 왕자 를 얻었으나 왕비가 산후욕 으로
죽자 독일의 공주 앤과 결혼 했으나 용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후회하며 이혼 합니다!
다시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 했으나 캐서린이 늙은 왕에 만족 못해 바람을 피우다가 사형
당하고 캐서린 파와 다시 결혼 하여 왕비 여섯 둔 것만 알지만....
그는 프랑스와 손잡고 스페인과 스코틀랜드를 물리쳤으며 왕권을 강화 하여 안정과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개선 시켰던 노련한 정치가 였습니다.
더욱이 그 와중에서도 1,546년 여기 옥스퍼드에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을 설립 해서
영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 했던 것이지요.
헨리 8세 가 왜 그토록 아들 생산에 집착 하였는가 하면, 노르만 왕조 에 이어 영국을
다스리던 프랑스 앙주 출신 의 플랜타저넷 왕조 리처드 2세 로 부터....
랭카스터 가문의 헨리 4세가 왕위를 뺏어 국왕 에 오르니 그 후손인 헨리 6세 시절에....
요크가의 리처드 가 랭카스터가가 왕 이 되면 요크가도 못하지 않는다고 반란 을 일으킵니다.
1,455년 세인트올번스 전투 이래 30년간 두 가문이 승패를 주고 받으며 서로 왕위를
빼앗는 엎치락 뒷치락 처절한 수많은 전투 끝에......
1,485년 붉은 장미 랭크스터가의 헨리 가 망명지에서 돌아와 웨일즈에 상륙 해서는!!!
보즈워스 전투 에서 흰장미 요크가의 리처드 3세 국왕을 죽이고 장미전쟁 을 마감
하여 헨리 7세로 등극하니 이른바 튜더 왕조 입니다.
그 헨리 7세가 요크 가문의 공주 를 맞아 태어난 아이가 헨리 8세 형제 이니 아들이
없으면 자기 사후 다시 처참한 왕위계승 전쟁이 일어날까 염려 하였기 때문인 것이니!!!
토머스 울지, 토머스 크롬웰 에다가 유토피어의 저자 토머스 모어 를 대주교에 임명했다가
모조리 처형 시키며 왕권을 유지한 그도....
죽을 때는 병약하고 어린 아들 에드워드 가 염려 되어 토머스 크랜머 의 손을 붇잡고
눈을 감지 못했다니....
마치 어린 유선 을 제갈공명 에게 남기고 가면서 근심에 차서 눈물 흘렸던 황제 유비
가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병약하여 자리에 들어 눕는 날이 많았던 문종 이 야심만만한 삼촌들 곁에 남겨진
어린 단종 을 두고 근심했던 일이나....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만년에 어렵게 요도기미로 부터 얻은 어린 아들 히데요리
를 두고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어서....
이시다 미쓰나리 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다섯 중신에게 서약서를 쓰게 한 것도 모자라
고개를 숙여 절하며 후사를 부탁 했던 장면과 흡사하니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네요!
성당을 나오려는데 마침 파이프 오르간 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러니까 교회
바닥에 놓인 정말 작은 오르간 인 데, 저 벽의 큰 파이프는 울림판 이라!!!!
10여분을 듣다가 성당을 나와 꺽어져서는 중문 을 나오니 교실 높은 창문을 넘어
창턱에 앉아 대화에 열중하는 두명의 옥스퍼드 대학생 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도서관 을 지나 오른쪽으로 갤러리 가 보이건만 다른 대학 도 보아야 하고 오늘 중으로
기차를 타고는.....
고풍스러운 농촌 마을 코츠월즈 에도 다녀와야 하니 아쉽지만 그냥 지나쳐서 뒷문
으로 빠져 나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곳....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