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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강
不違道用이어다. 道用이라고 하는 중요한 말씀 말씀이거든. ▮道用이라는 것은 도를 쓴다는 말 아니겠나? 수도하는 작용이라. 道用이라고 하는 말은 다른 데는 자세하게 이야기 아니해 놨는데. 그 도용이라고 하는 것이 도를 닦는 사람의 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이라.
그러니까 가섭존자가 초조가 돼서ㆍ2조 아란존자ㆍ3조 상나화수존자ㆍ4조 우바국다존자ㆍ5조 제다가 이렇게 쭉~~ 하니 傳燈 제23조에 학륵나존자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는데, 500마리의 학들이 항상 이 스님을 따라다녔다고 그래. 이 스님이 가는 곳에는 학들이 500마리가 뒤에서 빙빙 돌기 때문에 멀리서도 대번 알아. ‘아~, 학륵나존자 저기 계시는구나’이렇게 알 정도입니다. 스님이 가는 곳 마다 이 학들이 죽어라고 따라다녀. 어떤 면으로는 좋은 것도 같지만, 비 올 때 되면 그 학이 냄새가 나고 똥도 갈겨싸코 영 안 좋거든... 아무리 쫓아도 가지도 않고 학륵나존자 가는 곳마다 학 500마리가 따라다닌단 말입니다.
한 번은 마나라존자라고 하는 스님을 만나서, 자기 스님이지. 만나서 물었어. “저는 과거의 무슨 업으로 학 500마리가 이렇게 따라다닙니까?”그러니까 “네가 과거전생에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제자가 500명이 있었는데, 그 제자들을 놔놓고 네 혼자 저 용궁에 공양청정을 갔다”는 겁니다. 전생에도 도력이 좀 있었던가 봐. 용궁에 가서 공양을 받아서 자시고 오고 하니까 제자들이 알거든. ‘우리 스님은 용궁에 공양청정을 간단 말이여, 그런데 우리는 안 데려 간단 말이여, 그 용궁 한번 구경도 하고 가 봤으면 좋겠데...’싶었는데 요즘 말로 데모를 떡~ 합니다.
스님한테 사서 절을 하고, “스님요, 스님이 항상 법문하시기를 於法에 平等者는 於食에 平等이라고, 법에 평등한 사람은 먹는 데도 평등하다고 했고, 於食에 平等이면 於法에 平等이라. 먹는데 평등한 사람은 법에도 평등하다고 늘 안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요즘 어떻게 스님이 말씀하고 실지하고 영 안 다릅니까?”이러거든.
진짜 입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역할을 하거든. 입이 설법, 법문도 하고 또 입으로 먹기도 하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제가 외국을 다녀보니까. 어느 나라든지 가서 그 나라 음식이 탁 입에 맞게 되면, 맛있게 되면 그 나라 말을 잘 하게 돼. 외국 사람들요? 한국에 와가지고 김치깍두기 된장 “아 맛 좋습니다. 맛 좋습니다”하게 되면 한국말 제법 잘 하는 겁니다. 처음 와가지고 김치깍두기 “아~~ 맵다”하고, 된장“아~~이구 냄새납니다”하면 그것은 영 한국말 모르는 겁니다. 그런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입에 맞게 되면 그 나라 말을 하게 돼. 그래서 내가 학생들 보고 너희들 영어 잘 하려거든 햄버거 부지런히 먹으라고 그러지.
“햄버거를 부지런히 먹으면서 하게 되면 영어가 훨씬 낫게 된다”
그래서 입이라는 것이 於食아닙니까? 食아닙니까? 於法은 말하는 것이 법이거든. “於食에 平等하면 於法에 平等하고, 於法에 平等하면 於食에 平等이라. 이라더니 스님이 어째서 용왕궁에 혼자가십니까?” 이러니까 할 말이 없거든. “그러면 나를 따라 한 번 가자” 그러고 상수제자 보고 “내 가사 자락을 잡으라”나머지도 전부 그 사람들 가사 자락을 잡은 겁니다. 가사 자락을 잡으니까 눈 감으니까 찰라 간에 전부 용왕궁으로 갔어. 가니까 음식을 차려놓는데 어마어마하거든. 뭐가 뭔지도 알 수가 없고, 촌사람이 일본 요리집에 가니까 시보리, 시보리하니까, 시보리라는 소리가 손 닦는 물수건 달라는 소리인데 이 사람이 뭘 아나? “어이 나도 시보리 한 그릇” 그랬다고 하듯이 모르거든. 음식인지 소금인지 알 수가 있나?
음식이 쭉 차려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한 그릇 먹긴 먹었는데 당장 복이 감해가지고, 이 사람들이 용궁음식이 자기네가 감당할 음식이 못 되어. 다음 생에 학이 됐어. 학은 아무리 부지런히 먹어도 양을 못 채운단다. 학 목이 길잖아. 식도가 기니까 부지런히 주워 먹어도 배까지 들어가는 동안에 다 소화가 돼버리니까 배가 찰 새가 없어. 언제든지 양이 반 밖에 안 찬단다.
鶴食半量千年壽라. 학은 음식을 반만 양을 채우기 때문에 천년을 산다고 그럽니다. 양을 배가 부르게 자꾸 먹으면 기계를 모두 무리시키는 겁니다. 조금 적다. 더 먹었으면 싶을 때 그만 딱 끄쳐 버리는 것이, 그러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일본 사람 말로 언제든지 배가 8부쯤 되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좀 많다 싶을 때 한 숟갈 더 먹으면 그것이 그만 무리가 되거든. 그 500제자가 다 학이 돼가지고 지금 이 스님을 따라다니는데, 그래도 자기 스님이니까 法恩이 중한 줄은 알기 때문에 항상 따라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23조 학륵나존자가 22조 마나라 존자를 만나가지고 “如何得脫矣닛꼬? 어떻게 하면 이 학들이 다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니까 마나라 존자가 턱~ 하늘을 쳐다보고, 학들을 보며 하는 말이 나에게 깊고 깊은 한 게송이 있으니, 내 게송을 들으라.
心隨萬境轉이나 轉處悉能幽라.
마음은 만 가지경계를 따라서 굴러간다. 마음은 자성이 본래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없는데 그 경계를 따라서 마음이 바꿔진다! 이 말입니다. 거울이 어디 뭘 아는 것이 있나? 거울이란 것이 형상이 없거든. 그런데 앞에 나타나는 그 형상을 따라서 거울에 모양이 나타난다! 이 말입니다. 안 그래?거울에다 거울을 갖다 대면 아무 것도 없지. 그런데 거울 앞에 붉은 것이 나타나면 붉게 나타나고, 검은 것이 나타나면 검게 나타나듯이 마음이라는 것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다 있지만, ▮轉處悉能幽라. 구르는 곳에 다 그윽하니 그 자취가 없다 이 말입니다. ▮隨流認得性하면 흘러가는 곳마다, 認得性. 그 자성 그 자체를, 마음의 자체를 알아 얻을 것 같으면 ▮無喜亦無憂니라. 기쁠 것도 없고 또한 근심스러울 것도 없느니라. 이 게송을 길게 빼서 노래를 불렀더니... 학들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슬피 울면서 다 날아갔다는 그런 얘기가 있거든...
於法에 平等하면 於食에 平等이라고 아무리 했어도, 不違道用이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도의 작용에 어긋나지 말고, 지 분수를 지나치면 안 된다 이 겁니다. 언제든지 지 분수에 맞추어서, 떡~ 하니 자기 도에 맞추어가지고... 법정스님이 五觀偈 번역한 것이 있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나의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몸을 지키는 약으로 알아서... 그 오관게 번역 참 잘 되어 있지. 그것 정신문화원 새마을 연수원 식당에 가면 크게 써서 붙여놨다고 하더군. 정신문화원에도 붙여놓고. 번역 잘 되었다고 정부에서 알아준다고 하더군.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이 음식을 받습니다. 마지막에 그랬지? 그러니까 그것이 道用입니다. 五觀偈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道用입니다. 道用에 어긋나지 말아라. 또 이런 얘기도 있어.
15조 가나제바존자가 범마정덕 장자의 집에 갔어. 그 집의 정원이 엄청 크고 넓고 그래. 그 정원 둥구나무에서 꼭 사람 귀같이 생긴 벌건 버섯이 나오는데 아주 부들부들부들한 것이 아주 좋아. 그것을 따다가 요리를 해서 먹으면 꼭 고기 맛 같아. 꼭 고기 맛처럼 맛이 좋아. 그래서 늘 따다가 먹는데 다른 식구들 눈에는 안 보이고. 범마정덕 장자의 눈에만 보이는 겁니다. 입맛 없으면 가서 따다가 그렇게 해 먹어. 어째서 그 버섯이 그렇게 맛이 좋고 자기 눈에만 보이는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가서 따오라 하면 다른 사람은 없더라는 겁니다.
자기가 가면 따오거든. 아주 먹음직스럽고 좋게... 그런데 그것이 그냥 나불나불나불 한 것이 고기 같아. 그래서 이 가나제바존자 한테 물었어. “그런 버섯이 나는데 그것 참, 무슨 버섯인지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알 수가 없습니다”이러니까 가나제바 말씀이“과거에 이 집에서 중 하나를 공양물을 대준 적이 있지?” 그러거든. 공부하는 스님한테 공양물을 대준 적이 있다 이 겁니다. “그런데 그 중이 그 공양을 받고 도를 통하지 못 했어. 그러나 因果는 분명하게 아는 아주 참 진실한 중이었기 때문에 죽어서 버섯이 되어서 지금 그 빚을 갚고 있느니라. 지금 이 영감 나이 몇 살이지요?”“80입니다”이러니까 “음~ 내년에는 끝나겠다. 81살이면 끝난다” 이러거든. 그리고 턱~ 하는 말씀이 게송을 읊으셨어.
入道不通理하면, 도에 들어와서 不通理하면 그 진리를 통하지 못한다면
復身還信施라. 復身, 이 몸뚱이를 다시 하여 信施를 갚게 되느니라. 信施. 신도들의 시주물건을 도로 갚게 된다 이 말입니다.
長者八十一에 其樹가 不生耳리라. 범마정덕 장자가 81살이 되면 其樹가 不生耳니라. 그 나무에서 귀가 나지 아니할 것이다. 귀는 버섯이란 말이거든. 버섯이 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 게송을 읊었다 이 겁니다. 그래서 범마정덕 장자가 그 말에 너무 감복해가지고 발심을 해서 버섯을 따먹지 않고, 제발 그만 나시라고 나무한테 가서 절을 하고, 제발 그만 나달라고 그렇게 하고 아들을 출가시켰다는 겁니다. 출가시켜가지고 가나제바존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전등 제15조 가나제바존자. 거기에 그런 얘기가 있어. 그러니까 다 이런 얘기를 듣고 이런 것을 보고 不違道用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道用에 어긋나지 말아야 된다.
어떤 중이 탁발을 하러 갔는데 그 집 아이가 쌀을 한 말을 퍼다 주거든. 너무 많이 주거든. 쌀을 받으려고 하니까 그 집 영감이, 그 아이 할아버지가 있다가 “쟤가 집안 망하겠네, 웬 탁발을, 한 바가지만 주지 그렇게 한 말을 퍼다 주느냐? 중아, 준다고 그걸 다 받아 가느냐?”그리고는 조금만 줬어. 아이가 시무룩 해있거든. “생각을 해 봐라. 네가 알뜰하게 살림을 살아야지 중한테 그렇게 많이 퍼주면 집안이 어떻게 되느냐?” 이러니까 그 아이가 하는 말이,“할아버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릅니까? 그 중이 이거 먹고 얼마 안 있으면 죽어가지고 우리 집에 황소가 될 것인데...” 황소 한 마리 놓쳐버렸다는 겁니다. “황소 한 마리 놓쳐버렸으니 씨나락 아까워서 농사 안 지어가지고 가을에 거둘 것 없는 거와 한 가지 아닙니까?” 이러거든. 그 아이 참 영악한 놈이지?
그래서 釋子가 皆成佛하면, 중이 다 성불하면 野無一犢子라. 들판에 송아지 한 마리도 없을 것이다 이 말입니다. 소는 거의 다 중의 身이랍니다. 그래서 소들이 다 착하거든. 소는 거짓말도 안합니다. 소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혓바닥이 길거든. 길어서 콧구멍을 푹푹 쑤시잖아. 하나도 공짜배기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不違道用이어다. 道用을 어기지 말지어다.
어떤 스님은 탁발을 하러 가니까 거사가 있다가 “무슨 탁발을 하러왔소?”
“보리 탁발을 하러왔습니다” “그래 스님 보리는 어쩌고 남의 보리를 구하러왔소?”
“내 보리는 덜 익어가지고 익은 보리 좀 구하러왔습니다”
“익은 보리는 어떻고 선 보리는 어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익었고, 들에 것은 덜 익었습니다”
‘이 중 어지간 하다...’“보리 탁발해다가 법당하나 지으려고”
“아, 그래요? 법당하나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한천 냥 들어야지.”
“그래요? 내 내지요. 아무개야~~” 일꾼들을 불러가지고...
옛날에는 돈 천 냥이면 장부 열 짐 져야 됩니다. 100냥이 한 짐이거든. 엽전 꿰 놓으면 100냥이면 빠듯하게 한 짐입니다. 천 냥 이면 열 짐 져야 되거든. 일꾼들을 열 명을 불러가지고 “이 스님께 져다 드려라”그 스님은 돈 천 냥 얻어가지고 껄떡껄떡 가다가 바로 조금 나가니까 장터거든. “나 집에까지 갈 것 없다. 여기 부려라”장바닥 한복판에다 부려놓고 보신탕이고 국밥이고 입에 닥치는 대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여기 장바닥 사람들 다 먹으라고 울력 좀 하자고... 밥 당기는데 울력 하라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한테 막 먹였어. “아이고 내 배 부르니까 돈이 필요하다”면 “아 돈 주지 까짓 것”한 웅큼 씩 그저 막 줘 버리고...
돈 천 냥, 열 짐 부어 놓으면 산더미 같을 것 아닙니까? 막 막막 막 다 주는 겁니다. 일꾼들이 보고 기가 막히거든. 법당 짓는다고 가져가다가 장바닥에 부어놓고 막 흩어대니까 와서“아이고 나리 큰일 났습니다” “뭐가 큰일 났느냐?”“아, 아까 그 중이 법당 짓는다고 하더니 장바닥에다 놔놓고 사람들 다 퍼 먹입니다” “네가 알 바가 아니니라. 그냥 둬라”실컷 며칠 먹으니 돈 다 떨어졌거든. 배는 두둑하고 며칠 잘 먹어 놓으니 얼굴이 번들번들 하거든.
또 왔어요. 또 오니까 “법당 다 지었소?”“예, 법당은 다 지었는데, 법당구경 안 갈래요?”
주인이 있다가, “어디 봅시다”하니까 배때기를 쑥 내놓고 법당 이만하면 튼튼 안하냐고... “법당 이만하면 됐는데 부처를 모셔야 되겠으니까 부처 모시러 갑시다” 이러는 겁니다.
“그래요? 갑시다” “부처 모시러 가자” 그 소리에 그냥 당장 거사가 눈이 멀어버렸어. 그리고 이 중은 앉은뱅이가 되어버렸어. 그 소리 끝에 그냥 하나는 앉은뱅이가 되고, 하나는 눈이 멀어가지고... 앉은뱅이가 또 앉아서도 재주는 부릴 줄 알아서 홀짝 영감 등에 올라타가지고, “눈도 없는 영감아, 다리는 성하니까 가자” 이래가지고 영감상투를 잡고 “자, 왼 쪽으로”하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그래 고개 너머로 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답니다. 그거 다 도인들입니다. 그것은 완전 道用을 요새말로 마스터한 사람들입니다. 열반의 세계에서 자유자재한, 觀이 자재한 사람들입니다. 도인의 경지는 그랬다고 그러거든.
어떤 중은 신도 물건을 많이 먹고서 소가 돼버렸어. 소가 되어서... 항상 먹으면서
“信施難消인데, 신도의 시주물건을 녹이기가 어려운 것인데 능히 녹이겠느냐?” 아~, 만날 能消라 하는 겁니다. 능히 다 녹일 수 있다 하는 겁니다. 그래 나중에 소가 되었거든. 소가 되어서 꺼떡꺼떡 하는데 그 도반 스님도 역시 도인이니까 “이래도 네가 能消냐?” 이러니까 “능소능소” 소가 이러더래. 다 능히 녹일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것은 다 不違道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말하자면, 범부의 경계에 있어서는 항상 受施를 如受箭하고, 신도의 물건을 받는 것은 화살을 받듯이 하고, 進食에 如眞毒이니라.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독약을 먹는 것과 같이 생각하라. 이랬거든. 빚 짖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不違道用얘기입니다. 음식얘기는 이쯤 하고...
●赴焚修호대, 赴 =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일어나서 걸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달아날 走했잖아. 달아날 走자가 쫓아간다 이 말이거든. 들어 눴다가 벌떡 일어나서 쫓아간다 이 말입니다. 焚 = 수풀 林밑에 불 火했으니까 태운다는 소리고. 숲을 불태운다 이 말입니다. 修 = 닦는다는 뜻이니까 익힌다는 뜻이고. 닦는다는 말은 익힌다는 뜻입니다. 계속 습관을 들인다는 뜻이거든. 焚修라는 것이 무엇이냐 할 것 같으면 예불하고 기도하고 하는 그것이 焚修거든. 焚은 향불을 사루고 촛불을 사루고, 촛불을 켜고 향불을 태우면서 떡~ 수행에 노력하는 것이 赴焚修지. “예불하고 誦經하고 기도하러 가는 시간을” 이 말입니다.
옛날 스님들은 목탁만 쳤습니다. 화두만 챙기고. 종도 그래. 종도 꽝~~ 치고 가~~ 만~~ 히~~ 화두 챙기다가 또 종만 꽝~~ 치고 그래. 묵언 종. 목탁도 묵언목탁... 본래 염불이라고 할 적에는 부처를 念하는 것이지 誦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송불이 아니거든요. 口佛이라는 소리 어디 있나요? 송불이 어디 있나? 염불이지요. 생각으로 통하는 것이지 입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것입니다. 입으로는 겉껍데기이고, 생각으로 통하는 것이 진짜하는 것입니다. 염불ㆍ송불 그러거든. 그러니까 송경ㆍ예불 그런 것이 떡~ 하니 讚唄하는 그것이 예불인데 옛날 스님들이 그런 말씀을 했어. 聞鐘聲臥不起하면, 종소리를 듣고 누워가지고 일어나지 아니하면, 來生에 受蛇身이니라. 내생에 뱀 몸을 받을 것이다. 알았나? 그러니까 종소리 들으면 덮어놓고 번개같이 일어나라 이 겁니다. 5분 더 들어 누웠으면 뭐합니까? 맨날 ‘종 다 쳐 가면 일어나지...’ 하고 있다가 잠 더 들어버리거든. 때르릉 시계 해놓고 때르릉 하면 벌떡 일어나야지.
●赴焚修호대 須朝暮勤行하야 自責懈怠하며, 아침이나 저녁이나 부지런히 행해서 스스로 해태를 꾸짖을 것이며, 자기 게으름 노릇하는 것 자꾸 꾸짖고, ‘아이 내가 이래선 안 되지’그래야 된다 이 말입니다.
●知衆行次하야 不得雜亂하며, 대중이 행하는 次를 알아서 잡난 하지 말 것이며, 雜亂이라고 하는 것은 막 뒤섞여가지고 어지러운 것이 잡난인데, 옛날에는, 지금도 옛날 절 제대로 된 법당에 가면 사자 위에 둥그런 막대기가 있고, 그 위에 연꽃 잎사귀가 되어있고, 그 위에 북이 있어. 그것이 법고라고 해가지고 북ㆍ징ㆍ광쇠(꽹가리)ㆍ바라ㆍ요령ㆍ목탁... 이렇게 다 순서대로 되어있어. 거기서 제일잽이가 요령잽이가 제일이고. 그 다음에 꽹가리치는 사람이 상수 잽이고. 그런데 절 집안에서는 요령잽이가 상수 잽이입니다. 요령하는 사람이 짱 짱 짱 짱 짱 따르르륵 이렇게 흔들 때 언제든지 목탁은 요령에 맞춰서 쳐야 되는 겁니다.
요령에 맞춰서 쳐야 되는데 목탁 치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요령이야 어찌 흔들든가 말든가 막 들이 두드려 제키면 각각이어서 안 되거든. 요령 흔드는 사람이 염불을 시작하면 거기에 다 따라 해야 되는 거. 송경이 여러 가지니까 반야바라밀다심경하면 다 거기에 따라 해야되고 나무 동방해탈주 세계허공공덕하면 거기에 다 따라 해야되는 것인데, 남은 반야심경하는데, 이 사람은 나무 동방해탈주하면 되겠나? 안 되지. 우리가 그대로 순서대로 따라 하는 것이 雜亂하지 않는 것.
옛날 스님들은 바라치고 마지줬을 때 그 분들이 다 나타나거든. 바라 치는 사람ㆍ징치는 사람ㆍ꽹가리 치는 사람ㆍ요령 흔드는 사람ㆍ목탁 치는 사람ㆍ북치는 사람ㆍ이것이 다 있어. 다 제 자리 잡아가지고... 欲建~~~ 曼~~ 陀~ 羅先~ 誦... 이것은 만다라를 세우고자 할 때에 先誦. 먼저 외운다 이 말입니다. 무엇을 외우느냐? 정법계 진언을 먼저 외운다! 이겁니다. 욕건만다라라는 것은 그건 제목입니다. 만다라를 세우고자 할 때에 먼저 정법계 진언부터 송하라. 이 말입니다.
욕건~~~ 만~다~라선~송 여기는 한 사람 상수잡이가 하고, 그 다음에 정~ 법계 진~언 옴남 할 적에는 일제히 두드리는 겁니다. 북은 북대로 두드리고 광쇠는 광쇠대로 바라는 바라대로 철거덩 철거덩 쾅 쾅 꽹꽹 꽹 한몫 치거든. 그것이 요새말로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대로가 교향악입니다. 그래가지고는 香水眞言ㆍ運心供養眞言할 적에 또 그렇게 해. 운~~ 심 공 양 진 언 願~ 此 香 供 遍 法~~ 界~~ 普 供 無 盡 三 寶 海~~할 적에는 막 신납니다. 바라는 바라대로, 징은 징대로 신바람 나지요. 이래가지고 아침에는 사성제에다가, 향수에 사성제에 전부 두드려 대는데 하루 신명이 그냥 거기서 다 풀어지는 겁니다. 아침저녁 六時禮佛하는 거기에서, 예경하는데서 모든 신명이 풀어져.
이조 500년간 斥佛崇儒정책에 의해서 중들을 얼마나 억압을 했는지, 중들 억압한 것이 아마 세계사적으로, 한국같이 중을 억압한 나라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한국불교가 그대로 유지가 된 것은 양반 상놈 그것 때문에 그대로 유지가 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양반가운데서 서출들이 있잖아. 서출들이 학문도 높고 머리도 좋고. 그러나 출세를 못하니까 다 중 돼버리거든. 중 돼가지고 학문은 높지 머리는 좋지 그러니까 그 가운데서 진실하게 공부한 사람은 도인 나오고, 안 그러면 거기서 땡초들도 그 가운데서 천지빼까리로 나오고. 속인들 애먹이는 놈들도 나오고. 스님들은 양반 상수들 보면 찍사하게 두드려 패고. 그런 사람들, 괴각쟁이들 많거든...
서출이니까 출세를 못하고, 글도 좋고 참~ 이런데, 머리 좋고 그런데 출세를 못하거든. 그러니까 떡~ 절에서... 속인들이 와가지고 스님들 제법 문자 쓴다고 “입사에 모아허니 화초전고? 절에 어찌하여 화초가 없는고~?” 이러거든. 그러니까 스님이 떡~ 한다는 소리가 “靑山에 有鳥하니 부력이로다” 청산에 새가 있으니 그 새 이름은 부력이로다. 돌아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말입니다. 시러배 잡놈아 누가 오라고 하더냐? 부력이라고 하는 것이 소쩍새를 부력이라고 하잖아. 탁~ 나오면 중은 그냥 대번에 詩로 받아버리는 겁니다. 절 집안에 그런 중들이 꽉 찼었거든. 이조불교는 그랬어. 그래도 세상에 나가면 출세 못하고 하니까 불평불만이 꽉 차가지고 있는 세상이었지만, 이조 500년간 그 척불정책으로 말미암아가지고, 그렇게 콱~~ 그냥 억압을 당했어도 그래도 중노릇 잘한 스님들도 많잖아.
신심이 있고 중노릇 잘한 스님들도 있고 절 집안에 그렇게 농땡이들도 천지백빼까리고 그랬거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다 승화시키기 위해서 북 장구, 예식으로 말미암아서 징ㆍ바라ㆍ꽹가리... 釋門儀範이 전부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석문의 범 전체가 전부 반주를 맞추게 되어있는 겁니다. 석문의범 대회참이 있잖아요. 지심정~~례~공양~~ 대 방 광 불 화 엄 경 화장장엄세계해 불가~설불가설마니보운장엄... 쭉~~ 나갈 적에 아주 음성 좋은 사람이하면 공중에 뜨는 것 같거든. 소리가... 韻曲을 고르지 않게 하지 말고, 雜亂하지 말고,
●讚唄祝願
讚唄라는 이것이 찬불가와 같은 것이거든. 그런데 여기에서 어긋나게 하지말라!는 뜻입니다.
●須誦文觀義언정 不得但隨音聲하라
글을 외울 적에 뜻을 觀할지언정 不得但隨音聲하라. 음성만 따르지 말아라. 그랬거든.
그러니까 염불을 하는데 귀신이 떡~ 와서 들으니까, 영가가 와서 들으니까 ... 아이 이거 뭐 염불은 아니 하고 목탁만 똑딱 똑딱 똑딱 두드려요. 은행나무 발우대(똑딱 똑딱), 은행나무 발우대(똑딱 똑딱) 자꾸 이러기만 하고, 또 요령 흔드는 사람은 요령 흔들며... 제경행상 책(딸랑 딸랑), 제경행상 책(딸랑 딸랑) 자꾸 이러거든.
‘이 사람들이 미쳤나? 염불하면서 왜 제경행상은 왜 자꾸 들먹이나?’諸經行相이라는 것이 요새로 말할 것 같으면 불교사전하고 한 가지입니다. 옛날에 사전역할을 한 것이 제경행상이라고 하는, 붓글씨로 촘촘히 써서 삼천대천세계에서 수미산세를 설명해놓은 것입니다. 갖가지 불교의 낱말 풀이를 전부... 요새 사전과 같은 것이지. 사전이 낱말 풀이 아닙니까?
죽은 사람이 해인사 강원 학인인데 장경각 뒤에 잣나무에 올라갔다가 뚝 떨어졌거든. 그 때 학인들은 잣나무가 되게 높으니까 이 잣나무에서 저 잣나무로, 내려와 가지고 또 올라가려면 귀찮으니까 이 잣나무에서 저 잣나무로 건너뛴단 말입니다. 건너뛰다가 한 놈이 뚝 떨어졌어. 그런데 밑에 가랑잎이 쌓이고 해놓으니까 몸이 부러지지는 않고 기절을 해서 죽어버렸지.
죽어서 자기 속가에 가니까 식구들이 전부 골치 아프다 하고 드러눕거든. ‘참 이상스럽다’하는데 조금 있으니까 동네에서 개꿈 물리는 할머니가 바가지에다 김치국밥을 풀어가지고 살살 오더니 지한테 와서 대가리에 확 덮어씌우더니 부엌의 칼을 가지고“이 눔의 개코야 안 나갈래? 하거든. 아이고야 깜짝 놀라서 쫓아 나와 버렸어. 나와 가지고 ‘에이 빌어먹을 놈의 집, 내가 생전 안 올 것이다. 중 된 놈이 뭣 때문에 집에 왔나? 내 집이라고 찾아 왔더니 사람대접을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쫓겨왔습니다.
한참 절에 오다보니까 청춘남녀가 꽃밭에서 개골개골 개골개골 어떻게나 춤추고 노는데 신바람 나게 놀거든. 그 뒤에 있는 처자 하나가 쫓아와가지고 스님도 나하고 놀자고 끌고 가거든.
‘아이고 내가 중인데 어찌 끌려갈 수 있나?’싶어가지고 기어이 안 간다하니 “앗따 그 중 젠장 간 작아가지고 평생 중노릇 밖에 못하겠다” 하고 욕하거든. 욕하든가 말든가 그냥 왔어. 얼마를 오니까 웬 처녀가 기다리고 있다가 또 붙들고 늘어지는데‘안 논다’하고 그냥 오는데 선비들이 노루를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놓고 막 떼어서 먹으면서, 요새말로 바비큐를 해서 먹으면서 한참 들이 마시면서 “어 대사, 여기 와서 한잔 먹고 가라!” 고 막 그러거든.
“아이고 중이 어찌 그런 것을 먹을 수 있나?”하며 그냥 왔어.
턱 절에 오니까 요령 목탁을 두드리는데 은행나무 발우대 제경행상을 찿는다! 말입니다. ‘이상하다’저~ 뒤에 열반당 간병실에 가니까 꼭 지 같은 사람이 드러눴거든.‘야, 꼭 나 닮았네. 이상한 사람이 드러눴네’ 하면서 가서 “야” 턱 건드리니까 그만 탁 깨났어. 지금까지 전부가 꿈입니다. 그래서깨어너서 큰 방에 가서 물 한 그릇 먹고, 자기 친구한테 “니 왜 아까 자꾸 은행나무 발우대를 찾았나?” “니는 왜 자꾸 제경행상 찾았나?”하니까‘내가 염불을 해줬으니까 그 사람 발우대는 은행나무 발우대인데 그것은 내가 차지해야지’그 생각만 했다는 겁니다. 그 생각한 것만 들리는 겁니다. 입으로 염불하는 그것은 안 들리는 겁니다. 소용없어.
그래 誦文觀義를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글을 외우면서 그 뜻을 관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청년들이 한잔 먹고 누각에서 놀던데를 가니까, 왕탱이들이 전부 왕탱이, 벌집이 있어서 벌들이 왱~ 날라가 가지고 나비 메뚜기 같은 것들을 쏘아서 잡아가지고 끌고와서 매달아 놓고 뜯어 먹고 하는 것이 있더랍니다. 처녀가 붙들고 늘어지던 데를 가보니까 뱀 한 마리가 턱~ 똬리를 틀고 있더랍니다. 청춘남녀들이 꽃밭에서 놀던 데를 가보니까 비단 개구리들이 개골개골 울고 있더랍니다. 거기에 들어갔으면 거머리가 되는 것이지 별 수 있나?
그러니까 영가의 세계는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須誦文觀義언정 不得但隨音聲하라. 뜻을 딱~ 관해야 됩니다. 四陀羅尼 變食眞言할 때 “나막살바다타~ 아다바로기제 옴 삼바라 삼바라 훔 나막살바다하” 할 때, 밥 한 그릇이 일곱 그릇으로 변하는 것을 탁~ 관을 해야 된다고 그랬어. 두 번째 할 적에는 일곱 그릇이 또 일곱 그릇 씩 마흔 아홉 그릇이 되잖아. 또 하면 그것이 7배로 변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小食이 多食으로 변하는 것은 變食眞言이다! 이랬거든.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 제일 첫째 주문의 힘이 있고, 觀想力이 있고, 우리가 관하고 생각하는 그 觀想力. 셋째는 三寶의 無生神力이 있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 신력으로 말미암아서 소식이 다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랬거든.
그러니까 물 한 가지를 天見琉璃人見水. 하늘 사람들은 물이 유리궁전으로 보인답니다. 사람은 물로 보이는데... 魚不見水鬼見火라. 고기들은 물을 보지를 못해요. 우리가 공기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고기들은 물을 못 봐. 鬼見火라. 귀신은 물을 불로 본답니다. 반대로... 그러기 때문에 甘露水眞言을 쳐야만 물을 마실 수 있어. 감로수진언을 안치면 영가들은 물을 마실 수가 없어. 그래서 더욱 더 一字水輪觀眞言· 乳海眞言 유해진언을... 전부 우유와 같이 영양가 있는 그런 물이 되라는 말이거든. 四陀羅尼를 반드시 觀을 해야 된다고 그랬어. 보통 중 100명이 하는 것 보다 도력이 있는 한 사람이 하는 것이 낫다는 이유가 그것이고, 도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해도 가만~~히 앉아서 觀만 해줘도 된다는 겁니다.
●不得韻曲不調하며
韻曲을 고르지 않게 하지 말고, 그러니까 목탁고리든 음성이든 요령 흔드는 사람을 항상 따라가야 되는 겁니다. 무시하고 지 멋대로 고함지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瞻敬尊顔하대 不得攀緣異境이어다.
부처님 얼굴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턱~ 쳐다볼 때, 不得攀緣異境이어다. 다른 경계에 攀緣하지 말아라. 다른 경계에 끄달려 가지 말아라. 망상심을 다른 데로 가지 말아라 이 말입니다. 딱~ 하게 정성을 다하라 이 말입니다. 망상 피우지 말아라 이 말이지. 정념으로 대하라 이 말입니다.
정념으로 대하면 바로 보이거니와, 망념으로 볼 것 같으면 반대현상이 나타난다. 거꾸로 보인다.
망념은 탐진치. 욕심이 앞에 가려놓여 있으니까, 이 눈은 볼록한 렌즈인데 욕심은 잡아 당겨서 지가 가지려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오목 렌즈다 이 겁니다. 볼록렌즈와 오목 렌즈가 마주치면 피사체가 반대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동그란 것하고 오목한 것하고 같이 마주쳐보세요. 피사체가 거꾸로 나타나게 되어 있잖아. 그렇게 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꿈에 똥 보면 그것이 그 이튿날 돈이 생긴다고 그러잖아. 돈이 사실은 똥 보다 더러운 것입니다. 문둥이도 만지고, 페병환자도 만지고, 에이즈환자도 만지고, 온갖 사람이 다 만지잖아. 完
제 16 강
그것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돈 한 장 속에 세균이 몇 억 마리가 붙어 있답니다. 더럽기로 말도 못하게 더럽답니다. 그러니까 돈 셀 때, 손가락 입에 대고 침 묻히지 말고 퉤하고 해야지, 손가락 입에 대고 쓱 바르면 안 됩니다. 돈도 헤아릴 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꿈에 송장 보면 그 이튿날 떡 얻어먹고 국수 얻어먹는다고 그러고, 꿈에 뱀, 구렁이를 만나면 재수가 좋아서 好色, 미인이 나타난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다 반대현상이 되는 겁니다.
不得攀緣異境이어다. 다른 경계에 攀緣하지 말아라.
범어사 명학동지라고 있었는데, 그 동지라고 하는 이름이 절 집안에서 동지라고 할 것 같으면 마을에서는 장자, 부자라는 말입니다. 진사, 초시, 장자 그러는데 절 집안에서 동지라고 그러면 강사도 아니고, 법사도 아니고, 재산이 좀 많은 중을 동지라고 그랬어요. 이조시대에 그랬다고... 이조 중엽에요. 명학동지라는 이가 어쨌든 간에 돈이 좀 많아. 하루는 꿈을 꾸니까 普濟樓라고 하는 누각에 靑龍이, 푸른 용이 타고 올라가거든. 그래서 범어사를 靑龍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범어사가 부산시 靑龍洞입니다.
靑龍이 물속에서 나와 가지고 막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꿈을 꿨어. ‘이상하다’ 싶어 가보니까 웬 거지아이 하나가 거적 떼기를 덮고 기둥 밑에서 자고 있거든. 그래서 그 아이를 깨워가지고 데리고 물로 씻겨놓고 보니까 아이가 법상치 않게 생겼거든. 잘 났거든. 그래서 그 아이를 키웠는데, 그 아이가 상추를 뜯어가지고 오다가 징징 울거든.
“왜 우느냐?” 고 그러니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손가락 좀 베었다고 그렇게 우느냐?”고 그랬더니 “제가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상추가 불쌍해서 웁니다” 그래요. “왜 그러냐?”고 그러니 “상추를 뜯으니 하얀 피가 쫄 나오고, 쫄 나오고” 그러더라는 겁니다. 나는 조금 베여도 아픈데 허리 잔등을 딱 딱 끊으니까 하얀 물이 쭉쭉 나오는데 얼마나 불쌍하냐? 이 겁니다. 그래서 도무지 못 끊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아~! 그 참 선근이 다른 놈이로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초발심자경문을 다 배워가지고 끝에 가서 今生에 若不從斯語하면 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금생에 만약 이 말대로 하지 아니하면, 말만 듣고 하지 않으면, 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후세에 당연히 한이 만끝이나 되리라. 크게 후회될 것이다. 그 말을 보고 자기 스님한테 턱~ 하니 “스님, 글은 잘 배웠지만 그런 글대로 실천을 하러 도 닦으러 가야 될 것 아닙니까?”“말이 그렇다 말이지, 이 눔아 어떻게 지금 당장 가란 말이냐?”“스님은 못 가면 저라도 보내 주이소”“안 된다 이 눔아, 니가 쪼매 한때 와가지고 키웠으니까 가려거든 큰 것은 내 밥 먹고 컸으니까 떼어놓고 가거라”
여기 주지스님이 열한 살 먹어서 절에 와가지고 열세인가 네 살 먹어서 자기 스님한테 매 맞고 간다 하니까 “니 열한 살 때, 처음 올 때 입던 옷 있지?” 있다고 하니까 가져 오라고 하더래요. 한 3년 컸으니까 열한 살 때 보다 입었던 옷 보다 훨씬 컸을 것 아닙니까? 옷이 훌쩍 올라오거든요. 옷이 올라간 부분은 내 밥 먹고 컸으니 이것은 칼로 끊어놓고 가야 된다 하더랍니다. 주머니칼을 꺼내놓고 “팔 끊자” 이러는데 진짜 끊는 줄 알고, “아이고 잘못 했습니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막 빌었답니다. 절대 다시는 간다는 소리 안 할 테니까 용서해 달라고 막 싹 싹... “어~ 이 가라. 끊어놓고만 가면 된다” 하고 자꾸 끊으려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냥 혼났다고 하듯이, 못 가게 하거든요.
도망을 했어. 이름이 靈源입니다. 도망을 해서 금강산에 가서 공부를 해서 도를 통했어. 도를 깨치고 턱~ 하니 보니까 앞에 十王峯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에서 염라대왕이 소리를 치거든요. “日直使者ㆍ月直使者야~~” 하니 “예~ 이 데이~~” “범어사 명학동지 잡아들여라~~” 하니 “예~ 이 데이~~” 그러거든. ‘아이쿠 우리스님이 갈 날이 며칠 안 남았구나’ 열시왕이 하루에 한 번씩 그러니 열흘 후에는 간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금강산에서 부터 급히 발우대를 타고 날아서, 신통으로 날아서 범어사까지 왔어. 와가지고는 “스님, 저 좀 따라 나오십시오 급합니다” 떡~ 스님이 따라 나오거든.
범어사가 千자라 萬거북이라고, 뒷산에 큰 집채 같은 바윗돌이 1000개이고, 납작납작한 바윗돌이 10000개라고 그러거든. 천자라 만거북이라고 그래. 범어사에 바윗돌이 그렇게 많다고 그런 산이거든. 저도 젊은 때 거기 있으면서, 군대에서 자꾸 잡으러 와서 순경들 저기 번뜩만 하면 바윗돌 속으로 쏙 들어갔거든. 바윗돌위에 와가지고“금방 있었는데 어디로 가버렸지?” 바윗돌 고르다가 그냥 가버리지. 거기서 피난 많이 했어.
한 바윗돌 앞에 가가지고 주장자를 쿵~ 굴리면서 “여기 담당스님 나오시오~” 그러니까 거기서 시퍼런 구렁이 한 마리가, 큰 서까래 같은 구렁이가 척~~ 나오거든. “스님 봤습니까? 이것이 담당스님 후신입니다” 담당동지 후신이라는 겁니다. 무슨 동지, 무슨 동지 쭉~ 있거든요. 또 “들어가시오~” 하고 주장자 구르니까 들어갑니다. 또 한 바윗돌 앞에 가서 주장자를 쿵~ 굴리면서 “낙원동지 나오시오~” 그러니까 누런 구렁이가 쑥~ 나오거든요. “이것이 낙원스님입니다. 낙원동지입니다” “들어가시오~” 쭉~~~ 굴마다 그런 데가 수 십 곳입니다. 한 곳에 가가지고는 “여기 누구 있소~~?” 하고 굴리니 아무도 안 나오거든요.
“어째 안 나오네” “스님 들어갈 데 아닙니까?” “안 들어갈란다. 안 들어갈란다”
“스님, 안 들어가려면 날따라 공부하러 갑시다” 그러니까 “가자가자, 내려가자, 가자가자” 그래가지고 그날 급하게 돈 고방 걸어 잠그고, 쌀 고방 잠그고, 무명 베 고방 다 잠그고, 삼 고방 다 잠그고, 옛날에는 삼 고방이 있어. 삼베 짜는 베. 그 삼을 추수 받아가지고 고방 안에다가 산더미 같이 쌓아놓거든. 그것은 좀 놔둬도 되니까... 나중에 삼베 짜는데다가 팝니다. 쌀 고방도 그렇게 따로 있고. 쌀은 장리 자꾸 늘리느라고 그렇게 있어. 돈 고방도 따로 있어. 큰 돈 뒤주가 따로 있거든. 오래되면 거기서 돈 도깨비가 생긴다고 그러잖아. 옛날에는 돈을 꿰미로 꿰는 엽전...돈 고방ㆍ쌀 고방ㆍ소금고방이 따로 따로 다 있어. 명학동지고방이... 지금도 범어사에 가면 명학동지고방이 하나 남아 있어. 안심교라고 하는 그 옆에 명학동지 무슨 고방 이라고 그래. 하나 남아 있어.
탁~~ 잠그고 사람들한테 부탁 단단히 해놓고 가는 겁니다. 그 뒤주재를 넘어가는데 상좌가 하는 말이 “스님, 절대 뒤를 돌아다보지 마시오” 그랬거든요. “응, 안 돌아다보지” 마지막 다 올라가가지고 돌아다보니까 자기네 쌀 고방에서 불이 기둥 같이 올라오거든. “아이고 내 쌀 고방 불난다” 하고 막~~ 뛰어 내려가니까 “아~~ 스님, 불 아니니까 내려가지 마시오~~” 아무리 소리 질러도 소용없어. 내려가 보니까 그것은 慾火. 욕심 불이지 진짜 불이 아니더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열흘이 지나고 나니까 명학동지 잡아들였다고 소리가 나거든. 그래 할 수없이 떡~ 하니 내려왔어. 또 발우대를 타고 척~ 하니 범어사로 내려와 가지고 보니까 장사 치른다고 난리 났거든. 그것은 어쨌든지 가짜상좌 진짜상좌 전부 모여가지고 막 그냥 큰 잔칫집입니다. 초상집이 아니라 큰 잔칫집입니다. 떡하고 국수하고 전 부치고 먹을 것이 천지빼까리지.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한 세상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척~~ 두더기 입고 가노니까 “저 눔의 중은 어디로 돌아다니다가 자기 스님 죽고 나니까 뭐 지끄레기 하나 받을 것 있는가 싶어서 왔다고 모두 그러거든. “나는 부주 할 것도 없고 설거지나 좀 해드리지.” “얘 그릇이나 좀 씻어라”
그릇을 씻는데 옛날 놋그릇들을 수곽에다 가득 담아놓고서는 떡 매를 가지고 와서 떡 매로 막 칩니다. 막 두들기니 그릇 부숴지는 소리가 막 진동을 하거든. 저 눔의 중이 그릇 다 부순다고 막 소리를 지르니까 그 소리 끝나자마자 큰 삽으로 그냥 푹 퍼서 막 집어 던지니까 그릇이 새 그릇처럼 닦여가지고 전부 선반위에 대접은 대접대로, 접시는 접시대로, 사발은 사발대로 신통력으로 착 착 가서 저절로 그냥 얹어지는 겁니다. 거기서 그냥 “왓따, 도인은 도인인가 보다” 모두 꼼짝 못하지. 대중이 다 꼼짝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것은 준비하지 말고 큰 솥에다가 흰 죽을 한 솥 끓이시오. 스님이 지금 배가 고파서 고생을 하고 있으니 죽을 드려야 돼요” 흰 죽을 쒀서 꼴동이라는 것이 있어. 꼴동이. 범어사에는 꼴동이가 있는데 해인사는 지금 꼴동이가 없더군.
순 무쇠로 된 큰, 양쪽에 자루가 달린 그런 것이 있어. 사람이 한 쪽에서 들려면 번쩍 들 수는 없고 기울일 수는 있어. 장담을 때 거기다 메주도 찧고, 거기다 배추도 씻고 하는 그 꼴동이가 범어사에 그 전에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있는가 모르겠어. 그 꼴동이에다가 죽을 한 그릇 퍼서 보제루 큰 마당에다 갖다놓고, 식혀놓고서는 뒷산에 떡~ 올라가서 그 굴속에 가가지고
“스님 나오시오~~” 하고 두드리니까 흰 구렁이가 척~~ 나오거든. “시장 하시지요? 큰 몸뚱이 가지고 시장 하실겁니다. 흰죽 잡수시오.” 데리고 나와 가지고는 큰 마당에 똬리를 틀고 앉았어요. “이걸 자시고 그 꼴동이 귀퉁이에다가 머리를 찧어서 해탈을 하시오” 그러니까 우선 배가 고프니까 머리를 갖다 대고 쭉~~ 빨아먹거든. 다 먹고 나더니 가만히 있거든.
“자~ 어서 다음 순서를 진행 하시오” 다음 순서가 거기다 머리 찧어서 죽으라 이 말이거든. 자살을 하라 그 소리거든요. 눈물을 뚝 뚝 흘리거든. “그 놈의 몸뚱이가 뭐 그리 좋아서 애착이 많아가지고 아까워서 눈물을 찔찔 흘리느냐?”고 호통을 치니까 할 수 없이 일어나 가지고 꼴동이에다가 세 번 머리를 들이 찧으니까 벌벌벌 떨고 죽어버립니다. 그러자 그 머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탁~ 튀어나와서 푸르르 날아간다 말입니다. 파랑새가 날아가는데, 다 팽개치고 발우대를 허공에 날려가지고 스님이 타고, 주장자를 잡고 쫓아가는 겁니다. 금정산을 넘어 저~ 김해벌로 들어가더니 돼지우리 간으로 확 들어가려고 하거든.
“어디 들어갈 데가 없어서 돼지우리 간으로 들어가느냐?” 고 주장자로 막 휘두르니까 들어가려다가 쫓겨 나와가지고 마구간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말입니다.
“어디 들어갈 데가 없어서 마구 간으로 들어가느냐?” 고 또 때리니까 또 막 도망간다 말입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 십 군데를... 까치집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어쨌든지 온갖 곳에 다 들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 금강산 밑에까지 쫓아왔어. 금강산 밑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이 있는데 나이가 40가까이 된 부부들이 자식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비가 출출 오니까 둘이 방에 들어앉았거든. 둘이 앉아가지고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집으로 쑥 들어간다 말입니다. 가만히 뒀어. 얼마 후에 가서 “주인장 계시오?” 하니까 영감마누라가 나오거든.
“이 집에 오늘부터 열 달 후에는 옥동자가 탄생할 것이오” 하니 깜짝 놀라거든. “그런데 그 아이는 몸만 빌렸다 뿐이지 이집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를 세 살 먹도록만 키워가지고 나에게 주세요” “아이고 낳기만 낳으면 드리고말고요. 진짜 낳는 겁니까?”
“틀림없이 아이를 낳을 테니까 낳거든 나에게 주세요” 그랬는데 아참, 진짜입니다. 배가 부르더니만 열 달 후에 동자를 하나 낳았는데 어떻게 좋았던지 둘이 막 좋아가지고 그냥 아주 막 정신없지.
세월은 流水해서 세 살인가 다섯 살인가 됐어. 되니까 떡~ 하니 영원조사가 주장자를 짚고 그 집에 찾아왔거든. “주인장 계시오? 3년 전에 약속한 중이올시다. 아이를 데리러 왔으니 내 놓으시오” 이러니까 “어? 저 중이 웬 중이요? 그 중 이상한 중이네? 어째서 남의 아이를 달라 하느냐? 저거 유괴범 아니냐 저거?” 뚝 잡아떼고 안 주려고 하거든요. “정 주기 싫거든 그만 두시오” 갔습니다. “아이한테 물어보시오”하니까 아이한테 물어보니까 따라간다 하거든. 아이는 따라가고자 하는데 부모들이 못 따리가게 하니까 “그럼 그만 두시오”
스님이 저~ 쪽 산등성이 가기 전에 아이가 껄떡껄떡 죽어가거든...
“아~~ 스님, 스님 아이 데리고 가시오” 죽으려고 하니 할 수 있나? 죽는 것 보다는 데려가는 것이 낫지. 그래 금강산에 떡~ 하니 아이를 데리고 가가지고 방 안에다 딱~ 넣어놓고 문을 딱 잠그고서는, 방문에다가 바늘구멍하나 딱 뚫어놓고 “네가 이 구멍만 내다보고 있으라. 여기다 일심주목 하고 있어야 된다. 여기 들여다보고 있으면 여기서 황소가 한 마리 들어올 테니까, 황소가 들어오는 것을 가만 놔뒀다가는 너는 황소한테 받혀 죽는다. 황소 두 뿔을 잡고 스님을 찾아라” 아이는 천진하니까 시키는대로...
밥 때 되면 밥만 한 숟갈 들여놓고 이것 먹고 또 들여다보라고... 먹고 살~~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7일이 지나가니까 그만 황소가 한 마리 들어오거든. 탁 황소 뿔을 잡고 “스~ 님~~” 하고 소리 지르면서 확철대오를 했어. 깨치고 보니까 “하하~~ 스님이 내 상좌구나” 그랬다는 겁니다. 그 명학동지 그 스님이...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소리가 거기서 생긴 겁니다.
그런데 그 돼지집이, 돼지우리간이 영가가 볼 적에는 큰 기와집으로 보이는 겁니다. 기와집이라고 막 좋다고 쫓아 들어가면 돼지우리간이지 기와집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마구간이 고대광실 높은 집으로 보이거든. 빌딩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어디 마구간 들어가느냐고 소리를 지르면 쫓겨났는데 지 생각에는, 지 눈에는 고대광실 높은 집입니다. 꿈에 말하자면 반대현상이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不得攀緣異境입니다. 다른 경계에 攀緣하지 말고 必須正念對之라.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그 말입니다.
●須知自身의 罪障이 猶如山海하야
須知理懺事懺으로 可以消除하라
自身의 罪障이 猶如山海입니다. 자신의 죄업장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은 줄을 알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내 평생 내가 죄 짓는 일 없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내가 죄지은 것이 뭐 있나?’ 이렇게 흔히 생각할 수가 많이 있는데, 자세하게 생각하면 금생에 지은 죄도 한량이 없어. 금생에 지은 죄도...
저~ 기 부산 감로사 거기에가 있으니까 그 밑에 정선생이라는 영감이 있는데, 할 일도 없는 영감입니다. 슬근슬근 와가지고 한다는 소리가 “나 참, 알 수가 없다” 는 겁니다. “뭐가 알 수가 없느냐?” 하니까 “스님은 고기도 안 먹고 어찌 사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처사는 고기 얼마나 먹소?” 이러니까 “우리는 사흘에 닭 한 마리씩 안 먹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흘에 닭 한 마리에다가 소주 한 병씩은 틀림없이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닭 한 마리를 구워 먹는다든가 삶아서 먹는다든가 뜯어 먹으면서 소주 한 병을 먹어야 자기 육체를 유지를 한다는 겁니다. 안 먹으면 어지럽고 기운 없어서 안 된다는 겁니다. 꼭 그것 먹는다는 겁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먹느냐고 했더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안 먹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틀에 한 마리씩은 틀림없이 먹는다는 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한 달이면 15마리 먹는다는 이 말이거든. 그러면 열 달이면 150마리 먹는다는 말이고. 열 달이면 150마리니까 열 두 달이니까 180마린가요? 그래 열두달에 180마씩 먹어가지고 10년이면 1800마리를 먹는다? 와이고 1800마리 그 뼈다귀만 추려놔도 한 짐 넘을 겁니다. 안 그러겠습니까? 그것이 몇 짐이 될 런지 모르겠다 이 말입니다.
자~ 그런 식으로 따지고 보면, 제가 어릴 때 우리가 중이 돼가지고 쇠고기를 안 먹었으니 지금까지 마을에서 만일 60년간을 쇠고기를 먹었다고 하면, 소를 몇 마리나 먹었겠느냐? 말입니다. 안 그러겠습니까? 그렇게 치면 백골은 여비구하고, 백골은 비구산과 같이 높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금생에 지은 죄업 중 그것 한 가지 뿐이겠습니까? 안 그래요? 우리 身ㆍ口ㆍ意 삼업으로 지은 죄가 고기를 먹은 죄 한 가지만은 아니거든. 거짓말로 해도... 입만 벌리면 거짓말인데 혓바닥이 코에 안 닿으니까 다 거짓말이거든. 혓바닥이 코에 닿는 사람은 거짓말 아니지만, 코에 안 닿는 사람은 말만 나왔다하면, 一開口에 三十毁라. 한번 입을 열 때에 서른 가지 허물이 생긴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입만 열리면 같은 말이라도 거짓말이 저절로 살짝살짝 섞이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口業을 짓는 것도 한량이 없고, 이 몸으로 지은, 身業을 지은 것도 한량이 없고, 더군다나 생각으로 지은 업은 더 말할 것도 없잖아요. 시기ㆍ질투심ㆍ아만ㆍ방일심ㆍ본래 다 그렇다고요. 그러니까 생각으로 지은 업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탐욕심. 탐욕이 마음대로 안 되니까 진심. 거기에서 치심 가운데 교만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그런 것이 중생계에 얼마나 꽉 찼느냐 이 겁니다. 금생에 지은 죄도 猶如山海라. 산과 같고 바다와 같은데, 하물며 금생뿐 아니고 전생에 지은 죄는 더 무량무변입니다. 전생에 지은 죄는 금생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금생에 지은 죄는 제가 가만히 보면 1할 ~ 2할 밖에 안 되고 전생에 지은 업이 7할 ~ 8할입니다. 지금 일반 심령과학에서는 반반이라고 그러거든요. 5:5 라고 그러거든요. 5:5 라고 그러는데 5:5가 아니고 7:3 ~ 8:2입니다. 어떤 면으로는 9:1도 되고 그래요. 전연 전부가 전생업으로 말미암아가지고 금생세가 다 돌아가 버리고 말아. 그러니까 전생에 중노릇 하던 사람들은 금생에 마누라감이 없어. 전생에 아들 자식감이 있는 사람은 금생에 중노릇을 못해. 못하기가 십중팔구입니다. 속가에 가서 장가가서 아이를 하나나 둘 낳아놓고 그래서 다시 또 오는 사람도 더러 있잖아. 있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못 오는 사람도 많고.
오늘도 제가 백운동 가다가 제 친구 스님하나 있거든. 그 전에 젊은 때 같이 오대산에서 공부하고 하던 스님이 있는데, 여학생이 하나 와가지고 자꾸 알랑방구를 뀌더니 그만 같이 나갔거든. 나가가지고는 40가까이에 아이를 셋이나 낳아놓고는 마누라는 도망가 버리고, 소 장사를 했다나 뭐 해가지고 빚을 지고 도망가 버렸대. 여자가 소장사 했답니다.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도망가 버리고, 이 영감은 늙어서 지금 환갑 진갑 지났거든. 아이들은 열 살짜리, 열한 살짜리를 초등학교 시키는데 혼자 밥해가지고 도시락 세 개 싸놓고, 잘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니까 아이들이 “아빠 반찬이 이래가지고 어떻게 먹어? 이것이 반찬이냐?”고...“어쩌겠나? 너희 엄마 없어서 그런 걸 할 수 없지. 그냥 먹어라” 사정을 한다는 겁니다. 그 전에 한 번 들으니까 지 마누라보고, “당신이야 무슨 짓을 하든가 말든가 나만 버리지만 마소” 이런다고... 나를 버리지 말라고, 그런다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하여간 불쌍한 소리만 자꾸 들려.
일전에 왔는데 얼굴은 새카매가지고, 그야말로 피골이상접해가지고 “사바세계가 고통인줄 이제 진짜 알았습니다”
절에 살적에는 사바세계가 고통인줄 몰랐다는 겁니다. 절에 살적에는 스님이라고 신도들 와서 절하지, 과일도 갖다 주고 이러지, 오렌지ㆍ자몽 이런 것 안 떨어지는 집이 우리집밖에 더 있는 줄 아세요? 가봐야 어느 집에 오렌지ㆍ참외를 만날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 집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중노릇 하니까 과일은 수두룩하고 먹을 것이 많은데... 나가가지고 고생이, 참 그야말로 똥구멍이 째지도록 고생하지. 그렇지만 내버리고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소 장사하다가 도망간 여자 어디 찾으러 갈 수도 없고 어떻게? 참 그야말로 속된 말로 빼도 박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지요. 죽는 날 까지...
그러니 그것이 과거 업장으로 그렇다 이 말입니다. 과거의 업장으로... 사람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말도 못하게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인데... 금생에 큰 무슨 죄를 짓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과거의 업장으로 말미암아 악한 인연을, 안 좋은 인연을 만나가지고 지금 그렇게 고생을 하거든요. 그뿐 아니고, 사람, 사람이 다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須知自身의 罪障이 猶如山海하야 할 적에, 산과 같고 바다와... 높고 깊고, 많고 많다 이 말이거든요. 모든 것이...
그러니까 四生六道法界에 有情多劫生來諸業障 我今懺悔稽首禮 그러잖아요?
◯四生六道法界. 사생육도라는 것이 태로 낳고ㆍ알로 낳고ㆍ습기로 낳고ㆍ화해서 낳고요. 胎卵濕化, 若胎生 若卵生 若濕生 若化生 이랬잖아요? 六道法界거든요. 육도법계는 地獄ㆍ餓鬼ㆍ畜生ㆍ人道ㆍ天道ㆍ修羅... 이 6도 세상에 다니면서 그 다생부모가 무량무변이다 이 말입니다. 그 다생부모 무량무변한 그 가운데서 한량없는 업을 내가 지어왔다 이 겁니다. 그 四生六道法界에
◯有情으로써 多劫生來에 諸業障. 다겁생래에 지은 업장이 얼마나 많으냐? 猶如山海라. 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 이 말입니다. 이걸 갖다가
◯我今懺悔稽首禮. 내가 지금 참회하고 稽首禮. 머리를 숙이고 그저 어쨌든지 잘못했습니다. 하고 절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겁니다. 稽首禮. 참회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겁니다. 懺이라는 것은 참기전근 하고, 과거의 허물을 뉘우치고, 회기후과라. 다시는 더 짓지 않겠습니다. 하고 이렇게 뉘우치는 것이 悔라 이 말입니다. 참과 회가 달라요.
▮懺이라는 것은 과거에 잘못했습니다. 참기전근이라. 앞에 지은 허물을 참회하고
▮悔라는 것은 회기후과라. 후의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짓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이 후과다 이 말입니다. 기독교의 참회하고는 좀 다르지요. 기독교 참회는 실컷 일주일 동안 잘못한 것 주일 날 가가지고, “아, 잘못했습니다” 하면 다 소멸 된다고, 다 사해진다하는 그것이 엉터리지요. “회개합니다” 하는 그것... 그러니까 猶如山海한 줄을 알아서 須知理懺事懺으로 可以消除하며, 이참과 사참으로써 가이소제하라. 이치로 참회하고 事로 참회하라 그랬거든. 이치로 참회한다는 것은, 그 진리의 세계 속에서 마음속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참회하는 것이 理懺...
이를테면 어떤 것이냐? 하면, 두 비구가 깊은 산 속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두 비구가운데 한 비구의 여동생이 있었거든. 그 여동생이 절에 자기 오빠를 찾아왔단 말입니다. 자기오빠를 찾아왔는데, 자기오빠는 없고 오빠친구가 잘 생기고 아주 좋거든. 그러니까 이 아가씨가 마음속에 연정을 품은 겁니다. 뭐 남녀가 다 그런 거니까. 남자는 여자 보면 좋고, 여자는 남자 보면 좋기 마련이기 때문에 턱~ 하니 연정을 품어 가지고... 자기 오빠도 없겠다 단 둘이 만났으니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은근히 좋아합니다. 좋아합니다가 사랑합니다로 됐는지 어쨌는지 그냥 홀려가지고 파계를 해버렸어. 미쳐가지고 정신이 없어서 파계는 했는데 파계하고 생각하니까 큰일 났거든.
“아이고 어쩌다보니 내가 파계를 했나?”하고 땅을 두드리고 우는데 여자가 달래도 소용없고, 남자가 자꾸 우니까 여자는 도망을 했어. 도망을 하는 차제에, 한쪽에선 울고 있고 한쪽에선 도망가는데 그 오빠가 왔거든. 와서 보니까 비구도반이 막 땅을 치고 울고 있거든. “왜 그러냐?”하니까 “이만 저만 네 동생이 와가지고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네 동생하고 내가 파계를 했다” 그러니까 “그래? 요년이 어땠든지 간에 내가 때려 죽여 버릴란다. 이런 년이 세상천지... 이건 마구니 골수종자 같으니 내가 때려 죽여야 된다” 몽둥이를 가지고 그냥 이년 때려죽인다고 막~~~ 쫓아갑니다.
저~~~ 기 산등성이에 막 달아나거든. 아무야~~~ 이 년아 거기 섰으라고, 내 몽둥이 맞아 죽으라고 도망가지 말고 거기 섰으라고, 때려죽인다고 쫓아가니까, 자기 오빠 만나면 맞아 죽거든. 죽어라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가다가 그만 층암절벽에 떨어져 죽어버렸어. 그렇게 안 쫓았으면 안 떨어져 안 죽었을 것 아닙니까? 자기 오빠가 때려죽인다고 몽둥이 들고 쫓아오니까 떨어져 죽었지. 동생이 머리 깨지고 다 터져서 죽은걸 보니까 지는 살인을 한 셈입니다. 그래 두 사람이 같이 웁니다. 한 사람은 ▮살인을 했고, 한 사람은 ▮음계를 범했으니까 같이 울지요.
“아이고 나는 어쩌다가 살인을 했네”“나는 본의 아니게 어쩌다 파계를 했네” 하고 둘이 울면서 “어떻게 참회할 분이 있는가? 없는가? 어떻게 참회해서 회과할 분이 있으면 어떠한 벌을 받고라도 우리가 참회를 하자.” 하고 大律師 우바리존자를 찾아갔어요. 持戒第一의 우바리존자를 찾아가서 “우리가 이만 저만 했습니다” 하고 물으니까 우바리존자가 혓바닥을 껄껄껄껄 차면서 “참, 선근도 지지리도 없는 놈들이구나. 불쌍한 놈들이구나. 동기가 어쨌든 간에 너희 둘이는 4바라이 가운데 2바라이를 각각 범했으니, 바라이죄를 범한 자들은 마치 나락씨를 뜨거운 물에다 한 번 푹 담갔다 건진 것과 같은 것이다. 나락씨를, 씨앗을 뜨거운 물에다 푹 담갔다가 건졌는데 싹이 나겠느냐? 안 나겠느냐? 너희는 보리의 종자를 완전히 삶아 버렸으니 다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생각도 하지 말라” 이런 판단을 내려버렸어.
둘이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죄인이 됐단 말이냐고 아비지옥은 못 면해놨네! 하고 둘이 기사굴산을 내려오면서 바윗돌에다 머리를 부딪히면서 막 울며불며 내려옵니다.
거기서 유마거사를 만났거든. 유마거사는 동방 아촉불 후신이라고 그러잖아. 아촉불 후신이라고 하는 분인데, 그 유마거사가 턱~ 하니 “허허 젊은 스님들이 어쩐 일이요? 무슨 일로 이렇게 슬피 울면서 자기 몸을 학대를 한단 말이요? 왜 이렇게 자학을 하십니까?”
“아이고 거사님, 우리는 선근이 얼마나 없었든지 세상만사 다 내버리고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내버리고 우리는 출가해가지고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다가 이런 일을 뜻 아니게, 본의 아니게 저질러 가지고 우리는 보리의 종자를 다 삶아놨으니 우리는 어찌하면 된단 말이냐?”고 그러니까 “스님들이 그럼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그래 “죄를 지었다”고 그러니까... “죄 좀 어디 봅시다. 고칠 수 있는가 어디 좀 봅시다” 손을 내미니까 내놓을 것이 없거든. 그 소리에 그냥 확철대오를 했어. 두 사람이... 떡~ 깨쳐가지고... 그러니까 깨치는 것을 보고 유마대사가 탁~ 노래를 불렀거든.
▮罪無自性從心起라. 죄라는 것은 자성이 없는데, 마음을 쫓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心若滅時에 罪亦亡니라. 마음이 만약 없어질 때에는 죄성도 또한 공하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罪亡心滅兩俱空하면, 죄가 없어지고 마음이 없어져서 두 가지가 다 공한 상태에 들어가면
▮是則名爲眞懺悔니다. 이것이 진짜 참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마거사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갔거든요.
그것을 後來 스님들이 노래를 읊기를
▮有二比丘가 犯淫殺하야 두 비구가 있어서 음행과 살인을 범했는데,
▮波離는 螢光增罪結이라. 우바리존자는 반딧불같은 빛을 가지고, 반딧불 알지? 개똥 불 같은 조그만 밝은 빛을 가지고 죄를 더 크게 만들어가지고 콱 덮어 씌워놨고,
▮維摩大士는 頓除疑라. 유마대사는 몰록 의심을 제하게 만들었으니,
▮還同赫日銷霜雪이라. 도리어 밝고 밝은 해가 霜雪를 녹이는 것과 같다 이 말입니다. 霜雪. 눈 서릿발을 갖다가 솩, 해만 뜨면 그냥 없어져버리잖아. 不思議解脫力이요. 참 이것은 생각하고 의논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이로다 했거든. 이것이 말하자면 理懺. 이치로 참회하는 것.
一切業障海가 皆從妄想生이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업장 때문이거든. 모든 업장이거든. 業障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뭐냐? 거울이 본래 맑고 깨끗한 것인데, 거기에 먼지가 수북이 앉아가지고 거울이 거울이인지 뭔지 하나도 비치지도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業障입니다. 업의 장애다 이 말이거든. 그 먼지만 삭~ 닦아내면 환히 다 드러나게 되어 있잖아. 一切業障海가 皆從妄想生이라. 망상. 8만4천 번뇌 망상 때문이다 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喜怒哀樂. 憂悲苦惱. 모두 그런 것이 다 생기기 때문에
▮若欲懺悔者인댄, 만일 참회를 하고자 하는 자일진댄,
▮端坐念實相니라. 단정히 앉아서 진리의 실상을 관하라 이 말입니다. 진리의 실상을 관하면, 기도 참선이 端坐念實相하는 것이거든. 실상을 관하는 것입니다. 딱~~ 그렇게 하면 이참이 옳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理懺이고. 事懺이라는 것은 실지 事理로써 참회하는 것입니다. 실지 행동으로 참회하는 것입니다. ◯理懺이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罪性이 본래 空이라고 하는 경계를 깨달아서 참회하는 것이고, ◯事懺이라는 것은 실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108예배라는 것은 108번뇌를 참회하는 것이고요.
능히 일을 저질을 수 있는 것은 안이비설신의거든. 그것이 말하자면 ◯能動的인 것이 안이비설신의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 色聲香味觸法은 眼耳鼻舌身意가 그 능동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 하는 것이기 때문에 ◯所動이라고 그래. 能動的, 受動的그러지? 이 말은 수동적이라는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受라는 것은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이 受인데, 무엇을 하는 짓을 저질을 수 있는 장소를 所動이라고 그래요. 그것을 能所對라고 그래요. 能이라는 것은 능히 한다는 말이고, 所라는 것은 받는 장소니까 能所라고 그래요.
그래서 眼耳鼻舌身意가 色聲香味觸法을 상대할 때마다 36가지 번뇌 망상이 생긴다 이 겁니다. 6× 6 = 36이니까요. 눈으로 보고 좋다ㆍ궂다. 그렇지요? 눈으로 뭘 보느냐? 色을 본다 이 겁니다. 젊었다ㆍ늙었다. 예쁘다ㆍ밉다. 좋다ㆍ궂다. 빨갛다ㆍ희다 이런 분별심이 생기니까 能所라 이 말입니다. 돈이다ㆍ똥이다ㆍ황금이다ㆍ돌덩이다. 이런 분별심이 생기니까 눈으로 보는 것도 백 천 가지로 보잖아요. 눈 한 가지만 안 봐도 반 신통이 생긴답니다. 눈 한 가지만 안 봐도... 눈으로 보는데 얼마나 정력을 뺏기는지 몰라요. 눈으로 안 보는 그 봉사들은요? 금강경 한 번만 읽어주면 외웁니다. 봉사들은 외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금강경 몇 번만 읽어주면 그냥 외웁니다.
우리는 눈으로 열번 쳐다봐도 금강경 못 외우거든요. 스무 번 읽어도 잘 안 외워지잖아. 그런데 봉사들은 듣기만 해도 외워. 그리고 봉사들이 길 가면서 누구 아는 사람 만나면 “안녕하십니까?” “예, 요새 신색이 안 좋으시네요. 요새 살 좀 찌셨네요” 보지도 못 하면서 음성만 듣고 다 알아. 음성 들으면 저 사람이 건강하다 안 건강하다 대번 알아. 봉사의사도 있거든. 606호 주사도 잘 놓고 진맥 잘하고 약 똑 떨어지게 잘 짓고, 그런 의사도 있어. 그러니까 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는 소리가 맞는 것이지. 그러니까 6× 6 = 36이, 과거 현재 미래로 곱치니까 108 아닙니까? 36을 3배하니까 108이잖아요? 108가지 번뇌 망상이 생기는 것을 108참회, 108예배를 드림으로써 그것을 참회하는 겁니다. 그것이 108참회고요.
3000배하는 것은 過去莊嚴劫千佛ㆍ現在賢劫千佛)ㆍ未來星宿劫千佛. 삼세 3000불에게 절 한 번씩 하는 것이 3000배지. 절하는 참회법도 있고... 부처님 당시는 절하는 참회법이 없고 부처님 당시에는 “합장교족정진” 이라는 것이 있었어. 합장을 하고 발꿈치를 들고 딱~~~ 서서 일심주목 하는 겁니다. 그런 기도를 했어. 아나율존자도 그런 기도를 했고, 아란존자도 그런 기도를 하고 그랬어. 그래서 모두들 견성을 했어. 발꿈치를 들고 섰는 그것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 지금 남방에도 가면, 타일랜드 같은데 가면 예불할 때 발꿈치를 세우고, 발뒤꿈치를 세우고 발가락으로만 버텨가지고 한 시간씩 앉아서 염불을 해. 아~~ 이고 발가락 아파서 죽겠더군. 죽겠어.
나이 60넘은 사람은 그냥 앉기를 허락하고, 60전에는 다 ◯호궤합장입니다. 그것을 호궤라고 그래요. ◯장궤는 무르팍 세우고 궁둥이 들고 있는 것이고... 무르팍이 깨지는 것 같이 아프지. 그런 기도들이 있었어. 그래서 눈은 부처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부처님하고 나하고 사이클을 맞추는 겁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절하는 것도 힘들고 그것도 힘들기 때문에 제일 쉬운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석가모니불 稱勤기도지. 부르며 섰는 것이지. 그것도 서서 하기 싫어서 앉아가지고 끄떡끄떡 졸면서 하고. 그것도 하기 싫어서 허리가 아프니 목이 아프니 핑계대고... 100일 기도 한다면, 기도도 옳게 안 하고, 새벽 예불도 안 나오고...
그것이 말하자면 ◯事懺이거든요. 그것만이, 부처님한테 기도하고 절하는 것만이 事懺이 아니고, 대중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청소를 더하고, 더 깨끗하게 하고 이것이 말하자면 事懺입니다. 비구계가운데 바라이죄와 승가바시사죄하고 하는 것이 있는데, 승가바시사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짓고 나서 사흘 동안을 숨겨놓고 대중한테 말하지 않으면, 사흘 동안을 대중한테서 別住를 받아요. 딴 방에 갇혀야 돼. 사흘 동안을 감방에 갇히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7일 동안을 숨겼으면 7일 동안을 감방에 갇히고, 그러고 나서 죄를 내놓되 유자마나타 라고 해가지고, 한자로 悅意... 대중의 뜻을 기쁘게 만든다 이 말입니다.
대중의 뜻을 기쁘게 하려면 어째야 합니까? 청소도 부지런히 해야되고, 설거지도 지가 해야되고, 변소청소도 지가 해야 되고, 대중이 해야 할 일을 전부 지가하고, 스님들 신도 더러운 것이 있으면 지가 닦아 놔야되고 이러면 대중들이 “아~, 회개의 정이 충분하니까 그 정상을 참작해가지고 그만 풀어주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유자마나타 라는 겁니다. 이것이 다 ◯事懺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참회를 하여가지고... 큰 죄를 저질렀을 때는 서상. 기적을 봐야 된다 이 말입니다. 기적이라는 것이 제가 항상 얘기하는 3종 가피입니다. 冥勳加被ㆍ顯證加被ㆍ夢中加被. 이 3종 가피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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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