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방글라데시를 타이항공의 비지니스클래스를 이용하여 여행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귀국편 항공기는 MD-11 으로 일등석, 비지니스석, 일반석 등 3 class 좌석이 설치된 기종이었지만 타이항공의 방글라데시노선에는 일등석 항공권을 판매하지 않고 있기에 저는 맨 앞 일등석좌석 1A 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비지니스석 탑승객은 많지 않아서 좌석이 반 이상이 비어 있어서 대부분 일행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혼자 앉은 승객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임박해서 기내가 좀 어수선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의 좌석배치도를 보며 뭔가 해결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승무원이 저 한테 좌석을 다른 쪽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묻고 납득할 만한 일이라면 옮기겠다고 하니 나이가 많은 선임승무원이 와서 하는 얘기가 방글라데시정부의 장관이 방콕으로 출장을 가는데 예정된 항공기가 결항이 되어 갑자기 타이항공에 탑승하게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비지니스클래스좌석이라도 가장 앞 좌석이 고위층들이 대접받는다고 생각하는 좌석인데 이미 제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지니스클래스 항공권으로 일등석에서 호강하는 것 만도 고마운데, 기꺼이 반대편 맨 앞좌석의 창가쪽 빈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 후 사정 얘기를 들었는지 장관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인사가 저한테 찾아와 자리를 양보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 EVA항공 A330 일반석, 일반석도 맨 앞좌석이 상석이다. >
- 공항에서 탑승수속할 때 맨 앞좌석(Bulk Head Seat)을 요청하면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좌석을 배정해
주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16년전 인도의 뉴델리에서 타지마할의 도시 Agra를 경유하여 Varanasi로 가는 인도항공국내선에서 맨 앞좌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기종은 보잉 B737으로 일반석만 있는 것이며, 옆의 두 좌석이 비어 있었습니다만 비행기는 탑승마감을 해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무려 1시간 가까이 지체되었는데 건장한 두 사람이 탑승을 하고 조종석에서 기장까지 나와 반갑게 그들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제 옆의 빈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는 좌석에 앉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기에 자기 때문에 비행기출발이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뜻인줄만 알았습니다만 그가 인도의 유명한 정치인 인디라 간디 여사의 차남이자 바로 전 인도수상이었던 라지브 간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AGRA에서 그가 내린 다음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중간기착지인 Agra에 도착하자 군중들이 비행기로 몰려드는 모습을 보게되었는데 그 때는 인도의 선거철이 되어 전국으로 유세를 다니는 것 같습니다만 그는 불행하게도 제가 인도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 지지자로 가장한 반대정파로부터 폭탄이 숨겨진 꽃다발을 받고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 대한항공 B747-400 일등석, 동남아노선에 투입되는 경우 비지니스승객 차지가 된다. >
또 한 번은 방콕에서 국내항공사의 야간항공편으로 귀국하는 길이었습니다. 기종은 B747로 일등석, 비지니스석, 일반석 등 3 class 좌석이 배치된 기종이지만, 역시 국내항공사들은 동남아시아노선에는 일등석항공권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비지니스석 승객은 일등석 좌석으로, 그리고 비지니스석 좌석은 일반석 승객들 중에서 선별되어 자리를 배정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비지니스석의 맨 앞좌석인 7A를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 타이항공 B777 비지니스클래스 맨 앞좌석 11A, - 당일 VIP승객이 없을 경우 요청하면 배정해준다. >
그런데 기내에 올라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 항공사직원이 친구인 듯한 승객과 함께 오르더니 7A에 앉아 있는 저를 보고 보딩패스를 보자고 요구하였습니다. 무척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승무원이 보여달라고 요구하면 당연히 보여주겠지만 지상직 직원이 승객들의 보딩패스를 보자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좌석을 찾아 통로를 오가는 승객이라면 좌석을 찾아주려는 배려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좌석을 찾아 앉아 안전벨트까지 매고 있는 승객의 보딩패스를 보자는 것은 검문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직원과 함께 오른 승객은 뒤의 빈 좌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마 그 직원은 친구한테 가장 좋은 좌석으로 평가되는 7A를 배정하려고 했는데 제가 먼저 좌석을 받아서 친구한테 체면이 꾸겨서 저한테 보딩패스를 보자는 월권을 한 것 같습니다.

< 말레이지아항공 A330 비지니스클래스, 맨 앞에는 유아를 눕히는 요람을 걸 수 있어 유아동반승객한테 배정한다. >
보통 비지니스클래스건 일반석이건 간에 맨 앞좌석은 아무한테 배정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우선 맨 앞좌석은 유아를 눕힐 수 있는 요람을 걸치는 장치가 있어서 유아를 동반하는 승객들한테 우선순위가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가운데열 좌석의 경우이고 맨 앞 창가쪽 좌석은 VIP용으로 항상 비워둔다고 하며 만석이 될 경우에만 승객이 요청하지 않아도 이 좌석을 배정한다고 합니다.

< 타이항공 A300 비지니스클래스, 맨 앞 11A, 11B 좌석이 비어있다. >
이렇게 저도 몇 번 경험하였지만 기내에서 가장 앞 좌석이 갖는 여유있고 편안한 좌석이라는 것 보다는 VIP좌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항공사들도 맨 앞좌석은 사전좌석지정을 하지 않고 공항에서 탑승객 상황을 봐가면서 지정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어제 김해공항발 김포공항 대한항공국내선에서 바로 7A에 앉은 승객 한 분이 기내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아침 비행기라고 하는데 전날 어지간히 술을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마 직접 그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그 자리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승무원들도 무례(?)한 요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 난동을 부린 것을 보면 대접받을 깜도 못되는 승객은 아닌지요...
이 글을 쓰는데 마침 TV 마감뉴스의 앵커가 마지막 뉴스로 이 소식을 전하며 전하는 클로징멘트가 재미있습니다.
" ...대통령의 측근들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울 지는 모르지만, 그럴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맞습니다 ... 맞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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