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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2일 토요일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295년 무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타나시오 성인은 알렉산데르 대주교를 수행하여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328년 알렉산데르 대주교의 후계자가 된 뒤,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우다가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정통 신앙을 해설하고 옹호하는 책을 많이 남겼으며,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성인의 전기를 써서 서방 교회에 수도 생활을 알리기도 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는 유다인들에게, 이제 자신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서겠다고 선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당신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5,1-5)와 복음(마태 10,22-25ㄱ)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투명 인간”이라는 영화를 보며 처음에는 투명 인간이 되면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면? 아무도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고 생각해 보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비우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를 가장 온전히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고, 특히 십자가에서 당신을 온전히 내어놓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찬란하게 비추셨습니다. 고통스러우셨을 테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투명한 유리창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투명한 존재가 되도록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는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빛이 나를 통하여 세상에 비추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려 할 때 하느님의 빛은 가려집니다. 그러나 내가 겸손히 나를 낮출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는 오늘 복음의 진리를 온 생애로 증언하였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안위보다 진리를 선택하였고,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참된 신성을 지니셨다는 교리를 수호하였습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투명한 증인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나를 내세우기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투명한 존재가 되어 봅시다. 하느님의 빛이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비추어지도록 기꺼이 투명해집시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참된 신앙 여정이란 지속적인 깨달음의 길!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 제자로 간택하신 필립보 사도,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그가 오늘은 정말이지 전혀 엉뚱한 말을 해서 예수님 속을 긁어놓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필립보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신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오랜 공을 들여 제자들에게 특별 과외까지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필립보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비애나 상심은 무척이나 컸던가 봅니다. 필립보를 향한 예수님 책망의 강도가 아주 큽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우리네 인생이란, 그리고 우리 신앙 여정이란 지속적인 깨달음의 길입니다. 너무나 크신 하느님이시기에 우리 인간의 짧은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하느님, 때로 알쏭달쏭한 하느님, 인간의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하느님이시기에 납득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진리를 볼 수 있는 맑은 눈이 필요합니다. 깨어있기 위한 부단한 자기 단련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깨닫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보다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참된 영적 예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평생 죽을 고생을 다했지만, 죽기 일보 직전까지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 인생처럼 불행한 인생도 다시 없을 것입니다.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인생은 참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삶은 동물적인 삶, 돌덩어리나 나무토막과도 같은 삶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획득해야 할 깨달음을 과연 어떤 깨달음입니까? 예수님께서 간단하게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 하느님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는 하나라는 것. 예수님은 곧 그리스도, 메시아,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 자체라는 것.”
더불어 우리가 획득해야 할 깨달음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죄와 비참으로 얼룩진 이 세상 한가운데, 고통받는 우리 동료들 안에 현존하신다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
죽음은 생의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을 시작하기 위해 묶은 껍질을 벗어버리는 과정임을 깨달음, 마지막 날은 우리네 인생 곡선 안에서 가장 하한선을 긋는 절망의 순간이 아니라 절정의 순간임을 깨달음, 하느님은 똑똑하고 잘난 내가 아니라 부족하고 죄인인 나를 사랑하신다는 깨달음, 나란 존재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깨달음, 고통스러운 매일의 현실이 사실은 꽃봉오리처럼 소중한 것임을 깨달음, 부족해 보이는 이웃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운 대상임을 깨달음...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릴 때의 일입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다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덩치가 큰 친구는 제 목을 잡았고, 체구가 작았던 저는 친구의 급소를 잡았습니다. 서로 놓으라고 울면서 버티다가 결국 힘이 빠져 손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습니다. 어렸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서로 붙잡고 있으면 고통이 계속되고, 손을 놓으면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목을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한다고 했습니다. 이란의 정권을 교체한다고 했습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없앤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달리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반격했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미국의 군사 기지를 공격합니다. 미국이 이란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주변국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이스라엘의 핵 시설을 공격합니다.
어린 시절 저와 친구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금세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은 어찌 그런 이치를 모르고 서로서로 파국으로 몰아가는 행위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의 에너지인 석유 공급이 무너지면 세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역사의 시계를 돌려보면 지금의 갈등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란은 미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의 산업과 정유 시설은 미국과 서방의 도움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2015년에는 핵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갈등을 넘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열렸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와 불신이 쌓이면서 그 관계는 다시 긴장과 대립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전신인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는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해 주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키루스를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어 자기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 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은 에스더의 청을 받아들여 유다인을 살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성서 안에서 페르시아, 곧 오늘의 이란은 이스라엘을 살린 나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 이유를 인간의 마음 안에서 찾으십니다. 교황님은 사제들과 신앙인들이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유혹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영적 세속성’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을 추구하는 유혹입니다. 희생 없이 승리만을 원할 때 우리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둘째는 ‘숫자에 의존하는 실용주의’입니다. 사람을 숫자로 환산하는 유혹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더 낫다”라는 가야파의 논리가 오늘도 반복됩니다. 셋째는 ‘기능주의’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 효율과 계획을 앞세우는 유혹입니다. 기도보다 전략이 앞서고, 믿음보다 계산이 앞설 때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놓치게 됩니다. 이 유혹에 대해 본회퍼 목사님도 깊이 경고했습니다. 목사님은 ‘값싼 은혜’를 이야기하며, 십자가 없는 은혜, 회개 없는 용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신앙은 참된 은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마저도 자기 편의대로 바꾸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든 유혹의 결과는 하나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혹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에 갇혀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의 유혹 때문입니다. 이제 신앙 안에서 다시 배워야 합니다. 욕심을 놓고, 미움을 놓고, 자기 확신을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청하는 것>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
믿음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믿음뿐입니다
희망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희망뿐입니다
사랑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입니다
사귐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귐뿐입니다
품음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품음뿐입니다
스밈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밈뿐입니다
나눔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눔뿐입니다
돌봄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돌봄뿐입니다
섬김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섬김뿐입니다
살림께
청하는 것은
청해야 하는 것은
청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살림뿐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신분 :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 295?-373년
같은이름 : 아따나시오, 아따나시우스, 아타나시우스
아마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 출신으로 여겨지는 성 아타나시우스(또는 아타나시오)는 잘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특히 성경과 신학이 뛰어났다. 318년 부제로 서품된 후 자기 고향의 알렉산데르(Alexander) 주교의 비서가 되었다. 그는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했던 325년의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알렉산데르 주교를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3년 뒤인 328년 4월 17일 알렉산데르 주교가 사망한 뒤 그 자신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이집트 아리우스파의 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이러한 반기는 지중해 제국 전역으로 무섭게 파급되었고, 아리우스를 지원하던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도 덩달아 기세를 올렸다. 물론 이런 세력 뒤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지원이 있었다. 그는 335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첫 번째 유배되었다. 337년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2세가 서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새 황제는 성 아타나시우스에게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뒤 다음 해에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직위를 복권시켰다. 그러나 성 아타나시우스는 반대파에 의해 2년 후 재차 추방되었다. 이 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7년 동안 머물러야 했다.
346년부터 356년까지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는 가장 평화로운 황금의 시간이었고 또 그의 주요 저서들도 이때에 나왔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콘스탄티우스가 그를 추방키로 하고 군인들을 보냈다. 체포 위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성 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의 사막 은수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361년에 죽기까지 자기 교구민들을 지도하였다. 그 이후에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두 차례나 유배를 더 당하였고, 366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평화롭게 자기 교회를 다스리고 사목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날의 모든 갈등과 폭력으로 인하여 피폐된 교회들을 재건하고, 아픈 상처들을 치료하는데 주력하면서, 저술과 강론을 통하여 위대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신체적 조건으로 볼 때는 작은 사람이었으나 아주 강인하고 정신력이 뛰어났다. 아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파문하기로 결정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평신도들도 우왕좌왕하였고, 수많은 주교들도 주저하였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성 아타나시우스는 존 헨리 뉴만의 말대로, “그리스도 교회의 거룩한 진리를 세상에 전해 온 사도들의 후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도구였다.” 아리우스 이단을 대항하여 저술한 그의 뛰어난 저술과 연설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를 비롯하여 성서 주석, 시편 주해 등을 남겼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 그리고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월 2일)와 함께 그리스의 교회학자이자,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유배 중에 저술한 그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에게 보낸 해명”(Apologia ad Imperatorem Constantium), “수도자들에게 보낸 아리우스주의의 역사”(Historia Arianorum ad Monachos) 등이 있다. 성 아타나시우스가 ‘아타나시우스 신경’(Symbolum Athanasianum)을 직접 기록하지는 않았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강론에서(Oratio de incarnatio Verbi, 8-9 PG 25, 110-111)
말씀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비육체적이고 부패할 수 없으며 빗물질적인 하느님의 말씀께서 우리가 사는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전에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어느 부분에도 그분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분은 성부와 함께 계시면서 만물을 채우고 계셨습니다.
말씀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셨고 우리에게 환히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우리의 부패를 보시고는 마음이 움직이시어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창조된 것이 멸망하지 않고 성부께서 사람을 지어내실 때 행하신 그 업적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육신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육신을 친히 취하셨습니다.
말씀께서는 단순히 육체 안에 머무르거나 또는 육신의 모양으로만 발현하시는 것으로 그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발현만 하시기를 원하셨더라면 인간이 지닌 육신보다 더 고귀한 육신을 취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실제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동정녀 몸에서 육신의 성전을 지어내시어 그안에서 거처하시고 그 육신을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은 우리에게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취하셨고, 모든 사람이 죽음의 부패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 육신을 모든 이를 위해 죽음에 내맡기시어 지극한 사랑으로 그것을 성부께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한편으로는 당신 안에서 죽으려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서 그들을 거슬러 공포된 죽음의 법을 폐기시키셨습니다.
죽음은 주님의 육신을 너무도 강력히 공격했기에 그힘을 잃어, 같은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기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부패의 법에 빠진 사람들에게 불멸을 되돌려 주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이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취하신 육신과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흡사 밀짚을 불에 태우듯 그들 안에서 죽음을 소멸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친히 죽을 수 있는 육신을 취하시고, 그 육신은 모든이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참여함으로써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서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 안에 거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부패하지 않으시고 부활의 은총으로 인해 모든 이에게서 부패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취하신 이 육신을 아무 흠도 없는 희생 제물로 죽음에 내 맡기심으로써 그 봉헌의 힘으로 같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쫓아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물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모든이들을 위해 당신 육신의 성전을 바치심으로써 죽음에게 빚진 것을 갚으셨습니다.
우리 육신과 동일한 육신을 취하심으로 우리와 일치하신 부패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부활의 약속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불멸을 입을 권리를 주시고 또 실제로 입히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부패마저 이제는 사람들에게 아무힘도 미치지 못합니다.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Jose Maria Rubio)
활동년도 : 1864-1929년
지역 : 마드리드
신분 : 신부
같은이름 : 메리, 미리암, 요세푸스, 요셉,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는 1864년 7월 22일 에스파냐 남부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알메리아(Almeria) 지역의 달리아스(Dalias)에서 농부인 아버지 프란치스코 루비오(Francisco Rubio)와 어머니 메르세데스 페랄타(Mercedes Peralta)의 열두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불행히도 형제 중 여섯은 그가 어린 시절에 사망하였다.
그는 가정에서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1875년 알메리아에서 중등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사제가 되고 싶은 성소를 느낀 그는 1876년 교구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업을 계속했다.
이어 1878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대신학교로 가서 여러 해 동안 철학과 신학, 교회법을 배운 후 1887년 9월 24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즈음에 그는 예수회의 회원이 되고픈 부르심을 느꼈지만 도움이 필요한 연로한 사제를 돌봐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19년 동안이나 그 소망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서품을 받은 후 루비오 신부는 친촌(Chinchon) 본당의 부주임과 에스트레메라(Estremera) 본당의 주임신부를 역임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1890년 주교는 그를 마드리드로 불러 시노드 조사관의 책임을 부여하였다. 그는 또한 마드리드 신학교에서 형이상학 · 라틴어 · 사목신학을 가르쳤고, 성 베르나르두스 수녀들의 지도신부를 맡았다.
1905년 예루살렘(Jerusalem) 성지를 순례한 그는 이듬해 그라나다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고, 1908년 10월 12일 예수회의 회원으로서 서원을 발했다.
그는 뿌리 깊은 영성 생활에 의해 지속되고 양육된 사도직 수행에 있어서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드리드의 주교는 그를 ‘마드리드의 사도’라고 불렀고, 신자들은 그에게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그를 찾아왔다. 그는 날카롭고도 단순한 강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회개로 이끈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늘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 영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강론과 영적 지도를 통해 루비오 신부는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진실하게 살아가며 그를 도와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많은 평신도들을 불러 모으고 인도할 수 있었다.
그의 지도하에 선의의 봉사자들은 무료 학교를 열어 다양한 직업 훈련과 학문적인 기반을 제공하였고, 병자와 장애인 그리고 실직으로 인해 새로운 직업을 찾는 이들을 도와주었다. 루비오 신부는 항상 이 모든 일들을 열과 성을 다해 했지만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협력자들 스스로 중심적인 역할을 맡도록 했다.
그는 평신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잘 개발하도록 돕기 위해 그들 스스로 주된 책임을 맡도록 했고,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생활하고 활동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또한 그 도시의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대중적인 선교와 영성 수련을 위한 모임을 조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영적 · 물적으로 모두 완벽한 도움을 받아야만 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사랑하고 고무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루비오 신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도직의 측면은 기도였다.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을 흠숭하는 것은 그의 내적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루비오 신부가 진정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자 원했던 것이다.
그와 그의 협력자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첫째가 되었고, 열정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그들은 마드리드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봉사하며 영성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신부는 1929년 5월 2일 마드리드 주(洲)에 있는 아랑후에스(Aranjuez)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985년 10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성 호세 마리아 루비오 이 페랄타(Jose Maria Rubio y Peralta)로도 불린다.
성녀 마팔다 (Mafalda)
활동년도 : +1252년경
신분 : 공주, 수녀
지역 : 포르투갈(Portugal)
같은 이름 : 마띨다, 마틸다
포르투갈의 국왕 산초 1세(Sancho I)의 딸인 성녀 마팔다는 12세경에 그녀의 젊은 사촌인 카스티야(Castilla)의 헨리쿠스 1세(Henricus I) 왕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교황청으로부터 혈족에 의한 결혼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 즉시 성녀 마팔다는 포르투갈로 돌아와서 아루카(Arouca)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당시 그 수녀원은 규율이 너무 느슨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시토회의 규칙을 도입하여 맨땅에서 잠을 자거나 기도 중에 밤을 새는 등 엄격한 생활을 추구하였다. 또한 그녀는 아름다운 포르투(Porto) 주교좌성당을 재건하고 순례자들을 위한 집을 세웠으며, 탈메다(Talmeda) 강 위에 다리를 건설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때가 온 것을 알고는 재 위에 누워 임종을 맞이하면서 “주님, 당신 안에 있기가 소원이나이다.” 하는 말을 남기고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93년에 승인되었다. 그녀는 마틸다(Matilda)로도 불린다.
성녀 비보라다 (Wiborada)
활동년도 : +926년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귀보라, 바이브라트, 위보라다
성녀 비보라다는 스위스의 클링냐(Klingna)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어로는 귀보라(Guiborat), 독일어로는 바이브라트(Weibrath)라고 부른다. 그녀는 슈바벤(Schwaben)의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부모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 한 명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그녀도 장크트갈렌(Sankt Gallen) 수도원의 수도복을 입었고, 수도원 도서실의 수많은 책을 장정하는 일을 하였다. 양친의 사망 후 그녀는 사제인 오빠에게서 라틴어를 배웠으며, 성무일도를 함께 바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이들 남매의 집은 일종의 구호소였다.
그 후 그들은 로마(Roma) 순례를 하였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은수생활을 꿈꾸고 장크트갈렌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내다가 915년경부터 성 마뇨(Magnus) 성당 곁에 있는 움막에서 살았다. 여기서 그녀는 많은 예언과 기적을 베풀어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그녀는 헝가리인의 침략을 예언했는데, 장크트갈렌의 수도자들은 그녀의 말대로 피신했으나 자기 자신은 움막에서 그대로 살다가 그들의 손에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그녀는 1047년 교황 클레멘스 2세(Clemen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