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니니의 <아폴론과 다프네>"
저의딸이 엮은 글입니다. 이 조각과 글 공부 하시라고요. 조금분 옮김 오랫동안 로마여행을 꿈꾸었다. 그 곳은 고대로마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도시가 아닌가. 내가 아직 한국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조금씩 뒤적거리기 시작하던 그림 관련 도서들에서 자주 등장하던 보르게세 박물관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박물관은 그 이름의 생소함만큼이나 강하게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그 호기심의 한켠에는 늘 베르니니가 있었고. 사실 로마는 굳이 보르게세 박물관을 가지 않더라도 거리 모퉁이만 돌면 어디에서나 베르니니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바르베리니 광장의 분수라든지, 나보나 광장의 파르미 분수, 미네르바 광장의 귀여운 코끼리상들에서 늘 그의 역동적이고 과감한 움직임과 거친 호흡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난 어떻게 스케줄을 조절하여 보르게세로 갈 것인지만 생각했다. 그 곳은 그다지 크지 않은 박물관이지만 입장객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하니 아침 일찍 서두르는 것이 낫겠다싶어 서둘러 갔다. 9시부터 시작인데 두시간씩 끊어 입장권을 팔고 입장시킨다. 우리는 11시 표를 끊어 1시까지 관람하였다. 우선 맛있는 카푸치노를 한 잔씩 마시고 호흡을 가다듬고 관람을 시작...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하데스에게 납치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조각이 큰 방의 한 가운데서 맨 처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는데 도판을 통해 익히 보아왔던 조각임에도 표현의 생생함에 압도되어 눈길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데스의 폭발할 듯한 힘과 페르세포네의 무기력한 저항이 돌을 통해 뿜어져 나오다니! 그 거친 호흡과 탄식이... 그 다음 방에서 만난 조각이 바로 <아폴론과 다프네>였다. 지금 막 아폴론은 숨을 몰아쉬며 다프네를 잡으려 하고 아폴론에게서 멀리 도망가려 하는 다프네는 강의 신인 아버지께 호소하여 나무로 변하려는 순간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은 아주 절박한 순간이다. 그 절박함에 비하면 아폴론의 표정이 너무나 평화롭다. 평화롭다 못해 무심하다. 이미 아폴론은 다프네를 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가? 인어공주가 거품으로 변해가며 사랑을 지키려 했듯이 아폴론 역시 나무로 변해가는 사랑앞에서 평정 이외에 달리 자신의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던 것일까? 게다가 벨베데레의 아폴론을 닮은 아무런 근심없는 미소년의 인상이 이 절박한 상황과 그를 더욱 멀리 떼어놓는다. 아폴론의 무심한 표정에 비하면 다프네의 표정과 몸짓은 다급하다. 그는 태양같은 뜨거운 욕망이 아니라 강물의 차가운, 나무같은 담담한 자유를 희구한다. 그는 월계수가 되어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족하는 식물적인 삶을 향유할 것이다. 관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프네의 그런 삶으로의 급박한 내디딤에 동참하게 되는데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를 일이다. 난 뜨거운 삶을 원하는가? 식물적인 삶을 원하는가? 우문일 뿐인 질문을 던져보는 이유는 그들의 쫓고 쫓기는 이미지의 표상에서 사랑과 욕망, 어둠과 빛, 생명과 죽음, 지상과 피안, 심지어 해탈의 이미지까지 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베르니니가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