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의 서문
몽테뉴*
독자들에게
독자들이여, 이 책은 자못 정성을 다하여 기록된 것이다. 여기 실린 작품은 오직 나의 집안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이야기해 보려는 것으로, 그밖의 아무런 의도도 없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따라서 그것은 조금도 당신을 위해 이바지하거나, 내 개인의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내 힘에 겨운 것이다. 다만 나의 일가권속이나친구들을 위한 것으로 내가 세상을 떠난 연후에 ----조만간 나는 그렇게 될 터이지만---- 그들이 이 책에서 나의 어떤 모습이나 감정의 특징을 몇 가지 찾아보고, 나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일들을 더욱 온전하고 생생하게 갖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글이 세상 사람들의 호의를 사려는 의도에서 씌어졌다면, 나는 좀 더 나 자신을 장식하고 조심스럽게 검토하여 세상에 내보냈을 것이다. 여러분은 여기서 생긴 그대로의 나를,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이 없는 아무 것도 아닌 나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내가 묘사한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결점들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는 되도록 흉금을 터놓고 타고난 나 자신 그대로를 내놓으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아직도 태초의 대자연의 법칙 아래 오붓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국민 속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기꺼이 나 자신을 깡그리 적나라하게 묘사하였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독자들이여, 그러므로 여기 나 자신이 곧 이 책의 소재인 것이다. 이렇게 경박하고 부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니, 당신에게는 한가한 시간이나마 허비할 거리도 못될 것이다.
1580년 3월 1일
몽테뉴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그의 {수상록}은 그의 조국인 프랑스를 떠나서, 쇼펜하우어와 니체 등, 독일의 세계적인 사상가들에게 대단히 크고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몽테뉴는 프랑스의 귀족출신이자 보르도의 시장까지 지낸 인물이었지만, 보르도 시장을 끝으로 은퇴를 하고,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람들처럼 수많은 명상과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행복과 불행은 대체로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맞닿아 있다면,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모른다”라는 말과 죽음은 “자연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요”, “모든 불행에 대하여 가장 잘 듣는 약방문”이라는 말은 스토아 학파의 사상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람들은 쾌락주의자들이고, 스토아 학파의 사람들은 금욕주의자들이다.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그의 행복론이며, 그는 이 행복론을 통하여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가난과 고통을 우리의 중요한 적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죽음을 어떤 사람들은 ‘두려운 것 가운데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유일한 지주支柱’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자연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요, 우리의 자유의 유일한 지주요, 모든 불행에 대하여 가장 잘 듣는 약방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공포에 떨면서 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삶보다 더 쉽게 이를 당해 내는 것이다.
----몽테뉴, [행, 불행은 대체로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수상록}) 부분
고독은 저 탈레스의 본보기대로 가장 정력이 넘치는 활동기를 세상을 위해 바친 자들에게 가장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남을 위해서는 꽤 많은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생은 자기를 위해 살아보자. 우리의 사고와 창의를 우리 자신의 안락을 위해 이용하자. 은퇴를 올바로 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일에 손을 대지 않아도 우리를 상당히 바쁘게 한다. 하느님께서 모처럼 우리에게 이사할(죽을) 채비를 할 여유를 주시니 그 준비를 하자. 짐을 꾸리도록 하자. 일찍암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해두자. 우리를 멀리 데려다가 우리 자신에게 돌아가게 못하려는 저 가혹한 연루에서 벗어나자. 우선 그 강력한 사슬을 끊은 연후에 이것 저것을 즐기도록 하자.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야 한다. 즉 자기 이외의 것을 갖되 그것이 우리에게서 떠날 때에 우리의 일부까지 함께 빼앗아 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몸에 밀착시킬 일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배우는 일이다.
----몽테뉴, [고독에 대하여]({수상록}) 부분
이 글은 박순만 역의 {수상록}(집문당, 1996년)을 발췌한 것이고, 독자 여러분들은 꼭 이 책을 구입하여 정독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