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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
요한일서 3:4-12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원어로 보면, 요한일서 3장 1절부터 12절까지 한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요한일서 3장 3절과 4절은 같은 내용을 다루는 단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말은 4절 이하의 내용은 3절과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4절 이하의 내용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와 맞물립니다. 이때 3절은 칭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깨어 있는 가운데 예수님처럼 흠없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명분을 말한 것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그리스도를 닮는 것, 거룩하여짐 등을 말하는 것이고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sanctificaiton’, 즉 성화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그는 대조법을 사용하여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과 “죄를 짓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죄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와 대조되고 있으며, 죄를 계속 짓는 삶은 의를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사탄 및 사탄의 종들은 죄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일을 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녀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을 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전쟁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4절을 보니 죄를 짓는 것을 불법이라고 합니다. 즉, 죄는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불법이란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도전하고 반항하면서 그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결과는 공의로운 법에 따른 형벌인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불법을 행하게 만드는 어떤 힘인데, 그러면 죄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죄란 “My own way”, 즉 자기의 뜻과 고집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다른 말로 하면 자기 멋대로 행하는 것이 죄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자기의 고집을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에 반항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요, 이를 ‘죄성’, ‘옛사람’ 또는 ‘육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다 …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즉, 각기 제 길로 가는 것, 다르게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라”(엡 2:3).
로마서 7장에서는 거듭난 신자에게 여전히 옛사람이라고 불리는 죄가 그 속에 남아 있는 것을 알려줍니다.
[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4-17)
이처럼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즉, 본질적으로 불법을 행하도록 태어난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십니다. 그 분은 죄를 없이 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방법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제거하심이요, 또한 죄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죄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1-4)
따라서 6절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뿐더러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갑니다. 그것은 의와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을 택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죄를 짓지 않고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사도 요한은 참 신자와 대조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6절에 언급된 불신자의 상태로서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범죄하는 자마다”를 원어로 보면 (호 하마르타논)이라고 하여 현재 분사형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하나님을 대항하며 주의 계명 또는 율법을 어기다”라는 뜻으로서 계명과 율법을 지켜 행하는 의와 정반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자마다”는 분사형이기에 항상 계속 변함없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주의 계명 또는 율법을 어기는 자마다”라는 뜻입니다. 즉,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지금 6절 후반부는 신자가 옛사람과 새사람 사이에서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늘 옛사람으로만 살아가는 불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라도 롯처럼 계속 깨어 있지 못할 때는 불신자들과 거의 유사한 삶의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주의 무서운 징계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불신자 및 옛사람의 특징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는” 죄를 반복하여 지으면서 죄를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범죄하면서도 아픔이 없고 양심의 거리낌이 사라지면서 심지어는 죄를 짓는 것을 자랑하는 상태까지 나아갑니다. 이런 불신자가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짜 신자일 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들에 대해 바울이 통탄합니다.
[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8-19)
유다 사도도 가짜 신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
4 그들은가만히들어온사람들이라. 그들은옛적부터이판결을받기로미리기록된자니경건하지아니하여우리하나님의은혜를도리어방탕한것으로바꾸고홀로하나이신주재곧우리주예수그리스도를부인하는자니라
6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10 그들은이성없는짐승같이본능으로행하며
11 가인의길에행하며삯을위하여발람의어그러진길로몰려가며고라의패역을따라가는도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나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참조, 유 1:4, 6, 10-13, 16)
그러므로 항상 죄의 상태에 있는 자나 또는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본 적도 없고 그분을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성령이 없으며 다만 마귀에게 속한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혹시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불신자들은 아닙니까? 아니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5절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5절의 중요함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그러면 5절이 담고 있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주이신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즉, 독생하신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뚜렷합니다.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죄를 없앤다”는 것은 대속의 개념으로도 사용하지만 성화와 관련해서 죄성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속의 개념으로는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본문의 문맥처럼 ‘깨끗함’을 유지하며 더욱 거룩하여지는 성화를 의미할 때는 (복수형으로) “죄들”을 “가져간다” 또는 “없앤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죄의 세력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하며 이를 위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그러므로 정리하면,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우리를 죄책 및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신자는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죄의 종 노릇하던 상태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문은 매일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문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5절의 의미는 대속보다는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분명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거듭날 때 보혈로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화목제물의 효력을 통해 자범죄를 사함 받고 또한 은혜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죄와 싸우며 마침내 죄에 승리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5절은 어떻게 하면 날마다 성도가 “깨끗함을 유지하며 더욱 깨끗하여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소위 “죄 죽이기”에 대한 교훈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0-14)
즉,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성을 이기고 날마다 깨끗하여지는 삶, 즉 성결한 삶,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거듭난 신자들에게 단 한 가지 요구는 6절에서 말하는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요구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동일하게 선언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요 15:4, 6-8).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분은 거듭난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요구입니다. 이 한 가지 요구를 무시하는 자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 하나님을 위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주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사명 중 하나는 성도들로 하여금 항상 주 안에 거하게 함으로 죄를 이기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교의 목적이어야 하며, 각 성도들의 신앙 생활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우리 죄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양심을 어기는 죄를 지은 경우 그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어둠과 고뇌와 주의 심판이 찾아올 것입니다. 또한 죄를 지을 때마다 사람은 마귀를 닮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죄는 항상 분리시키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분리시키며, 한 사람 안에서 영혼과 몸을 분리시킵니다. 즉, 영적인 죽음이며, 미움이며, 육체의 죽음이 죄로 인한 열매입니다. 따라서 죄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죄를 제거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부분이 우리가 오늘 마음에 깊게 새겨야 하는 교훈입니다. 즉, 사람이 죄의 종 노릇 하는 데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셔서 우리의 죄를 없애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없애 주지 않으시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죄를 없앨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십니까? 그렇습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에 이르신 우리 주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으신 후 그 영을 다시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런 자격을 얻으셨습니까? 5절의 답은 “그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마음으로나 생각으로나 행동으로나 입술로 단 하나의 죄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주의 율법과 계명을 단 하나라도 마음으로나 생각으로나 행동으로 범한 일이 없다는 것이고,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셨다는 뜻입니다. 즉,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호흡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 어떤 죄도 짓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에 완전하게 순종하심으로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애는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단번에 영원히 죄를 사하여 주셨고, 또한 매일 화목제물로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통해 우리가 범하는 죄악들을 사하여 주시는 일도 하시면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없애 주시는 일도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내 안에서 행하시도록 주를 의지하고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거하면 죄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말한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너희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는 당부를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 역시 우리에게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그 자취를 따라가라”고 권하였습니다(참조, 벧전 2:22).
오늘 감사절 주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가 이 한 가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가장 감사합니까? 우리가 가장 감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심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가 없어지기를 참으로 바라십니까? 우리 죄를 없애는 것은 내 힘이나 세상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그러하기에 내게 죄가 없기를 바라며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합니까?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죄를 없애고 싶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죄가 없어지지 않아서 한없이 낙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한 수년 동안 지속된 습관적인 죄 때문에 마음으로 탄식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나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는 죄를 멈추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동일한 죄악으로 돌아가서 패배하는 자신을 겪으며 한없는 낙심과 자학과 탄식과 비참함을 겪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에게 해결책이 없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런 신자의 모습이 이 땅의 모든 신자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그러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이러한 우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야 했던 것이랍니다. 만일 인간의 힘으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또는 주님 주시는 어떤 은혜와 도움만으로 일어설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굳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야 할 필요와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주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우리의 고질적인 죄성을 위해 사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야만 했던 것이며 나아가 십자가에서 무한한 고통을 당하시고 보혈을 흘리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 이유는 스스로 고질적인 죄성에서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 중에 “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신 것과 무관하게 내 힘으로도 매우 도덕적인, 그리고 죄로부터 자유로운 흠 없는 삶을 사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에 따르면 그 사람은 스스로 깊은 기만에 빠진 사람이며 철저한 바리새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셔야만 하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생각으로서 “주님! 도대체 왜 쓸데 없는 고생을 하시며 사람이 되어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괜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 안 하셔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죄를 이기며 제대로 잘 행동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 오셔도 되는데 쓸데 없이 먼 길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기준도, 사랑도, 열심도, 거룩함도, 의도, 전능하신 능력도,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지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어둠 속에 있는 눈 먼 맹인인 것입니다.
이와는 정 반대로 우리 중에 ‘인간은 죄덩어리이기 때문에 늘 죄악 가운데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기를 포기하고 죄를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 역시 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주의 전능하신 능력과 역사를 단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불신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로부터 죄를 없애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며 친히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영접하고 그분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복음의 한없는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3장 5절로부터 그 누구든, 어떤 무서운 죄인이든, 아무리 오랫동안 죄성에 시달리던 사람이든, “우리 죄를 없애려고”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신 사실을 알고 더욱 그분을 의지하고 붙들고 그분으로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각자의 죄성을 이기고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서라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속량을 이루신 우리 주 영광의 예수님은 주의 성령으로 죄를 없애는 일을 해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 어떤 불치의 병을 앓는 환자라도 다 치유하시는 것을 보여주신 목적이며 그분의 능력은 어떤 사악한 죄인의 깊은 죄성이라도 없애주실 수 있음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주의 능력으로 깨끗함을 얻어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을 얻었고, 38년 동안 앉은뱅이였던 사람도 주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능력의 말씀으로 당장 치유함을 받고 일어섰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 사람들을 병으로부터 깨끗함을 준 것만이 아니라 죄를 이길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5:1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도록 죄로부터의 자유함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5절에서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다”고 말씀한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율법의 공의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 아래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없애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셔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와 원죄의 모든 죄책을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속량을 이루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에 주의 승리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책에 있어서도 자유할 뿐만 아니라 죄의 권능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죄책뿐만 아니라 죄의 권능에서도 벗어난 하나님의 자녀로써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얼마든지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고 나아가 얼마든지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게 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힘으로 죄책을 감당할 수 있으며 심지어 내 결단으로 죄를 멈출 수 있다는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기 바랍니다. 이러한 교만한 마음을 품은 자들은 반드시 지옥 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직 전능하신 주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의 십자가 속량에 의지하며 죄 사함을 받고 또한 그분의 영을 받아 죄의 권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전능하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죄를 이기는 거룩한 능력과 생명을 주시는 줄 믿고 주께 간구하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주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셔서 죄로부터 자유를 주시며 세상의 어둠과 죄에 승리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왜 우리 중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셔서 이루려고 하시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있는지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에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잘난 척하며 말했습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요 13:8).
즉, 예수께서 그의 죄를 씻어주시는 일을 허락하지 않고 내가 씻겠다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께 부탁해야 할 최고의 것은 “주여 제 발을 씻어 주옵소서”라고 하며 내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주와 무관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 주의 보혈로 씻김 받고 주의 영으로 거룩한 생명을 입지 못하기 때문에 어둠과 죄악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주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인해 그 어떤 죄성에서도 자유롭게 됩니다. 이는 내게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께서 나의 죄성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 맘 다해 주 안에 거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7절에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이 말씀을 거꾸로 말하면, 주의 의로우심 같이 주의 의로운 생명을 받은 자는 의를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의를 행함이 없는 신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직 옛사람이 남아 있고 세상은 어둠에 있으며 마귀가 쉬지 않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 신자라도 깨어 있지 못하면 죄악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이런 사실로 인해 복음적인 해결책을 분명하게 알려준 바 있습니다.
[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1:8-10; 요일 2:1-2)
이처럼 참 신자는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계속 죄와 싸우며 의를 향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주 안에 거하는 한 죄를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처음부터 항상 계속 범죄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마귀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이러한 주의 말씀과 함께 사도 요한은 진리를 선포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습니다. 죄에게 종 노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죄의 종이 되어 마귀의 흑암의 권세 아래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죄의 감옥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책을 사함 받았고 죄의 종 노릇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의를 섬기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죄에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고 신뢰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진정으로 의지할 때 참으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성이 뿌리가 너무 깊을 경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죄에서 벗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 가운데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6절과 8절의 “범죄하는 자”, 그리고 “죄를 짓는 자”라는 표현은 “죄를 짓는 것을 합리화한 상태에서 죄를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죄를 짓는 일이 삶의 스타일이 되어 버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악에 물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혹시 날마다 무너지는 죄가 있다 할 지라도 그 죄로 인하여 끝없이 아프고 끝없이 비참함을 느끼면서 계속 그리스도의 속량과 대제사장 직분을 의지하고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오뚝이 같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죄성을 제거하는 시간이 좀 다를 수는 있지만, 결국은 성도는 죄성을 이기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생명이 결국 옛사람을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지금은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결국 선이 반드시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이 세상을 떠날 때 흠과 점도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상태로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내 속에서 옛사람과 새사람이 끝없이 싸우지만,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사람의 승리로 결론 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사람마다 영원한 영광으로 이어지는 상급이 다를 뿐입니다.
8절은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한때 한국 교회와 미국의 한인 교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던 류광수 다락방이 가장 즐겨 사용하던 구절입니다. 그들은 이 구절에 서 있는 이단입니다. 이 한 구절에 생명을 걸고 있습니다. 류광수 목사는 이 구절을 통하여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기 때문에 무당과 액운 등, 마귀의 일을 물리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더니 류광수는 복음의 핵심을 건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능력이 없는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내용을 믿음의 필수 조건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원을 온전히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뿐만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는 능력이 신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필수조건으로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믿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마귀의 일을 멸하는 권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권세는 축귀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바울이 전한 복음에 한 가지를 더 추가시킨 복음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류광수 다락방은 죄성에 대한 싸움이 없습니다. 거룩을 향한 싸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자들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때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조건 인간에게 발생하는 비참한 사건들을 마귀의 일로 연결시킴으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늘 마귀만 내어쫓는 축귀 기도를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8절의 내용은, 예수께서는 죄의 일을 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으며 그분은 죄로 온 세상을 장악하려는 마귀의 일을 멸하셨으며 또한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서 성령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권능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의”와 반드시 관계합니다. “거룩한 삶”과 관계합니다. 신자들은 내 힘이 아닌 복음의 능력으로 이 일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증거로서 두 가지를 듭니다. 그것은 ‘의를 행하는 것’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니, “의를 행함”이 있는데 의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정상적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형제 간에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은 결론적으로 11절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너무나 선명하게 진리를 알려줍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의 특징은 의를 행하는 것과 주께 속한 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주께 속한 자를 미워하고 살인하는 자는 그 정체가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하였기에 빛과 진리에 속한 그리스도의 자녀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하지 못함에 대하여 회개하기 바랍니다.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는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어찌하든지 형제 간에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바른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점검하기 바랍니다. 내게는 주의 말씀을 진심으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신자들의 마음 속에는 그들을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씨가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그리고 이렇게 말씀으로 거듭난 자는 그리스도를 맏아들로 하는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자이기에 참 소망을 갖고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쉬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방향으로 온 마음과 뜻을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만일 이러한 거룩한 성향이 없는 자라면 그가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계속 범죄하는 자”로서 주를 보지도 못하였고 주를 알지도 못한 자이며, 더 나아가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악한 자에게 속한 가인과 같은 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에 관심이 없으니 복음과 율법을 알 필요가 없고 단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기의 이득과 유익을 구하기 위해 교회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하여 분명하게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듭나기 전과 거듭난 후의 내 자신이 분명하게 바뀌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더욱 죄에 대해서는 죽으려고 하며 의에 대해서는 더욱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날수록 뚜렷하게 죄성이 사라지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삶으로는 많은 선한 의의 열매를 점점 더 풍성하게 맺혀갑니다. 그의 깊은 마음 속에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오직 하나님과 주의 영광입니다. 그는 매사 매 순간마다 주의 뜻을 물으며 그 뜻대로 순종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의 남은 삶 동안 쉬지 말고 주 안에 거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주 안에 거하며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주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하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쉬지 말고 성경을 읽고 늘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당장 곧바로 순종하심으로 항상 주의 뜻을 이루어가며 의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계속 닮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 감사주일을 맞아 “우리 죄를 없애려고” 그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심에 무엇보다 가장 감사하시면서 내게서 죄성이 다 떠나는 것을 체험하며 한없는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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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남은 시간 행복이 넘쳐 나시길 기원 드립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