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아웃사이더
이덕화 지음|푸른사상 소설선|146×210×18 mm|288쪽
19,000원|ISBN 979-11-308-1858-0 03810 | 2021.12.5
■ 도서 소개
새로운 세계에 뿌리내리며 연대하는 공존의 서사
이덕화 소설가의 장편소설 『아웃사이더』가 푸른사상에서 출간되었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쪽에 정착한 새터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폭력적인 세계에 대항하여 새로운 세계에 뿌리내리기 위해 삶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탈북민들의 서사를 통해 남과 북, 세대 간이 함께하는 공생의 가능성과 희망을 그리고 있다.
■ 작가 소개
이덕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김남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성문학학회, 한국문학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박경리, 최명희 두 여성적 글쓰기』 『여성문학에 나타난 근대체험과 타자의식』 『한말숙 작품에 나타난 타자윤리학』 『은밀한 테러』 『블랙레인』 『흔들리며 피는 꽃』 『하늘 아래 첫 서점』, 공저로 『페미니즘과 소설비평』(근대편, 현대편),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가 있다. 2002년 혼불학술상, 2011년 남촌문학상, 2016년 노근리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작가포럼 대표.
■ 목차
작가의 말
1. 코비드-19와의 만남
2. 희미한 새벽
3. 까치노을 카페
4. 현실과 기억의 교차
5. 새로운 정착
6. 새벽안개
7. 꽃제비 허물 벗기
8. 음악회의 초대
9. 길의 도중에서
10. 낯선 손님
11. 놀멍 쉬멍 걸멍
작품 해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사유한다는 것―임정연
■ '작가의 말' 중에서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시간 절약이다. 회의다, 세미나다, 직접 발걸음을 해야 했던 것이 줌(ZOOM)으로 대체되면서 그만큼 절약이 된 것이다. 대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 안에서의 가사 노동이 증가하게 되었다. 어떤 상황이든 양면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이면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었는데,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주변 정리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채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웃사이더』를 쓰면서도 삶의 이면성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던 첫해 김정은과의 남북한 정상회담이 가시화되면서 온통 나라가 들썩였다. 그 당시는 ‘나’ 개인의 삶이 희생될 것을 각오까지 하면서 통일에 대한 보랏빛 꿈을 꾸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김일성이나 이승만의 역량을 초월한, 남북을 통합할 민족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가능성의 꼬리를 잡고 이런 경우, 저런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한동안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 돌던 생각의 끄나풀이 결국 『아웃사이더』로 나오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개인의 삶은 혹은 국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나, 내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다. 일천한 경험과 제한된 독서에 의해서 부족한 면이 많은 어설픈 글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잘하려고 하지만 그 능력의 한계는 뛰어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한계를 표출하면서까지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나의 살아 있음의 지표이다. 살아 있는 한 쓸 것이고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다. 오직 희망은 더 폭넓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공감대를 얻고 싶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력하지 않고 얻은 공덕을 이제는 노력하며 얻는 공덕이 되게 할 것이다.
■ 추천의 글
『아웃사이더』는 북한을 벗어나 남쪽에 와 새롭게 정착한 새터민의 이야기다. 이럴 때 우리는 글을 읽기도 전 선입견처럼 사로잡히는 게 있다. 그런 일이 있게 한 시대적 비극과 그것을 배경으로 체제 우열을 가리려 드는 정치적 도그마이다. 『아웃사이더』는 같은 새터민의 이야기여도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황을 제시한다. 북한을 탈출한 것이 아니라 심정적으로는 오히려 그쪽 체제로부터 축출당한 경제학자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고통 받다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태국의 창녀굴로 팔려갈 위기를 헤치고 남쪽에 정착한 딸 사이의 인간적 갈등에 천착한다. 이 ‘인간적 골짜기’가 어떻게 ‘희망적 골짜기’로 채워지는지, 시작은 그들 부녀로부터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작가는 남과 북, 윗세대와 아랫세대, 인간과 역사가 함께하는 큰 틀의 공존의 서사로 그려낸다.
― 이순원(소설가)
■ 작품 세계
『아웃사이더』는 COVID-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순국과 주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4·3사건 희생자 가족인 창걸 부자와 함께 이른 새벽 제주도 오름을 오르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현재의 고통이 과거의 기억을 끌어안고 미래 지향적인 시간을 모색하는 구조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대한 역사의 지류로서 개인의 삶은 처음부터 어떤 선택권도 없이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에 무방비 상태로 던져져 있었다. 개인의 삶을 전염시키는 거대한 비극과 불행 앞에 인간은 늘 속수무책이었지만, 그래도 기억해보자. 세계의 돌연한 붕괴에 직면해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의 의지로 각자의 삶을 복구해왔다는 사실을. 대물림되는 폭력과 여전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다시 세워지고 계속 이어지는 이 세계가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 말해볼까. 『아웃사이더』는 하나의 세계가 불현듯 붕괴된 뒤, 그 무너진 세계 위에 다시 자기 삶의 서사를 써내려 가는 개인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아웃사이더』의 핵심은 실존의 부정성을 딛고 삶의 ‘다음’을 사유해왔던 인간의 품위와 존엄, 바로 그 인간다움의 조건을 환기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순국과 주미는 탈북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개인의 운명을 부당하게 장악한 폭력적인 세계에 대항해 자기 삶의 존엄을 지켜낸 보편적 인간의 표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중략)
그러므로 『아웃사이더』를 읽는다는 것은,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 서문에서 강조했듯 “우리가 가장 최근에 겪은 경험과 공포를 고려하여 인간의 조건을 다시 사유”하는 것의 필연성을 되새겨보는 일이다. 이 소설의 울림과 파장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팬데믹 이후 어떻게 다시 인간다움의 품위와 존엄을 지켜갈 것인가를 묻는 우리 모두의 긴요하고 절박한 물음에 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려 깊게 타인의 고통을 살펴가며 한 세계의 재현에 예의를 다하는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문득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애도할 자격과 조금 더 낙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믿고 싶어진다. 이제 알겠다. 『아웃사이더』는 이제 막 한 세계의 끝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작가가 건네는 위로와 격려의 서사였음을.
- 임정연(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이덕화 작가의 장편소설 『아웃사이더』에는 북한에서 탈출하여 남쪽에 정착한 새터민들의 지난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존의 여타 탈북 소설은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며 겪은 차별과 배제, 정치적·시대적 갈등에 천착하였다면, 이덕화의 소설은 개개인의 슬픔을 투시하고 인간 문제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북한의 경제학 교수로서 모종의 이유로 한국 사회에 정착한 순국과, 그러한 아버지로 인해 꽃제비로 살던 주미가 북한에서 탈출, 고난 끝에 남쪽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이방인들의 고뇌와 번민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김일성대학 연구원을 거쳐 교수로 임용된 경제학자 공순국은 남한에 잠입해 북한 경제 대책을 연구하라는 명목 아래, 북한의 체제로부터 축출되어 남한으로 옮겨온다. 북쪽에 있는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조국이 자신을 버렸다는 배신감에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지내던 그에게 찾아온 사람은 북한에 두고 온 딸 주미였다. 꽃제비로 생활하다가 탈북하여 태국의 창녀굴로 끌려갈 뻔하다 탈출하는 등 다사다난한 일을 겪고 남한행을 결심한 주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만났음에도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주변인들의 갖은 노력과 도움의 손길로 주미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길을 터놓는다. 그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손길은 과거에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열어준 것이다.
‘어비식당’의 주인이 같은 탈북민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이나,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상처 받은 창걸의 마음을 순국이 어루만져주며 공감하고 연대함으로써 과거의 고통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일도 그러하다. 폭력적인 세계에 대항하여 새로운 세계에 뿌리내리기 위해 삶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탈북민들의 서사를 통해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 작품 속으로
간호사가 병실을 다녀간 이후 병원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의사, 간호사의 걸음 소리가 말발굽 소리처럼 따닥따닥 이어졌다. 식사도 이제 간병인들이 직접 탕비실에서 갖다 먹어야 했다. 식사 배분 담당 아줌마부터 환자 가족들조차 모든 외부인은 출입 금지시켰다. 의료진과 간병인 한 사람 외에는 병원을 출입할 수 없었다.
주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난리는 북조선에서 공안이 시장 바닥에 나타나 꽃제비들을 잡아갈 때와 같았다. 꽃제비들은 공안에 잡히지 않으려고 지하실에서 바퀴벌레들 도망가듯 뿔뿔이 흩어졌다. 잡히는 사람은 다리나 허리 등이 불편한 사람과 나이 많은 할마이, 할바이 동무들이었다. 주미는 그 이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주 공포를 느낀다. 그때 무지막지하게 회초리에 맞아 이마에 피를 흘리며 발발 떨며 끌려가던 할마이, 할바이 동무들을 생각하면 몸이 오그라지며 소름이 돋았다. 공안들은 대부분 괴팍하고 미친 사람들이었다. 주미를 끌고 가려다 무지막지한 손으로 바지를 벗긴 사람도 있었다. (14~15쪽)
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긴 어두운 동굴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함께 들은 충격적인 딸의 소식에 처음 음압실로 끌려갈 때의 막막함이 되살아났다. 딸이 나타남으로써 그동안 막혔던 북한에서의 삶의 편린들이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두서없이 떠오른다.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세계 속의 막막함. 보고 싶고 기다린 딸이었다. 순국 자신이 남한으로 떠난 이후 그동안 쭉 꽃제비로 살아왔다고 한다. 부모들이 먹을 것을 찾아 떠나고 기다리다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나선 아이들! 쓰레기통을 뒤지면서까지 먹을 것을 찾다 굶주림에 견디지 못해 길거리 여기저기에 먼지 덩이처럼 쓰러져 있던 아이들! 뉴스에서 본 꽃제비들을 떠올리자 바늘로 온몸을 쑤시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41쪽)
“하루 종일 몸 마사지, 얼굴 마사지를 하면, 내 몸이 이렇게 귀중한 대접을 받는구나 생각되어요. 나 스스로도 소중하게 생각되어요. 그동안 도망 다닐 때는 내 몸이 얼마나 귀찮게 생각되던지, 순간순간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 의사와는 달리 위기가 닥치면 스스로 달리는 거예요. 제대로 밥 세끼 먹고 지낸 지가 얼마 안 되는데 이렇게 키가 큰 것도 신기하지 않아요? 제 몸은 산, 숲, 공기, 이슬로 자랐을 거예요. 봄이 되면 새들이 왜 그렇게 지저귀는지, 새들도 봄이 오는 줄 아나 봐요. 새벽부터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어요. 아버지 만난 것만 해도 기적인데 이런 대접까지. 이것으로 그동안 꽃제비 생활하며 도망 다녔던 공포와 분노는 물론 더 힘든 것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즈음은 거의 가려움증이 없어졌어요. 그러나 이렇게 있어도 되는가 하고 불안해요. 항상 가슴은 두근두근해요.” (153~154쪽)